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진 면접
입학 이후 가장 많이 한 활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장학 금을 위한 자기소개서를 쓰는 일이라고 답할 것 같다. 입학 당시 학자금 대출을 받았고,
매달 빠져나가는 이자를 보며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에 다니겠다는 다짐을 했다.
교내 장학금도 있었지만 성적 외의 조건도 필요해서, 자연스럽게 외부 장학재단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여러 재단에 지원하며 장학생이 되기도 했고,
그렇지 못한 적도 있었지만 그 모든 과정은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그 중에서도 유독 마음 깊이 남은 경험이 하나 있다.
대부분의 장학재단은 1차 서류 전형에서 정해진 양식의 자기소개서를 요구한다. 성장 과정, 장단점,목표 등을 묻는 형식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A 장학회는 달랐다. 자기소개서 파일을 열어보니, 형식적인 질문 대신 "꾸며 쓰지 말고 여러분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달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그동안 자기소개서를 쓸 때면 어떻게 하면 더 돋보일 수 있을지, 어떤 성과를 강조해야 할지 집중해 왔다. 솔직함보다는 나를 부풀리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여러 번 자소서를 쓰다 보면 재단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보일 때가 있는데, 이 재단은 진솔함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곳이었다.
보통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데 하루 이상 걸리지 않는다. 이미 해왔던 일들을 정리하거나, 기존 글을 조금 수정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자기소개서는 달랐다. 이틀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잘한 일을 과장하거나 부족한 부분을 숨기기보다, 내 삶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과 그 안에서의 선택, 고민을 그대로 풀어 내고자 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어렵다고 느끼는 지점 역시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적었다.
1차 서류 전형에 합격한 뒤, 2차 면접을 위해 부산으로 향했다. 간절한 마음에 예상 질문을 정리하고, 답변을 반복해서 연습했다.
면접 직전까지도 준비한 답을 앵무새처럼 되뇌었다.
면접 장소에 도착해 다른 지원자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이름 만 들어도 공부를 잘할 것 같은 학교의 학생들이 많아 순간 기가 죽었다.
내가 잘못 뽑힌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면접은 다섯 명이 함께 참여하는 방식이었고, 그 자리에서 예상과는 다른 장면들을 보게 되었다. 조건이 좋아 보이던 지원자가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하기도 했고, 스스로 부족하다고 말하던 지원자들은 오히려 자신의 경험과 내면의 갈등을 진솔하게 풀어내며 분명한 방향성을 보여주었다.
각자의 분야에서 하고자 하는 일이 명확한 모습이 무척 인상 깊었다.
그 순간, 내가 가지고 있던 기준이 얼마나 피상적이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누군가의 성취나 배경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어떤 생각과 태도를 가지고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경쟁의 자리라고 생각했던 그 공간에서, 심사위원과 지원자들 모두에게서 따뜻함을 느꼈다. 심사위원들은 "이 자리는 여러분을 평가하고
재단하는 자리가 아니라, 돕기 위한 자리 입니다. 여러분의 솔직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라는 말로 면접을 시작했다. 날카로운 질문보다는,
어떤 지점에서 도움이 필요한지, 어떻게 지원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조언을 건넸다. 나 역시 준비한 답변을 내려놓고 보다 솔직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면접이 끝난 뒤에는 지원자들끼리 서로의 사정을 공감하며 응원을 나누기도 했다. 아무런 대가 없이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장학금보다 값 진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면접을 마치고 부산의 바닷가를 걸으며, 스스로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선한 사람들이 세상에는 많고,
이렇게 우연한 기회를 통해 그런 어른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세상을 이롭게 살아가는 어른들의 얼굴을 떠올리다 보면, 과연 내가 그들처럼 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꼭 그들과 같은 모습이 아니더라도, 나만의 방식으로 내가 받은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갈 때는 다소 세속적인 마음으로 열차에 올랐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나눔의 가치를 품은 채 서울로 향했다.
- 파랑새의 독립연습 (이수빈 지음)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