[문화비평가가 보는 부안투쟁이야기 17]
*다음 글은 계간 <진보평론>에 실린 글입니다. 11월 12일에 작성완료한 것이라서 민란/ 계엄 상황과 관련해서는 논의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점 참조하십시오. 원고매수가 120매로 상당히 깁니다. 다운받으실 수 있도록 별도 첨부합니다. 여기서는 주)가 삭제되어 있으나 첨부파일에는 그대로 살렸습니다. 감사합니다.....
부안, 반핵민주투쟁, 전쟁기계
고길섶 문화비평가, 문화과학 편집위원
1. 분노와 저항의 기원
“김종규 이 새끼 건방진 것, 욕 얻어먹어도 싸지 뭐, 욕을 안할 수가 없네, 우리가 절 잡아먹어 뜯어먹어, 군청 앞에 가서 (촛불시위) 한번 한다는데 왜 막어, 우리가 방패가 있어, 뭐가 있어, 아무것도 없어, 그렁게 첫째, 우리는 많이 모이는 것이 힘이여, 둘째, 우리는 암것두 몰랐잖아, 허지만 인제 우리는 다 알아, 눈을 뜨고 귀를 열고 입을 벌리게 됐어, 입이 뚱그러져서 할 말도 하고 욕도 하고 개소리도 해보자고, 법이라는 것은 공정해야 혀, 죄없는 사람 얼른 풀어줘, 흙만 파먹고 사는 사람 우리가 먼 죄졌어?, 잡아가둔 사람 당장 내놔, 추잡스런 새끼, 가소로워, 우리 그 새끼 낯짝이라도 한번 보게, 너 어째서 그랬냐, 한번 물어봅시다, 근디 그 쥐새끼가 쥐구멍으로 도망갈 것여, 지가 별거 있어, 첫째는 하늘이 알고, 둘째는 땅이 알고, 셋째는 인간이 알아서 일은 하는거야, 그런데 우리가 모를 줄 알고, 개 똥구녁 같으니, 한심하고 불쌍혀다, 우리 여자덜, 무기 하나 있어, 벗기라도 다 혀, 무기가 뭔지 알 것지라?, 글고 우리가 뭐땜시 근심혀, 그럴 필요 없어, 데모 죽도록 할 것여, 몇 십년이라도 혀, 그래서 우리 중생덜에게 새끼덜에게 잘 물려줄 책임이 있어, 그걸 우리가 하고 죽어야지, 헌디 우리 놀고 뛰고 놀아감서 허게, 우리 웃어가면서 춤춰가면서 싸우게....”
10월 31일, 98일째 촛불시위에서 자유발언에 나선 한 할머니의 말이다. 집회 현장에서는 이런 류의 규탄발언들이 자주 나온다. 8월 13일 서해안 고속도로를 점거하는 투쟁이 벌어졌을 때에도 환갑은 족히 넘어보이는 한 할머니가 일단의 경찰병력이 밀고 오는 것을 혼자서 조용한 대화와 협상으로 막아내더니 이내 고속도로에 앉아 농성하는 군민들에게 한바탕 즉석연설을 했다. “김종규 이새끼, 나한테 ‘누나, 누나’ 하면서 댕겼어. 그런 놈이 부안을 팔아먹어? 염병할 놈, 손가락 다 짤라버려야 해!” 할머니는 군수의 배신에 대한 극도의 분노를 전달하고 사람들은 그에 맞춰 박수와 함성을 질러댔다. 촛불시위가 매일 밤 열리는 부안읍내의 반핵민주광장은 만민공동회의 장소이기도 하다. 주민들이 마이크를 잡고 한마디씩 한다. 특히 아줌마들이나 할머니들은 마이크를 처음 잡으면 말을 잘 할 줄 모른다고 겸손해 하면서도 일단 '말씀'이 쏟아지면 거침없어진다. 군수에 대한 분노를 노골적으로 쏟아낸다. 욕설도 한번씩 섞어가면서 수천의 청중들을 웃음과 해학으로 속도감 있게 몰아간다. 평생 '부엌데기'였던 그이들, 그이들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와 정말 말씀들을 아주 잘 한다. 수천명의 사람들을 규탄과 웃음과 감동으로 열광시키는 명연설을 해댄다. 몇몇이 모여서 하는 수다들에만 능란한 줄 알았더니 그이들은 대중 앞에서도 연설들을 잘 해내는 이야기꾼들이다. 군의원도, 지역구 국회의원도, 대책위 집행위원장도, 초청강사도 흉내낼 수 없는 민성(民聲)의 아우라가 주민대중들을 휘어잡는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명연설가로 만들어내었을까. 무엇이 부안 군민들을 하루아침에 분노하게 했을까. 이들의 분노는 9월 8일, 이른바 ‘군수폭행사건’ 때 절정에 달했다. 7월 11일 핵폐기장 유치 선언 이후 김종규 부안군수는 10여명의 사복경찰들의 보호를 받으며 다녀야 했고, 그것도 군민들을 피해 다녀야했으므로 군민들로부터 ‘쥐새끼’라는 별명을 들어왔다. 그러던 부안군수가 추석 직전 ‘폭행유도’로 의심받는 행보를 하였는데, 9월 8일 진서면 석포리에 소재한 내소사를 찾아간 것이 그것이고, 이를 알게 된 인근 주민들 수백명에 의해 포위당한 일이 발생했다. 주민들의 요구로 주민 앞에 나선 부안군수는 석고대죄를 해도 용서받기 어려운 판인데 주민들에게 사과는커녕 뻔뻔스러운 말로 주민들의 감정을 건드렸다. 군수는 “여러분들이 부안을 사랑하는 만큼 나도 부안을 사랑합니다. 여러분들이 나에게 계란을 던질려면 던지고 돌멩이를 던질려면 던지세요”라며 기세등등하게 발언했고, 이때 주민들은 풍 맞은 듯 형언할 수 없는 분노의 극한으로 아무 소리 못하고 부르르 떨기에 이르렀고, 급기야 한 아주머니가 벌떡 일어나 군수의 뺨싸대기를 날려버렸다. 분노의 감정구조는 하늘을 찔러댔으니 군수가 집단폭행 당하는 것은 폭포에서 물 떨어지듯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자 군중의 행동규칙에 부합되는 일이었고 자업자득이었다. 귀스따브 르봉의 말마따나 군중은 모든 자극적인 흥분원인에 따라 움직인다. 하지만 부안 주민들의 군수 집단폭행은 척수의 지령에 따랐다기보다 ‘공공의 양심행동’에 따랐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7만 군민의 죄인 군정 독재자에 대한 단죄라는 맥락에서 보면, 그 집단폭행은 공공의 양심행동이었다. 민주주의를 하루아침에 짓밟아버리며 독선적으로 핵폐기장 유치신청을 해버리고 주민들을 분열시키며 온갖 매수와 술수와 공작정치로 일관하는 ‘쥐새끼’에게, 그리고 내소사 현장에서 오만방자하게 ‘칠테면 쳐라’ 식으로 나온 작자에게 가한 주민들의 우발적 행동을, 단순히 폭력행사로만 본다면 민주주의를 또다시 유린하는 역사적 범죄가 될 것이다.
