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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원아파트 보상투쟁사
초등학교 155
인감도장을 꾹 찍었다 고소인 박희용
내일 고소장 들어갑니다 마주앉은 배 사장 앞으로 밀었다
비상대책위원들 이쪽 건설사 대표와 조합임원들 저쪽
1994년 12월 28일 밤 해덕식당에 마지막 협상이 빡빡했다
배 사장이 고소장을 지긋이 보더니 이억 이상은 안 됩니다
아 그래요 이억이면 됐어요 조합임원들과 비대위원들 모두 좋아했다
위원장님 여기 첫 칸에 서명하시지요
마지막에 하지요 위원들이 먼저 하시지요
이쪽저쪽 모두 다 서명했으니 끝으로 위원장님 하시지요
보상 요구액 이억 삼천만 원 모두 받아야 합니다 삼천 만원 깔 수 없습니다
배 사장과 이쪽저쪽 모두 서명한 합의문을 두고 벌떡 일어섰다
눈이 내리는 아파트로 돌아오니 관리실에 동네 아낙들이 소복하게 모여 있었다
배 사장은 이억 나는 이억 삼천 주장했는데 안 맞아서 그냥 왔어요
삼천 더하기로 했어요 한 시간 뒤에 돌아온 박 조합장이 말했다
글쎄 세차장을 우리 아파트 옆에다 짓는다네요 하마 시청에서 허가가 났다네요
아내가 어디서 듣고 와 한 마디 했다
큰 길이 아니라 좁고 가파른 진입로 깊이 들어와 세차장을 짓는다니 안 될 일이다
저녁을 먹고 관리실에서 여러 사람들과 의논하고는 방송으로 주민들을 불러 모았다
기름 냄새나고 차 많이 다녀 위험한 세차장을 우리 모두 힘을 모아 반대합시다
권유에 못 이겨 앞에 나서 처음으로 여러 사람 앞에서 꺽꺽하게 말하는데
하마 허가가 났다는 데 될라 바로 앞에 삐딱하게 선 강부구 선생이 초를 쳤다
수업을 마치고는 교실 컴퓨터와 프린트기를 혹사해서 만든 서류를 들고
시청으로 사회문제연구소로 허겁지겁 뛰어 다녔다
시청 담당자는 하마 허가가 났는데요 김성현 소장은 건축주가 장애인이라서 곤란하네요
어느 날 둘째 시간을 마치고 쉬다니 권 주사가 박 선생요 손님 찾아왔니더
땅주인 조 곱사가 데리고 온 손님은 문둥이였다
셋째 시간을 접고 뒤뜰에서 마주 쪼그리고 앉았다
일그러진 얼굴을 똑바로 보며 차근차근 세차장 불가를 설명하였다
선생님 덕택에 세차장 막았어요
그런데 입주해서 살아보니 하자가 너무 많아요 우선 창문 샤시가 엉망이예요
관리실 앞을 지나다니 아주머니 몇이 서 있다가 말을 걸었다
전번에도 수고 많으셨는데 젊은 선생님들이 좀 나서서 해결해 주세요
아 그래요 곧 주민들을 모아서 의논해 봐야지요
며칠 뒤에 세차장 반대운동으로 낯이 익은 열네 명이 모여 샤시 하자 문제를 의논했다
창틀과 샤시가 안 맞아 생긴 틈에다 시멘트 부대 종이를 쑤셔 박아 놓았다
샤시 부분은 조합 감사인 이상욱 선생이 담당했다는 말이 돌았다
아직 조합 통장에 들어 있는 샤시 대금을 묶어버리자는 주민회의 도중에
업자 두 명이 회의를 하는 뒤뜰 놀이터에 달려왔다
하자는 책임지고 보수하겠습니다 자금이 묶이면 다른 일을 못합니다
일을 그렇게 하면 되나요 창 규격을 정확히 잰 다음에 샤시를 만들어야지요
사장님들도 안동 사람이니 책임지고 말끔하게 보수해주세요
세차장을 막은 공으로 말발이 세진 박 선생이 쿨하게 대금을 풀어주었다
석 달 동안 살아보니 하자가 너무 많아요 하자 보수를 받고 보상을 받아야 해요
벽 미장 처리가 불량해서 모래알이 오돌토돌 튀어 나왔어요
실제 시공된 재질과 규격이 설계도면에 나온 것들과 달라요
지하주차장 대신에 지하실을 만들고 마당 구석에는 주차 회전판이 없어요
세차장과 샤시 일로 안면을 튼 주민들은 밤마다 관리실에 모여 성토했다
지역 유지 급인 대성건설을 상대로 싸우려면 조직이 필요했다
1994년 6월 11일 오후에 37명이 참석하여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신분이 공무원인 남자들 대신에 여자들 이름을 내세워
