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읽을거리
11. 농악(農樂)과 사물(四物)놀이
김덕수 사물(四物)놀이 공연 / 호남(湖南) 농악 / 강릉(江陵) 농악 / 농기(農者天下之大本)
예전, 농촌에서는 이웃들끼리 조를 짜서 각 농가를 돌아가며 일을 하던 것을 두레, 혹은 울력이라고 했다.
울력 때면 아침에 농악기를 보관하고 있는 집 마당에 먼저 온 사람들이 농악기를 꺼내 두드리며 흥을 돋우면 일하는 사람들이 모여드는데 다 모이면 농기(農旗-農者天下之大本)를 앞세우고 악기를 두드리며 나가서는 논밭 근처에 농기(農旗)를 꽂아놓고 악기를 내려놓은 다음 일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새참이나 점심을 먹은 후에도 잠시 연주하고, 또 저녁이 되어 일을 마치면 다시 농기를 앞세우고 악기를 두드리며 돌아와서는 마당에서 한바탕 흥겹게 놀고는 악기를 닦아 보관하고 헤어진다.
‘두레’는 ‘집집마다 돌아가며 하는 일’, ‘울력’은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하는 일’을 이르는 말인데 못하는 일이 없다고 하였다. 이때 사용하는 ‘꽹과리, 징, 장구, 북’의 네 가지 악기를 ‘사물(四物)’이라고 하는데 날라리(太平簫)가 추가되기도 한다. 이 연주(演奏)를 ‘풍물(風物)놀이’라고 불렀는데 언제부터인가 ‘농악(農樂)’으로 부르는 것이 대세가 되었다. 이 농악은 농사지을 때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매년 정초(正初)가 되면 마을의 집집마다 돌며 일 년 동안 안택(安宅)을 기원하는 고사(告祀)를 올렸다.
보통 제일 먼저 방문 앞 뜨럭에 상(床)을 놓고 그 위에 말(斗)에다 쌀을 수북이 담아놓고 다시 그 위에 무명실타래를 걸쳐놓는다. 그리고 촛불을 켜 놓고 술도 한잔 따라 놓기도 하였다.
그러면 비손이(축원을 드리는 사람)가 꽹과리를 치며 청산유수로 사설을 읊어 그 집안의 1년 동안 안택을 빌고는 이어서 집안 곳곳을 돌며 지신(地神)밟기를 하였는데 집안의 악귀(惡鬼)와 잡신(雜神)을 제거하는 절차이다.
정월 대보름을 전후하여 다른 마을로 다니기도 하였는데 그 집의 안택을 빌어주고 쌀을 모아다가는 마을의 악기를 사거나 장례에 사용하는 상여(喪輿)와 상여를 보관하는 곳집을 손보기도 하였는데 이것을 걸립(乞粒)이라고 하였다. 원래는 절의 스님들이 목탁을 치고 염불을 하며 마을을 돌아다니는 것을 탁발(托鉢), 또는 걸립(乞粒)이라고 했다. 곳집은 상여와 그에 딸린 제구(祭具)를 넣어 두는 초막을 말하는데 주로 마을에서 동떨어진 외딴곳에 만들었다.
예전에는 거의 마을마다 농악이 있다 보니 지역을 중심으로 농악경연대회도 열렸는데 호남농악(湖南農樂), 영남농악(嶺南農樂), 경기농악(京畿農樂), 동부농악(東部<江原>農樂) 등 각 지역마다, 심지어 같은 지역이라도 마을마다 특색이 있는 다양한 가락과 발림(몸동작)이 발달하게 되었다.
연주내용을 살펴보면 다양한 몸동작인 발림, 꽹과리와 북 및 장구의 다양한 연주기법인 가락, 상모꾼과 무동(舞童)이 움직이면서 만들어가는 진(陳)풀이가 있다. 발림은 화려한 발놀림, 머리에 쓴 상모를 돌리는 상모놀음과 소고(버꾸)치기, 여성복장을 한 무동(舞童)들의 춤사위 등이고, 가락은 꽹과리의 상쇠와 부쇠, 장구, 북의 다양한 연주기법이 위주인데 징은 거의 강박에만 연주된다.