우리는 매우 깊은 분노의 골로 충만해진 부안 주민들의 감정구조를 읽어내야만이 오늘 부안사태의 심층을 이해할 수 있다. 분노의 진원은 2002년 지자체장 선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종규 현 군수는 과거 민정당 계열의 고명승 씨 비서관 활동을 통해 지역 정치계에 입문하였으며, 지자체장 선거 때에는 민주당 텃밭의 하나인 부안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민주당 소속의 현직군수를 꺾고 군수에 당선되었다. 그의 당선은 선거운동 이전부터 발로 뛰어다닌 노력의 댓가였다. 사조직 운영은 물론 온갖 사회단체에 다 가입해 활동하였고, 조기축구회에 새벽바람으로 생수를 가져다주거나 군 전 지역의 초상집을 다 찾아다니며 얼굴 익혀주기에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사탕군수’로 잘 알려진 것처럼 만나는 사람마다 사탕을 나눠주면서 사람들의 인지상정을 등에 업었다. 그는 ‘인간적인 얼굴’ 이미지로 주민들을 현혹하였으며,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몰이를 하였고, 결국 그렇게 해서 군수에 당선될 수 있었다. 그는 선거공약에서는 ‘농어민과 서민의 대변자’임을 분명히 하였고, ‘자연이 사라지는 곳에는 사람도 살 수 없다’며 ‘환경도시’를 내세웠다. 또한 그는 풍력발전기 보급과 태양열 발전 및 난방 정책을 펴겠다고 공언했었다. 물론 선거 때 무슨 공약을 못하랴마는, 그러나 자신에게 믿음을 준 군민들에게 군수가 선물로 가져온 것은 ‘핵폐기물 처리장’과 ‘양성자가속기’라는 어마어마한 핵산업 재앙물이었다. 더구나 그는 핵폐기장 유치를 반대하는 척하는 입장을 밝혀오다가 군민들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기습적으로 유치선언을 해버렸으며, 군의회의 위도 주민 유치청원 부결에도 불구하고 독단적으로 산업자원부에 유치신청을 해버렸다. 한 주민은 “한마디로 순박한 부안 사람들을 상대로 자신을 철저히 위장하고 사기를 쳤다. 과거를 잘 보면 현재 그 사람의 행동이 보인다”고 지적했다. 반대여론이 상승세이긴 했지만 군수의 유치선언 직전까지만 해도 찬성여론도 상당했으나 군수의 유치선언 직후에는 대다수의 주민들이 반대진영으로 집결된 것만 보아도 군수의 독단적 폭거가 주민들을 얼마나 분노하게 했는지 잘 말해준다.
부안 주민들의 분노는 주민 자신들을 배신하고 사기친 군수의 모멸행위와 민주주의 유린 전횡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인 바, 군수의 독단행위는 ‘절차적 비민주성’의 문제로 단순환원될 성질의 것이 결코 아닌 군정 독재자의 폭거로 규정되어야 할 일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민심을 배반하고 핵폐기장 유치 신청을 한 김종규 군수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독재자를 시대의 영웅으로 만들어 사기를 충천시켜준 반면 특수진압부대의 폭력진압에 대항한 부안 주민들은 폭도로 몰아간 어처구니없는 작태를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부안 군민들의 분노는 군수에 이어 통치자에 대한 분노로 이어졌다. 촛불시위 현장에서 발언한 한 아주머니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 군민는 분통이 터저서 어찌할 줄 모르고 대모라는 시위를 하기된는지 7월 23일날 밤 대통령이 김종규한테 전나로 하는 말이 김종규 군수님 힘내셔요 용기일치 말고 힘내셔요 내가 뒷심은 얼마든지 미러 줄께요 하넌 겄을 보고 한마디로 저것시 한 나라의 대통령인가 정말 분이 났서 날마다 핵폐기장 백지화되는 그날까지 열심으로 대모하곘음니다 한 나라 대통영이라면 어버이나 갓튼데 1계 군민 7만명이 피눈물을 흘리며 울부짓고 인는데 그럭케 전나를 해야겼서요 하루속기 대통령과 김종규는 우리 앞에 사과하셔요” 따라서 “김종규를 때려죽이자”와 함께 나온 노무현 퇴진 구호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부안사태는 명백히 노무현 대통령도 가해적 공모자임을 부정할 수 없다. 정부는 2월의 ‘핵폐기장 선정관련 대응지침’에서 핵폐기장 반대운동을 테러진압 차원에서 대응하겠다고 밝힌 바 있고, 위도 핵폐기장 후보지 신청 후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통해 강경진압 기조를 정한 바 있다.
2. 절대공동체의 ‘부안적 구성’
7월 11일 이후 군수에 대한 부안 군민들의 분노는 핵폐기장 반대투쟁으로 총화되었으며, 그것은 곧바로 절대공동체의 ‘부안적 구성’이라는 형태로 출현하도록 했다. 최정운은 1980년 5월 18일에서 21일까지의 광주민중항쟁의 상황을 ‘절대공동체’라는 독창적 개념을 통해 설명한 바 있다. 그는 이 기간에 광주시민들이 무려 3개 여단 2,500명에 달하는 대한민국 최정예 공수부대를 어떻게 물리칠 수 있었는가에 대한 질문의 답으로서 ‘절대공동체의 등장’으로 설명했다.
“시민들의 목숨을 건 싸움은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몫을 위해서였다... 광주시민들에게 인간의 존엄성이 문제시된 것은 공수부대가 동료시민을 '개패듯 팰 때', 그리고 이러한 광경을 보고도 자신이 그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지 못했다는 사실을 괴롭게 느꼈을 때였다... 절대공동체의 형성은 모든 광주시민들에게 이 인간의 존엄성의 문제에 대한 궁극적 해결책이었다. 인간의 존엄성은 분명히 개인들에게 주어지는 사회적 가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가치의 본질은 어떤 인간이 자신의 생명다 더 큰 가치를 상정하고 그것을 위해 자기 보존의 본능을 극복하며 즉 목숨을 걸고 추구하는 행위를 통해 부여되는 것이다... 절대공동체의 경험은 그 사소한 편차에도 불구하고 보편적인 것이었다. 모든 시민들은 절대공동체의 몸의 논리, 삶의 논리, 인간의 원초적 가치를 체험했다. 이 경험은 각종 사회적 역할과 분류의 굴레와 억압을 벗어난 순수한 인간됨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모든 억압으로부터의 절대해방이었고, 이는 '혁명적' 순간이었다... 절대공동체는 결과적으로 공포를 극복한 용기와 이성을 지닌 개인의 결합의 모습으로 나타났지만 고독한 개인으로부터 출발하여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로 절대공동체는 전통적 공동체로부터 출발하여, 공동체의 그물망과 의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개인으로부터 가능했던 것이다. 잔인한 공수부대의 폭력에 공동체가 찢기우는 절대절명의 위기 그리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공동체의 의무를 배신하지 못하는 시민 개인들의 고뇌와 용기를 통해서 그리고 이러한 개인들의 만남과 축복과 의식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또한 이 과정에서 전통적 공동체의 정서를 담은 <아리랑>은 실로 마법의 힘을 발휘하였다. 절대공동체는 전쟁을 위해 인간을 억압하여 만든 군대 같은 조직이 아니었고, 용기없는 인간들이 동료들의 숫자의 힘에 기대고자 모은 '떼거지'도 아니었다. 절대공동체는 이미 존엄한 전사들의 만남이었고 그들의 행동은 결코 비겁한 인간들이 모여서 저지르는 '폭동'이나 '집단 광란'이 아니었다. 이 절대공동체는 절대적 적에게 증오심을 모으고 사랑만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였다.”
