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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성인의소리 원문보기 글쓴이: 하늘2
변 승우 목사의 구원론은 성경적이다
이 인규 권사는 그가 올린 두 편의 글-“행위와 행함이 다르다?”(2013. 11. 10. 22:45)와 “변 승우목사의 구원론은 웨슬레안과 다른 행위구원론이다.”(2013. 11. 11. 01:24)-을 통해 변 승우 목사는 이단적인 행위구원론자라고 결론지었습니다. 하지만 곧 밝혀지겠지만 이러한 결론은 이 권사의 두 가지 잘못, 즉 잘못된 논리전개와 왜곡된 성경 해석의 결과입니다. 그는 잘못된 논리 전개와 왜곡된 성경 해석을 바탕으로 성경적 구원론을 가진 변 목사를 이단적 구원론을 가진 자로 둔갑시켰고, 이 자료를 여러 교단에 배포함으로써 각 교단으로부터 현재와 같이 변 목사를 ‘이단’, 혹은 ‘이단성이 있다.’라는 정죄를 받도록 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행태는 변 목사와 그의 교회, 그리고 그와 관련된 목회자와 교회의 성도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는 큰 악을 저질렀습니다. 이 권사는 두 가지 이유로 변 목사를 행위구원론자라고 정죄하였는데, 첫째는 변 목사가 “회개는 구원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입니다.”고 하기 때문이며, 둘째는 변 목사가 “구원 받으려면 행함이 있는 믿음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과연 이 두 가지를 주장한다고 해서 행위구원자라 할 수 있을까요?
1. 회개를 구원의 조건이라고 하면 이단인가?
1)회개와 웨슬리
이 권사는 변 목사의 구원론이 이단적 구원론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구원에 있어서 회개와 믿음의 관계에 대한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의 깊게 살펴야 할 것은 웨슬레가 회개와 그 열매를 믿음과 동등한 위치에 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성서적 구원방법’이라는 설교에서 ‘이러한 것들은 믿음과 같은 정도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다만 조건부로 필요하다’고 하면서 기회가 있을 따마다 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믿음이 없으면 의롭다함을 받지 못하므로 ‘회개와 그 열매는 다만 간접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믿음은 직접적으로 필요하다’고 분명히 구분한다(웨슬레 조직신학 172쪽).
웨슬리는 구원에 있어서 회개에 대해 다음 세 가지로 말했다는 것입니다. “회개를 믿음과 동등한 위치에 두지 않았다.” “회개는 다만 조건부로 필요하다.” “회개는 간접적으로 필요하다.” 웨슬리의 말은 믿음이 없으면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다는 대전제아래서 회개에 대한 그의 입장을 피력한 것입니다. 그런데 웨슬리의 이 말을 근거로 변 목사를 이단이라고 주장한 것은 이 권사가 논리 전개에 큰 잘못을 범한 결과입니다. 그 증거는 다음의 질문을 보면 곧 알 수 있습니다.
질문 1. 구원에 있어서 회개가 믿음과 동등한 조건이 아니라고 해서, 회개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는 뜻인가?
질문 2. 회개가 다만 조건부로 필요하다고 해서, 회개가 전혀 필요치 않다는 뜻인가?
질문 3. 회개는 간접적으로 필요하다고 해서, 필요치 않다는 뜻인가?
위 세 가지 질문에 “예”라고 대답한다면 그는 바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동등한 조건이 아니라고 해도 조건이며, 조건부로 필요하다고 해도 필요한 것이며, 간접적으로 필요하다고 해도 필요한 것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질문들에 대해 “예”라고 대답한 이들이 있습니다. 그가 이 인규 권사이며, 그를 추종하는 이 석민 목사와 지난 회기의 본 교단 사이비 대책위원회 위원들, 그리고 변 목사를 정죄한 각 교단입니다. 그들은 모두 이 권사의 말에 미혹당해서 “변 승우의 구원론은 이단적 구원론이다.”라고 발표했습니다. 자기의 분별력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드러낸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자기들의 주장이 옳다고 고집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분별이 안 됩니까?
