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쫓는 풍경
임병식 rbs1144@hanmail.net
잊혀져가는 풍경을 보면 그리움이 인다. 옛추억을 떠오르게 하며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소환해 주기 때문이다. 어느날 등산을 하고서 다른 길로 내려오다가 뜻밖에 광경을 보게 되었다. 새를 쫓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소리가 들리기에 귀를 새워 서 들어보니 어느 집 마당에서 한 노파가 소리를 치고 있었다. 구부정한 허리로 빨래줄 같은 줄을 당기면서 외치고 있었다.
"후여 후여"
외치면서 줄을 당기자 장대에 매달린 줄이 일제히 움직이며 그곳에 매달린 양은그릇들이 서로 부딪쳤다. 처음에는 그 소리를 듣고서 누가 어디서 푸닥거리를 하나 생각했다. 한데 연이어 “후여 후여” 하는 소리를 듣고서 감을 잡았다.
노파가 다급하게 외치자 밭고랑에서 십여 수의 물까치들이 화들짝 놀라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아마도 새들이 밭두렁에 뿌려놓은 씨앗을 공략하니 위기를 느낀 나머지 그렇게 황급히 내쫒는 것 같았다. 그 서슬에 물까치들은 그야말로 혼비백산하여 순식간에 흩어졌다.
그 광경을 우연히 지켜보던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히야’하고 감탄사를 흘렸다. 문득, 옛날 새보기를 하던 추억이 되살아나 나면서 추억의 장면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것은 실로 얼마 만에 들어보는 그리운 소리인가. 자연스레 금방 추억에 젖어들었다. .
하나, 그 풍경은 예전에 보던 것과는 사뭇 다른 광경이었다. 연계선을 친 줄은 옛날처럼 하던대로의 같은 방식이나, 매달린 것들은 전혀 달랐다. 깡통 대신에 양은그릇이 줄에 매달려 있었다. 고물은 생기는 죽죽 버리다보니 아직은 쓸만한 그릇들을 달아놓은 것 같았다. 내쫒은 대상도 달랐다. 예전에는 주로 참새가 주 퇴치 대상이었으나 이곳에서는 물까치를 내쫓고 있었다. 시대가 바뀐 만큼 또 다른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옛날에는 참새가 얼마나 극성을 부렸던가. 때로 몰려와서 농작물을 먹어치웠다. 그런 어간에 가끔은 그 사촌격인 떼까치들이 높은 나뭇가지에 앉아서 시도 때도 없이 ‘떼떼떼떼’하고 시끄럽게 귀청을 찢기도 했다. 그렇지만 물까치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뜻밖에 여기서 마주하는 것은 생김새도 생소한 물까치라니.
어릴적 고향에서 새를 쫓던 광경이다. 무더위의 끝자락이 보일 무렵 동이 밴 벼가 꽃을 피우고 수정을 마쳐 뜨물이 들어갈 무렵이면, 농가에서는 서둘러 새막을 지었다. 그리고서 거기에 앉아 새를 쫓았다.
그런 새를 쫓을 때는 준비를 단단히 했다. 가까이는 팡개를 놔두고, 도르라진 논둑에 뙈기를 사려놓고 대기를 했다. 그러다가 군무를 지은 참새 떼가 휘휘 공중을 돌며 갑자기 방향을 잡아 기습해 오면 먼저 소충에 해당하는 팡개에다 무른 흙을 장전하여 공격을 가했다.
그래도 끄떡을 않거나 효과가 없으면 이번에는 뙈기가 동원되었다. 그것으로 앞산을 배경삼아 상모를 돌리듯 뙈기를 치면 제아무리 강심장인 녀석도 견디지를 못하고 도망을 쳤다. ‘따꿍’하는 소리에 혼비백산을 했다. 큰소리를 내는 건 꼬리에 붙인 끄나풀에 있었다. 그것을 무엇으로 쓰느냐에 따라 강도가 달랐는데 예컨대 삼을 이어붙이면 가냘픈 소리가 나고, 닥나무껍질은 붙임ㅕㄴ 보다 크고 둔탁한 소리를 냈다.