최정운은 5·18이 우리의 근대사 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에서 갖는 의미의 핵심을 절대공동체의 체험에서 찾고 있다. 우리는 오늘 부안 반핵민주투쟁에서도 절대공동체의 등장을 목도하고 있다. 물론 광주민중항쟁의 그것하고는 또다른 종류의 ‘부안적 구성’일 것이다. 절대공동체의 부안적 구성은, 광주에서처럼 인간 존엄성의 위기 초래 즉 현재적으로 목도되고 체험되는 계엄군의 잔인한 폭력과 학살에 대한 대응과는 달리, 생명 존엄성과 공동체 지속성의 가공할 파괴가 미래적으로 예견되는 것에 대한 불안한 상상으로서의 집단적 대응이라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부안에서의 절대공동체의 구성은 인간의 존엄성을 넘어서서 주민 자신들을 둘러싼 환경과 생명의 지문화(地文化)적 공동체를 지켜내겠다는 것의 절박한 연대성에서 비롯되고 있지 않나 한다. 그리고 지문화적 공동체의 파괴라는 불안한 상상은 반드시 미래적인 것만이 아니라 농수산물 판매 저하와 관광객 급감 등 지금-오늘의 문제로부터 직결된다는 생존권의 위기와 불가분의 관계로 시작되었다.
또한 7·22사태 때 보여준 공권력의 무자비한 폭력진압은 부안 절대공동체의 구성을 가속화시켰다. 일부 주민들이 ‘제2의 광주’로 묘사하기도 한, 특수진압부대에 의해 자행된 7·22사태는 이미 계획된 국가폭력이었다. 이에 대해 문규현 신부는 7월 29일 노무현 대통령에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당신이 특별히 파견한 경찰에게 들었습니다. 그들은 내려오기 전 교육받을 때 ‘제2의 광주로 생각하라’는 말을 들었다더군요. 놀랍고 끔찍했습니다. 믿을 수가 없고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묻고 또 묻고 확인했습니다. 그게 과연 정말인가. ‘제2의 광주’. 그렇습니다. 내 눈 앞에서 펼쳐지는 참담한 상황은 그걸 생생하게 확인시켜주고 있습니다. 내 눈 앞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쓰러지고 중상을 입고 실려갔습니다. 도망치는 사람을 삼십미터씩 쫓아가 목뼈를 부러뜨리고, 팔십칠세 할머니의 쓰러진 몸도 거침없이 군홧발로 짓밟았습니다. 저를 보호하려다 방패로 머리를 찍히고 그 피터진 머리를 감싸쥐고 있던 청년은 연이어 날라온 곤봉에 코뼈까지 함몰되었습니다.” 핵폐기장백지화핵발전추방범부안군민대책위(부안대책위) 집계에 따르면, 이 날만 해도 부안 군민들의 부상자 수는 100여명이나 되었는데, 1만여명의 주민들과 7천여명의 전투경찰이 군청 앞 등 부안 읍내 각지에서 치열한 격전을 벌였다. 7·22사태는 부안 주민들에게 군수와 대통령에 대한 분노의 벡터를 더 크게 그리게 했고 또한 공권력으로부터 위협받는 상황이 본격화되면서 군민 다수가 절대공동체의 한 몸이 되어왔다. 그리고 7·22사태는 9·8사태, 11·7사태 등 폭력경찰의 만행으로 이어져 왔고, 부안 주민들의 부상자 수가 300여명을 넘어서고 있다. 이럴수록 부안 절대공동체는 깨지는 게 아니라 더욱 강렬한 힘으로 응고되고 있다.
그러나 부안에 있어서의 절대공동체는 공권력과의 대치전선에서보다 환경과 생명의 지문화적 공동체 및 민주주의 공동체를 지켜내겠다는 ‘생명-민주효과’로서 구성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나는 다른 글에서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가 읽어내야 할 것은, 그러나 결코 다 읽어내지 못할 것이지만, 촛불시위의 흐름들을 흐르게 하는 강렬한 ‘생명-민주효과’이다. 이런저런 프로그램들은 주민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표현의 형식들이며, 주민들에게 공감을 얻어내거나 원천을 제공받는 생명-민주효과들을 생산한다. 이게 아마 지속의 힘일 터다. 생명효과는 개개인들 생명체로서, 부안사회 지역공동체 삶으로서, 더 나아가 이 세상 모든 곳과 모든 사람들과 모든 만물의 생명의 연대로서, 핵산업의 재앙으로부터 위협과 고통을 받지 않고 지속가능하게 살아갈 생명인권의 전체를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부안 사람들은 ‘우리의 고통을 이 땅의 다른 누구도 대신 짊어져서는 안된다며 핵없는 세상을 호소하기에 이르렀습니다’라고 삼보일배 선언문에서 밝힐 수 있었고, 어느 강연자가 미국의 이라크 침략을 규탄하는 반전평화 발언을 할 때도 지지의 박수를 보낼 수 있었다. 부안 사람들은 관념으로서가 아니라 실제 온몸의 치떨림의 요동으로서 생명효과를 생산하고 표현하고 소통한다. 물론 직접 핵산업에 따른 생명피해를 경험해본 것은 아닐지라도 많은 간접경험들로부터 학습한 것의 효과이기도 할테지만 무엇보다도 생명의 생존 문제가 걸린 매우 중요한 핵폐기장 유치 사안을 독단적으로 결정해버린 군수의 민주주의 유린 횡포에 대한 분노와 그 횡포에 저항하는 고통의 생체적 연동이 생명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부안 주민들의 생명효과는 민주효과의 또다른 힘과 연접된다. 민주주의를 짓밟아버린 군수를 때려잡자 외치며, 주민들의 의사결정과 민주적 참여 및 권력감시의 중요성을 자발적 실천성으로 인식해나가는 것으로서의 민주효과이다.”
