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삼척 산불의 숨은 피해자, 집 불탄 산양들.. 어디로 갔을까
4개월 간 들여다보니, 산불 뒤 산양들 '로드킬' 노출.. 서식지 재로 뒤덮여
[박성준]
뒤로 차가 쌩쌩 달리는 듯한 모습, 그 옆 도로변에 야생동물 두 마리가 위태롭게 서 있습니다. 경상북도 울진군 36번국도에 나타난 멸종위기야생생물1급 산양입니다. 지난 3월, 울진삼척지역에 발생한 대형산불로 서식지를 잃은 산양들이 새로운 터전을 찾아 이동하는 과정에서 도로에 가로막혀 고립된 모습입니다.
올봄, 울진에서 발생한 대형산불은 사람뿐만아니라 숲에서 살아가는 야생동물에게도 큰 피해를 남겼습니다. 울진삼척에 살고있는 산양들의 서식지 4353ha, 약 1316만평이 불에 탔는데요, 서식지를 잃은 산양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관련 기사: 울진삼척 산불로 서식지 잃은 '산양'... "로드킬" 경고 http://omn.kr/1zv46 ).
4개월 간 8차례 산불피해현황 조사... 산양 서식지, 까만 재로 뒤덮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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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불피해지를 조사중인 녹색연합 활동가 |
ⓒ 녹색연합 |
녹색연합은 3월 12일부터 4개월 간 총 8차례 울진삼척지역 산양 서식지 산불 피해 현황을 조사했습니다. 기존에 발견된 서식지 중 산불피해를 입은 구역과 산불을 피해 이동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에 무인카메라를 설치하고 서식 흔적을 기록했습니다. 산불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울진군 북면 일대 서식지와 산불을 피해 이동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피해지 서쪽 삼척봉화 방면 산지 능선부, 남쪽 36번국도 주변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울진군 북면 일대 산양 서식지는 산불로 크게 훼손되어 있었습니다. 산양은 주로 산 능선부 가까이 있는 사면에 시야가 탁 트인 암석지대에서 머무르기를 좋아합니다. 특히 꼬리진달래 등 봄철 먹이 식물이 풍부한 곳을 중심으로 서식흔적이 발견됩니다.
산불 이후 다시 찾은 서식지는 까만 재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새로운 서식흔적은 찾을 수 없었고 바닥에는 불에 그을린 산양분변만 남아있었습니다. 산불로 먹이 식물이 불타고 연이어 계속된 가뭄으로 물까지 구하기 어려워지면서 기존 서식지를 두고 다른 터전을 찾아 이동한 것으로 보입니다. 녹색연합은 산불로 피해 입은 서식지에 산양 먹이와 함께 무인카메라를 설치하고 관찰하였습니다. 하지만 3월부터 5월까지 단 한마리의 산양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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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번국도에서 발견된 산양분변자리 |
ⓒ 녹색연합 |
반면, 산양이 이동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삼척봉화 방면 산지와 36번 국도 인근에서는 서식흔적이 높은 밀도로 발견됐습니다. 특히 산불 이전에는 서식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던 임도와 국도 주변에서 대형분변자리가 발견됐습니다. 산양은 소리에 민감해 도로에서 1km 이상 떨어져 살아가지만 산불로 서식 공간이 줄어들면서 새로운 터전을 찾아 위험을 무릅쓰고 도로까지 내려오는 개체들이 늘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새로운 터전 찾아 헤매는 산양들, 도로 인근서 발견... 4년 전 로드킬 발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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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도울타리를 넘어 도로로 이동하는 산양들 |
ⓒ 녹색연합 |
산양들은 주로 차량 운행이 적은 오후 9시부터 오전 5시 사이 도로변에 나타났습니다. 산불 이후 먹이가 부족해진 3월에서 4월 사이에 출현 빈도가 가장 높았습니다. 3월 17일부터 4월 17일까지 30일간 산양이 무인카메라에 촬영된 일수는 14일로 이틀에 한번 꼴로 도로변에서 발견됐습니다. 산양들은 도로 인근에서 먹이를 먹거나 분변활동을하며 서성이다가 오랜 시간 가만히 서서 도로를 지켜봤습니다. 몇몇 산양들은 유도팬스가 끊긴 지점을 통해 도로 가까이 접근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울진군 산양 서식지는 기존 36번국도와 신규 36번국도로 인해 이중으로 단절되어 있습니다. 2020년 4월 개통된 신규 36번국도는 기존 36번국도 울진-봉화 40km 구간을 직선화하기 위해 건설됐습니다.
