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31일(토) 아침 9시에 송내역에서 만난 6명의 전사들은
그 중 한 명이 사온 막걸리와 족발 및 그가 즐기는 소주까지
싣고 운명의 길을 떠났다.
이 번 여행의 화두는 "동서나 입조심 혀"로
시작하여 그것으로 끝났다.
서해안고속국도가 약간 막히는 듯 했지만 모범 운전사이며
프로인 친구의 운전 솜씨는 금세 태안의 백화산가든에 도착하였다.
열두시가 되기도 전에 점심을 마치고 저녁 때에는
저자가 사라질까봐 미리 주꾸미를 샀다.
태안 시장의 아줌마에게 2킬로그램을 사서
차에 싣고 만대로 향하였다. 출발부터 쏟아진
"동서나 입조심 혀"는 말끝마다 붙여 웃음이
끝기질 않으니 얼마나 젊어졌을까?
항상 이런 여행을 할 때 마다 난 웃고
또 웃는 시간이 좋다.
모두가 그렇겠지만 집에 눌러 있으면
몸이야 편안하겠지만 이런 재미를 어디서 찾을소냐.
차안에서 들 뜬 기분에 고향 친구들에게
미리 연락을 취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농사 등의 생업에 선거철까지 겹쳤으니
오죽 바쁘랴.
펜션촌에 출발하니 대략 4킬로미터가 조금 넘는다.
산 길마다 말라버린 고사리를 보며 새로운 싹이
움튼 계절의 수확을 고대하고 약속하며 길을 가니
술재촉에 여섬(사진)을 향했다.
막걸리 한 잔하고 굴을 따먹는 친구 옆에서
또 다른 친구는 바지락을 잡는단다.
산에 가서 물고기를 잡지 무슨 자갈바닥에
바지락이 있을까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굵은 바지락을 30 여 분 동안에 캤다.
개선 용사처럼 길을 가면서 이 번에는
여름 해수욕장소를 물색해놓고 마지막 지점인
굴 양식장 앞에 떨어져 나온 굴을 주워 낑낑 대며 들고 나왔다.
간신히 가스배달차량을 이용해서 우리가
주차한 곳까지 기사친구가 가서 차를
가져와 타고 태안읍내에 들어와
소주와 쌀과 김치와 대파를 사가지고 숙소인 도내로 왔다.
노지 대파를 고르는 여자친구를 보며 상인은
내게 장가를 잘 갔단다.
웃으며 돌아오자 왜냐는 친구들에게
보조개를 팔았다.
그게 그것 아닐까?
다행스럽게 내가 구상했던 소리쟁이국을
끓일 만큼의 나물을 캐고 여자친구들이
냉이를 캐어들고 집으로 향하는데 강한
바람에 추위가 밀려온다.
먼저 들어간 친구들이 바지락을 해감을
해놨는데 결론 부터 말하자면 실패였다.
모래가 그대로 있었답니다.
부랴부랴 주꾸미 씻어 안방에선 샤브샤브를
하고 난 주방에서 쌀 씻어 밥하면서
냉이 데쳐 무치고 소리쟁이국을 끓였다.
안방에선 먹으러 오라 부르고 하던 일은 많고
결국 난 밥을 태우고 말았다.
준비된 저녁식사는 밥이 좀 모자란듯 했지만
불평없이 마치고 고장난 노래방기계를 고쳐 여흥을 시작하였다.
11시 넘어 잠자리에 들었지만
폭풍같이 코고는 소리에 꼬박 잠을 설치고 말았다.
새벽엔 소리가 멎는듯하더니 입심 좋은
친구의 경험담에 귀만 즐기고 아침을 하러 일어섰다.
찬사를 많이 받은 냉이무침에 바지락탕에
남은 김치와 김을 반찬으로 어제처럼
적은 듯 맞는 양의 밥으로 때웠다.
크게에 만족했던 바지락의 속은 영
부실하였다.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단다.
아침을 마치자 마자 어제 주워온 굴을 삶았다.
워낙 양이 많아 반쯤만 먹고
나머진 친구에 주었다.
공짜에 별미였으니 이 또한 좋았다.
정리하고 태안에 가서 서울로 가져갈
주꾸미를 살 친구있어 어제 그 집으로 갔다.
굵은 놈으로 골라 달랐지만 작은 것도 고르는
주인 아줌마에게 친구는 자기 것(?)보다
작다고 해 시장바닥이 모두 자지러지고
주인 아주메는 허리를 못폈다.
10시쯤 당진 삼길포에 갔다가
장고항에 가서 난생처럼 실치회를
먹고 칼국수도 먹었다.
점심의 보시를 한 친구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불편함에도 침묵과 웃음으로
여행을 함께 한 나머지 친구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하고 고맙다.
그리고 사랑한다.
첫댓글 주꾸미보다 더 큰사람 누구야 ~~? 4월 18일" 명" 기사님 모시고 장고항가서 실치회 먹고^0^ 사가지고 왔당.
잘했네. 같이 못가 아쉬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