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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군 여행] 피정의 집 우곡성지...........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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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군 여행] 피정의 집 우곡성지...........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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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의 진산, 문수산. 신라시대 지혜로운 문수보살이 이 산에 화현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웅크린 독수리
형상이라는 문수산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천년 고찰 축서사와, 봄이면 산수유 꽃으로 뒤덮이는 띠띠미마을
과, 귀한 아름드리 춘양목의 숲과, 이름 높은 약수를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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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산의 남쪽 사면에 우곡리가 있다. 문수 골이라 부르는 긴 골짜기의 깊은 곳에는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시대
를 살았던 사람들이 잠들어 있다. 이름하야 우곡성지다. 다덕약수탕에서 나와 36번 국도를 타고 닭실마을 방향
으로 길을 잡으면 우곡성지 가는 길이다. 우곡성지 가는 길은 싱그럽고도 향기로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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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산 남쪽 깊은 골짜기 가톨릭 성지 조선 실학자로 한국 천주교 창립 전부터 28년 간 ‘칠극(七極)’의 길을 따르며 수계생활을
실천한 천주교 첫 수덕자(修德者) 홍유한의 묘 일대를 성지로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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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넓은 계류를 중심으로 피정의 집, 청소년 수련원, 칠극성당, 칠극의 길 등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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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성면 우곡리 시(경상도 방언.삼)거리 마을은 우르실 북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어귀에 세 갈래 길이 있고 또,마
을 앞에 급경사로 된 좁은 내(川)가 세 갈래로 흐른다고 하여 삼거리, 세거리, 경상도 발음으로 시거리라 부른다.
유랑자는 이 삼거리에서 우회전 하여 우곡성지길로 접어들었다. 예전에는 중대골 앞 느티나무모테를 아랫시거
리, 그 위의 마을을 웃시거리라 했다고 하나 지금은 그저 시거리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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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우곡1리에 접어들면 시거리천의 맑음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을 이름은 우르실, 밤이면 산짐승들이 우글거
린다 하여 생긴 이름이다. 지금은 가재마을로 통한다. 1급수에만 산다는 가재가 시거리천에 우글우글 하단다.
하여 여름 청사과인 새콤달콤하고 아삭한 아오리가 익을 즈음 가재마을에선 가재 축제도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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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유한은 '수덕자'라 불린다. 그는 정식으로 천주교 세례를 받거나 교적에 오른 적도 없다. 천주교에 관련된 책을 읽고 창조주의
존재를 믿으며 그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기로 마음을 정한 뒤, 그는 혼자만의 방법으로 자신의 생을 천주를 위해 봉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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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웃시거리 마을이 언제부터 존재하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렇게 조용하던 산골마을이 천주교 성지로 개발
되면서부터 바깥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곳이 천주교 성지마을이 된 것은 1993년 10월 천주교 안동교구에서
우리나라 천주교 최초 수덕자인 농은(隴隱) 홍유한(隴隱 洪儒漢1726-1785) 선생의 묘소 위치를 마을에 거주중
인 노인인 손장출(작고)씨를 통해 알게 되면서 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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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로 올라가는 도로가엔 가로수들이 푸름을 자랑하며 서있다. 그런데 일반적은 가로수가 아닌 것 같다. 산딸
나무??. 유랑자는 내려서 나무와 잎을 만져본다. 그렇다. 분명 산딸나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십자가가 되었던 그 나무. 또한 넉 장의 꽃잎이 십자가를 닮아서 성스럽게 여기는 나무다. 그러고 보니 산딸
나무를 가로수로 택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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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오르자. 저 앞에 십자가가 보인다. 그 옆에는 한복을 입고 갓을 쓴 선비가 서 있다. 조선시대 실학자 홍유
한(洪儒漢)선생의 동상이다. 풍산 홍씨(豊山洪氏) 홍유한은 1726년(영조 2년), 서울 아현동에서 태어났다. 부친
은 홍창보(洪昌輔)이고 모친은 창녕성씨(昌寧成氏) 훤의 딸이다. 그 선조들의 고향은 안동현 풍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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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은 선생은 풍산 홍씨 양반 가문으로 정조 임금의 외가 혜경궁 홍씨의 친정 집안이다. 농은 선생은 당시 학문