위원장 이병숙과 부위원장 서영희 등 4명에 5개 부 10명 모두 15명으로 임원을 구성했다
세차장과 샤시로 뜬 박 선생의 아내 김정숙이 총무가 되었다
회의 도중에 일반분양을 받은 김대한이 쳐들어와서 난동을 부렸다
삼성택시 노조를 파괴했고 박 조합장과 친하게 지낸다는 말이 나중에 들렸다
난동 속에서 비상대책위가 뜨고 보상투쟁이 시작되었다
1992년 3월 초에 교직원주택조합을 만든다는 공문이 내려왔다
평당 135만원에 24평과 32평 두 가지 62세대를 안동시 운안동 남향받이 산을 깎아 짓는다
3년 만기 재형저축에 들어 장만한 5백만 원이 전 재산인 내 형편에 될까
남은 2년 동안에 받는 봉급에서 최저생활비를 빼고 분기 보너스에 융자금을 더하면
24평에 3천3백만 원 정도는 어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5월에 62명 회원 모두가 모인 첫 총회가 교육청 회의실에서 열렸다
중학교 선생 둘 초등학교 선생 열다섯 관리직 셋 일반인 열 기능직 서른둘 일반인 열
경리계장 박정치가 조합장이 되고 관리과 직원인 김해년 강현욱 이근영이 임원이 됐다
중학교 선생 한 사람이 몇 번 일어나 조합장에게 또박또박 질문을 했다
그 젊은 선생이 말 잘 하던데 날카롭던데 맞아 중학교 선생이면 똑똑하잖아
보니 임원이 전부다 교육청 사람들이야 선생들도 몇이 임원에 들어가는 게 좋아
건축과 조합을 모르는 초등학교 선생들과 기능직들이 담배를 피우며 칭찬했다
속개된 회의에서 여러 사람의 추천을 받아 중학교 선생 이상욱이가 감사가 되었다
조합 일을 빨리 추진하는 데 필요합니다 인감 말고 목도장 하나씩 내 주세요
회의가 끝날 즈음 김 총무가 나와서 부탁을 하였다
당연히 내야지 조합 일이 잘 돼야 내 집에 빨리 들어가지
모두다 출신 성분과 사는 형편이 비슷한 사람들이라 선뜻 목도장을 냈다
1차로 5백만 원을 내고 몇 달 기다리다니 가을에 회의가 열렸다
조합장이 인사말에서 한창 산을 깎아 집터를 만들고 있습니다
93년도 말에는 완공 된다니 이제 1년 반만 기다리면 내 집을 갖는다
생애 첫 집에 대한 기대로 회의장의 공기가 뜨거웠다
평당 가격이 낮아서 지을 수 없습니다 평당 180만 원이 돼야 공사 계속 합니다
조합장 인사말 다음 차례로 나선 대성건설 배종국 사장이 딱딱하게 말했다
여러 사람들이 일어나서 계약서에 단가 135만원을 지키라고 따졌지만
배 사장은 인상만 통보한 채 휙 나가 버리고 조합장과 임원들은 입을 꾹 닫고 있었다
허 참 코 꿰였어 이젠 빼도 박도 못해 졸지에 천만 원을 더 내게 됐어
호구들은 쉬는 시간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만 피워댔다
조합장인 나도 반대했지만 건축 원가가 올라서 할 수 없답니다
조합을 해체할까도 생각해봤지만 남향이고 교통이 편리해서 계속하기로 했습니다
조합장과 임원들이 우리와 같은 교직원이고 교육청에 근무하는 사람들이니
단가 인상을 얼마나 따지고 검증했을까 굳게 믿었다
하양 단칸방 신혼살림 다음 전세로 사택으로 빈집으로 여덟 집을 이사 다니다가
초등학교 선생 생활 13년 만에 내 이름으로 등기한 첫 집
교직원주택조합 회원이 된지 2년만인 1994년 3월에 입주했다
조합에서 보낸 공문들을 모아 발송일 차례대로 정리했다
조합원들이 모르거나 내용이 어긋나는 서류들이 눈에 띄었다
약속한 토지는 1300평이나 실제 소유는 964평이었다
계약서에는 지하주차장을 만들도록 되어있는데 완공된 건물에는 없다
지하주차장이 왜 없는지 알기 위해서는 조합 서류가 필요했다
토지 문제를 말하며 조합 서류를 요구하자 총무 김해년이가 서류 두 박스를 내주었다
다음 날 조합장이 조합 서류를 함부로 주었다고 총무를 꾸중했다는 말이 들렸다
