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정부 이후 문화 컨텐츠 부가가치의 상승으로 인하여 애니메이션 산업은 사회적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하였다. 각종 정부 지원과 사회적 관심에 힘입어 애니메이션 산업 단지가 춘천에 생기고 각종 관련 학교와 학과도 신설되었다(고교 72개 대학이상 128개 이상). 이와 함께 학원 역시 우후죽순 생기게 되었다(사립학원 101개 이상). 그 결과 국내에서 기획하고 생산한 수많은 토종 애니메이션들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얼마 전에는 국제적인 상을 받은 애니메이션이 나오기도 하였다(도쿄 애니메이션 어워드 대상-‘아프리카 아프리카’, 디지털콘텐츠 그랑프리 우수상-‘엔젤’, 안시 국제애니페스티벌 대상-‘오세암’, ‘마리이야기’ 등). 그렇지만 애니메이션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상당수의 애니메이터들의 노동상황은 이러한 성과에 비해 열악한 실정이다. 문화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각종 지원(영진위 애니메이션 지원제도, 대학창작애니메이션 지원제도, 공공애니메이션 제작지원제도, 독립•장편 애니메이션 제작지원, 문화관광부 100여 개 지원책 등)을 아끼지 않았던 정부는 정작 해당 부분 핵심 노동자인 애니메이터들에게는 ‘헝그리 정신으로 꿈만 먹고’ 일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원척적으로 봉쇄되는 노동권
애니메이터란 애니메이션 산업 단계에서 2D, 3D, cell, flash 등의 그래픽을 그리는 사람들을 말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컴퓨터, 펜 등의 도구를 이용하여 애니메이션을 그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문화콘텐츠를 창조하는 애니메이션 산업의 핵심 부분으로, 일반적으로 그들의 직업은 ‘멋져’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들의 노동환경은 그리 ‘멋지’지 않다. 그들은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법이 존재하지만 보호 받지 못하고, 보호 받고자 하면 노동시장에서 퇴출되기 일쑤이다. 애니메이터들의 현재 노동조건은 전태일이 분신했던 그 시대와 얼추 비슷하다. 부당해고와 초과근로, 임금체불 등은 애니메이터들에게 일상이다.
애니메이터 중에 정규직으로 일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일반적으로 감독과 관리자 급만이 정규직으로 되어 있고 나머지 애니메이터들은 프리랜서나 계약직의 상태이다. 정규직에 해당하는 비율은 10%를 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프리랜서나 계약직의 경우에도 어처구니 없는 계약상태의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프리랜서란 정규적인 고용형태를 띠지 않고 자유롭게 계약에 따라 직무를 수행하는 경우를 말하고, 계약직은 계약기간 동안 회사에서 고용되는 경우를 말한다. 하지만 애니메이터의 경우에는 그 구분이 모호하며 정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계약의 형태가 아니다. 계약직으로 알고 회사에 입사했는데 회사는 사업자등록증도 없는 피고용인에 대해 도급계약을 맺어버리기도 한다. 어떤 계약은 피고용인에 대해 손해배상청구도 가능하도록 만들기도 하고, 프리랜서로 계약하는 줄 알았는데 계약서에는 다른 회사의 일은 할 수 없도록 명시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불법계약과 비공정 계약이 어떠한 제재나 기준도 없이 난무하는 상황이라 프리랜서나 계약직이란 정의가 무의미한 실정이다.
이러한 계약은 노동자가 행할 수 있는 노동권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작업환경과 시간에 대해 사용자가 편리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퇴직금조차 받기 어렵다(99년 애니메이션 노조에서는 퇴직금관련 소송에서 최초로 대법원 승소 판결을 받아 퇴직금은 이제서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불합리한 임금책정
계약 형태 자체가 불공정하기에 임금 책정 또한 불합리하다. 주당 평균 58.3시간 노동에 월평균 146만원의 임금이 지급된다. 기본급의 개념은 거의 없다. 있다고 하더라도 명목상의 액수(3,40만원) 정도밖에 안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임금은 작업량에 따라 결정이 된다. 이때 단가의 기준은 일반적으로 회사마다 동일하다(이는 회사들간의 담합이 의심되는 부분이다). 피고용인의 작업 경력에 따라 장당 500원에서 700원으로 결정된다. 이 작업량에 대한 수당으로 평균 146만원을 받는데, 이는 평균 금액일 뿐이고 실제로 상당수의 애니메이터들은 최저생계비인 113만원도 미치지 못하는 소득으로 생활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애니메이터의 임금이 회사의 이윤, 노동의 재생산비용과 상관없이 단기적 이익만을 생각하는 사용자의 임의로 책정되기 때문이다. 과거 IMF시절 환율의 상승으로 인하여 회사의 이윤 상승이 환율 상승만큼 증가(대부분의 애니메이션 회사들은 해외 수출에 수익의 상당 부분을 의존하고 있다)하였지만 회사 측에서는 ‘고통분담’을 이유로 수당을 낮춘 사례가 존재하였고 그 수당은 지금도 여전히 오르지 않았다.