부안 사람들은 정말 질기게 싸우고 있다. 사실 개월 수로 치면 이제 넉달 넘어선다(11월 초 현재). 하지만 7월 26일부터 시작한 매일 밤의 촛불시위가 11월 2일 100일째를 맞이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질긴 싸움인가. 그것도 수십, 수백명 수준이 아니라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수천명 모여대는 촛불시위니 이것만으로도 부안의 반핵민주투쟁은 매우 독특한 저항의 형태를 창조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매일 밤의 촛불시위는 반핵민주투쟁의 질긴 동력이 되어오고 있는데, 이 과정이 생명-민주효과를 생산하기도 하며 동시에 생명-민주효과가 다시 이 질긴 투쟁을 이어가도록 하는 기제이기도 하다. 부안의 절대공동체의 독특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부안 절대공동체는 이것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부안 절대공동체는 이미 권력과 행정의 유기체이기를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기관없는 신체들의 향연이자 이중권력의 투쟁체이다. 군수소환 서명운동, 60% 가까운 이장들의 이장직 사퇴, 군의원들의 군의회 등원 거부, 초·중·고 학생들의 등교거부 및 대안학교 운영, 수협 앞의 반핵민주광장화, 전 군지역의 ‘핵폐기장 반대’ 깃발들, 도로 위의 그래피티들, 상서면의 국도변 전체 담벼락 노란 페인트 도배와 구호들, 5천명 이상의 고속도로 점거, 수백 어선들의 해상시위, 여성 집단삭발, 삼보일배, 어른들과 아이들의 상경투쟁, 집단 난타공연, 반핵출정가, 온통 노란 물결 등등... 부안 주민들의 일상을 지배하는 것은 생명-민주효과에 의해 장악되는 절대공동체이며 그 감정구조이다. 그렇기 때문에 홍보와 광고, 주민 매수와 분열책, 밀어붙이기 행정, 공작정치 등으로 절대공동체를 끊임없이 위협하고 붕괴시키려 하는 부안군수와 그 똘마니 공무원들, 한국수력원자력·한국전력·산업자원부와 그 직원들, 한국수력원자력의 홍보지로 전락한 지역신문들, 위도 유치위원회, 공권력, 전경들에 밥해주는 식당 등에 대해서는 매우 과격한 적개심으로 일관되고 있으며, 주민들의 감정구조 역시 경직될 수 밖에 없다. 그 경직성은 “핵폐기장 결사반대!” “김종규를 때려잡자”라는 일상적 구호로 잘 표출되고 있으며, 이 경직된 절대공동체를 해체시키기 위해서는 핵폐기장의 ‘백지화’ 외에는 다른 대안이나 타협이 있을 수 없다. 촛불시위는 비폭력적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절대공동체를 일상적으로 담금질하는 뜨거운 미디어이자 전쟁기계이다. 그러나 그 전쟁기계는 절대공동체 스스로를 0으로 해체시켜야 하는 것으로서의 임무를 갖기 때문에 경직성을 띨 수 밖에 없다. 경직성은 곧 절대성이다.
3. 투쟁과 고행
핵폐기장 백지화를 위한 부안 사람들의 투쟁방식은 다양하게 전개된다. 그런데 그 다양한 방식들은 단순히 투쟁의 전술이나 수단으로서만 사용되는 게 아니라 그 과정들이 의미있는 전쟁기계들로 배치된다. 의미있는 전쟁기계들로 배치된다 함은, 이런저런 투쟁방식들은 그 투쟁이 진행되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그 자체로서 삶의 해방적 구성을 사유할 수 있는 단서들을 제공하며, 그 과정들을 통해 부안 사람 자신들의 반핵민주투쟁의 효과가 핵폐기장 백지화에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삶의 부분들에서도 새로운 변화들을 일으키도록 하는 내파적 투쟁기계로서의 의미가 연동된다는 것이다. 그 사례들로서 촛불시위, 등교거부, 삼보일배, 군 전체 곳곳의 노란 깃발들, 부안성당 공동체 생활 등을 들 수 있다. 이중 삼보일배의 사례를 보자. 1992년 조계종 행자교육 때 처음 시행된 것으로 알려진 삼보일배가 그간 불교계에서 인기를 얻어오다가 사회 현안의 투쟁방식으로 떠오른 것은 2002년 5월 수경스님과 문규현 신부 등이 새만금갯벌살리기운동의 일환으로 명동성당에서 광화문 정부종합청사까지 삼보일배하면서부터다. 부안성당의 문규현 신부가 함께 하는 부안투쟁에서도 여지없이 삼보일배가 등장했다. 뜨거운 8월 부안성당에서 반핵민주광장까지 단거리 삼보일배를 한차례 가진 바 있는 부안 주민들은 10월 1일에서 10일까지 열흘동안 부안-전주 구간 50여Km에 걸쳐 ‘고행’의 삼보일배를 수행하였다. 연인원 수백명의 주민들이 참여하였고 마지막날 행렬에는 수천명이 가세한 부안 군민 삼보일배는 여기에 참여한 사람들로 하여금 저항의 행렬을 넘어 삶에 대한 새로운 의미들을 발견하고 소통하도록 했다. 특히 개인적 고행이 아니라 아이들까지도 완주에 참여한 집단적, 사회실천적 고행이었다는 점에서 상생의 공생체로서의 연대성을 또다른 차원에서 의미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음은 부안 주민들이 삼보일배를 시작하면서 선포한 선언문이다.
“우리는 오늘 깊은 참회의 마음으로 삼보일배를 시작하려 합니다. 우리의 삼보일배 행동은 생명을 낳아주고 생명을 지켜주고 생명을 순환시켜주는 대지와의 대화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내딛고 거룩한 대지에 고개숙여 생명의 언어로 참회할 것입니다. 한 걸음 내딛을 때 내 안의 이기심과 탐욕을 쓸어낼 것이며, 두 걸음 내딛을 때 죽어가는 모든 생명에 대한 연민의 마음을 일으킬 것이며, 세 걸음 내딛을 때 고통받는 모든 생명을 살리고 함께 하겠다는 상생의 도를 일깨울 것이고,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일배를 할 때 생명의 영원성을 이 땅에 심어나갈 것입니다. 우리는 생명 및 생활 공동체를 지키기 위하여 모두가 하나되어 싸워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싸움은 아직도 고행의 먼 길을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땅에 핵발전소들이 들어설 때 우리는 생명의 위기를 초래하는 문명의 재앙물이라는 것을 일찌기 깨닫지 못하였고, 영덕·울진·영광·고창에 핵폐기장이 들어선다고 할 때조차 우리는 나 살기 바쁘다고 무관심했었습니다. 핵폐기장과 양성자가속기를 부안 땅에 들여오겠다고 하자 뒤늦게사 우리는 생명 및 생활 공동체의 위기를 절박하게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부안 땅뿐만 아니라 이 땅 어디에도 핵폐기장이 지어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고통을 이 땅의 다른 누구도 대신 짊어져서는 안된다며 핵없는 세상을 호소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남녀노소 모두가 하나되어 노란 촛불을 밝히며 핵폐기장 백지화를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질기게 싸워 왔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투쟁은 아직 승리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으니 우리의 참회가 부족하고 우리의 생명운동이 지극하지 못한 듯 합니다. 이제 우리는 내 안의 마음을 더욱 정갈하게 참회하여 더 크고 더 깊은 거룩한 대지와 온몸으로 대화하며 고행에 들어가겠습니다. 