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림(學林) 다방
서울 혜화동에 서울대학교병원이 있다.
년 전, 병원에 갈 일이 있어 혜화 지하철역을 나와 두리번 거리는데
'학림 다방 Coffee & Drink Since 1956'이라는 간판이 스쳐 지나간다.
"아, 여기구나. 언젠가 서울상대 60학번 J 형이 말하던...."
병원 진찰이 끝난 후 그 다방으로 갔다. '카페'라 하지 않고 여전히
'다방'이란다. 출입구에 문직이 처럼 서 있는 황금색 금속 현판에
이 다방이 상업주의를 마다하고 낡은채로 옛을 지키면서 그로써의
사명을 다하고 있다는 사연을 적어 놓고 있었다.
학림다방
SINCE 1956
학림은 아직도
60년대 언저리의
남루한 모더니즘 혹은 위악적인
낭만주의와 지사적 저항의 70년대를
어디에서간 서성거리고 있다
나는 어느 글에선가 학림에 대한
이러한 느낌을 "학림은 지금 매끄럽고
반들반들한 현재의 시간위에 과거를
끊임없이 되살려 붙잡아 매어두려는
위태로운 게임을 하고있다"라고 썼다
이 게임은 아주 집요하고 완강해서
학림 한쪽의 공간을 대학로라는
첨단의 소비문화의 바다위에 떠있는
고립된 섬처럼 느끼게 할 정도이다
말하자면 하루가 다르게 욕망의 옷을
갈아 입는 세속을 끊어보며
우리에게 아직 지키고 반추해야 할
어떤것이 있노라고 묵묵히 속삭이는지
홀로 고고한 섬속의 왕국처럼..
이 초현대 초거대 메트로폴리탄 서울에서
1970년대 혹은 1960년대로 시간 이동하는
흥미로운 세상을 볼 수 있는 데가
몇군대나 되겠는가?
그것도 한 잔의 커피와
베토벤들을 곁들여서
황동일
S 자형 목재 계단를 따라 2층 다방에 들어 서니 매케한 커피 냄새와
가냘픈 '비창' 교향곡 선율이 뒤섞혀 고즈넉한 5월이 온 방에 가득하다.
길 건너, 붉은 벽돌에 담장이가 뒤덮힌 월간 잡지사 '샘터'와 그 아래에
'샘터파랑새극장'이 창문으로 내려다 보인다.
환청인가, 4.19 함성이 메아리친다.
방안 소파나 칸막이도 전부 목재로, 색칠은 벗겨지고 좀 칙칙했으나
정갈하고 부드러워 편안하게 한다.
선반에는 호롱불 등잔, 원두를 손으로 빠수는 기계, 구식사진기, 멈춘
탁상시계, 먼지 앉은 양주병이 어지러웠으나 친근하다.
고개를 드니 한때 세상을 풍미하고 사라져 간 작곡가 성악가 연주자의
색바랜 사진이 벽에 걸려 있다.
이런 서정적 분위기는 찾아 오는 이에게 여유로운 휴식을 준다.
아니 그 넘어 애틋한 감정, 향수가 스며든다.
몇몇 젊은 남녀 대학생들이 저쪽 구석에서 소근거리고 있었다. .
아메리카노 커피 한잔에 루드비히 반 베토벤 '운명'을 신청하고 자리에 앉았다.
수많은 대학 청춘들이 베토벤과 더불어 볼프강 아마데우스, 쇼팽,
드보르자크, 차이코프스키, 슈베르트, 헨델, 라흐마니노프, 브람스,
림스키 콜사코프, 슈만과 클라라, 바흐, 리스트, 풋치니, 베르디,
파가니니, 엔리코 카루소와 마리오 란자, 마리아 칼라스, ....
그 교향곡과 협주곡, 아리아와 함께 비통과 허무속에 헤매던 고뇌의
공간이 지금은 낭만과 추억을 더듬는 중년과 노년이 찾는 조용한
안식처로 변해 있었다.
'學林' 배움의 숲이 아닌가. 지성의 소굴, 바로 서울대학의 애칭으로 말이다.
" 그래, 學林 ! 시대정신과 혼이 살아 쉬임없이 흐르는 역사의 강물이 되라 !
꺼지지 않는 등불로써 世紀를 넘어 오래 오래 여기에 머물라 ! "
그리고 후학들에게 말하라 !
" 선배들은 이 숲에서 진리를 찾고 정의를 지키려 세상을 한탄하고 인생을 아파하였노라 ! " [끝]
# 갑자기 친구들에게 여기에 왔다는 증거를 남기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니
점원 아가씨가 사진기를 들고 와 서너 컷을 찍고 인터넷으로 전송을 해 주겠단다.
낡은 목재 출입문, 퇴색한 음반꽂이 앞에서 베토벤 '운명'을 신청한다 그리고 아메리카노 한잔도....
'겨울나그네' '아랑훼즈협주곡' '신세계로부터' '지난날이여안녕' '별은빛나건만' '즉흥환상곡',
더 듣고 싶은 곡들인데, 이 일을 어쩌나. 벌써 저녁놀이 지니.........
정갈한 방, 벗겨진 니스 찻상 위에 배움의 숲 '學林' 이라는 서체가 예사롭지 않다
대한민국 지성의 소굴 서울대학을 일컷다
한 시대를 풍미하다 사라져 간 작곡가, 지휘자, 연주자, 가수들이 지금 추억을 찾아 간 한 나그네를 맞아
준다 4.19 아니 그 이전 르네상스 .... 이미 時空을 초월하고 있었다 '그래, 나는 누구인가?'
※ 참고 : 부산광복동 입구에 <클래식>, 서울 <돌체>는 이 <학림다방>의 사촌들이 아닌가.
누가 형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오직 이 다방만 살아있다
Beethoven - Symphony No. 5 (Proms 2012) ☜ '운명교향곡'은 여기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