애니메이터들은 불합리하게 책정된 임금조차도 꾸준히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 이는 작업량에 의해 수당을 받는 체계에서 노동시간이 일정하지 않은 이유로 발생한다. 평균 노동시간은 주당 58.3시간이지만 일이 많은 성수기에는 주당 74.5시간 일을 한다. 2003년 설문조사에서 연간 평균 46주를 근무하고 어떤 프로젝트도 참여하지 못한 기간은 평균 15주인 것으로 나타나 노동시간이 들쭉날쭉함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못하는 기간에는 기본급으로의 생활이 어려워 빚을 지거나 다른 일을 찾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구조에서 회사는 관례화된 상황을 악용한다. 프로젝트가 없는 기간 동안 생활을 위해 가불을 해주고 다음 급여에서 이를 갚도록 만들어 이를 통한 종속 구조를 고착화 시키는 것이다. 가불과 종속과 저임금이 맞물리는 불안정한 생활이 이 바닥(!)의 일반적인 상황이다.
노동시간의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일이 많은 성수기에는 주당 평균 74.5시간 근무하게 되고 동화의 경우는 80시간 정도를 근무한다. 즉, 거의 모든 생활이 일로 채워진다. 그런데 이러한 과잉 초과노동에서 시간 외 노동은 강제적으로 이루어진다. 피곤해서 혹은 집안 일 때문에 시간 외 노동을 거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 관계자는 ‘집에 부모님 초상이 나도 일해야 한다’고 말한다. 강제적으로 이루어지는 시간 외 노동임에도 시간외 수당을 주는 기업은 그리 많지 않다. 업체 관계자는 ‘작업량이 많아지면 그로 인한 수당이 지급되는 것인데, 굳이 시간 외 수당을 지급 할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임금 담합과 블랙리스트
사용자의 요구를 거부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찾으려 하면 곧바로 회사의 해고통보가 이루어진다. 자신의 업무는 어느 새 다른 사람에게 옮겨져 있고 관리자는 회사를 떠나기를 요구한다. 해고통보는 정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원래 계약부터 많은 문제를 지닌 상태이거나 구두계약을 통한 아르바이트 형식이기에 해고 역시 비상식적으로 이루어진다. 구두로 해고를 통보하고 해고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태반이고, 혹은 서면 계약이 이루어졌다 해도 계약 내용에 따라 불성실한 근로태도를 ‘보일’ 경우 해고할 수 있다. 이 경우 인사위원회가 열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애니메이터들의 임금을 둘러싸고 애니메이터 사업주들이 담합을 꾀하고 있는 혐의도 포착된다. 한때 A씨는 애니메이션 회사를 설립하고 이익이 많이 남아 애니메이터들에게 일반적인 임금보다 더 많은 수당을 지급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 회사는 곧 다른 회사들의 압력을 받았고, 이후 프로젝트 수주와 애니메이션 작업을 위한 물품 구입에 어려움을 겪는 바람에 곧 일반적인 수준으로 임금을 재책정했다고 한다. 애니메이터 노동시장은 다른 시장에 비해 협소하고 상당수의 취업이 지인을 통해 이루어 진다. 노동시장이 협소하여 한 회사에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였다가 해고당했을 경우 다른 회사에 취직이 어려운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한 마디로 ‘소문나면 끝’인 것이다.
애니메이터들에 대한 부당노동행위를 예로 들자면 수도 없이 많다. 고용계약 자체가 근로계약인지를 의심케 할 정도로 어처구니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러한 계약에 대해 노동부나 공정거래위원회에서는 관심조차 없는 상황이다. 기본적인 권리라도 포함되어 있는 근로계약서가 절실한 상황이다. 적어도 기본급과 수당의 합리적 책정, 고용관계의 명확성 등이 명시되어 있는 계약서가 필요할 정도이다(현재 전국 애니메이션 노조는 올해의 핵심 투쟁과제로 근로계약의 표준안 작성을 삼고 있다).
애니메이터 노동시장의 풍경과 문화컨텐츠 육성을 통한 선진화 정책은 선사시대와 미래시대의 기묘한 조합이다. 노동자에 대한 기본적인 권리마저 간과하는 정책으로 선진 문화산업을 만들어 가겠다는 발상이 실소를 자아낼 뿐이다.
최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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