우리의 삼보일배 고행은 핵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내 안의 몸부림이자 이 세상을 향한 메시지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고행은 더 이상 누구더러 이 땅 생명의 순환과 생활의 터전을 대신 지켜달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의 진지한 성찰이자 우리 스스로가 지켜나갈 수 밖에 없다는 주권재민의 사상을 대지에 새기는 몸부림이고 메시지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고행은 참회로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세상을 새롭게 개벽해나가고자 하는 창조적이며 자발적인 주민생명운동이며 인권과 민주주의 운동입니다. 우리의 생명운동은 핵산업이라는 인간의 오만과 착취에 기반하는 죽음의 굿판을 중단시키며,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고 자연·인간·생명·문화가 상생하는 에너지의 사용을 촉구하는 새로운 생활양식의 문화운동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삼보일배 고행은 부안에서 출발하여 전주로 향할 것이지만, 이 세상의 모든 곳 모든 만물과 열린 마음으로 생명의 대화를 나누며 핵없는 세상의 언어를 침묵으로 써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과 이 세계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소통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고행은 곧 승리의 세상을 여는 아름다운 발걸음이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삼보일배에서뿐만 아니라 사실상 투쟁의 전 과정이 주민들 모두의 고행의 과정이다. 삼보일배가 ‘참회’의 내용을 통한 고행의 길이라면 또다른 형태의 투쟁들은 ‘절대거부’의 내용을 통한 고행의 길이고, 그러나 부안 주민들의 고행은 부분적으로 ‘성찰’의 육체성으로 재귀되면서도 또다른 부분으로서는 ‘탈주’의 영토성으로 해체되고 전복되는 실천이다. 성찰의 육체성은 종교적 방법이고, 탈주의 영토성은 유목적 방법이다. 부안 주민들의 고행이 이와같은 양면성을 갖는 이중적 실천으로 진행되면서도 성찰과 탈주의 두 속성이 대립각으로 날세우지 않고 변증법적 배치로 조율될 수 있다는 것은 특이한 일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아마도 주민 자신들도 감당하기 어렵게 어느날 갑자기 팽창해버린, 생명-민주효과의 마법에 빠져버린 집단적 역동성의 속도 때문일 것이다. 운동이 어떤 물체의 이동과 관련된 상대적 성격의 것이라면, 속도는 “어느 물체의 환원불가능한 부분들이 돌연 어떠한 지점에서라도 출현할 수 있는 가능성과 함께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방식으로 매끈한 공간을 차지하거나 채우는 경우 물체가 갖게 되는 절대적 성격”이다. 따라서 운동이 아무리 빨라도 그것만으로 속도가 될 수 없으며, 속도는 아무리 늦어도 혹은 전혀 움직이지 않더라도 여전히 속도인 것이다. 부안 주민들은 촛불시위 현장에 가만이 앉아서도, 혹은 삼보일배를 하는 길에서도, ‘핵없는 세상’ 깃발을 꽂아둔 농가에서도, 난타공연을 하는 무표정한 얼굴성에서도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집단적 역동성의 속도를 내며 전쟁기계가 된다. 고행과 투쟁의 속도들, 이것들 모두가 삶의 다양한 의미들을 생산하고 변화하도록 하는, 오랜 주술로부터 해방되는 전쟁기계이다. 그러므로 부안 주민들의 반핵민주투쟁은 풍부한 투쟁이며, 혁명적 성장을 하는 항쟁이다. 이것은 부안 절대공동체의 경직성(=절대성)의 속성과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승리의 그날까지 절대공동체를 공고히 하는 한편 그 스스로가 절대공동체를 해체시켜 새로운 일상의 공동체를 준비해나가는 문화투쟁의 이중적 속도이다. 이런 점에서 절대공동체는 ‘다시 갈 수 없는 곳'으로서가 아니라, ‘다시-지금-여기저기서’ 새롭게 만들어나가야 할 이행의 해방공동체의 전주곡이 될 수 있다. 부안 반핵민주투쟁은 다양한 의미있는 전쟁기계들로 배치되는 절대공동체로 경험되고 있으므로 그 이행의 속도와 다양성이 좀더 긍정적일 수 있다.
4. 핵마피아 집단의 주민사기극
그런데, 어쩌자고 부안이 이 지경이 되었는가. 예로부터 살기에 좋다는 생거부안(生居扶安)으로 알려졌고 조용해보이던 변산반도 일대의 이 지역이 어느날 갑자기 민란의 도가니로 휩쌓이게 되었는가. 그러나 사실 이미 더 이상 생거부안도 아니었고 조용하던 변산반도도 아니었다. 여전히 아름다운 자연경관과의 대화를 통해 새로운 삶의 희망들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다른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개발제일주의와 잘못된 관광산업 및 삶의 상품화로 파괴의 우려가 끊임없이 드러나는 곳이며, 그 대표적인 것이 부안군 북단의 2/3 부분을 차지하는 새만금사업 관련 갈등이고, 올해만 해도 부안군수가 골프장(변산면)과 쓰레기 소각장(줄포면)을 짓겠다고 하여 지역민들로부터 반발을 산 적이 있다. 주지하다시피 부안은 전라도의 한 지역으로서 소외받아온 곳의 하나였으며, 농수산물이 풍부하고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자연의 혜택으로 그나마 이제사 자생적 ‘관광부안’ 환경으로 먹고 살 여건이 좀더 나아지고 있어 보인다. 물론 1읍·12면의 군내에서도 지역마다 달라, 곰소(진서면)와 격포(변산면)는 급부상하고 있는데 반해, 줄포면은 과거에 어항으로 잘 나가다 이제는 먹고 살게 없어져가고 있고, 보안면·상서면·주산면·백산면 등 좀더 내륙적인 지역은 수산물 및 관광산업과는 전혀 무관하여 농산물로 먹고 살아야 하나 농민들 편이 아닌 농업정책으로 전망이 밝지 못한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의 일이 아니던가. 수산물도 새만금 방조제사업 때문에 계화면 등지의 백합양식이나 김양식 등이 위기에 처해지고 있다. 핵폐기장을 세우겠다고 하는 위도면은 어떤가. 아름다운 몇 개의 섬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2003년 6월초 현재 674가구에 1458명의 인구를 가진 위도면은 꼭 10년 전 불행했던 사고가 당했던 곳이다. 1993년 10월 10일, 위도에서 격포로 가던 서해페리호가 침몰되어 292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위도 주민들도 58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가족을 잃은 25가구 중 13가구가 사고난 후 1년 동안 섬을 떠나야 했다. 아름다운 섬이 폐허의 섬으로 변해가는 듯 했다. 하지만 위도는 아름다운 섬의 자태를 배신하지 않은 채 주민들의 삶의 터전으로 되살아 왔고 외지 관광객들도 많이 찾게 되었다. 그런 위도가 핵폐기장 부지로 결정된 안타까운 일이 벌어져 위도는 지금 섬 주민간 갈등의 골이 매우 깊어져 있다.
