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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 이병철 義
민석기 지음
정보 제공 :YES24
왜 우리는 지금, 호암 이병철에 주목해야 하는가?
자본금 3만원으로 시작해 반세기 만에 전세계에 초우량 글로벌기업의 깃발을 꽂은 삼성. 삼성의 끝없는 도약 뒤에는 이건희 회장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 2010년 현장에 복귀한 이건희 회장의 화두는 ‘미래’이자 ‘창조적 상상력’. 이는 부친인 삼성그룹 창업주 호암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내려온 가르침이다. 실제로 이병철 회장은 “반도체 산업은 막대한 설비투자가 들뿐더러 기술혁신의 주기가 매우 짧아 생산에 많은 위험이 뒤따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나, 그 위험을 뛰어넘어 성공을 쟁취해야만 삼성의 내일이 열린다.”고 확신, 무려 73세의 나이에 반도체사업에 뛰어드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한 설문조사에서 오피니언리더들이 뽑은 역대 및 현역 CEO 가운데 한국기업에 가장 필요한 21세기형 CEO 1위로 이병철 회장이 꼽힌 바 있다. 그런 만큼 한국식 자본주의의 선각자, 100년을 앞서간 기업인이라 불린 호암의 가치와 평가는 위기감이 더해지고 도전과 변화에 대한 시대의 요구가 거듭될수록 더욱 절실해진다.
『호암 이병철 義』는 호암의 유일한 자서전 『호암자전』을 오늘의 눈으로 다시 보고 읽기 쉽게 재해석한 것이며 『호암 이병철과 독일 기업에게서 배우는 경영의 정도』에서는 몽블랑, 휘슬러, BMW, 지멘스 등 독일의 세계적 기업들과 호암의 경영스타일이 유사함에 주목하여 그 공통분모를 추출해냈다. 투철한 소명의식, 믿고 맡기는 인재경영, 남다른 장인정신 등 세계일류 독일기업과 삼성 호암의 경영스타일을 분석해 뽑아낸 공통코드 10가지가 흥미롭다.
저자 민석기
삼성, 경제위기 속에서도 신화를 만들어가다
세계경제는 거센 풍랑 속에 있다. 유럽ㆍ미국의 재정수지 적자문제, 치열한 환율전쟁, 출구전략과 더블딥, 중국경제의 경착륙 가능성, 더불어 2012년 정권교체를 앞두고 있는 미국ㆍ중국ㆍ한국의 향후 경제 행보까지, 그야말로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다. 특히 대외 의존도가 90퍼센트에 달하는 한국으로서는 이러한 국외발 악재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요동치는 오늘의 세계경제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그 어느 때보다 치밀한 준비와 창조적 도전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무한한 성장으로 끝없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는 기업이 있다. 바로 자본금 3만원으로 시작해 반세기 만에 전세계에 초우량 글로벌기업의 깃발을 꽂은 삼성이다.
삼성 신화의 뿌리는 호암 이병철
오늘날 삼성의 끝없는 도약 뒤에는 이건희 회장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 2010년 현장에 복귀한 이건희 회장의 화두는 ‘미래’이자 ‘창조적 상상력’. 이는 부친인 삼성그룹 창업주 호암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내려온 가르침이다. 1980년대 초반, 실제로 이병철 회장은 “반도체 산업은 막대한 설비투자가 들뿐더러 기술혁신의 주기가 매우 짧아 생산에 많은 위험이 뒤따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나, 그 위험을 뛰어넘어 성공을 쟁취해야만 삼성의 내일이 열린다.”고 확신, 무려 73세의 나이에 반도체사업에 뛰어드는 과감한 결단을 보였다. 이렇듯 오늘날 끝없는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여 삼성 신화를 만들어낸 근본뿌리는 바로 호암 이병철 회장에게 있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호암, 한국기업에 가장 필요한 21세기형 CEO 1위
