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독고전도서-시카고 플랜] 1. 미합중국독립선언서
미국의 태동
18세기의 유럽은 열강들의 각축장이었다. 세력 다툼은 유럽을 넘어 열강들이 지배하고 있던 식민지에서도 가열되었다. 미국 동부 지역에는 영국, 프랑스, 스페인의 식민지가 있었는데, 라틴아메리카 지역에 많은 식민지를 두고 있던 스페인은 북아메리카까지 진출할 여력이 없어, 지금의 플로리다 지역을 차지하는 정도였다. 반면 프랑스와 영국은 마찰이 잦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고, 국지적인 충돌은 점차 전면전의 양상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전쟁은 영국의 승리로 끝났지만, 이미 막대한 전쟁 비용을 쏟아부은 상황에, 상비군을 주둔시키면서 더욱 많은 지출이 요구되는 실정이었다.
문제는 당대의 영국이 아메리카에서만 갈등을 빚고 있는 게 아니었다는 점, 영국은 국내외에서 치른 전쟁으로 소진된 재정을 다시 마련하기 위해 아메리카에 각종 명목의 세금을 징수하기에 이른다. 그중에서도 가장 격한 반발을 불러일으킨 사건은, 식민지에서 발행되는 모든 출간물에 세금을 매긴 ‘인지세법’이었다. 이는 관세가 아니라 내부세라는 점에서 아메리카의 저항은 더욱 거셌다. 자신들은 이런 비상식적인 법의 제정을 위해 영국 의회에 대표를 보낸 적이 없으니, 그 법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 이때 아메리카가 내건 슬로건이, 그 유명한 “대표가 없다면 과세도 없다(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이다. 결국 인지세법은 이듬해에 폐기되지만, 식민지의 여론 수렴을 거치지 않는 영국 정부의 일방적인 태도는 아메리카로 하여금 영국에 대한 강한 저항의식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식민지의 영국인들에게는 영국인으로서보다 아메리카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확고해져 간다.
두 토마스
<독립선언서>는 버지니아 주의 대표인 토머스 제퍼슨이 초안을 작성했으며, 젊은 시절부터 고전에 조예가 깊었던 제퍼슨이 써내려 간 격조 있는 문안은 훗날 그의 이력에도 많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제퍼슨의 초안이 아메리카인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공론의 장을 마련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사람은 토머서 페인이다. <독립선언서>가 낭독되기 6개월 전에 출간된 그의 저작 <상식(Common Sense)>은, 식민지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페인의 저작물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가장 급진적인 사고를 지녔다고 하는 이들도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염두에 두진 않았다. 군주제와 공화제를 조합한 영국의 정체(政體)를 가장 이상적인 정부의 형태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메리카가 원했던 것은 완화된 세제(稅制)와 좀 더 넓은 권한의 자치(自治) 정도였다. 페인은 이런 관습적 사고에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한 것이다.
스스로를 보호할 능력이 없는 작은 섬들은 왕국들이 손에 넣기에 적합한 목표물이다. 그러나 대륙이 섬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은 터무니 없다. 자연은 어떤 경우에도 행성보다 위성을 크게 만드는 법이 없다. 영국과 아메리카는 자연의 평범한 질서를 역행하고 있으므로 서로 다른 제도를 가지는 게 합당하다. 영국은 유럽에 속하고 아메리카는 자체에 속한다.
로크의 사상
근대 시민사회의 형성에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 존 로크, 그의 <시민정부론> 19장 ‘정부의 해체에 대하여’에서는, 국민과 정부 사이에서 충돌을 빚어 사회적 신뢰가 와해될 때, 그 정부가 해체되어야 하느느지를 누가 판단하는가에 대해 묻고 있다. 로코의 대답은 바로 국민이다. 그것은 국민이 행사해야 할 혁명적 권리이다. 미국 독립의 뇌관으로 작용한 철학적 명분은 이 지점이었다. <독립선언서>는 ‘민주주의의 정치철학의 원리’를 제시하고 있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이론적 근거 역시 로크의 주장에서 빌려 왔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자명한 진리라고 생각한다. 즉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조물주는 양도할 수 없는 일정한 권리를 부여하였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포함되어 있다.
이 단락에서 존 로크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표현은 바로 ‘생명’, ‘자유’, ‘행복’이다. 존 로크가 제창한 3대 자연권인 생명, 자유, 재산에서 <독립선언서>의 작성자는 ‘재산’을 ‘행복’으로 바꾼 것이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라는 대목에서 알 수 있듯, <독립선언서>에서만큼은 적어도 백인과 흑인, 주인과 노예, 지배와 피지배의 차별과 위계를 규정하지 않는 미국이었다. 시카고 플랜의 인문적 취지를 단 하나의 문서로 압축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미합중국독립선언서>가 될 것이다. 그만큼 미국의 역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류의 인문적 진보를 보여 주는 선언서이다.
<독립선언서>는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천명하고 새로운 정부의 공식 명칭을 공표하는 것으로 끝을 맺느느다. 이전까지는 ‘연합 식민지(United Colonies)’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해야 할 당위성을 받아들이면서 세계의 다른 국민에게 대하듯이 영국인에 대해서도 전시에는 적으로, 평화시에는 친구로 대할 것을 주장하는 바이다. 이에 ‘미합중국(United States)’ 여러 주의 대표들은 총회를 개최하여 우리의 진정한 의도를 전 세계의 지엄한 판단에 호소하는 바이며, 식민지의 선량한 인민의 이름과 권능으로 엄숙히 공개 천명하는 바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권리로 자유롭고도 독립된 국가이며, 영국 국왕에 대한 모든 충성의 의무를 벗으며, 영국과의 모든 정치적 관계는 전면적으로 단절되고, 또 당연히 단절되어야만 한다. 자유롭고도 독립된 국가로서 전쟁을 수행하고 평화협저을 체결하고, 외국과의 동맹관계를 설정하며, 통상관계를 수립하여 독립국가로서 당연히 행할 수 있는 일체의 행위와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완전한 권리를 보유하고 있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