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소녀를 만나다 / 황순원 문학촌 소나기마을 엮음 / 문학과지성사
지금은 그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사반의 십자가', 잘 알려진 이야기를 중심으로 주변 이야기를 다룬, 내가 처음 접한 소설이었다. 그리고 내 남자 친구 이야기와 내 여자 친구 이야기가 쌍으로 쓰여진 소설이었고 그 외엔 기억이 없다.
간혹 소설을 읽은 후에 그 이야기의 후편이나 주인공이 아닌 다른 등장 인물의 시각에서 글이 쓰여지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이 책은 대한민국 국민이면 모두가 알고 있을 법한 이야기 '소나기'와 그 주변에서 발생할 수 있을 이야기가 여러 작가에 의해서 그려지고 있었다.
소나기 / 황순원
우리가 아는 그 이야기 그대로....
26. "참 이번 기집애는 어린것이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어. 글쎄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지 않어? 자기가 죽거든 자기 입던 옷을 꼭 그래루 입혀서 묻어달라구·····"
헤살 / 구병모
헤살: 남의 일이 잘 안되도록 짓궂게 방해함
소녀가 죽는 후, 아픔을 극복하는 소년의 이야기
37. 그런 다음 책보 매듭을 한 손가락으로 끄르곤 흔들었다. 책보에서는 숙제장이나 연필 대신 다만 저고리 한 벌이 스르르 떨어져 내렸다. 물이 펼쳐진 저고리는 만세를 부르는 모양을 하고 그 자리에서 흔들리기만 했다. 호두나 대추처럼 멀리멀리 사라지지 않고 물살을 움키듯 그 자리에서 맴돌았다.
옷이 무거운가 하여 슬쩍 손으로 밀어준다. 몇 발짝만큼 더 나아가다 징검다리 언저리에 걸려버린다. 한 번 더 손을 뻑어 툭 쳤지만 시원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얼마 안 있으면 옷이 물을 머금어 아래로 잠겨버랄 것 같다. 다급해져서 손으로 물살을 마구 일으키며 쳐낸다. 고작 개울이라 시원시원히 힘 있는 물살이 솟아 오르지는 않지만 조금씩 움직인다.
얼룩이 든 저고리는 흠뻑 젖은 채 이윽고 물살을 따라 유유히 떠내려갔다. 소매가 너울거리는 모양이 손을 흔드는 것처럼 보였다.
축복 / 손보미
소년을 좋아하는 소녀와 같은 반 여자 아이의 시각에서 그려진 내용. 서울에서 내려온 소녀와 소년의 윰직임을 훔쳐본다. 소녀가 죽기를 바라기까지 하는 아이가 살아가는 이야기
50. 죽은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이고, 산 사람은 산 사람이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살아갈 것이다. 그건 정말 인간에게 내려진 최고의 축복이리라.
가을하다 / 전상국
소녀가 떠난 뒤 2년 후, 소년은 담임 선생님에게서 소녀를 겹쳐 본다. 소녀의 눈이 가을가을 했다.
58. 사라진 것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다시 소나기 / 서하진
고등학생이 된 소년. 그 소년이 소녀와 같은 아이와 한 반이 되고, 그 아이와 또 소나기를 만나게 된다. 그 아이는 소녀의 동갑내기 사촌이었다.
89. "갑자기 잃는 것과 갑자기 얻는 것 ······· 어느 쪽이 더 힘이 들까?"
농담 / 김형경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 소녀와 함께 비집고 들어 갔던 수숫단, 그 수숫단과 함께 장성하는 소년의 이야기. 고등학생 때 여자 친구와 함께 수수밭에 들어와 본다.
103. 이 여성과는 몇 번 만나고 헤어지는 게 좋을까. 농담이거나 수수께끼 같은 세상에 또 하나의 농담을 보태는 일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지워지지 않는 그 황토물 / 이혜경
중학생이 되고 졸업 후 공장에서 일하는 소년, 조약돌도 잃어버리고 소녀를 담은 여자의 사진도 옷과 함께 빨아버리고 가족은 시골을 떠나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된다.
111. 아주 짧은 기간 마을에 머물렀을 뿐인데, 내려다보는 마을 곳곳에 소녀가 있었다.
잊을 수 없는 / 노희준
일흔 넘은 할아버지가 된 소년. 기억력이 떨어질 수록 어릴적 기억은 더 가까와진다.
121. "아니, 할아버지가 그랬쟎아. 여자애가 이 바보, 하면서 돌 던졌다며?"
125.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던 상처도 이십대의 가슴앓이와 함께 지나가버렸다. 밤만 되면 가슴이 뜨거워 잠 못 드는 나이가 지나가고 나자 그는 더 이상 소녀에 대해 슬픈 마음이 들지 않았다. 열정이 있어야 상처를 되새길 힘도 있는 거라고, 상처를 앓는 데도 젊음이 필요했던 거라고, 어느 순간 생각하게 되었다.
귀향 / 조수경
아내와 함께 고향에 온 할아버지가 된 소년. 그 소년은 젊은 시절 소녀를 닮은 아내를 만났고 자녀와 손주들을 두었다. 그 아내는 지금 제정신이 아니다.
144.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남자가 평생 동안 주머니 속에 조약돌을 간직해온 것처럼 아내 역시 다른 사람의 이름을 가슴속에 숨겨두고 살아온 것인가
사람의 별 / 박덕규
사람의 별에 와서 사람으로 태어난 소녀. 사랑을 느끼고 돌아 가다.
154.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 이렇게 소년과 함께 벌판을 달려도 좋은가. 정말 좋은가.
159. 내가 지구인으로 살면서 가장 어려운 일이 바로 그거였다. 드러내야 할지 감춰야 할지 모르는 미세한 감정의 움직임을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바로 그런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이어서 그 별은 이제 생명을 후손에 이어가지 못하는 멸망의 별이 되어간 것이다.
"사랑"
나는 사랑, 이라는 감정에 대해 설명하고 싶었다. 드러낼 수도 감출 수도 없는, 분명하지 않아도 소둥한 그런 감정. 이런 감정이 얼마나 많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힘이 되는가를 말하고 싶었다.
한 사람의 정성어린 작품이 후배 작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더 풍성한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다. 재미도 재미려니와 이런 작품을 구상 할 수 있다는 것이 독자로서는 고맙기만하다. (2017.4.19 평상심)
첫댓글 제가 좋아하는 음악의 종류중 하나가 "주제와 변주" 라는 작품입니다.
주제는 자기가 만든 주제일 수도 있고 아니면 유명한 작곡가가 작곡한 주제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반짝반짝 작은별 주제에 의한 변주곡"이란 곡이 있는데, 원 주제도 주제지만 그 주제를 약간씩 변형을 하여 주제의 맛을 아주 다양하게 보여줍니다.
때로는 음표의 갯수를 늘려서 다른 말로 약간 빠른 연주를 하기도 하고, 스르르 올라가는 것을 스르르 내려 가는 것으로 바꾸기도 하고, 장조를 단조로 바꾸기도 하고 아주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위의 독후감을 읽으면서 마치 주제와 변주와 같은 단편집 모음이었구나 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회원님 덕분에 조금 더 깊이 생각합니다.
글이 길어져 본문의 답글로 적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