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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부채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 견훤조에 처음으로 보이며 이 보다 먼저 고구려 덕흥리 고분벽화와 안악 제3호 무덤벽화를 통하여 이미 우리 조상들이 부채를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선자사기(扇子史記) “出於招風取凉⃘. 驅蟲蚊. 拂 灰塵. 引火 加熱種種需要, 人們發明了扇子.“ 라고 하였는데 즉 ”바람을 일으켜 더위를 쫓으며 파리나 모기를 쫓기도 하고 먼지나 재를 털고 불을 부쳐 가열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람들이 부채를 발명하였다“
부채의 재발견 ③'독도부채' 이종상 교수의 부채예찬
"손 안의 병풍인 부채에 가변의 원리가 숨어 있어요" "180도 폈다 접는 접부채는 긴장감과 완화감 극대화" 디지털과 아날로그 아우르는 '디지로그' 매체 기대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편집위원 = "사람이 바람 피우면 곤란하지만, 부채는 바람을 피울수록 좋아요." 이종상(한국화가.전 서울대 미대 교수ㆍ예술원 회원.69) 상명여대 석좌교수는 부채론을 펴기에 앞서 질탕한 우스개부터 던진다. 세월 속에 은근히 곰삭은 속깊은 농담이다. 잊혀져 가는 부채에 관심을 가져주는 언론이 있다 싶었던지 한번 터진 부채예찬은 그칠 줄 모른다. 모처럼의 갈증 해소인 셈이랄까. 최근 서울 인사동의 한 음식점에서 만난 이 교수는 부채가 함축하는 의미와 원리를 주목하자며 얘기를 풀어나갔다. 부채는 결코 한물간 과거의 퇴물이 아니라 그 전통을 잘 살려 시대에 맞게 개량해가면 생활 속에 얼마든지 살아 숨쉬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부채 이야기의 실마리를 병풍화에서 끄집어낸다. 병풍화는 하나의 무비 카메라인데, 부채는 그 필름의 한 부분을 떼어낸 것이라고 강조한다.
"간명하게 말해 동양화는 이동시점의 특성을, 서양화는 고정시점의 특성을 갖고 있어요. 이동시점은 비유하자면 무비 카메라, 즉 동영상이죠. 그래서 서양화로 그린 부채 그림은 한국화의 그것과 다를 수밖에 없어요." 좍 펼쳐진 병풍화에서는 파노라마같은 산수의 정경을 유람하듯이 구경할 수 있다. 그림마다 다르고 한 그림이라도 소실점이 여럿이어서 하나의 소실점만 있는 서양화와는 근본적으로 같을 수 없다는 얘기다. 서양화가 사각창을 통해 외부 풍경을 황금비율로 담아내는 정지화면이라면, 동양화는 자연 속에 들어가 산수를 '휘' 하고 소요하듯이 둘러보는 이동화면이다. 병풍화가 건축으로 옮겨가면 줄줄이 늘어선 한옥의 문이 된다. 이 문은 기둥에 고정된 채 여닫는 기능만 있는 서양건축물의 그것과 다르다. 밀고 당겨 열고 닫는 미닫이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보통의 문처럼 열고 닫는 여닫이, 심지어 문을 들어 대청마루 위에 턱 하니 걸쳐 놓는 들닫이까지 다양하다. 안팎구분의 단절이 아니라 사방팔방 소통의 원리가 구현돼 있다는 뜻이다. 서양화가 그 모양에 맞는 물건만을 수용하는 사각의 가죽가방이라면, 동양화는 아무 거나 청탁 구분없이 받아들이는 보자기라고 할까. "부채에는 그 가변의 원리가 숨어 있어요. 병풍을 축소하면 바로 부채가 돼요. 부분이 전체이고 전체가 또한 부분이라고 볼 때 병풍이 곧 커다란 부채이고 부채가 곧 손 안의 병풍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 모두가 공간을 고정태가 아니라 가변태로 보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이 교수는 한국 부채의 다양한 언어는 세계 어느 나라 부채도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외국의 부채는 접었다 펴는 각도가 아무리 커야 150도를 넘지 않으나 한국의 접부채는 180도를 자유자재로 폈다 접을 수 있어 긴장감과 완화감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악기로 치면 음폭이 그만큼 크다고 할 수 있다. 한국무용에서 다양한 몸짓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게 바로 부채이기도 하다. 그에 따르면, 부채는 접힐수록 차가운 권위를 나타낸다. 반면 펼수록 따뜻한 감성을 표현한다. 완전히 접어서 일직선이 되면 허튼수작이 용납되지 않는 지휘봉이 되지만, 180도로 펼쳐내면 어떤 말과 행동, 상황도 끌어들일 수 있는 포용의 따뜻한 품이 된다. 아버지가 아들을 보더니 부채를 확 접어버린다면 못마땅해한다는 뜻이고, 반대로 쫙 편 채 활활 얼굴을 부치고 있다면 웬만한 요청은 다 받아들일 태세가 돼 있다는 뜻이다. 부채 언어 하나로 자신을 나타내고 상대를 읽을 수 있다고 이 교수는 말한다. '의식'보다 훨씬 크고 깊고 솔직한 '무의식'의 언어를 나타내고 읽을 수 있는 도구가 부채라는 것이다. "부채는 남을 이해하고 돕는 기능을 가진 사교적 수단이기도 합니다. 옆에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사람을 놔둔 채 제 혼자서 부채 부칠 만큼 야박한 사람은 찾기 힘들 겁니다. 자신에 앞서 그 사람 얼굴부터 부쳐주게 하는 게 바로 맘씨 좋은 부채의 미덕입니다. 자기 입으로 가져가기에 앞서 다른 사람에게 한 대 권하는 담배 인심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이 교수는 독도를 부채에 그려내고 있는 화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가 독도와 맺은 인연은 각별해서 1977년에 처음 입도한 이래 지금까지 11번이나 다녀왔다. '독도는 누가 뭐래도, 하늘과 바다가 두 쪽이 나도 한국땅'이라는 확고부동한 신념을 갖고 있는 그는 지난해 9월에는 미술인 중심으로 '문화의병'을 조직해 독도에서 스케치를 한 뒤 전국을 돌며 전시회를 열고 있다.