과 문벌이 높은 집안에 태어났으나, 과거를 보아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1750년 16세 때부터 유명한 실학의 대
가인 성호 이익 선생의 문하에서 서학 학문에 정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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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유한 선생 가계 가운데 그 분의 뜻을 이어 피를 흘리며 신앙을 증거한 순교자들은 13명이나 된다. 후손들이 선조 순교자들을 현양
하기를 원했으나 각지에 흩어져 있는 선조 순교자들의 유해를 찾을 길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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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유한 선생의 묘소가 있는 이곳에 13위(位) 순교자들의 가묘(假墓)라도 함께 모실 것을 안동교구에 청하였고, 교구는 이들의 신앙
적 열성을 받아들여 후손과 함께 교구 설정 40주년이 되는 2009년 5월 29일 13위(位) 순교 선조들이 순교한 각 순교터의 흙을 담아
가묘를 조성하고 비를 세워 현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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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스승인 이익의 문하에서 동문들과 함께 서학인 [천주실의(天主實義)]와 [칠극(七克)], [직방외기(職方外紀)]
등을 공부하였다. 그러나 후손들의 말에 따르면 그가 서학의 책들을 읽고 연구하며 수계생활 하기를 원하였으
므로 문중이나 주위에서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뭐 하는 것이냐며 상당한 압력이 가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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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수 없이 신앙을 연구하고 실천하기 위하여 주위의 눈을 피해 예산으로 낙향, 호를 농은이라 짓고 18여년
동안 배움을 실천하며 천주교리에 맞는 생활을 계속하였다. 그는 다시 1775년 수계생활에 더욱 적합한 곳을 찾
아 영남지방으로 내려와 소백산 아래 순흥 고을 동쪽 십리에 있는 단산 구구리(배나무실)에 머물게 된다. 이곳
에서 더욱 전심전력으로 칠극(七克)에 의한 수계생활을 하는 한편, 뜻있는 학자들과 서로 교류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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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곡 성지는 농은 홍유한(洪儒漢, 1726~1785, 호 隴隱) 선생이 모셔져 있는 곳이다. 농은 선생은 칠극의 길을 따르며 천주교 수계 생
활을 28년 동안 하다가 1785년 1월 30일 60세로 세상을 떠나 그해 4월 이곳 봉화군 봉성면 문수산 산록에 있는 우곡에 안장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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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이곳에서의 홍유한의 수계생활은 한국 천주교 역사가 시작되는 천진암보다 4년 앞선 것으로 실로 그가
한국교회의 최초의 수덕자임을 알게 해주며, 실로 경상도 북부지방(현 안동교구 지역)에 최초로 복음의 말씀을
가져온 분임을 시사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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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차를 세우고 내려 안내문을 읽어본다. 그러나 골짜기이어서 일까 아님 엄숙한 성지여서 일까. 적막감
이 흐를만큼 넘 조용하다, 허긴 고귀한 분이 묻힌 곳인 만큼 시끄러우면 안될일, 유랑자도 조심스럽게 움직여본
다. 안내판엔 홍유한은 한국교회 최초의 수덕자(修德者)로 소개하고있다. 수덕자란 평신도 가운데 신앙을 위해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아간 사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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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유한 그는 유학자로 천주교의 삶을 선택했다. 우리나라 천주교회의 창립을 1779년으로 본다면, 그보다 30년 앞서 홍유한은 이
미 신앙의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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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극의 길’을 따라가면 길 끝에있는 칠극성당이 있고 그 앞엔 한복 입은 성모상이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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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그는 공식적인 천주교 신자도 아니었다. 세례를 받지도 않았고 교적에 오르지도 않았다. 그러나
한국교회 창립 이전부터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여 ‘칠극(七極)’에 의한 천주교 수계생활을 하면서 정절의 덕을
지키며 28년간 부부 생활을 하지않은 최초의 인물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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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5년 (음)1월 30일. 6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그 해 (음)4월 19일 순흥부 동쪽 문수산 산록에 있는 우곡
골짜기에 안장 되었다. 그의 신앙 생활은 한국인 최초로 세례를 받은 이승훈이나 한국 최초의 신부 사제 서품
을 받은 김대건 신부 보다도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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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극대전(七克大全)의 약칭. 저자는 스페인 출신의 예수회 신부 판토하(D. Pantoja, 龐迪我, 1571∼1618). 죄악의 근원이 되는 일곱
가지 뿌리와 이를 극복하는 일곱 가지 덕행을 다룬 일종의 수덕서(修德書)이다.