이렇게 혼을 빼놓은 다음 무리를 향해 ‘후여 후여’를 외치면 한식경은 안심을 해도 되었다. 왜 그때는 뱀들이 그리도 많았을까. 논둑길을 걷노라면 똬리를 틀거나 논둑에 놈을 걸친 무자치들이 발걸음소리에 느릿느릿 움직였다.
어차지 억하심정이 없어 맞아죽을 일은 없다는 걸 아는 녀석은 잠시 자리를 피하긴 하면서도 멀리 달아나지도 않았다. 새를 보는 일의 평가는 며칠 후에 나타났다. 한눈을 팔다가 먹히기라도 하는 날은 예외 없이 고개를 쳐든 백수의 벼이삭이 원망하듯 드러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새보는 일은 오직 자기 논 지키기지 먹지 못하게 하는 도리는 없었다. 그들도 먹어야 살기에 어느 논인가를 공략을 하고 해거름이면 돌아가기 때문이다. 새보기는 그렇게 해가 서산에 넘어가고 새들이 잠을 잘 곳을 찾아 숲으로 들어가면 일과를 마감했다.
그런데 오늘 본 광경은 새를 쫓는 일이긴 해도 그런 참새 떼를 내몰던 일과는 많이 달랐다. 깡통을 흔들어대며 ‘후여 후여’하고 내쫓는 것으로 금방 끝이 나고 있었다. 물까치도 그리 끈질기지를 못해 금방 포기하고 달아났던 것이다.
노파는 어떤 생각을 하고 그러한 새 쫓기 방법을 택한 것일까. 나는 그 행동을 보면서 이것은 다분히 ‘전에 해보았던 것’을 응용한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응용이란 전에 보고 행한 것에서 따오는 것이 보통 사람의 일반적인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나는 오늘 또다른 새보기 기구를 통하여 오래 전에 잊고 지냈던 추억을 모처럼 반추를 해본 날이었다. (2018)
첫댓글 요즘에 보기 어려운 정경을 감상하셨군요 선생님의 옛 추억을 깨워주는 노파의 물까치 쫓기가
성공하여 무사히 싹이 났겠어요
전에는 특히 뒷그루로 택사를 심기 위해 올벼를 심은 논이 참새떼의 모꼬지가 되곤 했지요 녀석들은 나락모가지에 물알만 들어도 그걸 빨아대니 피해가 컸어요 나중에는 새그물이 나와
마침내 새보기도 사양길로 접어들었어요 새보기의 추억 그 속에 등장하는 태 (뙈기) 치기가 참 그리워지네요 벌써 반세기가 지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밭에다 대나무를 꽂고 캉통을 매달아 흔들어 대고 있더군요
후여후여하는 소리가 여간 정겹지 않더군요
오랫만에 추억에 젖어보았습니다
참! 그렇게도 많던 참새와 제비가 사라진 것을 보고 옛날이 그리워집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휴일이면 새막에 가는 날은 부침개나 옥수수 삶은 것을 가지고
콧노래 부르며 가던 때가 사뭇 그리워집니다.
요즘에 그 귀한 장면을 보셨으니 옛일이 새로워지셨겠습니다.
이제 돌아보니 지난 추억 속에 많이 살았다고 생각이 듭니다.
참으로 요즘 보기어려운 것을 구경했습니다.
밭에다 연결해 놓은 줄을 흔들어 대는데 깡통부딛치는 소리가 여간 새롭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문득 어릴적 새보던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후여~후여~ 참새를 쫓는 풍경이 그려지네요. 참새와 제비가 도심 뿐만 아니라 농촌에서도 자취를 감췄다니 아쉽네요.. 다 어디로 갔을까요..
숫자가 그만큼 줄었거나 다른 서식지를 찾아 가버린 것이 아닌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