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5월 첫 행사에 이어 올해에도 화천댐과 한국전쟁 희생자 합동위령제와 화천지역 DMZ평화여행을 진행하였다.
5월 31일 9시 조금 지나 추천역에 도착해 역앞 광장에서 이승무소장과 타카노사토시님을 만나 버스를 타고 화천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해 잠시 후 김용필대표의 차로 도착한 임금철 장경율님 세 분과 만났다. 기다리니 승합차를 가져온 한주희목사님께서 와 주셨다. 최승구 오카다 선생은 대구에서 출발이 늦어져 오후 2시경에 도착하겠다고 연락이 와서 먼저 막국수집에서 점심을 먹고 도착한 사람끼리 먼저 화천수력발전소와 꺼먹다리와 634고지 전투기념비를 거쳐 화천댐을 방문했다.
출입이 자유롭게 개방되어 있었고. 다시 안내 표지판을 보니 강제징용 관련한 설명문이 눈에 들어왔다. 경인공업지구 군수산업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하루 108MW를 목표로 착공하여 1945년 5월과 10월에 1,2호기를 완공하였다. 매일 3천명의 인력이 투입되었고 공사 중에 하루 2~3명이 죽어 인근에 2개의 화장장을 따로 설치할 정도였으며 공사기간동안 1천여명이 사망했다고 설명되어 있다. 작년에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이었다.
한국전쟁기간 중 총 다섯차례의 전투와 세번이나 상호 탈환이라는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 그리고 UN연합군이 화천화력발전소를 1951년 5월 29일 새벽에 탈환했는데 중국군 2만4천명이 사망하고 8천명을 포로로 잡았다고 기록하고 있었다. 사망자 숫자에 관해서는 중국(8천명)과 미국(1만 7천명)이 밝힌 것과 차이가 나서 정확성을 확인할 수가 없다.
오후 2시경 버스터미널에서 오카다 최승구님이 합류해 함께 승합차를 타고 평화의 댐을 찾았다. 민통선 구역을 통해 댐 북측길로 들어서서 비목공원에서 기념촬영도 하고 수자원공사 전시관도 돌아보았다. 세계평화의 종을 함께 타종하고 전망대로 향했다. 모두골의 정대호대표께서 이미 도착해 있었고 임락경목사님께서 풀도 베어내고 제사상을 차려 두셨다. 위패에는 파로호가 아닌 원래 명칭인 대붕호로 하여 大鵬湖戰死神位를 세우셨다. 제주이신 임목사님을 시작으로 장구가락에 맞춰 추모곡을 정대로대표의 소리도 듣고 이어서 차례로 분향과 헌주 그리고 절을하는 순서를 가졌다. 합동위령제를 지내는 중 하얀나비떼가 소나무 숲에 나타나 마치 위령제에 초대되어온 혼령 같은 느낌을 모두에게 주었고 위령제를 마치자 사라졌다. 제주 역할을 하실 예정인던 홍대봉스님께서 건강이 여의치 못하셨는데 임락경목사님께서 준비를 다 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지역에서 준비를 해 주시는 것이 더욱 반갑고 감사했다.
위령제를 마치고 내려와 강변의 어죽탕집에 들어가 맛있게 식사를 하고 장을 봐서 숙소인 아쿠아틱리조트에 들어갔다. 조선족동포들이 준비해온 술을 돌리고 정대호대표의 소리를 듣고 또 임금철선생과 이승무소장의 자작시 낭송에 감동하며 흡족했다. 한중일 시민들이 함께 모인 자리라 화제는 풍성했고 시와 노래가 이어지니 흥겹기 그지 없다. 두 분 목사님을 돌아가시고 남은 사람들이 늦도록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둘째날 아침에는 어제 준비해 온 라면과 햇반으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여유있게 나와 자전거를 빌려타고 하천을 따라 달리다가 다시 이동해 점심을 먹고 선착장에 도착해 유람선을 타려고 했으나 인원이 부족하다며 규정에 따라 운항할 수 없다고 했다. 아쉬운 마음에 모터 보트를 타고 잠시 위안을 했다. 한참을 달려 이외수의 감성마을을 방문했다. 마침 작가 이외수 선생도 만날 수 있었고 전시관도 돌아볼 수 있었다. 춘천역으로 돌아와 아쉬운 마음에 저녁을 먹기로 하고 역 광장에 귀퉁이에 있는 막국수집으로 들어가 닭갈비와 막국수 그리고 술로 서로를 격려하고 반가움을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8시를 넘기고서 각자 기차와 버스와 승용차로 아쉬운 작별을 하고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