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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의 패망과 성도의 즐거움
요한계시록 18:20~24
오늘 본문의 말씀은 큰 성 바벨론의 멸망에 대한 최종적인 예언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이 세상 나라의 대표적 모형이 완전히 파멸되어 사라짐으로써 계시록에서도 다시는 언급되지 않습니다. 이 화려하고 매혹적인 큰 바벨론 성의 멸망은 하나님 백성들이 영원히 거주하게 되는 새 예루살렘 성의 출현에 앞서서 이루어지는 큰 역사적 사건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에는 다음 세 가지의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첫째로, 바벨론 멸망을 인하여 성도들이 즐거워하라고 요청하십니다.
20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그에게 심판을 행하셨음이라 하더라”
이 말씀을 하는 존재는 계시록 18:4 말씀에,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라고 하는 말씀대로,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으로 추측됩니다. 하나님은 여기서 주의 백성들을 향하여 바벨론 멸망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먼저 ‘하늘’에게 즐거워하라고 했는데, 하늘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거처를 가리키므로 하늘에는 구원받은 구약 성도들과 먼저 천국에 올라간 신약 성도들이 있고 천천 만만의 천사들이 있으니, 그들이 바벨론 성의 멸망을 지켜보면서 크게 즐거워하라고 명령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담 이래로 온 세상에서 번성하던 인본주의적인 세상 나라의 모델들인 과거의 바벨론 성들 곧 소돔과 고모라 성이나 니느웨 성이나 바벨론 성, 두로 성, 로마 등이 그 부도덕과 악덕으로 멸망할 때에 하늘에서는 천사들의 찬양과 구원받은 성도들의 즐거운 환호 소리가 넘쳐 흘렀을 것입니다.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지상에서 신앙 생활하는 진실한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마지막 때에 바벨론의 압제와 핍박과 유혹 중에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주의 백성들 역시 마지막 때에 바벨론 도성의 멸망을 보게 될 때에 크게 즐거워하며 찬송할 것입니다.
이들이 이렇게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앞서 요한계시록 18장 8절로부터 반복적으로 기록된 수많은 세상 사람들의 애통과 지극히 대조적입니다. 그 내용을 보면, 바벨론의 멸망으로 인하여 땅의 왕들과 땅의 상인들과 모든 배의 선장, 선원들은 모두 통곡을 하였습니다. 그토록 화려하고 풍부하고 그 위세가 온 세상을 뒤흔들었던 큰 성 바벨론이 하룻만에, 더욱이 한 시간만에 망하는 것을 보고 그들은 모두 크게 울며 어찌할 바 모를 만큼 애통해하였지 않습니까? 그렇게 세상 전체가 다 크게 애통하며 우는 까닭은 그 때까지 그들이 큰 성 바벨론으로 말미암아 자기들이 누렸던 사치와 풍부한 이익들과 세상적인 즐거움들을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바벨론의 멸망으로 인하여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애통하며 크게 우는 것과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토록 크게 기뻐하도록 요청받고 있으니 그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요? 단지 큰 성 바벨론 사람들이 하나님 백성을 괴롭히던 원수와 같은 자들이기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멸망시켰기에 기뻐하라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바벨론의 멸망을 인하여 천사를 비롯한 주의 백성들이 크게 즐거워하도록 요청받은 까닭은 바벨론의 멸망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의로우신 통치가 만천하에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이 그토록 악을 행하는데도 만약 심판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하나님의 주권은 훼손될 것이요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통치하심은 입증되지 못하고 말 것입니다. 그토록 바벨론 사람들이 하나님 백성들을 미혹하며 압제하며 조롱하면서 주장하기를, 하나님은 안 계시고 하나님을 믿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요 광신적인 행위에 불과하다고 했는데, 이러한 주장이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확실히 입증해보이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괴롭히는 자들은 가만 두지 않겠다고 하신 말씀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셨음을 입증하는 계기도 됩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의 멸망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이 마침내 확실히 집행됨을 인하여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그의 권능이 이처럼 크시고 그를 대적하고 그를 떠난 자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한 것이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끝까지 보호해주시고 반드시 그 원수들을 친히 대적하신다는 것을 입증해보이신 것이기에, 바벨론의 멸망은 성도들에게 큰 기쁨과 즐거움의 이유가 되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벨론의 멸망을 인하여 우리 성도들이 기뻐할 이유는 하나님의 공의가 마침내 온 세상에 온전히 입증됨을 인한 것이지, 우리를 괴롭힌 자들에 대하여 복수해주신 일로 우리가 기뻐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합시다. 그러므로 지금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지치고 힘들고 괴롭고 기를 못 펴고 지내곤 합니다만 주님께서 마침내 온 세상을 심판하실 그 날이 올 것입니다. 그 때에는 우리가 믿고 의지하던 하나님께서 그의 크신 권능을 드러내실 것이요 그의 의로운 심판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믿고 고난을 견딘 것이 헛되지 아니함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날이 지금 아직 멀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인내합시다. 그리고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명하신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우리 마음 속에 미움, 원망, 저주의 마음은 일체 품지 말고, 주님께만 주님의 백성들의 모든 슬픔을 다 걷어주시고 주의 의를 드러내주시기를 기도하며 묵묵히 기다리는 자들이 됩시다. 그리할 때에 때가 되면 마침내 성도들이 기뻐 외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심판의 그 날이 다가올 것입니다.