진풀이는 단원들이 줄을 맞추면서 진을 만들고 풀어나가는 것을 말하는데 원진(圓陣), 방울진, 오방진(五方陣) 등이 있고 지방의 특색을 나타내는 독특한 진풀이도 있다.
여기에 흥을 돋우기 위한 잡패(端役)도 있는데 대체로 영감님이나 귀신 등의 가면을 쓰고 장죽(長竹-긴 담뱃대)을 휘두르며 가락에 맞춰 진(陣) 바깥을 돌면서 관객들과 어울리며 덩실덩실 춤을 추는 사람을 일컫는다.
<1> 사물(四物)의 기원
불교의 사물 = 법고(法鼓) / 목어(木魚) / 운판(雲版) / 범종(梵鐘)
농악(農樂-風物)에서 사용되는 주요 악기인 ‘꽹과리, 징, 장구, 북’을 사물(四物)이라고 하는데 모두 타악기(打樂器)로 다양한 리듬을 연주한다. 그러나 가락악기인 날라리(太平簫)가 연주되고 지방에 따라서는 기다란 대롱 모양의 악기로 ‘뿌억~’ 하는 소리가 나는 나발(喇叭)이 연주되는 곳도 있었다.
그런데 이 사물(四物)은 원래 불교(佛敎)에서 사용하는 악기를 나타내는 말로 지금도 큰 사찰에는 모두 갖추어져 있는데 ‘범종(梵鐘), 법고(法鼓), 목어(木魚), 운판(雲板)’의 네 가지가 그것이다.
쇳물을 부어 만든 범종(梵鐘)은 죽은 영혼들인 명부중(冥府衆), 가죽을 씌워 만든 북인 법고(法鼓)는 현세의 모든 생명체인 세간중(世間衆), 나무로 물고기 형상을 깎아 만든 목어(木魚)는 온갖 물속(水中) 생물들인 수부중(水府衆), 철판을 구름처럼 잘라 만든 운판(雲板)은 공중을 날아다니는 날짐승인 공계중(空界衆)으로, 모든영혼들을 제도(濟度)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제도(濟度)는 불교 용어로, 모든 중생을 고해(苦海)에서 구제하여 열반(涅槃)의 언덕을 건너게 한다는 뜻이다.
목어(木魚)를 연주하는 방법은 연주자(打者-스님)가 채 두 개를 들고 구멍이 뚫려있는 물고기의 배 부분 속에 머리를 들여놓고 채를 넣어 몸을 한 바퀴 빙~ 돌면서 두드려 연주하는 방법이다.
<2> 범패(梵唄)와 바깥채비 소리
스님들의 범패(梵唄) 공연 / 목탁(木鐸) / 징 / 태평소(太平簫) / 요령(搖鈴)
중요한 불교의식에서 공연되는 범패(梵唄)는 ‘인도(印度)소리’라고도 부르는데 스님들만의 공연으로 굉장히 복잡하고 배우기가 매우 어렵다고 하며, ‘안채비 소리’와 ‘바깥채비 소리’가 있는데 비교적 단순한 몸짓이다.
안채비소리는 불경 독송에 리듬과 약간의 고저를 넣어 부르기가 비교적 쉽지만 바깥채비 소리는 홋소리와 짓소리가 있는데 내용이 한문이나 범어(梵語)의 사설로 되어있고 복잡하여 익히기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1964년),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 대웅전(寂光殿) 상량식에 갔다가 범패(梵唄)를 처음 보고 크게 감동했었다.
이 범패에 사용되는 악기도 사물(四物)이라고 했는데 ‘목탁(木鐸), 징(澄), 태평소(太平簫), 요령(搖鈴)’이다.