위도의 핵폐기장 부지 결정은 한마디로 핵산업 마피아집단의 주민사기극에 의한 것이었다. 지난 5월 13일 위도주민 핵폐기장 유치위원회는 주민 90% 이상의 서명을 받아 부안군 의회에 유치를 청원했다. 군 의회는 7월 11일 7:5로 유치청원을 부결했다. 그렇다면 위도 주민들은 어떻게 해서 핵폐기장 유치를 청원하기에 이르렀는가. 우리는 이 대목에 주목해야 한다. 부안 대책위는 이 부분에 대해 “절대적 위험시설의 부지결정 기준이 과학적인 조사와 합리적인 논의가 아니라, 주민의 수용성과 자율 유치로 대체되면서 주민을 매수하기 위한 금품살포, 향응제공, 비현실적인 지역 지원약속 등이 남발됨”, “위도 주민 핵폐기장 유치 표명은 한 가구당 5억씩 직접보상이 가능할거라는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 등의 말에 의한 것임. 핵폐기장 부지 확보를 위해 안전성은 뒷전,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의 밀약과 거래도 당연히 여김. 정부는 핵폐기장을 추진하면서 ‘참여’와 ‘자율’을 강조했지만 결국은 돈을 앞세워 부도덕하게 추진하였음”이라고 요약하고 있다. 위도 주민들은 1986년부터 가동되기 시작한 영광원자력발전소에서 방출되는 온배수와 1991년부터 시작된 새만금 방조제 공사에 의한 갯벌의 변화 등으로 인해 어장파괴에 직면하여 부채와 생활고에 시달려 왔지만 양쪽의 사업과 관련하여 보상가능한 지리적 거리 바깥이라는 이유 때문에 실제 피해자들임에도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하는 상태에 처해 왔다. 게다가 엎친데 덮친격이라고 올 봄 핵폐기장을 바로 코앞 고창에 짓는다거나 군산시가 위도 바로 위 신시도에 유치를 하겠다고 떠들썩했다.
그러던 차 위도를 구출하겠다고 나선 비장의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박동배라는 사람이다. 박동배는 총리실 산하 경제사회연구회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부연구위원으로 1998년에 부안군 동진면으로 이사하여 살아오고 있는데, 최근 핵폐기장의 위도 유치에 개입해왔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위도의 전막리는 제가 낚시를 좋아하며 수도 없이 내집처럼 왔다갔다 한 곳이기도 하고 그 지역 주민들은 가족처럼 허물없이 지낸 사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폐기장을 유치하면 위도는 물론 부안 발전의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위도 주민들을 현혹시킨 것이 소위 5억설이다. 그는 5월 초 위도 주민 80명 정도를 대동하여 대전 원자력환경기술원을 견학할 때 위도 주민들에게 정부가 현금보상 3000억원을 지급해주면 집집이 5억원씩 나눠가질 수 있다고 하여 주민들을 혹하게 했다. 그에게서 직접 말을 들은 사람의 글을 읽어보자. “지원금 삼천억원은 주민들 마음대로 쓸 수 있다고 하셨죠. 그래서 제가 알고 있기로는 지원금은 핵발전소 주변지원법에 의해 지원대는 것이니 그렇치 안을거라고 하니 그것은 옛말이고 2003년 4월21일 10개부처 장관님들이 특별성명을 발표 3000억 지원금은 지역 주민들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막말로 나누어 가저도 된다고 하여 주민들이 3000억 나누기 600세대(위도가 600세대쯤 된답니다) 그래서 5억씩 그런데 부안군 다른 대도 있으니 2억씩 양보해서 적어도 3억씩... 그때부터 위도주민들은 핵패기장을 위도에 유치하면 적어도 3억원씩은 준다더라. 이게 3억원의 원조입니다.” 무책임한 3-5억설에 현혹되어 위도 주민들은 며칠새에 핵폐기장 유치 청원을 하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심정으로 위도 주민들은 사기를 당한 것이다. 물론 애초부터 유치를 반대해온 주민들도 있고, 정부의 오락가락 태도를 불신하여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러므로 우리가 섣불리 위도 주민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대재앙시설물인 핵산업정책을 주민사기극을 쳐서라도 추진하려고 하는 정부와 지자체, 한국수력원자력 등의 핵마피아집단이 비난받아야 한다.
우리는 여기서 박동배라는 인물의 행보와 역할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5년전에 부안으로 이사왔다는 점, 낚시꾼으로 위도 주민들과 친밀하게 지냈다는 점, 그러다가 일정한 시점에 직접보상 5억원설을 주민들에게 뿌린 점, 그리고 인근지역에서 유치하여 피해만 보고 보상도 못받느니 차라리 위도에서 유치를 하라고 혹세무민한 점 등은 이미 오래전부터 계획된 일이 아니었나 하는 의구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올 초부터 울진, 영덕, 영광, 고창, 군산 신시도 등지를 들쑤셔놓은 것도 부안 위도에 기습적으로 성사시키기 위한 작전이 아니었나 하는 의혹을 사람들은 갖고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된 프로젝트가 아니냐는 것이다. 윤진식 산업자원부 장관도 밀어붙이기 위하여 8월 26일 위도를 방문하여 무책임하게 현금보상을 약속한 바 있기도 하다. 어쨌거나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한국수력원자력 등 핵산업 마피아집단이 위도 주민들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사기극을 부안군수 김종규가 강현욱 전북 도지사와 공모하여 받아쳤고 이를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과 윤진식 산업자원부 장관이 안아 노무현 대통령의 쾌재(!)를 받아내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대주민 사기극은 5억설을 퍼뜨린 박동배 혼자만의 작업이 아니라 자본과 국가권력, 지자체, 공권력, 그리고 한수원의 광고를 받아먹고 부안사태를 고립시킨 언론 들의 동맹관계에 의한 총체적인 사기극이며, 위도 주민들만을 대상으로 한 게 아니라 부안 군민 나아가 대한민국 국민 전체에 대해 사기친 작태이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폭로된 것처럼 한국수력원자력원이 조사용역보고서를 조작, 은폐, 폐기한 점이나, 엉터리 위도 지질조사 사례만 보더라도 사기극을 위해 총동원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유치 및 부지선정 과정에서뿐만 아니라 부지 확정 후에도 거액보상 및 지역개발 현혹, 밀실행정, 공작정치, 거짓홍보, 주민분열 등의 음모가 계속되고 있다. 이 사기극 범죄행위를 법적으로 아무 하자 없다 하니, 아니 거시기한 놈이 거시기한다고 되레 대통령이 “국가의 정치 정책수행 과정이 말하자면 불법적으로 봉쇄돼 버린 것이다. 여기서 정부가 물러선다는 것은 정부가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절차에 의한 자기 임무 수행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쉽사리 항복하고 물러나올 수가 없다”고 개거품을 무니 노무현 정권이 얼마나 부도덕한 부패정권인지 잘 드러내준다. 주민들의 자율과 자치와 자기운명결정권을 돈으로 매수하겠다는 것은 추악한 짓거리이다. 1997년 대만이 핵폐기물을 북한으로 해상운송하려고 시도했을 때 한국정부가 서해를 경유한 핵폐기물 해상운송에 대한 문제점을 다각도로 검토하여 운송사고시 동북아 전해역이 죽음의 바다로 뒤덮일거라고 한 사실은 은폐하고 핵폐기장의 절대안정성만을 홍보해대는 낯두꺼움이 오늘 참여정부의 얼굴성이다. 부안사태는 실로 국정조사를 해야 할 일이다.
