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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문인총연합회[대전문총 / 명작감상] :
『올바른 역사를 사랑하는 모임 / 창작 글』과 공유하는 글입니다. <대전문인총연합회>와 <대전수필문학회>카페에도 소개했습니다. 대전지역 문인들께서도 따뜻한 관심을 가지고 살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필자주]
『시(詩)가 성하면 나라도 역시 성하고, 시가 쇠하면 나라도 역시 쇠하며, 시가 존속하면 나라도 역시 존속하며, 시가 망하면 나라도 역시 망한다 - 단재 신채호』
※대전지역 문인들의 따뜻한 관심(대전수필문학회 카페 댓글 옮김, 4.18현재)
■ 이득주 수필작가 20.04.17 10:54
윤 선생님과 대전에 계신 역사학자들이 단재 선생님의 업적을 시민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한 사업을 구상하고 계시네요. 모쪼록 잘 추진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답]윤승원
최근에 존경하는 원로 문인들로부터 술자리 초대에 이어 이틀 만에 역사학자들과의 의미 있는 만남이 뜻하지 않게 이어졌습니다. 영광스러운 일이긴 하나 부담감도 없지 않았습니다. 만남 후 대략적인 後記로 값진 자리 초대에 대한 예를 갖추고자 하나 필력이 부족하네요. 졸고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海軒/ 이태호 작가 20.04.18 13:13
단재 신채호 선생의 생가지에 들렸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당시 ‘단재정사’ 현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저는 그분의 호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서서 세수를 하셨다는 내용입니다. 일본에게 굽히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하셨지요.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남들은 문인을 가리켜 지식인이라고 합니다. 만약 저도 그 범주에 들었다면 ‘행동하는 지성’이라는 말에는 절로 고개를 떨어트립니다. 요즘에는 이황의 ‘성학십도’에 심취해 있습니다. 글과 뜻을 새기면서 작금의 정세와 비교도 해보았습니다. 코로나 시국이 잠잠해지면 단재 선생님을 뵈어야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윤승원 작가님!
[답] 윤승원
丹齋라는 호가 申采浩라는 이름보다 유명하지요. 역사가 김상기 교수의 ‘행동하는 지성, 한국의 독립운동가’ 저서에 의하면 처음에 그는 정몽주의 ‘일편단심가’를 흠모하여 ‘일편단생’이라고 하였다가 ‘단재’라고 썼답니다. 충청도 회덕현 산내면 어남리 도리미에서 태어났으니 <대전 출신 독립운동가>입니다. 그는 9살에 통감을 뗐고 13살 때 4서를 독파했다니 천재 소년이었습니다. 그는 시를 듣기만 해도 작자를 기억해낼 정도로 당나라 시 수천 수를 외우고 있었다는 기록이 전해집니다. 이태호 작가님 따뜻한 관심 감사합니다. 대전에 오시면 서대전시민공원에 세워진 단재 동상 꼭 뵙고 가세요.
■ 김지안 수필작가 20.04.18 20:16
역사학자들과 문학가의 특별한 만남. 중계하시듯 올려주셔서 귀한 자리를 살짝 들여다봅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동상 앞에 예를 갖추시는 노신사의 모습이 얼마나 멋지신지요. 코로나 시국에 중국과 일본, 가까운 두 나라만 보아도 이 이웃들과 부대껴온 우리의 역사를 절로 생각하게 됩니다. 좋은 글 올려주셔서 잘 읽었습니다.
[답] 윤승원
김지안 선생님의 시선은 역시 차원이 다릅니다. 단재 선생 동상 앞에서 합장 묵념하는 원로 역사학자 정구복 박사의 정중한 모습을 예사로 지나치지 않습니다. 백 마디 말이나 글보다 한 장의 사진 속에 함의(含意)가 더 깊습니다. 긴 글 성의 있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사학자들과 문학인의 소중한 만남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금강일보 논설위원, 대전수필문학회장 역임,
『문학관에서 만난 나의 수필』저자
“역사가의 글은 문학인들이 쓰는 글과는 다르지요. 역사가의 글에는 미사여구나 수식어가 없어요. 접속사도 잘 안 쓰고요. 사실을 기반으로 한 고증이고, 역사적 인물의 행적을 추적해 놓은 기록이기 때문에 문학 서적과 달리 문장이 다소 건조한 느낌이 들 거예요.”