2)회개와 성경
성경에 보면 구원에 있어서 회개가 어떤 위치에 있는가를 보여주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변 목사가 “회개는 구원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입니다.”라고 주장한 것은 모두 그 성경 구절들에 근거한 것입니다(마 3:8-10, 눅 5:31-32, 마 11:20-23). 따라서 회개를 구원의 필수조건이라고 주장했다고 해서 행위구원론자라고 정죄한다면 바로 그 사람이 성경론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이며, 그는 심각한 이단 사상을 가진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성경에 회개가 구원의 필수조건이라고 해서 회개하라고 했는데, 그것을 문제 삼는다면 바로 그 사람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회개는 구원의 필수조건입니다. 그 이유는 첫째,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회개하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막 1:15)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둘째, 누구든지 그 안에 그리스도의 영(성령)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롬 8:9). 그런데 성령은 회개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행 2:38)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그러므로 회개를 구원의 조건이라고 한 것이 이단적 구원론인지 아닌지는 다음의 질문을 보면 곧 알 수 있습니다.
질문 4. 회개하지 않고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가?
질문 5. 회개하지 않고도 성령 받을 수 있는가?
이 두 질문에 “예”라고 대답한다면 그는 이단인 것이 확실합니다. 그런데 현재 변 목사와 관련한 문제에서 한국 교회는 대다수 교단이 위 질문들에 대해 “예”라고 대답했습니다. 회개를 구원의 필수조건이라고 하는 변 목사를 이단적 구원론자라고 하니 분명한 사실 아닙니까? 그러면서도 하는 말이 “한국 교회도 회개를 가르친다.”고 변명합니다. 그렇습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회개를 선포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서 회개는 하나의 윤리 덕목이었지, 구원의 필수조건으로는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회개를 선포하니 신자들이 점점 회개를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것’ 정도로 아는 것이 아닙니까? 저를 비롯한 우리 목회자들 회개해야 합니다.
3)회개와 구원
이 인규 권사는 변 목사의 다음의 말을 증거로 변 목사가 이단적 구원론을 가졌다고 주장합니다. “천국에 가려면 회개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단 한 가지만이라도 회개할 죄가 남아 있으면 안 됩니다. 모든 죄를 다 회개해야만 합니다. 그런 사람만이 참으로 회개한 사람이요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변 목사의 주장대로라면 천국에 갈 사람은 단 한 명도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권사의 주장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사실은 이 권사가 ‘참된 회개’가 무엇인 줄을 모르기 때문에 나온 억지 주장입니다. 변 목사가 말한 회개는 거듭나기 전의 ‘회심’을 가리키는 것이며, 습관적인 죄에서의 ‘돌이킴’을 의미하고, 중생한 이후의 미성숙으로 인한 범죄에 대한 ‘뉘우침과 자백’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회개입니다. 회개는 습관적인 모든 죄로부터의 돌이킴이어야 합니다. 만일 살인하며, 도둑질하고, 음란한 짓을 일삼던 사람이 구원받으려면 그의 모든 죄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의 죄도 남겨두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습관적으로 살인하며 도둑질하던 죄는 회개하고, 음란한 짓을 하는 죄 하나를 남겨두었다면 그의 회개는 참 회개가 아니며, 그는 여전히 죄의 종이고, 구원 받은 것이 아닙니다. 너무나 자명한 일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것을 문제 삼아 변 목사를 이단적 구원론을 가진 자라고 정죄하였습니다. 물어보겠습니다.
질문 6. 예수 믿기 전에 범하던 살인과 도둑질하는 습관적인 죄를 회개하였으나, 믿기 전에 범하던 음란한 짓은 회개치 않고 여전히 습관적으로 행하면 그는 죄의 종입니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잘 모르겠다고요? 그 잘 모르는 것으로 인해 교회 안에서 회개가 모호하게 가르쳐지고, 그러다보니 우리가 섬기는 교회의 신자들이 습관적인 죄에서 돌이키지 않음으로 결국 멸망에 이릅니다. 이 인규 권사는 이런 어정쩡한 구원론을 믿고 있으니 하나님의 사람들을 함부로 이단으로 정죄하고, 그 와중에 온갖 비리들을 저지르면서도 당연한 듯이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까?
2.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르치면 이단인가?
1)변 승우 목사는 행위구원론자인가?