① 겸극오(謙克傲 - 겸손으로 오만함을 이겨 냄)
② 인극투(仁克妬 - 사랑으로 시기와 질투를이겨 냄)
③ 인극로(忍克怒 - 인내심으로 분노를 이겨 냄)
④ 정극음(貞克淫 - 정결로 음욕을 이겨 냄)
⑤ 사극린(捨克吝 -베푸는 마음으로 인색함을이겨 냄)
⑥ 담극도(淡克도<號+食> - 담박한 생활로 탐욕을 이겨 냄)
⑦ 근극태(勤克怠 - 부지런함으로 게으름을이겨 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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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것은 구전으로 내려오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로는 생의 묘소를 이곳에 쓰면 100여년 후에는 많은
손님들이 찾아 올 것이라는 농은 선생의 말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말이 실제 맞아 들어가는 상황이다. 이
렇게 유랑자가 찾아 온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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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먼저 묘를 찾아 나섰다. 우곡리 문수산 중턱에 그의 묘가 있다. 묘소는 정조 임금이 보낸 지관이 터를
잡았다고 한다. 먼저 다리를 건너 성지에 오르기전 산자락 입구엔 집안 후손들 순교자 13명의 가묘(假墓)가 있
다. 유해는 찾을 길 없어 순교 터들을 돌면서 흙들을 모아 단지에 담아와서 쓴 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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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이곳을 본다음 다시 눈을들어 산 오솔길을 따라 오르기 시작한다. 홍유한의 묘소로 가는 길은 십자가
의 길로 꾸며져 있다. 산 좋고 공기 좋고 피톤치드 가득한 오솔길을 따라 15분여 정도를 오르면 수수하면서도
근엄(謹嚴) 하면서도 잘 단장된 묘가 나타난다. 여기가 바로 우곡성지다. 주변은 성지로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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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들리는 말에 의하면 1995년 3월 8일 천주교 안동교구는 선생의 후손인 홍관희 선생이 가토(加土)를 하기
위하여 묘지에 도리 석을 쌓으면서 봉분(封墳)의 흙을 파 헤쳤을 때 관을 보호하기 위해 주위를 덮은 석회 위에
두텁게 진흙을 바르고 ‘산림처사 홍공지묘(山林處士 洪公之墓)라고 숯으로 쓴 명정(銘旌)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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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홍유한은 자연에 은거해 검소함과 덕행으로 일생을 산 선비를 떠올리게 한다. 어느 종교든 ‘교리’는 무구
하고 깨끗하다. 다만 그것을 이용하여 부를 축척하고 대물림을 하는 요즘 세태가 안타깝긴 하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박해 이전, 정착과 창립 이전의 종교생활이란 ‘교리’와 맞닿아 있을 게다. ‘산림처사(山林處士)’란, 행위
의 이름이 그를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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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성지를 내려와 다시 계곡을 따라 오른다. 그러나 계곡은 자연미는 하나 없는 콘크리트로 쌓아 말끔하
게 정비되어 있다. 여름이면 고요와 평화와 맑은 물을 찾아 많은 사람들이 오고, 돌멩이 아래에서 고물고물거리
는 가재들을 아주 쉽게 볼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러나 수량도 적거니와 큰크리트로 된 이런 환경 이라면 글
쎄요 가재가 살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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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으로 으측 다리를 건너면 ‘칠극의 길’로 이어진다. 유랑자는 처음부터 궁금했다. 그렇다면 칠극은 무엇일까??
‘칠극’이란 예수회 신부 판토하(Pantoja)가 지은 가톨릭 수덕서(修德書)다. 즉 7가지 이겨내야 할 것들이다. 교만
을 누르고, 질투를 가라 앉히고, 탐욕을 풀고, 분노를 없애고, 탐내어 먹고 마시는 것을 이겨내고, 음란함을 막고,
게으름을 채찍질하는 것. 구구절절 옳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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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 교인들은 이를 ‘하늘에 닿아 있는 층계’로 여긴다. 햇빛과 숲 그늘이 넉넉히 갈마(羯磨)드는 물가에 칠극을
새긴 바윗돌들이 이어지며 길을 인도한다. 암튼 종교와 무관한 이 유랑자 에게도 칠극의 길은 심장을 찌르는
송곳 같은 내용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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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극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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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극‘ 그 길의 끝엔 칠극성당이 자리하고있다. 비둘기가 날갯짓하는 푸른 스테인드글라스의 창이 있는 작은 성
당이다. 조심 스럽게 들어가 내부를 한번 둘러보고 유랑자는 조용히 나온다. 종교와 신념 유랑자는 알다가도 모
를 일이다. 왜 그들이 맹목적으로 하나님을 안 믿으면 지옥을 간다라고 악담을 하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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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을 나와 뒷길을 올라가 본다. 성당 뒤로는 구불구불 산길이 멀어진다. 유랑자는 다시 발길을 돌려 내려 와
그늘아래에 있는 벤치에 앉아 숨을 돌린다. 평화롭고 한적하다, 하늘엔 새털 구름이 떠 있고 이따금씩 지저귀
는 새소리와 바람소리만이 정적을 깨트릴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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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는 200여 년 전에 한반도에 전래되었지만 쉽게 성장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사회지배계층은 천주교를 모든 악의 전형으로
몰아세우며 온갖 박해를 시작하였고, 이로 인해 엄청난 순교자들이 생겨났다. 이와 같은 종교적인 박해로 인하여 현재 우리나라는
전국 곳곳에 천주교 성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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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한동안 멍때리고 앉아 있다가 무심코 벤치에서 눈을 돌리자 성당 앞 바위 벼랑 아래에 한복을 입고
아기를 안은 백색의 성모상이 있다. 어 한복을 입은 성모마리아상? 유랑자가 본적이 있던가? 암튼 생소하다,
무신론자인 유랑자에게도 검소한 성당과 눈부신 성모는 고결하게 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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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영위함에 있어 구지 엄숙하고 고독한 피정(避靜)이 아니더라도, 인생역정(人生歷程)의 길목에서 칠극의 길
은 접어 두고서라도 이렇게 일상을 벗어나 잠시 자연과 벗 삼아 거닐어 보는 잠깐의 여유와 산책은 모르긴 해
도 걷는 이에게 고결한 평화를 가져다 줄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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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입은 성모 마리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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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afe.daum.net/b2345/9toB/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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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봉성면 시거리길 397
(지번)봉성면 우곡리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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