처음 만난 역사학자 김상기 교수(金祥起, 충남대학교 명예교수, 한국근현대사학회장, 매헌기념관 매헌연구원장)가 내게 귀한 저서를 건네면서 겸손하게 한 말이다.
▲ 역사학자 김상기 교수가 필자에게 친필 서명하여 증정한 저서
▲ 김상기 교수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김상기 교수가 친필 서명해 준『행동하는 지성, 한국의 독립운동가』(증보판) 저서는 군더더기 없는 정교한 문장 때문인지, 역사 지식이 일천한 필자의 눈에도 이해하기 쉽게 쏙쏙 들어왔다.
그동안 몰랐던 흥미로운 사실도 많았다. ‘어려서부터 무인 자질을 보여 12세 때 죽궁을 쏘아 소뿔을 맞히면 백발백중이었다.’(36쪽)는 문석봉의 의병봉기 장소가 바로 우리 지역 대전 ‘유성장터’였다는 대목 등이 그렇다. 문석봉이 ‘최초의 을미의병장’이었다는 사실 역시 대전에 사는 사람으로서 그동안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독립운동사의 주인공 일대기를 흔히 전설 속 영웅담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은 고난의 민족이 겪어온 ‘슬픔 덩어리’를 곱씹어 보게 되는 게 독립운동사의 주인공들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호기심을 갖게 하는 요소가 있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 귀에 익고 눈에 익어 그렇고 그런 진부한 독립운동사가 아니었다. 이 책 저자의 저술 의도는 ‘행동하는 지성’이라는 책 표지 소제목에서 읽을 수 있었다. 독립 운동가들의 남달리 곧은 심지(心志)와 투지(鬪志)가 ‘지성(知性)’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교양 학술서적의 품격과 무게감을 더 해주는 것이다.
개인적인 취향이긴 하지만 그동안 인문학 서적 중 흥미롭게 읽었던 조용헌의『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를 읽을 때도 그랬다. 역사적 인물의 교훈적인 일대기나 사상을 기록으로 보여주거나 재해석한 책들이 대체로 무미건조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독자들은 가지고 있으나 ‘명문가’이야기나 ‘지성’을 바탕으로 한 역사서적은 목차만 넘겨도 끝까지 내용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는 마력과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행동하는 지성’이란 무서운 말이다. 쉽게 아무에게나 갖다 붙일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오늘날 지식인들이 입으로는 온갖 근사한 말을 하지만 막상 국가나 사회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한 개인의 입장이 아니라 대의(大義)를 위한 ‘구국의 행동대원’이 될 수 있는가 자문하게 만드는 분들이 바로 이 책 속 ‘행동하는 지성’의 주인공들이다.
많고 많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중에서 ‘행동하는 지성’을 어떤 기준으로 가려 뽑았는지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의도를 자연 헤아려 보게 된다.
대전에서 유명한 토속 음식점을 사전에 예약하고, <만남>의 성격과 취지를 자상하게 설명해 준 분은 역사학자인 낙암 정구복 교수(鄭求福, 전 충남대학교 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한국학대학원장 역임,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였다.
▲ 정구복 교수
정구복 교수는 이 만남의 자리가 단순히 친분 있는 역사가 몇 명이 모여 오랜만에 안부를 묻고 식사하는 자리가 아니라고 했다.
‘역사가와 문학가의 만남’이라는 특별한 의미부여를 해 줌으로써 ‘수필문학인’이라는 보이지 않은 명찰을 달고 있는 필자에게 이방인처럼 느끼지 않게 해주었다. 문학인에 대한 원로 역사학자의 따뜻한 배려와 정중한 대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만나 뵐 때마다 그런 따뜻한 정과 인품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날 모임에서 역사 전공 학자들의 말씀 주제는 단재 신채호(丹齋 申采浩) 선생에 대한 ‘의미 있는 선양사업’에 대한 논의였지만, 필자는 이 자리에 함께 한 네 분의 저명 역사가들의 학자적 식견을 들으면서 조금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다. 마치 어느 방송국에서 특별 기획으로 마련한 정담(鼎談)의 자리처럼 흥미롭게 느껴지면서도 어디선가 카메라가 작동하는 부담감도 없지 않았다.