이 인규 권사가 변 승우 목사를 이단적 구원론자라고 정죄하는 두 번째 이유는 변 목사가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이 권사가 ‘행위구원론’과 ‘행함이 있는 믿음’을 구분하지 못한데서 온 잘못된 판단입니다. 변 목사가 행함이 있는 믿음을 설교할 때 주로 사용하는 본문은 다음 셋입니다.
(약 2:14)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마 7:21)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5:20)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며 자기를 구원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태는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이들 본문에 의거해 행함 있는 믿음을 설교한 자신을 이단으로 정죄하는 것을 지켜보던 변 목사는 “이 성경 말씀을 따라 행함이 있는 믿음을 설교한 내가 이단이라면, 야고보도 이단이고 예수님도 이단이어야 한다.”라고 항변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의 말이 잘못된 것인가요? 성경은 분명 자기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고자 하는 행위구원론을 정죄합니다(롬 3:19-20, 갈 3:10-11). 하지만 위 세 본문들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분명 성경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고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야 구원받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권사는 이 차이점을 분별하지 못하고,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르치는 변 목사를 행위구원자라고 정죄하였습니다. 너무나도 분명하게 구별되는 이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이단으로 정죄한 것입니다. 변 목사는 성경적인 구원관을 가진 아주 복음적인 목사입니다. 그런 변 목사를 정죄한 이 권사는 회개도 필요 없고, 행함도 필요 없이 오직 믿기만 하면 된다고 하는 신앙주의 이단으로 의심해볼 수밖에 없습니다.
2)자기 의가 있어야 구원받는다는 주장이 이단적 구원론인가?
이 인규 권사가 변 목사를 이단적 구원론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변 목사가 마태복음 5장 20절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를 대속에 의한 의가 아니라 ‘자기가 가지고 있어야 할 의’라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는 이 권사가 연구해서 내린 결론이 아니라, 대구의 한 장로교회인 동0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권00목사가 자기 교회 까페 회원과의 상담 과정에서 한 말인데, 권 목사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는 대속에 의한 의를 뜻하고, 이를 ‘자기가 가지고 있어야 할 의’라고 말한 변 목사는 율법주의자 혹은 행위구원론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권사는 이것을 수집한 것입니다. 그러나 권 목사가 해석하고 이 권사가 믿는 그 해석보다는 변 목사의 해석이 정확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그 의를 자기가 가지고 있어야 할 의라고 해석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20절에서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라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친 후, 20절 이후에 나오는 21-48절까지에서 여섯 개의 죄에 대하여 각각의 명제와 반명제를 사용해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가 무엇인가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 여섯 개의 죄는 다음과 같습니다. 살인에 대하여(21-26절), 간음에 대하여(27-30), 이혼에 대하여(31-32절), 맹세에 대하여(33-37절), 동태복수법(同態復讐法)에 대하여(38-42절), 이웃과 원수에 대하여(43-48절). 그 중 첫 번째 가르치신 살인과 관련해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가 무엇인가를 보겠습니다.
명제 : (21)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반명제 : (22)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살인과 관련된 죄에서 지금까지 의롭다 함을 얻는 길은 명제에 나타난 것처럼 살인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신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는 반명제에 나타납니다. 그것은 ‘형제에게 노하지 말라.’ ‘형제에 대하여 라가-히브리인의 욕설, 바보라는 뜻-라 하지 말라.’ ‘미련한 놈이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만일 이를 어길 시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살인에 관한 의에 있어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 즉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는 형제에 대해 노하지 않고, 욕하지 않고, 미련한 놈이라 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를 범하면 지옥에 가고, 지키면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권사가 비난한 것처럼 “그러면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라고 질문할 것입니다. 사실 이 질문을 최초로 한 이는 다름 아닌 열두 제자입니다(마 19:25). 이에 대해 예수님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를 갖도록 할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입니다(마 19:26-29).