한 설문조사에서 오피니언리더들이 뽑은 역대 및 현역 CEO 가운데 한국기업에 가장 필요한 21세기형 CEO 1위로 이병철 회장이 꼽힌 바 있다. 그런 만큼 한국식 자본주의의 선각자, 100년을 앞서간 기업인이라 불린 호암의 가치와 평가는 위기감이 더해지고 도전과 변화에 대한 시대의 요구가 거듭될수록 더욱 절실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호암 이병철 義》는 오늘날 삼성 신화의 뿌리는 호암에 있음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그의 일생을 반추하여 그 의미를 되새기고자 한다. 1938년 자본금 3만원을 바탕으로 시작한 청과건어물업 삼성상회를 글로벌 초일류기업으로 키워낸 반세기의 역사는 한국경제 근대사와 그 궤를 같이 한다. 해방 후와 한국전쟁중에는 무역을 통해 물자조달 기능을 맡았고, 휴전 후에는 수입대체산업을 일으켜 한국경제가 원조경제에서 자립경제로 전환하는 기틀을 잡는 데 누구보다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어 중화학공업의 건설로 기간산업의 밑바닥 다지기에 몰두하고, 그것을 터전으로 해서 첨단기술산업을 개척했다. 이 과정에서 호암은 시대 요구에 발맞추면서도 먼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 끊임없이 도전하는 승부사의 면면, 위기에 대처하는 강력한 리더십을 유감없이 보여주어 오늘날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경영자의 모습과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義로서 걸어온 경영자의 길
저자 민석기는 호암이 걸어온 반세기 경영자의 길에는 의(義)에 있다고 말한다. 민족과 국가의 내일을 열 수 있는 사업에 큰뜻을 세우고, ‘사업보국’, ‘인재경영’, ‘공존공영’이라는 그만의 원칙을 사수하며, 사람에 대한 신의를 다하는 것은 바로 호암의 의(義)라고 평가한다. 이(�가 아닌 의(義)를 구하여 이뤄낸 업적이란 점이 호암의 인생철학과 기업가정신이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는 국내 기업들에게 다시금 빛나는 이유다. 사업가를 꿈꾸는 젊은이들과 크고 작은 기업의 CEO들이라면 이 책을 통해 호암의 통찰이 담긴 진정한 기업가정신을 느끼고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책 소개
삼성 신화의 뿌리, 호암의 일생을 가장 정직하고 정확하게 그려낸 평전
1986년 호암이 생전에 낸 유일한 자서전 《호암자전》은 서법구조가 지금과 같지 않고 읽기에 불편한 점이 많았다. 이에 저자 민석기는 오늘의 눈으로 다시 보고 읽기 쉽게 재해석하여 그만의 통찰을 더한 《호암 이병철 義》를 펴냈다. 의(義)로서 걸어온 호암의 일생을 재조명하고 지금 시대 속에서도 빛나는 기업가정신의 발자취를 담아냈다. 이 책은 호암이 직접 쓴 《호암자전》을 바탕으로 한 만큼 가장 정직하게, 가장 정확하게 그의 일생을 추적해 오늘날 삼성신화의 뿌리를 여실히 확인케 한다. 또한 호암의 어린 시절과 방황의 청년기는 물론이고 삼성상회, 제일제당, 한국비료, 중앙일보, 반도체사업 등의 드라마틱한 창업 일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4ㆍ19와 5ㆍ16의 소용돌이 속에 겪어야 했던 갖은 고초, 최근 불거진 이맹희, 이건희 삼성 계승자 문제까지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생생한 비하인드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깊은 통찰? 혜안을 가진 것으로 유명한 호암의 어록과 그만의 특별한 기업관, 경영철학이 망라돼 있다. 더불어《호암 이병철 義》와 함께 묶여진《호암 이병철과 독일 기업에게서 배우는 경영의 정도》에서는 몽블랑, 휘슬러, BMW, 지멘스 등 독일의 세계적 기업들과 호암의 경영스타일이 유사함에 주목하여 그 공통분모를 추출해냈다. 투철한 소명의식, 믿고 맡기는 인재경영, 남다른 장인정신 등 세계일류 독일기업과 삼성 호암의 경영스타일을 분석해 뽑아낸 공통코드 10가지가 흥미롭다.
내용 소개
《호암 이병철 義》
절망적 無에서 찬란한 有를 일궈낸 호암의 일생을 통해 살펴본
기업가정신의 오늘과 대한민국 경제의 창조적 내일!
《호암 이병철 義》는 삼성을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킨 호암의 기업가정신과 도전정신, 삶의 철학을 이야기한다. 호암의 어린 시절과 창업 당시의 상황, 그리고 한 기업가가 이룰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이뤄낸 화려한 성공, 그 이면에 감춰져 있던 방황과 실패, 인간 호암의 내밀한 감정까지를 아울러 다루고 있다. 더불어 그를 돈벌이밖에 몰랐던 사람으로 평가받게 한 사카린 밀수사건, 부정축재 등에 관한 이야기와 혼란스러웠던 당시의 시국과 정치상황이 세밀하고 긴장감 있게 묘사되어 있어 독자들의 읽는 재미를 더한다. 하지만 우리가 이 책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호암이 지키고자 했던 기업가적 의로움이다. 그는 끊임없이 기업가의 의(義)를 강조한 사람이었다. 사업보국, 원칙경영, 인재제일주의 등의 가치를 지키고자 했던 호암의 기업가정신은 삼성의 창조적 성장을 가능하게 한 근본적인 동력이었다.
