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내리 사람들」, 글·사진 박도순, 윤진.
<포내리 사람들>은 산골 보건진료소장이 전하는 포내리 어리신들의 가슴 저린 삶의 이야기이다. 포내리는 덕유산에서 내려와 적상산의 품에 안긴 마을이다. 사진작가이자 보건진료소장인 저자는 포내리에서 괴목국민학교를 다녔고 간호사가 되어 돌아와 보건진료소에서 이십 년 넘게 간호현장을 경험했다. 그녀는 포내리 사람들의 애환, 슬픔을 듣고 책에 담았다. 책은 박도순 작가가 직접 포내리에서 살고 계신 어리신들을 사진으로 찍고 사연을 듣고 글로 엮었다.
<포내리 사람들>의 집필과정은 마을 어르신들의 구술을 받아 적는 형태를 취했다. 사진은 그분들의 인물사진과 짬짬이 촬영한 포내리 마을, 손때 묻은 일상용품 또는 장롱 속 깊이 간직해온 소장품들이다. 개인에게는 소중한 사연이 깃든 편지와 혼서지, 지금은 거의 사라져버린 멍석과 길쌈하는 물레, 대나무 소쿠리, 장독대 같은 전(前) 세대의 생활용품들이 정겹게 나와 있다. 저자는 “사진이란 매체가 시간을 고정시켜 언제든지 과거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타임머신임을 실감한다. (p.11)”고 했다.
작가 박도순은 이렇게 말한다. “이 작업은 사라지는 것들을 기록하기 위함이 아니다. 수십 년간 시간으로 봉인된 침묵을 깨기 위함이라면 변명이 될까.”(p.20)라고. 본문에 이름이나 개인정보가 공개되어 원치 않는 피해를 입지 않도록 저자의 판단에 따라 이름을 변경했고 인물 사진도 본문의 내용과 전혀 관련 없이 배치했다. 어르신들이 기억하는 전쟁, 시집살이에 관한 이야기, 자식에 대한 상처도 나온다. 그 중 ‘멀어서 그렇지’, ‘불살라 이은 인연’, ‘울게 해주오’라는 부분이다.
‘멀어서 그렇지’ 중에서 (p.33)
땅도 많고, 돈도 많은 부자인 데다가 키고 크고, 잘 생겼다고 했어요. 중매쟁이가 친정엄마를 꼬신 거지. 그런데 중매쟁이 말이 그렇게 훌륭한 신랑감에게 한 가지 힘이 있는디 하면서 하는 말이, 좀 멀어서 그렇지... 그것이 흠이라는 거여.
‘불살라 이은 인연’(p.40)
뭔 말인지 알아들어요? 내 사주 기를 꺾으려고 어머니가 정상 남자한테 시집보내지 않고 다리가 불편한 총각한테 보냈다 그 말이오. 재혼하는 집으로 가는 것보다는 그래도 총각한테 보내는 것이 낫다고, 그거 한 가지만 보고 허락을 한 거지. 사성 단자가 오고 며칠 후 우리 집에서는 신랑쪽으로 날받이 단자를 보냈습니다. (...)신랑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더라고요. 친정집에 와서 만났던 그 총각이 아닌 거예요. 초례청으로 내려오는 신랑을 보니까 키는 쪼까나고, 얼굴은 못 생겼고, 다리도 절뚝거리고 말이지. 엄한 사람이 신랑 옷을 입고 들어오는 거라. 아이고! 속았구나 생각이 드는데 정신이 번쩍 들더구먼요.
‘울게 해주오’ (p.133)
이만코 저만코 사고가 났응게 어머니랑 내일 서울에 좀 올라오세요 했는가벼. 식전에 동서가 와서는 형님! 서울 올라가보고로 갈 준비하세요 하는 거라. 그래, 전화가 왔는가? 했더니 그대로래요! 야 이 사람아, 그대로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형님이 알고 있는 그대로래요. 나는 그래도 아들이 숨줄은 붙어 있을 줄 알았어. 동서도 나 숨 넘어갈까 봐 우리 아들 죽었다는 소리를 차마 하지 못한 것이지. 그대로라니, 자네 그게 무슨 말인가. 형님이 알고 있는 그대로래요. 계속 그 얘기만 하는겨. 그대로래요, 그대로래요. 여보게 이 사람아, 그러지 말게. 그 소리, 차마 나도 못하것다 싶어 동서도 나한테 말을 안 한 거지. 서울에 다 가더락까지 벙어리같이 입을 다물고 있는겨.