둘째로, 큰 성 바벨론이 완전한 파멸에 떨어질 것을 확실하게 말씀하십니다.
21절로부터 23절 전반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이에 한 힘 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이르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비참하게 던져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또 거문고 타는 자와 풍류하는 자와 퉁소 부는 자와 나팔 부는 자들의 소리가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고 어떠한 세공업자든지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보이지 아니하고 또 맷돌 소리가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고 등불 빛이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비치지 아니하고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 하리로다”
여기서 보면 한 힘 센 천사가 등장합니다. 이 계시록에는 힘 센 천사가 두 번에 걸쳐 앞선 묵시 중에도 나타난 바 있습니다. 5:2 말씀에 보면, 큰 음성으로 온 우주가 다 들리도록 큰 목소리로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라고 외치는 천사로 나옵니다. 또한 10:1 이하에도 다시 등장하는데, 엄청난 영광의 모습을 가진 이 천사는 오른 발로 바다를 밟고 왼발로 땅을 밟고 사자가 부르짖는 것같이 큰 소리로 외칩니다. 그 외칠 때에 일곱 우레가 소리를 내어 말합니다. 이렇게 힘 센 천사가 등장할 때에는 그만큼 중대한 일을 큰 권능으로 행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입니다.
이 계시록 18장 21절 이하에서는 이 힘 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짐으로써 큰 성 바벨론의 완전한 멸망을 행동적인 예언으로 선포합니다. 여기서 천사가 들어 던진 큰 맷돌은 가정용 맷돌이 아니라 소와 말과 나귀가 돌리는 커다란 연자 맷돌을 가리킵니다. 그 크기가 지름이 2미터나 되고 무게로는 1톤이 넘는 것도 있습니다. 이것은 심히 무겁고 크기에 이것을 바다에 던지려 하기에 힘 센 천사가 나타날 필요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힘 센 천사가 연자 맷돌을 들어 바다에 던지는 행위는 일종의 언어 계시가 아니라 행동 계시인데, 종종 선지자들은 말로 하지 않고 행동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동시대 사람들에게 전하곤 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발가벗고 다니는 행동으로 동족이 포로가 될 것을 예고하고, 호세아가 음란한 여인을 얻어 자녀를 낳았으나 그 음란하여 집을 나가 남의 종이 된 아내 고멜을 다시 용서하고 맞아들이는 행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음란하여 이방 신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용서하신다는 뜻을 전달합니다. 에스겔 선지자 역시 아내가 죽었을 때 울지 아니하는 행동 계시를 함으로써 훗날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에 멸망을 완전히 당할 때 가족, 친척, 이웃이 죽을 때에 울지도 못할 만큼의 비참한 상태에 떨어질 것을 예고합니다.
이처럼 힘 센 천사가 연자 맷돌을 바다에 던지는 것 역시 바벨론의 완전한 멸망을 예고하는 행동 계시로서 더욱 실감나게 기억나게 하고 인상 깊게 가르쳐주고자 하는 하나님의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천사의 연자 맷돌을 바다에 던지는 일은 예레미야 51:63,64 말씀을 여기서 재사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51:63.64 말씀은 이르기를
“너는 이 책 읽기를 다한 후에 책에 돌을 매어 유브라데 강 속에 던지며 말하기를 바벨론이 나의 재난 때문에 이같이 몰락하여 다시 일어서지 못하리니 그들이 피페하리라 하라 하니라 예레미야의 말이 이에 끝나니라”
고 하였습니다. 이 대목은 유다 말기의 왕 시드기야 때에 왕과 대신들이 바벨론에 외교적인 목적으로 방문할 때에 유다의 병참감이었던 네리야의 아들 스라야를 선지자 예레미야가 따로 불러서 바벨론의 유브라데 강에 가서 행할 일을 부탁한 것입니다. 그 내용은 바벨론의 멸망을 예고한 두루마리 책을 바벨론 유브라데 강에 가서 다 읽고서 그곳에서 바벨론의 멸망을 선포한 후에 그 책을 돌에 메어서 유브라데 강물 속에 던지면서 바벨론이 몰락하여 다시는 일서서지 못하고 황폐하게 될 것이라고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바벨론 멸망의 예언을 담은 그 책이 무거운 돌에 매여서 강물 속에 던져져서 다시는 나오지 못한 것처럼, 바벨론 역시 다시는 옛 영광의 모습으로 일어나지 못하고 영원한 폐망 상태로 끝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렇게 사도 요한은 성령의 영감 속에서 동일한 그 묵시를 마지막 때의 바벨론 성의 멸망의 모습으로 다시금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힘 센 천사가 연자 맷돌을 바다에 내던졌을 때에 그 연자 맷돌이 다시 올라올 수 있겠습니까? 잠시라도 떠올라서 옛 영광의 아련한 추억이라도 잠시 던져줄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한번 던져진 후로는 다시는 역사 속에서 떠오르지 못하게 완전하고 영원히 멸망을 당하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바벨론의 최후를 천사가 연자 맷돌을 바다에 던져 빠뜨린 행동을 통하여 확실하게 예고해 주신 것입니다.