호암의 義 : 사업에 큰 뜻을 품다
호암은 새 사업을 선택할 때 항상 그 기준이 명확했다. 국가적 필요성이 무엇이냐, 국민의 이익과 손해가 어떻게 되느냐, 또한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느냐를 먼저 따졌다. (p225)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1951년 1월 10일 연 ‘삼성물산 주식회사’는 설립 1년 후 결산에서 출자금 3억 원이 그 20배인 60억 원으로 늘어났다. 사업은 원만하게 성장하고 있었지만 호암은 무언가 형언할 수 없는 허전한 마음에 사로잡혔다. 당시가 극도의 물자부족에 시달리던 시국인 만큼 삼성물산을 통한 수입사업 역시 시급하고도 필수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소비 물자를 수입에만 의존하고 있다가는 언제까지나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인적 자원 외에 자원다운 자원을 가지 못한 한국이었다. 호암은 우수한 기술과 가공, 생산시설을 갖추어 원자재를 수입해 그것을 다양한 상품으로 가공해 수출하는 제조업이야말로 나라 경제가 성장하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했다. 그는 불안정한 당시의 경제상황 속에서 ‘미친 결정’이라는 소리까지 들으며 제조업 사업에 뛰어들었다. (p72)
보보시도장, 즉 사람은 걸음을 멈출 때 비로소 죽은 것과 같다는 그의 철학과 같이 호암은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고, 그것을 통해 나라 경제 성장에 기여하는 일 그 자체를 하나의 창조적 기쁨이자 보람으로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업보국의 신념은 호암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새로운 사업을 일으키게 하는 생의 보람이었다.
“사람이 기업을 하는 동기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는 금전욕을 뛰어넘는 창조적 의욕에 의한 것이 가장 바람직히다. 이러한 의욕과 사회적 책임감이 잘 화합될 때 진정한 의미의 기업가정신이 우러나오는 것이다. 제일제당의 성공은 나에게 창업의 기쁨과 함께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실감하게 해주었다. 따라서 신규투자를 한다면 이번에도 수입대체산업 중에서 생필품과 밀접하게 관계있는 공장을 건설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착안한 것이 제일모직이었다.”
-1976. 4 ‘재계회고’(서울경제신문)에서
호암의 義 : 원칙을 사수하다
호암의 인생에서 가장 쓰디 쓴 경험은 ‘한국비료공장’의 설립이다. 10년여의 시간 동안 세 번의 도전 끝에 결실을 얻었지만, 이를 고스란히 국가에 헌납해야 했다. 비료공장 설립을 위한 호암의 노력은 가히 눈물겨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 과정에서도 원칙을 잃지 않았다. 공장 설립 당시, 비료 생산원가를 낮추기 위해 가장 적절한 플랜트 견적을 제시한 일본 미쓰이 물산과 협상이 벌어졌다. 미쓰이 측은 10퍼센트의 마진을 요구했으나 호암은 3퍼센트의 입장을 고수했다. 미쓰이 본부장은 이런 호암의 요청을 농담으로 치부하며 거만한 태도를 취했다. 이에 호암은 “미쓰이와는 더 이상 거래를 안 해도 좋으니 당장 나가시오.”라며 호통을 쳤다. 비록 돈을 빌리는 처지일망정 호암은 스스로를 미쓰이의 고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한국기업, 혹은 한국사람이라 하여 수모를 겪으면서까지 상담을 진행시킬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미쓰이 본부장이 여섯번째로 찾아와 사과의 말을 했을 때에야 비로소 미팅을 허락했다. 결국 마진은 3퍼센트로 결정되었다. 당시 개발도상국에 제공하는 플랜트 수출치고는 파격적인 것이었다. 이후 일본의 미쓰이 물?은 거래하는 한국의 기업가들에게 “당신 나라의 이 사장(호암) 덕분에 귀중한 교훈을 얻은 일이 있다. 한국의 기업가를 함부로 대한 것은 잘못이었다.”고 말했다. 그 덕분에 한국의 기업들이 일본의 기업과 보다 대등한 입장에서 거래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p158)
“상사에게 고간하라. 아첨하는 것을 수기하라. 그대로 안 될 줄 알면서 사장이나 전무가 하라면 그대로 하겠는가? 안을 세워 윗사람에게 ‘이렇게 해 주십시오’라고 해보았는가?”