부안은 소외된 지역에서 이제 고립된 지역으로 변했다. 그래서 부안 사람들은 이참에 ‘부안 독립’을 주창한다. 실제로 수많은 ‘핵없는 세상’ 깃발들은 부안 독립을 상징한다. 부안사람들은 부안 뿐만 아니라 이 땅 어디에도 핵폐기장은 안된다고 주장한다. 즉 ‘핵없는 세상’을 만들자고 호소한다. 그러기 위해서 핵산업 정책을 포기하고 에너지 정책을 전환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안은 여전히 지역이기주의로 매몰리거나 직접보상을 해준다고 했다가 안해준다고 하니까 시위를 한다고 하는 왜곡된 섬에 갇혀 있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전국의 여기저기서 핵폐기장 반대투쟁을 할 때 조중동류의 언론들은 지역이기주의로 내몰기 일쑤였고, 그런데 부안의 상황에 대해서만큼은 군수의 독재적 전횡을 모르는 바 아닌 듯 조중동류들조차도 크게 지역이기주의라고 내몰지는 않는데, 조중동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부안사태를 지역이기주의로 판단해버리는 경우가 있으며, 그 대표적인 사람이 부안의 몰표를 얻어낸 이 나라의 통치자 노무현이다는 것이다. 보상 문제는 위도 사람들에게서 비롯된 것이고 부안의 내륙 주민들에게는 전혀 무관한 일이며 애초부터 무조건 반대였다. 지역이기주의라고 생각은 안한다 하더라도 지역의 문제로 생각하는 경향도 커 보인다. 하지만 부안사태는 결코 부안지역의 문제로 국한되는 이슈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 핵발전 산업의 딜레마가 부안지역으로 전가된 것으로 보아야 하며, 그 고통을 부안 사람들이 고스란히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민주주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부안군수만이 아니라 대통령도 민주주의 유린 폭거를 공모하고 있으니, 그것은 한국사회 민주주의 위기의 심각한 문제이고, 그 모순을 부안에 전가시키고 있는 것이다. 촛불시위 강연에 오는 교수, 활동가들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함께 싸워야 할 일을 부안 사람들만 도맡아 외롭게 싸우고 있다고들 말한다. 지금 부안사태의 해결방안은 한국사회의 모순을 지역에의 폭력적 전가에 있는 게 아니다. 진정한 민주주의 정부라면 군정독재자의 농간에 놀아난 위도 핵폐기장 결정을 무조건 백지화하고 사회전체의 차원에서 민주적이고 공공적인 사회적 합의 전통을 만들어내는 일을 사회의제로 부각시켜야 한다. 문화연대의 주장을 들어보자. “울진, 영덕, 영광, 고창에 이어 최종적으로 부안에서 핵폐기장 문제로 지역주민들의 반대운동이 격렬하게 벌어지는 것은, 위험시설물 설치관련 국책사업에 대한 민주적이고 공공적인 사회적 합의 전통을 마련하는 데에는 정부와 사업주체가 아무런 관심도 쏟지 않으며 오로지 밀어붙이면 된다는 식의 관료주의 태도에서 비롯되고 있다. 국책사업을 정책의 타당성, 정보공개의 정직성, 정책결정과정의 투명성, 지역민 의사결정과정의 민주성, 정책수행의 도덕성으로 해결해나가지 않고, 언론을 동원하여 해당지역 주민들을 지역이기주의 범죄집단으로 몰아가면서 밀어붙이는 폭주는 이제 그만 멈추어야 한다. 핵폐기장과 같은 대규모 위험시설물일수록 무엇보다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며, 불가피할 경우 사회구성원들의 민주주의적 동의와 투명하고 공개적인 추진절차에 따라야 한다. 그럴 때만이 위험이 동반되는 공공재의 사용과 그 처리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이 공동으로 책임지려고 하는 사회전통이 확립된다.”
그런데 핵산업 마피아집단의 사기극은 핵폐기장에만 있는 게 아니다.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양성자가속기 사업이다. 핵폐기장 부지선정이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치자 노무현 대통령은 4월 15일의 국무회의에서 핵폐기장 유치 지방자치단체에 대해서 과학기술부가 추진하고 있는 양성자가속기 사업 유치에 특별가산점을 부여해주기로 했다. 한마디로 ‘나쁜’ 핵폐기장을 유치하면 ‘좋은’ 양성자가속기 사업을 거저 주겠다는 발상인 것이다. 하지만 ‘양성자가속기를 통한 첨단과학단지 조성사업’은 핵폐기물 재처리를 은폐하기 위한 행위로서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주민들을 기만하는 행위이다. 김종규 부안군수가 산업자원부에 신청한 것도 핵폐기장과 양성자가속기이다. 과학기술부는 부안 양성자가속기 사업에 2010년까지 20만평의 부지에 모두 1286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과학기술부는 양성자가속기 시설이 기초과학은 물론 IT 첨단산업 및 의료용 설비라고 홍보해왔다. 그러나 국내에는 1994년부터 포항공대에 2기가볼트(2GeV)급 대형 방사광가속기가 도입되었고, 또한 전국에 15개의 빔라인이 도입되는 등 가속기를 통한 기초과학 및 각종 첨단산업 연구활동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2005년에는 보건복지부가 경기도 일산의 국립암센터에 48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양성자치료센터를 완공할 예정이어서 원자력연구소가 추진하는 가속기사업이 의료용이라는 명분도 설득력이 없다. 한국원자력연구소가 1997년부터 원자력연구개발 중장기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해온 원자력산업용 다목적 양성자가속기(일명 KOMAC, Korea Multipurpose Accelerator Complex) 사업은 고준위핵폐기물 중에서 반감기가 긴 방사성 핵종들을 짧은 반감기의 핵종으로 변환시킨다는 목적을 갖고 있다. 그런데 핵변환을 위해서는 핵재처리사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양성자가속기 사업은 사용후핵연료 관리이용, 사용후핵연료 건식공정, 장수명 핵종소멸처리 등 실제 핵재처리를 위한 사업들과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 프랑스, 영국, 일본 등은 핵재처리시설을 통해 사용후핵연료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하고 있으나, 문제는 이 재처리과정에서 일반적인 핵발전소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많은 양의 잉여 고준위핵폐기물이 발생하게 된다는 데 있다. 또한 재처리기술은 플루토늄만을 추출하기 때문에 나머지 맹독성 방사성 핵종들은 여전히 남게 되어 고준위핵폐기물 처분문제에서 실질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더욱이 재처리과정에서 추출된 플루토늄은 핵무기로 전용되기 매우 쉽기 때문에 핵확산 논란을 일으킨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북한 영변핵시설을 두고서도 국제적인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석광훈, 「정부의 양성자가속기 사업의 실체와 문제점」, 반핵국민행동 정책위원회 토론용 발제문 요약, 2003.4)