술안주가 그득한 식탁에서 역사가들은 약속이나 한 듯 약주를 거의 한 잔도 하지 않았다. 애주가로 알려진 팔순의 노학자 정구복 교수와 필자만이 가장 도수가 낮은 청하(淸河) 한 병 가지고 나눠 마셨다.
둘이서 청하 한 병을 나눠 마시면서 필자는 바로 며칠 전에 대전지역 원로 문인들과 <취기어린 소주 파티의 대조적인 풍경>이 떠올라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그날 원로 문인들과의 술자리에서 나눈 ‘술병의 개수’와는 오늘 이 자리 술병은 너무 큰 차이를 보였던 것이다. ‘술병의 개수’란 취기 수치(醉氣 數値)와 같은 말이다.
역사가들은 술은 마시지 않았지만 호주가(好酒家) 문인들처럼 소탈하면서도 정감이 깃든 말씀을 주로 나누었다.
이해준 교수(李海濬, 공주대학교 명예교수,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장, 한국역사민속학회 편집위원회 편집위원, 공주대학교 문화유산대학원장)는 필자가 정구복 교수와 동향인 청양(靑陽) 출신임을 알고 청양지역의 지리적, 역사적 특징 한 가지를 들려주었다.
▲ 이해준 교수
“지금은 청양읍이 군청 소재지이지만 옛날에는 정산면(定山面)이 더 큰 지리적 여건을 갖추고 있었어요. 험준한 칠갑산 고개 때문에 청양 보다는 정산면이 사람들 왕래와 물질적인 교역 더 활발한 고장이었지요. 칠갑산 고개가 얼마나 대단하면 ‘대치(大峙)’라는 말(현재는 大峙터널)이 생겼겠어요.”
필자도 공감했다. “저의 고향인 청양 장평면에서 청양군청을 가려면 험준한 까치내(鵲川) 고개를 넘어야 했기 때문에 나이 스무 살 먹을 때까지 청양엘 한 번도 가보지 못하다가 징병검사 받으러 갈 때 딱 한 번 청양군청 마당에 발을 디뎠지요.”
충청지역 역사학자들이라서 그런가. 내 고향 청양 산골 지형까지 속속들이 꿰고 있었다. 역사가들과 이러저런 말씀을 나누는 가운데, 필자가 ‘오늘의 만남 주제’ 와 관련된 단재 신채호 선생에 대한 언급을 했다.
“최근에 대전지역 유명 시낭송가(이현옥 시인, 방송작가)로부터 의미 있는 포스터를 한 장 구했어요. 지난 해 대전에서 열린 <단재 신채호 선생 탄신 139주년 기념 창작공연> 포스터입니다. 단재 선생이 가슴 울리는 시(詩)도 남겼더군요. 단재는 역사가이면서 언론인이자 문인이기도 했어요. 단재 선생의 짧은 시인데, 창작공연 포스터에 새겨 넣으니 그 의미가 더욱 각별하게 느껴졌습니다.”
역사가들이 관심 있게 지켜보는 가운데, 필자가 스마트폰에 저장된 포스터 속 <단재 시>를 낭송했다.
『시(詩)가 성하면 나라도 역시 성하고, 시가 쇠하면 나라도 역시 쇠하며, 시가 존속하면 나라도 역시 존속하며, 시가 망하면 나라도 역시 망한다 - 단재 신채호 -』
▲ 단재 신채호 창작공연 포스터
이어서 정구복 교수가 “대전에 사시는 역사학자와 문학인 네 분이 대전의 인문학을 고양시키고 단재 선생 정신을 시민의 문화로 격상시킴에 협력하는 기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라고 합심을 위한 독려 말씀을 주셨다.
이에 필자가 최근에 단재 동상 <탐방 수필>을 통해 밝힌 제언을 거론했다. 지난 1월 정 교수와 단재 동상 앞에서 나눴던 대화 중 아쉬움을 표했던 대목이기도 하다.