_1970. 6. 사장단회의에서
호암의 義 : 사람에 대한 신의를 다하다
한국전쟁 당시 삼성물산공사는 無의 상태로 돌아가버렸다. 하루아침에 안개처럼 사라져버린 재난의 와중에 호암은 남은 삼성물산공사의 전재산을 처분해 가까스로 피난트럭을 구했다. 꼬박 사흘이 걸려 도착한 대구 조선양조장에서 신세질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에 호암은 깜짝 놀랐다. “사장님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3억 원 가량이 비축돼 있습니다. 이것으로 하시고 싶은 사업을 다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공산군의 남침으로 한때는 전쟁의 불길이 바로 눈앞까지 다가왔던 대구였다. 굳건히 양조장을 지켜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었다. 그런데 직원들이 양심적으로 3억 원이나 되는 돈을 비축해 두었다니. 호암은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일은 사실 일반인들은 물론 삼성 직원들도 잘 모르는 일화인데, 그때의 3억 원이 오늘날 글로벌 기업 삼성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시드머니’가 됐고, 호암이 인재경영을 펼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이때부터 ‘익자삼우, 손자삼우’, 그리고 ‘순경은 벗을 만들고 역경은 벗을 시험한다’는 선인들의 가르침을 호암은 매우 중시하게 되었다. (p68)
“ 사고 내고 책임 전가해서 인재까지 내보내는 사례가 있었다. 사고 자체보다 인재를 내보내는 것이 더 큰 사고가 아니겠는가.” _1970. 6. 사장단회의에서
《호암 이병철과 독일 기업에게서 배우는 경영의 정도》
호암 이병철과 독일 기업에게서 배우는 시대를 초월한 경영의 정석,
“BMW, 휘슬러, 몽블랑과 호암 이병철의 10가지 공통분모!”
《호암 이병철과 독일 기업에게서 배우는 경영의 정도》는 호암의 경영스타일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경영비법서다. 오랜 경제기자 생활과 독일 유스투스-리비히 기센대학 경제학부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일한 경력이 있는 저자 민석기는 호암의 평소 생활철학과 경영기법이 BMW, 몽블랑 같은 일류 독일기업의 경영법과 유사함에 주목, 이를 비교분석해 호암과 독일기업 경영의 공통코드 10가지를 뽑았다. 이중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책임경영이다.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내수시장이 좁은 독일의 기업들은 해외 진출이 기업 성장의 절대적 요소였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해외 현지의 문화와 관습 등을 두루 이해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정립됐다. 독일 기업들은 현지법인 대표에게 대게 경영의 전권을 맡긴다. 중앙집중식인 미국기업들과의 차이가 이곳에서 생긴다. 호암 역시 신뢰를 사업의 제 1원칙으로 삼았다. (p23)
“도전의 경영전략은 체질강화를 전제로 한다. 그 첫째는 완전무결한 사업부제와 책임경영을 실현하는 것이다. 조직의 원동력은 바로 이 책임경영 정신에 입각한 철저한 사업부제에 있으며, 이 원칙은 앞으로도 우리 모두가 지키고 실천해야 할 금과옥조이다. 각사의 경영이 사장 책임하에 이뤄지고, 사업부제의 실을 거두기 위하여 사장으로부터 일선의 개개사원에 이르기까지 자기 관련 영역의 책임관리에 철저를 기해야 한다. 책임에는 상응하는 권한이 따른다. 다만 문제는 얼마만큼 자발적으로, 창의적으로, 그리고 합리적으로 책임경영을 수행하느냐에 있는 것이다. 사원 모두의 자발성이 유감없이 발휘되어 진취적이고 활력이 넘치는 사풍이 조성되기를 기대한다.” _1984. 1. 1 신년사에서
이 외에도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완벽주의와 질서의식, 준법정신, 무슨 일이든 끝장을 보는 철저함, 정확성, 조직력,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점 등이 호암과 독일이 가진 공통 특징이다. 각각의 코드를 뒷받침하는 풍부한 사례는 세계 일류 기업을 만드는 경영의 정석을 알려준다.
/ 출처: YES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