핵폐기장과 통합될 수밖에 없는 양성자가속기는 장밋빛 첨단과학의 축복이 아니라 핵폐기물 재처리사업의 희생양이며, 핵폐기장보다 더 나쁘고 더 위험한 시설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이것을 선심쓰는 척하고 주려하는 쓰레기정부에게서 우리는 무엇을 볼 것인가. 핵마피아집단의 사기극은 양성자가속기 사업에까지 필연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양성자가속기 사업의 실체에 대해서도 부안 주민들에게는 많이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이슈는 핵폐기장에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양성자가속기 사업을 이슈화하는 것도 절실한 일이며, 부안에 핵폐기장과 양성자가속기를 동시에 설치함으로써 (이미 건설을 시작한 바로 인접지역 정읍의 첨단방사선센터를 포함하여) 전북일대를 핵산업단지로 조성하려는 강현욱 전북도지사 등의 거대한 음모가 지탄받아야 된다. 이들은 양성자가속기를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표현하면서 이것만이(새만금 이야기할 때는 새만금만이!) 전북 발전의 모든 것이라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 하지만 지역민의 다음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핵 관련 산업을 지역발전 전력으로 삼는 것은 중앙정부의 시혜성 사업에만 목을 맨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핵폐기장 유치는 전북의 발전 가능성을 훼손하는 것이며 ‘전북=핵산업’이라는 이미지로 고정되어 청정과 문화라는 브랜드 가치를 심하게 훼손시킬 것이며 전북의 다양한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다. 지역개발은 주민의 삶을 지속가능하게 하고 안전하고 쾌적한 삶이 보장되는 한에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핵관련 산업의 집적화는 일부 몇몇 세력이 개발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나 그것은 상당수 지역주민의 희생을 대가로 하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부안 핵폐기장을 유치하여 전북을 핵산업단지화하려는 전라북도와 산업자원부의 정책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5. 위험사회와 맞서 싸우는 전쟁기계
부안은 핵마피아 집단이 구축하려는 위험사회와 맞서 싸우는 전쟁기계이다. 고립된 싸움을 하면서도 부안 사람들은 한국 사회운동사의 새로운 역사를 기록할 텍스트들을 생산해왔고, 세계적으로도 전례없는 주민저항방식을 창출해왔다. 부안은 정치적으로는 민주당 텃밭의 하나이면서 한국사회의 기득권 세력에 대항해왔지만 그렇다고 정치적 역동성을 크게 경험해보지는 않으면서 대체적으로 부르주아 정치주의의 담론세계로부터 벗어나기 힘든 정치문화적 보수성의 성향을 띠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던 부안이 어느날 갑자기 엄청난 소용돌이가 치기 시작했는데, 그게 바로 아직도 진행중인 반핵민주투쟁이다. 나는 부안의 반핵민주투쟁이 핵폐기장 반대투쟁만이 아니라 매우 중요하게 민주주의투쟁의 핵심을 이룬다고 부각시키면서, 다음과 같이 논한 바 있다. “부안 주민들의 투쟁이 잘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민주주의 투쟁은 더 이상 중앙정부나 국정, 집권자에 대한 요구로만 정의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거시정치 영역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지역에서, 지역적 삶의 환경과 관련하여, 지역공동체 주민들의 삶의 질, 방향, 의미, 태도 등과 관련하여 발생된다. 이것은 지역적 장소성과 주민적 주체성에 근거한 생활정치 민주주의 혹은 문화 민주주의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민주주의는 저 멀리 있어 보이는 정치원리를 넘어 생생한 삶의 선택으로서의 지역주민 문화자치로서 확보되어야 한다. 부안 주민들의 핵폐기장 반대운동은 삶의 새로운 질로서의 문화 민주주의와 지속가능한 생태 민주주의의 혼합적 요구를 하고 있되, 거부로서의 요구이다. 핵폐기장 거부이며, 핵폐기장 유치에 따르는 수천억의 개발지원 거부이다. 부안 주민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이대로 살게 내버려 두라’고. 이 외침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대로가 좋으니 개발논리에 휘둘러지지 않겠다는 것 아닌가? 행복과 불행의 갈림길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는 부안 주민들이다.” 그렇다고 부안 주민들의 민주주의투쟁이 지역적 문제로만 접근된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많은 사태들에서도 이미 충분하게 드러나고 있듯이, 부안 민주주의 투쟁은 한국사회 민주주의 투쟁의 또다른 얼굴이며 민주주의 유린 공모자로서의 노무현 정권에 대한 심판이기도 하다.
부안사태는 지금 한국사회의 문제이다.(부안사태는 한국사회에 중요한 이슈들을 다양하게 제기해주고 있다. 핵발전정책 및 핵산업단지화와 대안에너지 문제, 21세기 지방자치시대에 있어서의 주권재민 및 민주주의 문제, 생활양식에 대한 사회구성원의 집단적 자기결정권의 문제, 지역문화의 새로운 전환의 동력 문제, 에코-페미니즘의 현장 사례의 문제, 지역언론의 문제, 위험시설물 국가정책 결정과정의 문제, 자본의 국책사업 결탁 및 지방자치 개입의 문제, 다양한 계층들 즉 청소년 여성 노인 농민 어민 상인 교사 의사 예술인 등의 사회적 실천(주체성)의 문제, 지방자치와 국가권력의 관계 문제 등등.) 그럼에도 진보적인 사회운동단체들은 행동적으로 거의 연대해주지 않고 있다. 한국사회를 들쑤셔놓는 큼직한 현안들이 즐비해서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무관심해서도 아니다. 지리적 거리감 때문일까. 아마 무엇보다도 위험사회와 맞서 싸우는 주민행동에 대한 의미획득의 실패에 있지 않을까. 그래서, 부안사태가 어차피 주민들이 안아야 할 몫이라면 부안 주민들은 고립된 투쟁을 하더라도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절대공동체 내 자기조직적인 전쟁기계들을 발명하면서 반드시 위대한 승리를 창조할 것이다. 할머니의 입-욕망은 그 희망이다. “헌디 우리 놀고 뛰고 놀아감서 허게, 우리 웃어가면서 춤춰가면서 싸우게...” 그렇다. 즐거운 혁명이 되기 위해서는 즐거운 전쟁기계들이 발명되어야 한다. 부안은 충분히 그러고 있다. 특히 부안 반핵민주투쟁은 문화투쟁 전쟁기계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부안의 촛불시위 등의 문화투쟁은 폭력투쟁이냐 비폭력투쟁이냐의 이분법을 넘어 다양한 투쟁을 효과적으로 전개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들을 제공해준다. 부안의 문화투쟁은 문화주의적 귀환이 아니라 열정적인 전쟁기계임을 증명해왔다. 또한 중요하게도 문화투쟁은 저항을 저항으로 그치도록 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지도그릴 수 있도록 하는 대안적 삶의 상상을, 새로운 생활방식으로의 이행을, 그 과정 속에서 욕망하게 하는 계기들을 제공해주고 있다. 그것은 부안 지역사회의 여성, 청소년, 언론, 교육, 환경, 경제, 정치, 사회단체 등의 영역에 존재해온 낡은 형태와 관행들의 해체와 새로운 대안의 연동적 모색을 가능할 수 있도록 해준다. 특히 여성들이 전면에 나선 투쟁이라는 점, 학생들 스스로도 등교거부 등 자기결정을 통해 문화투쟁을 해왔다는 점, 이런 상황은 부안이라는 지역사회에서 배제되어버린 여성과 청소년의 권리들에 대해서 새롭게 조명하도록 강제한다. 문화적 역동성으로 볼 때 부안의 반핵민주투쟁은 이미 승리한 싸움임에 분명하다. 물론 그렇다고 이 모든 것들이 자동적으로 승리와 변혁으로 귀결된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부안 사람들도 이미 인지하고 있는 바일터지만, 핵폐기장 백지화를 얻어낸 바로 그날부터 제2의 투쟁에 돌입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이제 주민의 주체성 내부와의 투쟁이자 부안 사회구성의 총체적 변혁을 추동하는 혁명적 투쟁일 것이다.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 이 반세계화운동의 세계적 슬로건은 지금 부안에서도 유효하다.
(2003.11.12/ 계간 진보평론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