“시민들이 접근하기 쉬운 서대전시민공원에 단재 동상을 건립했으면 단재 일대기에 대해 잘 모르는 시민들을 위해 그 옆에 작은 규모라도 단재 선생의 애국심이나 일대기를 조명할 수 있는 자료관이라도 마련했으면 좋겠다는 정 교수님의 말씀을 실행에 옮기는 사업이 필요할 것입니다. 또 하나는 동상 뒷면에 새긴 동판 글씨 문젭니다. 동상 뒤 면에 새긴 <건립기>에서 글자 색깔이 바탕의 동판 색깔과 같은 황금색이어서 무슨 글자인지 잘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글자색은 바탕색과 달리 검은색으로 하든지, 동상 옆에 산뜻하게 스테인리스로 제작한 설명문을 설치하든지 개선했으면 좋겠습니다.”
▲ 단재 신채호 선생 동상 앞에서 - 낙암 정구복 교수
▲ 단재 동상 건립기(서대전시민공원)
그러자 남달리 온화한 인상을 주는 성봉현 박사(문화재연구소장)가 웃으면서 답했다.
▲ 성봉현 박사
“윤 선생님이 걱정하신 그 부분은 제가 관계 기관에 적극적으로 건의하여 개선토록 할 터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필자는 비록 사석이긴 하지만 역사학자의 긍정적인 즉석 답변에 고마움을 느꼈다.
역사학자들과의 뜻 깊은 만남에서 나눴던 이야기를 상세히 옮기기엔 글이 너무 길어져 이만 생략한다. 끝으로 낙암 정구복 교수가 상경하여 인터넷 카페 <올바른 역사를 사랑하는 모임[올사모]>에 올린 겸허한 인사 말씀을 소개한다.
『어제 만난 자리는 <문학가와 역사가의 만남>이었는데 처음 만난 자리여서 분위기가 조금 서먹서먹했던 것 같습니다. 윤 선생이 일찍 나오셔서 준비를 해주신 점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문학인이 볼 때는)역사가들은 자기 전공의 울타리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하셨을 것입니다. 역사가가 과거의 역사에 얽매이고 현재의 역사와 미래의 역사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 이는 두더지가 파는 땅굴과 같겠지요. 감사합니다. 서로 안면을 익혔으니, 네 분이 대전의 발전을 위해서 협력해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2020.4.14. 정구복』
추가댓글
[낙암 정구복]
4월 13일 어렵게 만난 그날의 모임 내용을 소상히 그려주신 윤선생의 부지런함과 성실함에 고마움을 표합니다. 이해준 교수는 그날 시민들에게 학문적인 학술대회를 통해서 시민의식을 높일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단재와 대전의 문제를 밝힘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김상기 교수가 단재는 충북의 인물로 선양하고 있다는 말에 저는 당시 충청도였지 남북이 갈리지 않았던 상황이어서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니고 전 국민이 그의 역사정신을 받들 수 있기 때문에 생가가 있는 대전에서 숭앙함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언급했습니다. 어린이들에게도 그의 동상이 왜 이곳에 세워졌는가에 대한 설명을 덧붙일 필요가 있습니다.
[윤승원]
정 박사님이 지적해 주신 단재 선양에 대한 여러 학자님들의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제가 이 글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깊이 있게 다루기엔 역사적 배경 지식이 미흡합니다. 훌륭한 식견을 가진 역사학자들이 전문적인 식견을 바탕으로 언론에 홍보도 하고, 관계 기관에 협조도 구해서 역사정신을 한 차원 승화시키고 고양할 수 있도록 힘써 주셨으면 합니다. 존경하는 정 박사님의 따뜻한 격려 말씀 감사합니다.
