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의 효도 선물
송 희 제
차남 네는 멀리 일산에 살고 있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연휴에 대전에 오려면 어린 아기와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린다. 차남 네와는 서로 편리한 시간을 상의하여 주중에 끼어있는 부처님 오신 날에 우리가 일산으로 가기로 한 것이다. 차남 결혼 7년 만에 얻은 손자 첫돌 이후 아기 짐을 잔뜩 챙겨 대전본가에 다녀간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약속한 대로 부처님 오신 날에 우리는 아들이 예매하여 보내준 기차 특실에 몸을 실었다. 둘째네 손자가 얼마나 컸을까? 매주 한두 번은 아들 내외가 손자의 성장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내주고 있다. 화면으로만 잠깐씩 봐 왔어도 어서 가서 그 손주를 내 품 안에 포근히 안아보고 싶다. 우리가 운전하며 가려면 보통 일산까지 휴일에는 4시간 정도 걸린다. 자주 있지는 않지만, 서울을 거쳐 일산 가까운 행신역까지는 KTX로 두어 시간도 안 걸린다. 기차에서 내리니 아들이 자가용으로 우릴 태우러 대기하고 있다. 아들은 며칠 전에 육아 휴직을 하고 며느리는 비행기 승무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아들 차를 타고 차남 집에 들어섰다. 둘이 서로가 하지 않던 일과 육아를 하느라 힘듦에도 그들은 행복이 가득한 얼굴로 웃으며 우릴 반긴다. 우선 가자마자 우리 부부는 화장실에서 손을 씻었다. 손주가 조부모를 자주 못 봐서 혹시 낯가림할까 염려했는데 영상에서 자주 봐선지 아직 낯가림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우선 할아버지는 2개월여 만에 보는 손주를 번쩍 안으며.
"와~우리 손주 진서가 많이 컸구나! 두 달 전보다 훨씬 똘똘해지고 영글어 보여."
하는 할아버지의 회색 머리 얼굴이 미소년 같은 맑은 표정으로 행복이 가득해 보인다. 밝고 넓은 거실 한가운데는 직사각형 무지개색의 알록달록한 울타리가 쳐져 있다. 그 안에는 손자가 갖고 놀 수 있는 여러 장난감과 놀이 기구들이 즐비하다. 그중에서도 짧은 미끄럼틀을 요즘 아기에게 선보였나 보다. 아직은 겁이 많고 조심스러워 새로운 장난감이나 놀이 기구에 바로 접근을 안 한단다. 첫돌은 3월에 지났으나 몸이 좀 육중한 편이고 신중하여 첫걸음마도 안 떼어 제 부모는 혼자 하는 걸음마를 고대하고 있다. 아기 아빠도 유아기에 거구로 좀 늦게 첫걸음마를 하여 나도 초조했었다.
손자가 미끄럼틀에 기어오름을 제 엄마가 좀 받쳐주니 기어올라 내려올 땐 망설이고 있다. 제 부모와 우리가 손뼉 치며
"내려와도 돼. 괜찮아 할 수 있어. 손 놓고 그냥 앉으면 쪼르르 내려올 수 있어. 진서야!"
하며 엄만 아기에게 용기를 주니 얼떨결에 손을 놓자 어느새 아기는 미끄러져 내려왔다. 저도 어느새 망설이던 표정이 밝게 웃으며 기뻐한다. 우리 어른 넷은 손뼉을 치며 환호성을 지른다. 나 할머니는 만세를 큰 소리로 외쳐 대니 저도 두 손을 번쩍 든다. 아기가 거실 플라스틱 울타리를 짚고 일어서기는 하고, 또 어른 손을 붙잡고 걸음마는 한다. 그런데 손을 놓으면 저도 겁이 나는지 주저앉는다. 먹는 것도 여러 이유식도, 그제는 어른 솥 밥도 웬만큼 잘 먹었단다. 손자가 무얼 들거나 일어서려 할 때, 우리 어른들이 손뼉을 치며 '괜찮아 잘할 수 있어!'하고 자꾸 용기를 주며 격려하니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 어린 아기인데도 제 부모만 있다 둘다 반백 이상의 은발 노인들이 기뻐하는 모습에 저도 칭찬받고 싶은가 보다. 네 명의 눈동자는 모두 손자에게 쏠려있다. 어느새 놀던 장난감을 들고 버쩍 혼자 일어서더니 제가 스스로 첫 발자국을 뗀다.
"와~ 와와! 진서가 첫걸음마를 혼자 한다. 오늘 우리가 오니 할아버지와 할머니, 엄마 아빠에게 효도 선물을 걸음마로 안겨주네~"
하며 내가 환호성을 큰 소리로 지른다. 네 명 모두 약속한 듯이 손을 번쩍 들고 만세를 부른다. 아기 저도 신기한 듯 손뼉을 치니 함박꽃 같은 미소를 지으며 너무 기뻐 어쩔 줄 몰라 한다. 정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하고 예쁜 손자다.
내가 새색시일 때 두 아들 낳아 키웠던 생각이 난다. 그때는 45년 전이고 시댁에서 편찮으신 시모님 모시고 맞벌이할 때다. 직장 일이고 집안일이 너무 바빠 내 두 아들 육아를 여기저기 동냥하듯 돌봄을 맡기며 키웠다. 저렇게 요목조목 예쁜 짓을 하는 걸 세세히는 못 지켜보았다. 그날그날의 바쁜 일과에 쫓기듯 살았다. 어느 땐 너무 힘들고 지쳐 울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럴 시간이나 마땅한 장소도 없어서 그냥 삼키며 이겨내려 노력만 하며 지내왔다. 자녀들이 다 크면 '어미 아비의 그 노고를 알게 되겠지!' 하는 맘으로 위안하며 살았다.
이제야 알 것 같다. 젊어서의 고생과 여러 경험은 다 삶의 밑거름이 되고 미래에 대한 투자고 삶의 반석이 된다는 것을! 요즘은 결혼도 기피하고 자녀도 낳기를 주저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집도 둘 다 아들들이 부모의 별 도움 없이 장만하였다. 자녀도 두 집 다 얻었으니, 중요한 기본 효도는 한 셈이다. 우리 부모 처지에서는 더 이상 크게 바랄 게 없다.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 했다. 다만 자녀에게 바라는 것은 이제 어린 자녀를 둔 두 아들네가 제 가족을 별 탈 없이 잘 보살피며 건강하고 화목하게 잘사는 것이 남겨진 효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