그는 "부채를 부치다 보면 오장육부가 다 시원해지 않느냐"고 물은 뒤 "일본이 망언을 할 때마다 부채를 부쳐 그 망언들을 태평양 저 너머로 날려보내는 쾌감을 맛본다"고 말한다. 독도 그림을 포함해 지금까지 제작한 부채 작품은 이루 헬 수 없이 많다고. 전시회로는 지난 6월 14일부터 20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문화의병 독도진경 부채전'을 열어 화가 41명과 함께 작품을 냈다. 오는 8월 말부터 한 달 간 일본 도쿄에서 개최될 전시에도 부채 작품 석 점을 출품할 예정이다. 부채의 전망은 어떨까? 변화하는 시대에서 폭넓게 사랑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교수는 부채의 현대적 진화가 충분히 가능하며 그 가능성을 실행하면 활로는 넓게 열릴 수 있다고 낙관했다. "젊은층에게 대중적으로 확산시키려면 메모용 부채나 사인용 부채 등을 만들 수도 있겠습니다. 우산과 양산이 함께 사용되듯이 부채도 여러 실용적 쓰임새를 되찾는다면 미래는 충분히 밝아요. 유명선수의 사인을 받아도 부채에 받는다면 그만큼 품위가 높아질 거고, 메모를 하더라도 앙징맞은 부채에 한다면 더욱 멋져 보이지 않을까요?" 그는 정통영어는 아니나 일반인들 사이에 흔히 쓰이는 '핸드폰'(handphone)인 휴대전화와 '핸드팬'(handfan)인 부채는 둘 다 소통이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면서 이런 측면에서도 부채는 젊은층 문화로 사랑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디지털 시대와 아날로그 시대를 아우르는 '디지로그'의 매체가 바로 부채가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연합뉴스-
조선의 부채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대하여시드니에서 들려주는 김호남 목사의 목양 이야기 [2008.05.13 08:45]
한자어 ‘선(扇)’으로 표기되는 부채는 우리의 옛 역사에 의하면 ‘죽음을 맹서하는 결의의 매체’이기도 했고, 또 ‘사랑을 증명하는 일종의 연서’ 기능도 했던 것 같다. 미국 아나폴리스에 위치한 미 해군 사관학교 박물관에는 고종 8년에 있었던 한미소전쟁 당시 강화도의 광성포대에서 노획한 ‘일심선’이라는 접는 부채가 진열되어 있다 한다. 부챗살마다 이 전투에 참여했던 한국 병사들의 직함과 이름을 써 넣어 온 장병들이 일심동체가 되어 전투에 임했음을 짐작케 하는 부채이다. 그뿐 아니다. 임란시 동래부사 송상현은 자결하기 직전에 부채에다 ‘군신의 의를 지키기 위해 부자의 은’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는 뜻을 부채에 적어 아버지에게 부쳤다고 했다. 연전에 작고한 故 이규태 씨의 재기발랄한 평가에 따르면 부채는 바람을 일으켜 더위를 쫓아주는 것이 일덕이요, 흙 땅에서 깔개가 되어주니 이덕이요, 들판에서 밥상이 되어주니 삼덕이요, 물건을 머리에 일 때 또아리가 되어주니 사덕이며, 햇볕을 가려주니 오덕이요, 비를 막아주니 육덕이며, 파리 모기 좇아주니 칠덕이요, 얼굴을 가려 내외를 해주니 팔덕이며 여기에 장단 맞추는 도구 되니 구덕이요, 무당춤 귀신 부르는 십덕이 있는 참으로 요긴한 것으로 옛 사람들은 이를 신물이라 했다고 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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