다시 조금도 바벨론이 되살아날 수 없다는 점을 21절로부터 23절까지 짧은 세 구절 속에서 ‘결코 다시’라는 말을 여섯 번이나 반복하고 있습니다. 결코 다시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비추지 않을 것이라고 여섯 번이나 반복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북적이며 모든 것이 풍족하며 화려하고 즐겁고 밝고 환하며 쾌락이 충만한 웃음소리, 구성진 음악 소리, 기름진 먹거리와 볼거리가 넘치던 바벨론 성은 이제 침묵과 흑암의 장소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인간 스스로의 문화와 문명을 자랑하던 큰 성 바벨론은 그렇게 갑작스럽게, 거칠게, 완전하게, 돌이킬 수 없이 멸망하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화려하고 아름답고 쾌락이 넘치며 풍요롭고 인간의 모든 문명의 최첨단을 자랑하는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는 세상의 도시라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 없는 인간 스스로의 자랑과 욕망의 거대한 문명의 탑일진대, 과거 바벨탑이 그러했듯이 앞으로 주님 오실 그 날에 그렇게 순식간에 완벽하게 멸망하고 사라질 모래성 같은 것임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결코 좌로나 우로나 보이는 것, 들리는 것에 현혹되지 말고, 우리 인생의 집을 만세 반석이신 우리 주님과 그 진리 위에 굳게 세우고 흔들리지 않는 참 믿음의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셋째로, 바벨론 멸망의 이유를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23절 후반절로부터 2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의 상인들은 땅의 왕족들이라 네 복술로 말미암아 만국이 미혹되었도다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그 성 중에서 발견되었느니라 하더라”
여기서 언급된 바벨론 멸망 원인에 대하여 세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물질지상주의 사상입니다. 23절 후반절에
“너의 상인들은 땅의 왕족들이라”
고 하였습니다. 원문에 보면, ‘호티’라는 접속사가 있어서 ‘왜냐하면’이라는 말이 앞에 붙어 있습니다. 왜 그렇게 처참하게 결코 다시 바벨론의 옛 화려한 삶이 재현되지 못하도록 완전하고 돌이킬 수 없이 멸망당했는가 그 이유가 무엇이냐면 바로 바벨론의 상인들, 장수치들, 오늘날로 하면 기업가들이 지상의 세도가요 권세자요 우두머리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재물만 많으면 온 세상 사람들로부터 우러러 보는 세상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면 지금 저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 빈살만은 우리나라에 와서 최고급 국빈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가 세상에서 개인 재산 최고 순위를 다투는 대부호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가진 재산이 2800조 원대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이재용 씨 개인 재산이 11조 정도라고 합니다. 빈살만에 비하면 너무 초라한 수준입니다. 그가 우리나라에 오니까 삼성 이재용 회장, 현재 정의선 회장, 에스케이 최태원 회장이 주루룩 달려갔습니다. 이것은 사우디아라비아 실권자인 빈살만이 계획하는 거대한 도시 건설에 참여함으로써 큰 사업권을 따낼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세계 최고 부자가 한국을 방문하니까 재계 뿐 아니라 정치계도 들썩이는 모습을 보면 재물의 영향력이 대단함을 느낍니다. 사실 빈살만은 자기 혈족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한 사람으로서 그 성품이 모진 사람으로 미국도 제재를 가하고자 했던 인물입니다. 자기를 비판한 언론인은 터어키에서 비밀리에 체포하여 영사관 내에서 잔인하게 고문하고 암살해버립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미국의 대통령 바이든도 달려가서 빈살만을 만나고 화해하였으니, 이것도 돈 때문이었습니다. 돈 앞에는 그 사람의 악한 일도 다 불문에 묻어두는 현실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경향들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지적하는 바 “너의 상인들은 땅의 왕족들이라” 하는 가르침에 담긴 말씀입니다.