■ <역사가와 문학인의 만남>을 주선한 배경과 취지 설명(낙암 정구복 박사)
[낙암 정구복]
네 차례나 연기했던 모임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두 분이 참석하지 못했지만 만나게 된 것입니다. 제가 가장 강조한 것은 역사가의 연구업적은 고전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역사가의 연구는 시간이 지나면 후배들의 학설로 무너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역사가의 정신마저 없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역사가의 정신이 계승되지 않는다는 것은 역사학의 존립과도 관련이 됩니다. 역사학의 종말을 예고한 예가 있듯이 현재 우리나라의 학계도 그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지방 대학에서 많은 역사학과가 없어지고 있는 것이 그 단적인 증거입니다.
그래서 단재의 동상이 세워진 시민공원이 대한민국의 역사가들의 정신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대전은 역사적으로 갈린 영남과 호남을 연결 화합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심장부로서 이를 통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전에 있는 역사가들이 힘을 합쳐 이런 일을 해달라는 것이 저의 뜻이었습니다.
역사가만의 힘만이 아니라 문학가와 역사가가 대한민국의 대전을 정신적으로 승화 발전시킴에 함께 협력해달라는 당부도 했습니다.
대전의 문인들은 한국문학시대라는 책을 통해 한국문학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앞으로 필요하다면 문학가들과 역사가의 확대된 모임을 주선할 용의도 있습니다.
역사정신은 반드시 역사가만이 아니라 문학가, 예술가 그리고 역사의 창조자인 자랑스런 시민들의 정신도 포함됩니다. 앞으로 이런 창조적인 시민의 발굴과 그들의 정신도 길이 내세워져야 한다는 기대와 바람을 가집니다.
이에 대전지역의 사람들이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확장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좋은 의견을 나누어 이런 운동이 문중중심, 정치가 중심의 현상에 휘말리려 잘못되지 않고 공정하고 객관적이며, 시민과 공유할 수 있는 운동으로 발전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장천 선생에게 큰 기대를 합니다. 감사합니다.
[장천 윤승원]
만남을 적극적으로 주선하신 정 박사님의 뜻을 다시금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자상하게 들려 주셨습니다. 정 박사님의 훌륭한 뜻이 발전적으로 펼쳐지기를 저도 소망합니다.
하지만 저의 기본적인 능력이나 소극적인 글쓰기 정도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역사 지식 또한 일천한데다가 필력도 모자랍니다. 이번 ‘역사가들과의 만남’을 간략히 스케치한 저의 졸고 에세이와, 정 박사님의 뜻이 담긴 말씀과 본 카페 댓글을 정리하여 대전문인총연합회(대전문총) 카페에 소개하고자 합니다.
방송작가이자 본회 부회장인 이현옥 시인은 지난 해『단재 신채호 선생 탄생 기념 창작 공연』에 주도적 역할을 했고, 올해 또 단재 창작공연을 기획하고 있다고 합니다.
시, 시조, 수필, 아동문학, 소설, 평론 등 문학의 각 장르에서 명성을 떨치고 계신 대전지역 훌륭한 문인들에게도 참고가 되도록 본 글을 <대전문인총연합회>카페와 <대전수필문학회>카페에도 소개하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2020.4.16~18. 윤승원 記
첫댓글 댓글로 올린 내용을 이처럼 정리하여 본문에 올려주신 점을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윤선생님과의 만남은 대단한 의미를 가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문인들의 모임과 협력한다면 그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으로 믿습니다. 그날 참석했던 분들에게도 이 글을 알렸습니다. 그러나 본 카페의 속성상 그냥 가입하면 준회원이 되고 준회원은 댓글을 올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장천선생의 진지한 노력에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금년에 이현옥 씨의 단재선생 탄생기념 창작공연에 참가하고 싶습니다. 그 일정을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한국문학시대에 올리시는 영광을 얻게 되어 대단히 기쁩니다.
긴 분량의 글이라 누가 읽어 줄까 걱정했는데 관심있는 분들은 눈여겨 봐주시는군요. 사진을 넣으니 대충 살펴 보아도 내용 파악이 되는 것같습니다. 이 글은 대전문인총연합회 카페에 올렸고, 계간 '한국문학시대' 지면에는 지난 3월 발간된 봄호에 정박님과의 첫만남 일부를 소개했기에 이번 만남의 구체적인 내용은 생략합니다. 단재 탄생 기념 창작 공연은 일정이 정해지면 정박사님께 보고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