신규 36번국도 건설사업은 사업 시작부터 논란이 많았습니다. 도로가 건설되는 부지가 멸종위기야생동물들의 서식지를 관통하는 탓입입니다. 36번국도 확장공사 사업의 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한 대구지방환경청은 사업 부지에 수달, 산양, 삵, 담비 등 법정보호종이 다수 서식함을 지적하며 '자연환경 훼손을 방지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을 수립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본 도로 건설 사업은 시행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하여 사업평가 재검토 결정을 내린 바 있습니다.
이후 5년간의 논의 끝에 기존 36번국도 중 13km 구간을 생태복원하여 야생동물이 고립되지 않고 자유롭게 남쪽 서식지로 이동할 수 있도록 협의하고 공사가 시작됐지만, 10년이 지난 현재까지 아무런 복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로 보입니다.
그 결과 2018년 기존 36번국도에서 산양 로드킬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기존 36번국도 울진읍에서 금강송면까지 29.3km 구간에는 낙석위험과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방지 펜스가 설치되어, 야생동물들이 국도를 넘어 왕피천이나 소광리 서식지로 오갈 수 없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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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번국도 유도울타리 부실 설치지점 |
ⓒ 녹색연합 |
신규 36번국도에 조성되어 있는 생태통로도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어 로드킬 위험을 높이고 있습니다. 울진읍-삼근교차로 구간 중 야생 포유류가 이동할 수 있는 육교형 생태통로와 터널 구간은 16곳입니다.
환경부 생태통로 관리지침에 따르면, 원래 생태통로 인근에는 야생동물들이 생태통로까지 안전하게 이동하도록 유도울타리를 설치해야합니다. 만약 유도울타리에 단절된 지점이 있을 경우 야생동물들은 멀리 떨어진 생태통로가 아닌 가까운 단절지를 통해 도로로 진입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녹색연합은 울진읍-삼근교차로 구간 유도울타리를 조사해 부실 설치 지점 8곳을 발견했습니다.
산양, 멸종위기 1급이자 천연기념물... 정부, 이들도 고려해 대책 마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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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울진군 북면에서 촬영된 산양 가족 |
ⓒ 녹색연합 |
산양은 멸종위기야생생물1급이자 천연기념물 제217호로 지정된 법정보호종입니다. 1950년대까지 전국 고지대 산악지형에서 흔히 볼 수 있었지만 밀렵과 개발로인한 서식지 파괴로 개체수가 크게 줄어 2019년 기준 전국에 약 1300마리가 남아있습니다. 울진삼척지역은 산양의 국내 최남단 집단 서식지로 120개체 이상 서식합니다. 2021년 국립생태원에서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울진삼척지역 산양 서식지는 수용력이 포화되어 새로운 서식지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울진삼척지역 산양들은 오랜시간 별다른 국가적 보호를 받지 못했습니다. 2010년부터 2020년까지 58마리의 산양이 울진삼척지역에서 로드킬을 당하거나 아사했습니다. 환경부는 지난 2019년 국정감사에서 울진지역에 야생동물치료기관을 위한 예산을 확보하여 야생동물보호 대책을 마련하도록 지적받은 바 있습니다.
최근 발생한 산불로 산양 서식지는 더욱 줄었으며 파편화되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특별재난지역에 대한 대책에는 숲에서 살아가는 멸종위기종에 대한 고려도 함께 되어야 합니다. 서식지를 잃은 멸종위기 야생동물들이 어떤 경로로 이동했고 어떤 보호조치가 필요한지, 기존 서식지 복원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정밀한 조사가 필요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박성준씨는 녹색연합 자연생태팀 야생동물담당자입니다. 위 기사는 자연생태팀에서 지난 3월~6월까지 울진군 산불피해지를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