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초대한 이에게도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루가 14, 12~14).
아득한 옛날입니다. 기억이 가물거립니다. 2000년 11월인가 수도원에서 서울대교구 교정사목에 파견되어서 구의동 출소자의 집에 있을 때 25년이나 살았던 수도원 생활을 접고 세상 속으로 환속을 했습니다.
비승비속. 중도 아니고 속인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그냥 꾹 참고 살았습니다. 어떻게 살아야할지 오리무중이었습니다. 어떻든 교회로부터 환속장을 받기 전까지는 가만히 숨죽여 기다려야 했습니다.
2001년 4월초에 안드레아 형제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안드레아 형제는 청송 2감호소에 살 때 만났습니다. 2000년 8월에 감호소에서 가석방으로 나왔는데 갈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출소자의 집인 구의동 평화의 집에서 함께 지냈습니다. 제가 환속한 후에도 계속 평화의 집에서 살다가 결국 나온 것입니다.
교도소 봉사자 자매들의 도움으로 송현동 성당 옆 허름한 집을 보증금 오백만원에 월세 15만원에 얻었습니다. 가전제품들은 중고로 싸게 샀습니다. 이불과 전기밥솥 냄비 몇 개도 샀습니다. 그렇게 출소자들을 위한 겨자씨의 집을 시작했습니다.
출소한 형제들과 겨자씨의 집에 지내면서 밥 해 주면서 지냈습니다. 할 일이 생겼습니다. 청송에 있는 재소자 형제들을 위한 일도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겨자씨의 집에서 출소자 형제들과 지내면서 4월 20일에는 안드레아 형제와 함께 청송교도소와 감호소를 다녀왔습니다. 청송교도소가 있는 진보에 도착해서 맘모스 제과점에서 빵을 샀습니다. 고맙게도 주인아주머니께서 교도소까지 승용차로 데려다 주셨습니다. 과일가게 아주머니도 좋은 과일을 싸게 주시면서 커피도 자판기에서 뽑아 줍니다. 청송교도소에서 79년생 겨우 스물셋인 요한 형제를 면회했습니다. 지난 해 서울구치소에서 출소한 날 함께 불고기를 먹다가 사라진 형제입니다. 한 달 만에 노랗게 물들인 머리를 하고 서울 구치소에 다시 들어왔습니다. 얼마 전에 청송교도소로 이감을 왔습니다. 2002년 5월이면 출소를 한다고 합니다. 영치금이 얼마쯤 인가 알아보니 단돈 220원이 남아 있습니다. 만원을 넣어주면서 아껴 쓰라고 했습니다. 속옷이 없다고 좀 보내달라고 합니다. 곧이어 청송교도소 바로 옆에 있는 1감호소에 갔습니다. 몇 달을 찾아보지 못했던 영등포 코털 아저씨를 면회했습니다. 예순이 다 된 나이인데 영등포 역 근처에서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온 분입니다. 영등포 구치소에 있을 때 영세를 했습니다. 영치금이 단돈 15원이 남아있습니다. 앞으로 4-5년은 더 청송에서 살아야 합니다. 영치금을 조금 넣어주었습니다. 2감호소에서 자매상담을 했습니다. 열 명의 형제들과 모임을 가지고 오후 세 시에 감호소를 나왔습니다. 형제들 영치금을 조금씩 넣어드리고 서둘러 안동으로 가서 다섯 시 청량리행 기차를 타고 멋진 소백산 경치 구경을 하면서 인천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환속한 후 출소자들과 재소자들 돕는 일을 하면서 지냈습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쏜살처럼 흘렀습니다. 십칠년이 흘렀습니다. 청송교도소는 매달 두 번씩 다니다가 몇년 전 부터 허리가 아프면서는 한 번으로 줄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매년 베로니카 여름휴가에는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재소자 형제들을 만나러 다녔습니다.
그제는(2017년 11월 3일) 베로니카와 모니카와 함께 청송을 다녀왔습니다. 나이가 육십을 넘기면서부터 딸 모니카의 도움을 받아서 운전을 나눠서 합니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서 청송으로 출발할 준비를 해서 여섯 시에는 출발을 합니다. 덕평휴게소에서 간단하게 아침 요기를 하고 청송 진보에 도착하면 오전 11시쯤 됩니다. 경북3교도소 민원실에 가서 면회를 합니다. 면회가 끝나면 곧바로 진보 시장으로 나와서 점심을 먹고 자매상담에 나눠 먹을 음식을 준비합니다. 오후 12시 30분에 경북1교도소 천주교 자매상담을 교도소 안에서 합니다. 음식도 나누고 기도도 하고 성경공부도 합니다. 그제는 “만약에 나에게 일억원이 생긴다면 어떻게 쓸 것인가?” 나눔도 했습니다. 모임을 마친 후에 민원실에 가서 모임에 나온 재소자 형제들 영치금과 간식거리를 넣어주었습니다.
35살 고아인 청년이 3년 전에 42년형을 언도 받고 겨우 3년째 이곳 청송에서 징역을 살고 있습니다. 세상 누구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서 영치금이 한 푼도 없답니다. 매달 조금씩 넣어 주기로 했습니다.
인천에 도착하니 밤 아홉 시입니다.
온몸이 노곤하지만 기분은 편안합니다.
사랑은 수고를 모르는 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