회의에서 조합원들이 찬성하여 설계변경을 신청한다는 공문이 있었다
시장이 허가한 설계변경 신청서에는 조합원들의 도장이 연명으로 찍혀있었다
두 번 회의에서는 지하주차장을 없애는 설계 변경을 묻는 말이 없었다
설계변경을 신청한 동의서에 찍힌 도장은 첫 회의 때 낸 목도장이었다
지하주차장 125평에 평당 시중 건축비 85만 원이면 1억 6백만 원이 사라졌다
토지 문제 그거 중요해요 며칠 후에 관리실에서 만난 이상욱 선생이 슬쩍 말했다
서로 정보를 듣고 정보를 흘렸다
한 푼도 줄 수 없습니다 도로 적자 났어요 적자
비상대책위가 본격적으로 활동하며 보상을 요구하자 배 사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나 살아갈수록 하자는 눈에 드러나고 서류는 엉터리였다
초대 위원장인 이병숙이 두 달 만에 슬그머니 수그리고 서영희가 위원장이 되었다
다시 두 달 만에 서영희가 신상발언을 하고 사퇴했다
아주버님이 교재사를 하는데 영업에 지장 받는 걸 보며 위원장을 할 수 없어요
각 학교에 교재와 교육청 물품 구입을 경리계에서 담당해요
그동안 아내 이름을 내걸고 총무를 하던 박 선생이 드디어 전면에 나섰다
며칠 뒤에 교육청에서 권용환 장학사로부터 교육청으로 오라는 전화가 왔다
박 선생님 교육공무원이 단체행동 같은 것 하면 안 됩니다
장학사 선생님 아파트 하자보수와 보상은 공무원 신분을 떠나 개인 재산권 문제입니다
선생님 말을 들으니 많이 알겠네요 나도 천리동 사는데 아파트 짓자는 말이 있어요
며칠 뒤 38명이 서명한 탄원서를 이성호 교육장에게 보냈다
사장과 면담을 주선하지요 안 되면 행정조치를 하지요
이 교육장이 박 선생의 말을 한참 듣더니 우리 편이 되는 것 같았다
교육장은 교직원들의 탄원을 듣는 척이라도 했으나
조합장과 임원들은 조합원 편이 아니라 배 사장 편이었다
조합장 몫으로 아파트 한 채 받았다는 말이 있어요
이니요 계장에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점잖은 분이 그럴 리가 없어요
루머를 물어오는 회원들의 입을 따끔하게 봉했다
배 사장과 협상이 붙는 날을 며칠 앞두고
조합임원들과 배 사장이 봉화 오전약수탕에서 대책회의를 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이상욱이가 모사라는 말을 누군가 은근히 흘린 것이 기능직 루트를 타고 접수됐다
선생들과 기능직들의 추천을 받아 감사가 되었지만 이미 편이 달랐다
젊은 선생 몇과 승진할 선생들은 이름만 걸어놓고 회의에는 얼씬도 안 했다
뭐하는 거야 빨갱이들 아냐 아파트 잘 지었는데 모여서 무슨 지랄이야
불쑥 쳐들어온 술 취한 입에서 쌍욕이 터져 나왔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우리들의 둥지를 잘 보호해야 합니다 한 마디 했더니
동지라니 빨갱이들 아냐 김태일이가 둥지를 동지로 잘못 듣고 빨갱이 타령을 했다
비상대책회의 열리면 비화원인 기능직들이 교대로 나타나 깽판을 놓았다
같이 근무하지 않은 이근영 김규태 김태일는 욕을 하며 박 선생을 마구 대했지만
녹전에서 같이 근무한 이동승과 임상덕이는 안면이 바샜는지 직접 안 나타나고
영리한 김운하는 회원 가입만 하고 일체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뒤뜰 놀이터에서 열린 총회에 김대한이가 무장 경찰 두 명을 데려왔다
불법집회 아닙니까 경찰이 한 마디 하자 회원들이 슬금슬금 일어섰다
불법집회가 아닙니다 주민들의 합의로 하자보수를 요구하는 총회를 합니다
박 위원장은 책상다리를 한 자세 그대로 앉아 단호하게 말했다
총을 맨 경찰 둘은 말이 없었으나 김대한이는 꿇어앉은 자세로 눈이 하얗게 대들었다
