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곡 만들려다… 22년 만에 첫 교향곡 완성했어요
김주영 피아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다음 달, 정명훈이 지휘하는 독일 오케스트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가 4년 만에 내한 공연을
갖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오케스트라 중 하나인 이곳은 1548년 궁정악단으로 시작해
올해로 창단 475주년을 맞습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마에스트로(Maestro·거장 지휘자)
정명훈은 2012년부터 이 오케스트라의 수석 객원 지휘자로 함께하고 있죠.
이번 내한 공연 중 7~8일 이틀간의 프로그램은 독일 작곡가 브람스의 교향곡만으로 꾸며집니다.
낭만주의 시대를 살았던 브람스는 '신고전주의자'로 불립니다. 로맨틱한 감성과 서정성을 가득
담고 있지만, 형식만은 고전파 시대의 엄격한 규칙을 지키고 있어 붙은 별명이죠. 교향곡에도
그의 이런 특성이 잘 나타나 있는데요. 네 곡이 각각 다른 음악적 개성과 매력을 지니고 있어
모두 인기가 높습니다.
세련되고 장중한 교향곡 1번
https://youtu.be/XmgjzDvAZvA
브람스 교향곡의 위대한 시작을 알리는 교향곡 1번 c단조 작품번호 68은 1876년에 발표됐습니다.
이 작품은 구상부터 완성까지 무려 22년의 세월이 걸렸어요. 처음 그는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작품을
구상했죠. 하지만 오랜 고민 끝에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으로 변형했습니다. 1862년 1악장이 만들어졌는데,
그 후 다른 일정에 쫓겨 완성을 미루고 있던 브람스는 1874년 여름부터 다시 작곡에 몰입해 1876년
9월에 전체를 완성했어요.
장중한 느낌의 긴 서주(序奏)가 붙은 1악장은 감정의 진폭이 큰 악상(樂想·작곡가가 표현하려고 한
음악의 분위기)들이 적재적소에서 활약하는 소나타 형식(제시부·전개부·재현부에 종결부가 더해진
악곡 형식)입니다. 느린 2악장은 차분하고 수수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어딘지 깊은 동경이 느껴집니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독주 바이올린의 선율이 하이라이트죠. 3악장은 3부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중간부에서는 세 음으로 이루어진 모티브(짧고 반복되는 악절의 일부)를 통해 무거운 율동감을
강조합니다. 아다지오(Adagio·매우 느리게)의 서주로 시작하는 4악장은 거대한 구조를 지닙니다.
주요부 첫머리의 멜로디는 베토벤 '합창' 교향곡의 모티브를 연상케 하는 것으로 알려졌죠.
세련미와 장대함이 동시에 표현돼 있습니다.
밝고 평화로운 교향곡 2번
https://youtu.be/8UTJ4Dbpjto
. ②브람스가 교향곡 2번을 쓴 오스트리아 남부 호숫가 마을 페르차하.
교향곡 1번을 쓰기 위해 오랜 기간을 고민했던 브람스는 첫 번째 교향곡의 성공에 힘을 얻어 이듬해인
1877년 두 번째 교향곡을 완성합니다. 오스트리아 남부에 있는 호숫가 마을 페르차하에서 완성한
이 교향곡 2번 D장조 작품번호 73은 알프스의 아름다운 풍광에서 영감을 얻어 평화롭고 낙천적인
분위기가 풍깁니다. 많은 부분에서 1번과 대조적인 이 교향곡을 가리켜 사람들은 '브람스의
전원(田園) 교향곡'이라고 부릅니다.
초연은 1877년 12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이루어졌으며, 이듬해 9월에는 브람스의 고향인 함부르크에서
연주돼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1악장은 느긋한 진행이 인상적인 1주제와 2주제가 어우러지며 흐릅니다.