목탁(木鐸)은 목어(木魚)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돗자리 위에 놓고 치는 대형 목탁, 동그란 손잡이를 들고 치는 작은 목탁이 있는데, 물고기(木魚)는 눈을 감지 않는 생물로 경각심(警覺心)을 의미한단다.
목탁과 비슷한 것으로 요령(搖鈴)도 있는데 손잡이를 잡고 흔들면 속에 혀(舌)가 부딪혀 소리가 나는데 혀를 쇠로 만들면 금탁(金鐸)으로 무사(武事)에 사용되었고, 혀가 나무면 목탁(木鐸)이라 하였으며 둔탁한 소리가 나는데 문사(文事)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커다랗게 만든 대(大) 목탁은 공양(供養:식사시간)을 알릴 때 길게 한 번 치고 스님들이 모여 공동으로 작업하는 시간을 알릴 때 길게 두 번, 불경(佛經) 학습이나 입선(入禪) 때에는 길게 세 번을 친다고 하는데 길게 치는 방법은 세게 치다가 차츰 작게 치면서 소리가 잦아들게 연주하는 방식이다.
손에 들고 치는 작은 소(小) 목탁(휴대용)은 염불(念佛)을 외면서 사찰을 도는 도량식(道場式)이나 불경을 욀 때, 또는 기도를 올릴 때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도구이다.
한 가지 덧붙이면, 풍물단이나 두레패의 공연에서 전체의 연기를 총지휘하는 사람은 꽹과리를 치는 상(上)쇠인데 꽹과리 소리가 굉장히 날카롭고 째지는 듯 고음을 내어 수(♂) 꽹과리라고 하며, 모양은 같지만, 소리가 낮고 부드러운 꽹과리는 부(副)쇠로 암(♀) 꽹과리라고 하는데 중후(重厚)한 소리를 낸다.
꽹과리는 예전 ‘소금(小金)·매구·쇠’라고도 불렀는데 소리가 날카롭게 꽹꽹 난다고 꽹매기라고도 불렀다.
상쇠(수꽹과리)와 부쇠(암꽹과리)를 함께 치면 모양은 거의 같지만 묘한 조화를 이루는데 이 둘을 함께 부르는 말로 짝쇠라고 하였다.
꽹과리의 연주방법은 왼손에 들고 왼손가락으로 안쪽을 눌러 소리를 막고 손가락을 떼어서 소리를 열어 울림을 조절하며, 오른손에는 단단한 나무로 깎은 채로 쳐서 다양한 리듬과 음색을 표현할 수 있다.
또 북춤과 장구춤도 볼만한데 화려한 연주기법(장단)과 덩실거리며 추는 춤은 절로 흥이 나고, 특히 일어서서 덩실덩실 춤을 추며 치는 연주를 ‘설장구 춤’이라고 했는데 특별훈련을 했다. 다음은 소고(벅구)를 들고 벙거지를 돌리는 상모꾼, 상모 끈 길이가 12발이나 된다고 하여 12발 상모를 돌리는 ‘열두 발 상모’, 머리에 고깔을 쓰고 여성복장 차림으로 춤을 추는 ‘무동(舞童)춤’ 등으로 공연이 진행된다.
풍물단(농악대)의 연주내용은 지방마다 상당한 차이가 있는데 영남(嶺南)·호남(湖南) 지방은 주로 진(陣)풀이나 개인기를 펼치는 내용이 많지만, 영동지방(강릉농악)은 씨뿌리기, 모심기, 김매기, 추수하기.... 등 주로 일 년 농사의 과정을 차례로 연기하고 마지막에는 뱃놀이 등으로 마무리된다.
사물놀이를 현대판으로 재해석하여 춤이나 진풀이 등은 생략하고 네 가지 악기(꽹과리, 징, 장구, 북)만으로 앉아서 다양한 가락을 연주하는 것이 ‘사물놀이’인데 한때 ‘김덕수 사물놀이단’이 크게 인기를 끌었고, 전 세계를 돌며 공연을 하여 엄청난 호응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