선생이란 자가 아파트 주민들 사이에 분란만 일으키고 말이야 도대체 뭐하는 거야
이 사람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세차장 땐 문둥이하고 쪼그리고 마주앉아 말을 섞었는데 겁 날 게 없었다
육군하사로 고생한 군대시절이 가슴 아래에서 차올랐다
같이 욕을 하면 진다 함정에 말려들어서는 안 된다
개 거품을 물고 욕을 하며 대드는 김대한이를 큰 소리 차분한 논리로 맞상대 하자
저만치서 우두커니 바라보기만 하던 회원들이 둥글게 모여 들었다
자 회의 속개 합니다 모두 다시 모여 주세요
사람들이 다시 자리에 앉자 김대한이와 경찰이 슬그머니 사라졌다
까짓 거 대번에 고발장 넣읍시다 그러면 끝나요 끝나 질질 끌지 말고
말은 했으나 어느 누구도 고발장을 만들자고 하지 않았다
사람을 다치게 해선 안 됩니다 우리 모두 같은 교직원입니다
까짓 거 교도소에 가지요 뭐 회의 열어 도장 받으려니 전부 바쁘다고 해서 그만
총무 김해년이 풀어진 표정으로 말했지만 감옥으로 보낼 순 없었다
억 단위로 보상금 받아도 내 돈 안 된다 내 몫 삼백만 원이 문제 아니다
조합일 반대에 앞장서고 고소장을 쓴 대표에게 돌아올 개인적 원한이 문제였다
마지막 협상에서 배 사장에게 내민 고발장에 위원장 박희용의 인감만 찍혔다
회원 중에서 어느 누구도 연명으로 함께 고발하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늦가을이 되어 보상금을 받는 다는 말이 나돌자
기능직 5인방이 취한 꼴로 비대위 회의에 나타나는 게 드물어졌다
뭐 보상금 안 준다꼬? 누가 언놈들이 그런 말 해 니 돈이라 내 돈이지
회의에서 회원들 보상금 지분만 챙기자는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이근영이 나타나 항의한 게 그들의 마지막 방문이었다
아직 조합 통장에 있는 6천7백만 원을 안 받겠습니다
한 푼도 내놓을 수 없다던 배 사장이 한발 물러섰다
좀더 밀어야지 보상금 액수를 5억 정도 요구해놓고 협상해서 반을 받아야지
설계대로 해야지요 중간에 맡긴 목도장 마구 날인해서 지하주차장 변경했잖아요
동인감리를 쪼아대자 권 소장이 설계비와 감리비 3천 6백만 원을 내놓겠다했다
1억 2천만 원을 배상할 용의가 있습니다 그 이상은 불가합니다
배 사장이 또 한 발 물러섰다
남시창 부위원장은 현금 1억 2천 받고 끝내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지만
위원들은 이제 승기를 잡았으니 다음 협상에선 3억 5천만 원을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지막 협상에서 배 사장은 2억이 마지노선이고 박 위원장은 2억 3천을 고집했다
2억 3천으로 하고요 요즘 자금 사정이 나빠서 7천은 조합통장에 있는 현금으로
나머지 1억 6천은 올해 말 지급하는 어음으로 끊겠습니다
여섯 달 만에 세 걸음 물러선 배 사장이 항복했다
임형 내가 우리 아파트 비상대책위원장 해서 보상금 2억 3천만 원 받아냈지요
아 그건 니가 시인이라서 그래 욕심 없이 하니 그렇지
새봄에 만난 임병호 시인이 막걸리를 마시며 한 마디 했다
내가 용상 어느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데 박희용이 어쩌고 하며 니 이름이 나오잖아
친구 이름이 나오는데 바짝 귀를 기울였지
박희용이는 용서할 수 있는데 딱 한 놈은 내 앞에 무릎 꿇리고 말거야
그 사람이 그리 말 하더라 오랜만에 만난 교대동기 권보혁이가 말을 전했다
배 사장이 꼭 무릎 꿇리고 말겠다는 그 사람이 누구일까
비대위 활동 초기에 도와주겠다 사회문제연구소 회원 가입 시켜 회비 받아 먹고
배 사장과 몇 번 협상에서 얼굴 비치다가 슬그머니 사라진 김성현이?