제가 한 말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우시겠지만, 본 훼퍼의 『나를 따르라』, 게오르크 슈트레커의 『산상설교』등의 책자를 읽으면 제 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한 마디로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를 루터적으로 해석하여 대속의 의라고 해석하는 것은 정답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사도 바울이 정죄한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은 자기 의도 아닙니다. 바울은 이 자기 의와 대조되는 다른 의로 하나님의 의를 말하는데, 마태 역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는 하나님의 의임을 말합니다(마 19:26). 하지만 대속에 의한 전가되는 의는 아닙니다(전가되는 의를 포함하기는 하지만). 이 의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은혜로 행하시는 의인데,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의 삶에 행위로 나타나는 의입니다. 우리 교단의 사중복음인 중생과 성결을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입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중생하여 죄를 씻고, 예수를 믿음으로 순간적으로 성결을 체험하여 죄의 세력에서 벗어나서 죄 짓지 않고 사는 삶, 그것을 성결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자기 의와는 다른 하나님의 의로써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지만, 자기가 가지고 있어야 할 의입니다. 변 목사는 정확히 이를 지적한 것입니다.
3. 공청회에 대하여
이 석민 목사는 자신이 제안한 공청회를 내가 수락한 것에 대해, “자신은 본래 이단상담가와 공청회를 여는 것을 제안했다.”고 말하며 회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변 목사에 대해 자신이 모든 것을 연구했고, 이 인규 권사나 그 윗선과는 아무런 커넥션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렇다면 최적의 패널로는 이 목사 자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공청회를 회피하고 이 권사에게 미루는 것에서 우리는 그가 두 가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두 가지 거짓말은 이것입니다.
1. “내가 변 목사에 대해 모든 것을 연구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직접 공청회에 나와서 토론하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겠습니까?
2. “나는 어떤 커넥션도 없다.” 그래서 변 목사에게 이단성이 있다는 것을 마치 스스로 발견한 것처럼 말합니다. 하지만 드디어 이 인규 권사가 나타나고, 이 권사는 자신이 나오겠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이 목사는 한국 교회 안에 있는 이단상담가(변 목사가 자주 사용하는 용어로 말하면 이단사냥꾼)들과 커넥션을 형성하고 있고, 그들이 건네주는 자료들을 가지고, 그들의 지시와 작전에 의해 움직이면서 현재 우리 교단에서 추진하고 있는 일들을 훼방하려 한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니라면 왜 지금 이 권사까지 나타나서 이토록 극성스럽게 난리를 피울까요?
이 인규 권사와의 공청회는 언젠가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권사와의 공청회는 한국 교회 전체와 관련된 일이 진행될 때 그때 할 일입니다. 내년 하반기쯤 그 공청회가 열리기를 기대합니다. 지금은 교단에서 추진하고 있는 일에 공청회가 필요하고, 교단 이외의 인사가 개입할 이유가 없는 상황입니다. 사실 이 권사와의 공청회를 당장에 열지 않는 다른 한 가지 이유는 이 글에서 본 바와 같이 이 권사가 주장하는 바는 성경에 대한 지식의 부족, 잘못된 논리 위에 기초해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지적하고 깨우쳐 주어도 그들은 절대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경과 신학, 그리고 성령 체험 등에 대한 소양이 우리들의 말을 받아들이기에 너무나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공청회를 열어도 목회 활동으로 바쁜 우리에게는 낭비가 될 뿐입니다. 토론도 말을 서로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변 목사에 대해 모든 것을 연구한 이 목사와 이 목사의 잘못된 정보를 분별하지 못하고 변 목사를 이단성이 있다고 결의하고 지금도 완강하게 변 목사를 정죄하는 우리 교단 분들이 나와서 하는 공청회라면 내일이라도 좋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이 권사나 그 배후에 있는 이들과의 공청회는 교단의 일이 정리되고, 한국 교회 전체와 관련된 일이 진행될 때 할 것입니다. 내년 하반기쯤 그런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이 인규 권사는 “변 목사의 책에서 이단성이 있는 증거자료를 뽑는다면 아마 수백 페이지가 넘을 것이다.” 또 “쓰레기 같은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판단하고 이단성이 있다고 내놓은 회심의 첫 번째 글을 분석해본 결과 변 목사의 주장은 이 시대 교회를 바르게 세우는 일에 아주 중요한 것들을 지적하고 있고, 지극히 성경적인 것을 확인한 반면에, 이 인규 권사의 글은 부족한 신학적 소양과 성경 지식, 그리고 잘못된 논리 전개로 복음적이고 성경적인 목사를 죽이려는 악의적이고 쓰레기 같은 글임이 확인되었습니다. 성경 말씀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롬 11:16)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