‘배워서 남 주야지’ (p.115)를 들려준 어르신은 옛날에는 지지바들 갈치면 연애질하고, 친정으로 도망 온다고 안 갈쳤다고 한다. 시집가서 일이 힘들어 친정으로 도망가고 싶어도 글을 몰라 버스를 못 탔다. 자신이 못 배운 한을 딸에게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자식들은 가르쳤다. 지금 팔십이 넘었지만 한글을 배우고 계신다. -저녁 내내 머리끄댕이를 붙잡고 흔드는데, 울 엄니가 지독허니 밉더라고요! 그때 글자만 깨우쳤어도 이런 고생은 안 할 텐데 말이오. 사람들이 미쳤다고 안 허것능가? 낼 모레면 여든인디 이제야 공부가 무슨 말라죽을 공부라요(웃음). 열두 살 때였어요. 공부가 너무나 하고 싶어서 아랫동네 야학교(夜學校)에 갔지. 학교 끝나고 마당에 들어성게 엄니가 다짜고짜 머리채를 낚아채서 몽둥이찜질을 시작하드만.(p.115)
지금도 살아계시는 포내리 사람들의 이야기는 현대인들이 읽으면 머나먼 나라의 얘기처럼 읽힌다. 하지만 현재 70대 어르신들은 구구절절 공감 가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한국 땅에서 전쟁을 겪고 가난을 견디며 땅을 억척스럽게 일군 부모님들의 삶이기 때문이다. 기록은 역사를 증언한다. 한 개인을 삶을 듣고 사실대로 옮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자신의 얘기를 마음 놓고 펼칠 수 없었던 시대의 어두움. 그 터널을 박도순 보건진료소장은 어르신의 손을 잡고 함께 뚫었다. 우리는 아픔에 공감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이웃에게는 흠이 될까 말 못하고 자식에겐 창피해 말 못하고 어르신들에겐 어려워 말 못했던 시간들. 그 이야기를 보건소장은 들어줬다. 두 손을 꼭 잡고 아픔을 함께 치료하며 귀 기울였다. 작가와 어르신은 신뢰를 기반으로 절절한 인생이야기를 폭포처럼 거침없이 쏟아놓았다. 책은 저마다의 사연으로 어떤 드라마보다 아프게 저려온다.
특히 <포내리 사람들>은 여성의 삶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시집갈 때 얼굴을 보지 못하고 가는 경우도 있고 혼례가 오고 갈때는 남편이 아닌 시동생이 대신 와 정작 결혼당일날 신랑이 다른 사람임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또, 신랑이 눈이 안 보이는 걸 숨기고 멀었다라는 말로 얼버무려 결혼하고 나서 밝혀지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 여성은 참고 견디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것이 숙명인가. 당시 여성들은 학교에 보내지 않고 글을 가르치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저 시댁어르신을 모시며 밭일, 농상일, 삼시세끼에 새참까지 차려야했다. 부당해도 어디에 하소연하거나 친정에 쫓아가지도 못했으니... 그 눈물바람을 어떻게 견디었을까. 책은 구구절절 어르신들의 한숨과 체념, 한탄이 녹아있다. 글씨를 배우지 못해 버스를 타지 못하거나 어릴 적 못 배운 한이 남아 팔십이 다 되었는데 한글학교에 나가 한자 한자 한글을 습득한다. 글을 모른다는 압박감은 평생 명치끝을 짓눌렀으리라.
‘닭 울고 꽃 피며’(p.62)의 일부 발췌다.
어머니 가신 지가 어제께 가튼데 어느덧 일 년이 지나갔군요
한 번 가며는 못 오시는 영원한 길을 어찌하여 서둘러 가시었나요
병풍 속에 닭이 울며는 오시려나 고목에 꽃이 피며는 오시려나
한 번 가며는 못 오시는 영원한 길을 어찌하여 서둘러 가시었나요
어머니 가신 지가 어제께 가튼데 어느덧 일 년이 지나갔군요
한 번 가며는 못 오시는 영원한 길을 어찌하여 서둘러 가시었나요
모래알이 싹트며는 오시려나 고양이 수염이 나오며는 오시려나
한 번 가며는 못 오시는 영원한 길을 어찌하여 서둘러 가시었나요
뒤에는 어르신들의 인물사진이 들어 있다. 표정은 모두 환하다. 가장 행복한 얼굴로 웃음을 가득 머금고 있다. 살아온 횟수만큼 주름이 하나하나 지어져 있고 젊음은 순식간에 지나갔어도 얼굴은 어느 누구보다 아름답게 찍혀있다. 작가 박도순은 그 분들의 삶의 무게를 사진과 글로 남겨주었다. 모든 것을 털고 돌아가는 어르신들의 발걸음은 가벼웠으리라. 삶의 녹녹함을 독자가 함께 들어준다면 말이다.
<서평 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