보일러 연통 보세요 안으로 장치해야지 밖으로 대포 쏩니까
회의 때마다 유창했고 아내가 네 번이나 점심 식사 잘 차려서 대접했지
세상 물정 모르는 우리 교직원들에게 든든한 후원자였지
세차장 때 소개해준 전 총무가 김 소장이 배 사장 하고 따로 만난다고 해서
이중 플레이를 하는 구나 직감이 들어서 핵심 정보를 안 주었더니
비대위가 정보를 주지 않아서요 하는 핑계로 발을 끊었지
사무실 하나 요구 했다는 말이 나중에 들렸지
협상이 막바지에 이른 12월에 두 번이나 부위원장 사퇴를 표명한 남시창이?
내가 힘써 보상액을 적당히 해 주겠다며 배 사장에게 딜 했다는 말이 들렸지
그래선가 배 사장이 1억 2천을 말했을 때 이번에 현금 받고 끝내자고 했었지
위원장과 위원들이 안 된다고 하니까 그때부터 슬금슬금 부위원장 사퇴 말 했지
1억 2천 받고 끝내자는 말이 성립 안 된 후 두렵다며 아들을 보디가드로 세웠지
박 선생님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우리 같은 기능직들 위해 참 애 썼습니다
기능직 최영환 씨가 용상에서 안주 세 접시 놓인 술 한 상 받았다
선생님 참 수고 많이 하셨어요 앞 집 권매선 씨가 소고기 두 근을 선사했다
박 선생님 같은 분이 교감이 되어야 하는 데요
2년 동안 시달린 조합 총무 김해년 씨가 장래를 빌어 주었다
아랫대가 복 받을 겁니다 박병기 선생이 덕담 한 마디 주었다
아내인 서영희가 부위원장 역할을 잘해서 가끔 회의에 얼굴을 보였으나
회의록과 문서 어디에도 이름을 남기지 않더니 곧 교감이 됐다
외전에서 승리하자 곧 이어서 내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2억 3천으로 합의한 다음날 오랜만에 관리실에 나타난 이상욱과 함께
남시창이가 큰 평수는 얼마 작은 평수는 얼마 계산기 두드렸다
회원 이름만 건 강부구가 자기 집 문 도색비를 따로 요구했다
합의 나흘 뒤인 1월 14일 회의에서 남시창과 권동균이 부위원장을 사퇴하더니
젊은 후배인 박 위원장의 하위를 벗어나 회칙에도 있지 않은 지도위원이 되었다
다른 아파트라면 큰 평수와 작은 평수는 차등분배가 당연했다
하지만 보상 투쟁을 처음 시작할 땐 배 사장이 한 푼도 줄 수 없다 했잖아
뜻 모아 힘 모아 우리 이만큼 밀어 올려 성공했으니 다 함께 공을 세웠잖아
박 위원장은 교실에서 평등교육론을 펴듯 아파트도 균등분배론을 주장했다
24평형 출신 박 위원장이 균등분배론을 계속 주장하자
싱크대 몫만 해도 큰 평수는 더 받아야 한다는 조건을 내 걸고
큰 평수 쪽 사람들은 비대위 활동에 참여하지 않고 위원장을 소외시켰다
토사구팽이라 내 인감만 찍은 고소장이니 내 몫만 달라고 요구할거야
열 받은 박 위원장이 개인 명의 위임장을 내는 사람들 몫만 챙기겠다며 사퇴하자
큰 평수 사람들이 대번에 기능직 조성호를 위원장으로 세웠다
곧 배 사장이 연락을 끊고 조합 임원들도 냉랭해졌다
사흘 뒤에 다시 위원장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개인 명의 위임장을 무효화하고 모든 의결은 다수결로 결정하고