주제들을 교묘하게 변형시키며 활용하는 브람스의 작곡법이 훌륭하죠. 2악장은 아다지오의 속도로,
어딘지 쓸쓸한 느낌의 1주제가 등장하고, 점차 발전해 가며 이보다 조금 더 명랑한 2주제가 나와
변화를 꾀합니다. 3악장은 미뉴에트(Minuet·프랑스에서 시작된 보통 빠르기의 세 박자 춤곡)의
성격을 지니며, 중간부에서 프레스토(Presto·매우 빠르게)의 속도로 변해 강한 추진력을 나타내는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생기 가득한 4악장은 두 주제가 모두 명랑한 에너지를 지닌 모습으로 나타나
마지막까지 그 에너지를 유지합니다.
일 오케스트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2018).
힘차고 호쾌한 교향곡 3번
https://youtu.be/aynbkhsvs4o
1883년 완성된 교향곡 3번 F장조 작품번호 90은 간결한 구성과 호쾌한 기백이 느껴지는 악상 등으로
종종 베토벤의 '영웅' 교향곡과 비교됩니다.
교향곡 2번을 쓴 후 브람스는 이탈리아 여행을 세 차례 다녀오며 견문을 넓혔는데요. 그래서인지
이 교향곡의 주제 중에는 이탈리아 가곡을 연상시키는 성악적인 멜로디가 많습니다. 1악장은 '빠르고
생기가 넘치게'라는 지시어가 붙어 있는데, 하늘 높이 솟구쳤다가 낙하하는 듯한 1주제와 평화로운
2주제가 효과적인 대조를 이루며 발전합니다. 2악장은 소박하고 순수한 브람스의 감성을 엿볼
수 있어요. 완만한 느낌의 주제를 관악기들이 번갈아가며 반복하고, 현악기들은 이를 받아 작은
파도가 일렁이듯 악상을 전개합니다. 3악장은 애수 어린 첫머리의 멜로디가 매우 잘 알려졌는데요.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원작으로 한 영화 '이수(離愁·1961)'의
배경음악으로 쓰이면서 애호가들에게 익숙해졌습니다. 4악장은 스케일이 크고 힘찬 느낌의
악상을 보이며, 주제들의 전개가 간결해 개운한 마무리를 들려줍니다.
쓸쓸하고 우울한 교향곡 4번
https://youtu.be/N_pEzvKwGAM!
④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단원들이 연주하는 가운데 지휘자 정명훈이 우뚝 서 있어요.
브람스의 마지막 교향곡 4번 e단조 작품번호 98은 1885년 완성되어 그해 10월 브람스의 지휘로
초연됐습니다. 이 곡은 브람스의 작품 중에서도 과거 지향적인 작품으로 알려졌어요. 4악장에서
바로크 시대에 유행하던 파사칼리아(Passacaglia·반복되는 저음부 주제 위로 여러 변주가 이어지는 것)
형식을 쓴 것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교향곡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어딘지 쓸쓸하고 우울한
기분인데요. 만년에 들어선 브람스의 심경을 나타낸 것입니다.
1악장은 고독과 정열이 함께 느껴지는 악상으로, 주요 주제들이 격조 넘치는 서정성을 전달합니다.
경건함과 장중함을 함께 전달하는 2악장은 관악기가 먼저 주제를 제시하고 현악기들이 이를 받아
연주합니다. 3악장에서는 오케스트라 전체가 화려한 음향을 연주할 때 갑자기 트라이앵글이 등장하죠.
4악장은 4분의 3박자로, 파사칼리아의 구성을 따라 반복되는 여덟 마디 저음에 맞춰 30개의 변주가
장중하게 진행됩니다. 종결부도 기본 주제를 바탕으로 꾸며지며, 강렬하고 화려하게 전곡을 끝맺습니다.
브람스의 교향곡들은 워낙 명곡들이라 유명 지휘자들이나 오케스트라 대부분이 자신들의 해석으로
음반을 발표했어요. 이번 공연에 가지 못하더라도 기존에 나온 다양한 연주를 비교하면서 감상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