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14. 심상황 박사와 각설이 타령
야영 훈련 일주일이 지났다. 훈련기간 일주일은 마치 여름 방학 한 달과 같이 길고 길었다. 언제 한 달을 채우고 나갈 수 있을런지 까마득한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훈련 기간에는 이것 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다. 배운 놈이나, 안 배운 놈이나, 훈련 받을 때는 인간의 <본성>과 <본능>만 남기 때문에 누가 잘 낫다, 누가 못 낫다 따질 필요가 없다. 그리고 따질 수도 없다. 모두가 한결같이 오직 먹고, 자는 데만 관심이 있고, 이러한 인간의 본성과 본능 앞에서는 만인이 다 평등할 뿐이다.
학생들은 일주일 간의 고된 훈련으로 얼굴들을 모두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검게 타고, 동작도 빠르고, 절도 있게 변했다. 그리고, 음성까지도 남자 답게 모두 변하였다. 단기간에 사람 변하게 하는 데는 <군대 교육이 최고>다. 군대 교육 이상 가는 게 없다. 평상시 공부를 이렇게 한다거나, 일을 이렇게 하였으면 모두 A학점을 받고, 몽땅 장학생이 되었을 거다.
어느 토요일 오후로 생각된다. 사단 본부로부터 전 중대가 사단 연병장으로 집합하라는 전갈이 왔다. 모든 중대가 막사를 떠나 열을 지어, 군가를 부르면서 연병장에 모이는 모습은 참으로 볼 만 하였다. 옆에 있는 D중대는 물론, 건너 편에 있는 A 중대와 B중대, 그리고 서쪽 끝 반대편에 있는 C중대에서도 모두 열을 지어 연병장으로 집합하는 모습이 보였다.
일인즉, 서울 대학교에서 위문단이 온다는 것이었다. 당시의 총장 이하 모든 교직원들이 학생들의 첫번째 야영 훈련이자, 학교는 물론 대한 민국 역사상 처음 있는 대 규모의 학생 집단 야영 훈련에 큰 관심을 가지고, 전국 어느 대학 보다도 먼저 심상황 학생 처장을 단장으로 남녀 학생회의 간부로 구성된 위문단을 편성, 많은 위문품을 준비해 가지고 파견하였다.
학생들은 크게 기뻐 하였다. 여학생들이 나와서 줄줄이 앉아 있는 훈련생에게 빵과 음료수를 나누어 주었다. 물론 같이 훈련 받고 있는 연세 대학교 학생들과 성균관대 학생들도 같이 참석하였다. 일주일 내내 밤이나, 낮이나 숫컷들 틈에서 뻣뻣한 것만 보다가, 오랫 만에 나긋나긋한 치마들을 보니 눈이 황홀해져서 앞이 잘 안보일 정도였다. 사람들이 일주일 새에 이렇게 달라질 수가 없었다. 보이는 치마 마다 다 양귀비 같이, 앞으로 보아도 이쁘고, 뒤로 보아도 이쁘고, 옆으로 보아도 몽땅 다 이뻐 보였다. 아마 평상시 호박이라고 놀림을 받던 서울 대학교 여학생들도 그 날 만큼은 연세 대학교 학생들과 성균관대 학생들에게는 <마린 몬로>나 아니면, 꿈 속의 <백설 공주>로 보였을 것이다. 그 중의 더러는 아는 얼굴이 있어서 더 없이 반가웠다.
단상에는 최우근 사단장 이하 많은 장교들이 열을 지어 앉아 있었다. 오락 순서가 시작되었다. 사복을 입은 남녀 학생들이 나와서 밴드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얼마 전만 하여도 우리들도 저들과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저들이 딴 세상 사람처럼 보였다. 흥이 한창 돋아날 즈음, 느닷 없이 심상황 학생 처장이 한쪽 바지 가랭이를 걷어서 위로 부치고 나오더니 마이크를 잡었다. 학생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를 울렸다.
그런데, 나오자 마자 들려 오는 소리는 다름 아닌 “각설이 타령”이었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살아서—”. 학생들은 물론 현장에 있던 모든 장사병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타령 자체도 프로급에 다가, 춤도 보통이 아니었다. 단상에 마련된 무대가 좁다고, 전후 좌우로 춤을 추면서 부르는 노래는 사단 전체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 넣고, 앞에 나온 학생들을 무안케 하며, 갑자기 혜성 처럼 나타나는 빅 스타로 부상 하였다.
사방에서 난리가 났다. 명색이 점잖은 서울 대학교 교수요, 의학 박사에다가, 대학교 학생 처장으로서, 당 시대에는 상식적으로 생각 할 수 없는 파격적인 사건이었다. 노래방이 없던 시절, 사모님 몰래 투자를 적지 않게 한 것이 틀림 없었다. 아마 저 정도 실력을 갖추려며는 집 몇채 값은 날린게 틀림이 없었다. 여하튼 서울 대학교에서 ROTC하면, 심 박사를, 심 박사 하면, ROTC를 빼 놓고는 말 할 수 없게 되었다. 그 여름, 그 날 저녁의 서울 대학교 위문단의 위문 공연은 아주 인상 깊었다. 그리고 여지껏 그렇게 신명나고, 재미있었던 위문 공연은 그 이후 다시 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