지하 주차장 분배는 차등으로 한다는 조건이 되면 위원장 사퇴 의사를 반려 합니다
32평 쪽에서 권기욱 조성호 안영기 권동균 남시창 조구영 서영희 등 일곱
24평 쪽에서 서정석 윤영주 지상규 등 세 명 모두 열명이 사인을 했다
모든 의결은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은 당연했다
총무 일을 할 때도 모든 서류를 혼자 만들어서 회의에 내 놓으면 모든 위원들은 결재자였다
위원장 일을 할 때도 모든 서류를 혼자 만들어서 보고하면 소파에 기대 지긋이 듣는 결재자였다
학교에서 소외받는 기능직들의 인권을 마을에서는 존중해 주어야지
기능직인 위원들의 의사를 꼭 묻고서 다수결에 붙였다
그런데도 다수결이라니 비대위 주도권을 쥔 큰 평수 사람들의 안전 장치였다
선생들과 일반인이 주로 사는 32평형 24 세대와 선생 몇과 기능직이 많이 사는 24평형 36 세대
큰 평수 쪽 사람들 하는 것 보면 이젠 나도 몰라 손을 씻고 말겠지만
기능직이 태반인 조합원들의 가난한 살림살이가 눈에 선했다
이왕에 고생한 것 역겹더라도 끝마무리를 잘 해야지
지하주차장 몫만 차등이니 균등론은 절반의 성공이었다
다시 전면에 나섰더니 곧 배 사장이 어음을 끊겠다는 연락이 왔다
몇 달 뒤 요즈음 자금 사정이 안 좋은데 어음 하나는 몇 달 더 연장하면 안 되나요
조합장에게 전화했더니 박 선생에게 전화하라고 해서요
아 예 그렇게 하지요 자금이 풀리면 꼭 내년 6월에 끝내주세요
계곡학교에서 복식수업을 한창 하다니 12월에 배 사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1996년 1월에 보상금 분배를 했다
62세대 모든 가구 당 삼백 수십만 원에서 사백 수십만 원까지 나누어주었다
배 사장보다 더 난해한 조합 임원들과 기능직 5인방도 냉큼 받아 챙겼다
비회원이었던 일반분양 열 세대도 냉큼 받아 챙겼다
이후에도 그들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말을 듣지 못했다
다른 사람이 했으면 보상금 더 받을 수도 있었는데 하는 말이 얼핏 들렸다
기능직 쪽이 아니라 선생 쪽이었다
비대위 몫으로 8백만 원 받아 낸 회비의 두 배를 돌려주고 승리 축하연을 횟집에서 했다
우리 조합에서도 경비를 많이 썼는데요 임원들이 각자 주머니 돈 썼는데요
주머니 돈인지 조합비인지 대성건설 로비자금인지는 몰라도 조합 일에 썼다니
조합 서류를 선뜻 내주고 중요 정보를 기능직 루트로 서로 흘려 받은 공은 있나니
수고 많았습니다 덕담을 보태 김해년 총무에게 4백 만 원을 주었다
내 때문에 애 많이 먹었니더 위로했더니 김 총무가 씩 웃었다
1994년 6월부터 1996년 1월까지 1년 반 동안 우리는 풍우를 이겼노라
작은 기념비 하나씩 나누고 비대위를 해산했다
연작서사시 <초등학교>를 2008년 여름에 구상한지 5년,
2013년 7월 26일 장장하일에 산백암에서 이 시를 쓰고서
드디어 155편 대장정을 마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