재물이 많으면 모든 것이 다 된다는 거이 바벨론이 온 세상에 퍼뜨린 풍조입니다. 이러한 물질지상주의, 물질만능주의 때문에 불법, 불의 등이 판을 치는 것이요 이것 때문에 가난한 자들을 무시하고 짓밟고 많은 것을 가졌으나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이 빼앗아서라도 가지려는 악한 풍조가 세상을 흔들고 있는 것입니다. 저 가난한 나라 사람들도 이전에는 행복하게 가난 중에도 즐겁게 살았으나, 이제는 티브이, 핸드폰으로 열려진 세상을 통하여 돈이 제일이라고 하는 사상에 물들어서 다들 탐욕의 종이 되고 행복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돈보다 더 귀하고 영원한 가치인 인간 중심, 하나님 중심, 섬김과 나눔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옛적 삶의 방식을 여전히 잃어버리지 않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둘째로는 바벨론은 복술 때문에 망했습니다.
23절 후반절에 이르기를
“네 복술로 말미암아 만국이 미혹되었도다”
여기 복술이란 마술, 술수 등과 같은 그릇된 종교적 행위를 가리킵니다. 우상 숭배, 잡신 숭배 그리고 미신 행위 등이 바벨론 성이 온 세상을 미혹하는 또 하나의 악행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한분만을 순결하게 섬기는 것을 미신으로 치부하였습니다. 미련한 일로 취급하면서, 도리어 온갖 잡신 숭배, 우상 숭배, 타락한 종교적 가르침을 퍼뜨렸습니다. 오늘날 종교다원주의 사상들이 이러한 복술입니다. 기독교의 교리를 왜곡하고 이런 저런 가르침을 섞어서 혼잡하게 만드는 것도 이 복술에 속합니다. 예를 들면 저 유럽 뿐 아니라 이제 저 미국에서도 동성 결혼을 연방 차원에서 합법화하는 법안을 가결하였습니다. 대통령 바이든이 오늘 서명했습니다. 부끄러움도 없이 이제 미국의 대다수의 주에서 동성 결혼의 합법적인 보장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미국에서 일어난 현실입니다. 이러한 바벨론의 복술로 말미암아 앞으로 만국이 미혹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복술로 만국을 미혹한 대가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미국이 받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기독교인들을 박해한 대가로 바벨론은 멸망당했습니다.
2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그 성 중에서 발견되었느니라 하더라”
바벨론 성이 멸망하게 된 까닭은 그들이 예수님 믿는 자들의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입니다. 옛적에 바벨론 제국의 멸망을 선포하실 때에도 그들이 하나님의 선민을 많이 죽였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51:49 말씀에,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죽여 엎드려뜨림같이 온 세상이 바벨론에서 죽임을 당하여 엎드러지리라”
고 하신 말씀이 다시금 이 묵시 속에 재현되어 선포되고 있습니다. 모든 시대에 나타나는 큰 성 바벨론은 세속 도시, 세속 국가로서 하나님의 백성과 교회들을 늘 핍박하여 피를 흘리곤 해왔습니다. 앗수르, 니느웨, 두로, 바벨론, 로마, 바티칸, 일제의 도쿄, 북한의 평양, 저 중국의 베이찡 공산정권 등이 그러한 일을 해왔고, 앞으로 또 장차 나타날 큰 성 바벨론이 그러할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참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를 핍박하는 일로 인하여 그들은 역사 속에 심판을 받아 폐허가 되었고 앞으로 나타날 최후의 바벨론도 심판을 받아 피를 흘리게 될 것이요 완전한 멸망으로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큰 성 바벨론은 이 외에도 여러 이유가 있어서 그 일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이 예고된 바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4절에 사치, 5절의 교만, 6절에 불의가 거론되었습니다. 이렇게 물질만능주의, 우상 숭배, 핍박, 사치, 교만, 불의 등이 바벨론이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러한 바벨론이 만국을 취하게 만드는 이러한 세속주의 정신과 혼돈의 영적 유혹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사치하며 교만하며 불의하며 물질제일주의 사상과 영적 음행, 하나님 앞에 교만함과 주의 백성들을 핍박하는 영적 패역함을 우리는 믿음으로 무장하여 저항하고 굴북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 우선주의, 겸손과 섬김과 나눔을 실천하며 정의와 공법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주님 오시는 일이 가까울수록 바벨론의 화려함에 속고 그 핍박에 굴복하여 교회들마저 세속의 정신을 받아들이고 타협하기 쉬울 것이지만, 우리들은 바벨론이 결국에는 이처럼 한 순간에 완전히 돌이킬 수 없이 처참하고 깊이 몰락하고 말게 될 운명임을 기억합시다. 우리는 장차 임할 새 하늘, 새 땅, 진정한 영원한 빛과 영광의 성 새 예루살렘을 바라보면서, 이 땅에서 이 세상의 정신과 끝까지 맞서 싸워 인내하며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