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시험의 바람직한 방향/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지나치게 긴 지문·방대한 범위·암기형 문제 지양해야"
로스쿨협의회 '변호사시험 바람직한 방향' 토론회
쟁점파악 시간 길어지면서 법적 추론과정 적기 힘들어
판례가 암기 대상돼서는 안 돼…형사법 범위는 축소를
"자격 아닌 선발시험 되는 한 공교육은 파행 불가피" 공감
서울에 있는 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재학중인 A씨는
내년 초 시행되는 제4회 변호사시험 응시를 준비하고 있다.
책상에 올려놓은 전자시계는 A씨의 필수품이다.초단위로 시간을 확인하면서
한 문제당 글자수가 700자가 넘는 긴 지문을
최대한 빨리 읽어내는 훈련을 하고 있다.
주요 판례는 달달 외워 슬쩍 보기만 해도 골라낼 수 있을 정도다.
헌법과 행정법같은 공법과목은
사설학원에서 만든 요약본을 암기하는 것도 필수코스다.
어짜피 고득점이 어려운 공법은
면과락만 하면 '선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3학년 2학기가 될 때까지 최대한 뒤로 미룬 과목이다.
로스쿨에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학부전공을 살려
국제거래전문 변호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재학 중 관련 과목을 충실히 공부해본 적은 없다.
비법학사인 A씨는 재학 내내
최대한 변호사시험 주요과목을 수강하려고 애썼다.
변호사시험을 앞두고 로스쿨 안팎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합격률이 급격히 낮아지면서 변호사시험이
사법시험보다 더 어렵다는 말까지 나온다.
로스쿨생들은 "학교 수업만 따라가면서
방대한 수험과목을 소화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입을 모은다.
그 여파로 법조계에서는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이라는
로스쿨 도입 취지가 무너지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가 5일 제주도 오션스위츠 호텔에서 개최한
'변호사시험의 바람직한 방향' 토론회에서
지원림(56·사법연수원 17기) 고려대 로스쿨 교수가
'민사법' 부분 개선방안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속독왕', '고시학원생' 뽑는 시험이 로스쿨 제도 근간 해친다"=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이사장 신영호)는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5일 제주도 오션스위츠 호텔에서
'변호사시험의 바람직한 방향'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정재황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 지원림 고려대 로스쿨 교수,
전지연 연세대 로스쿨 원장이 발표자로 나섰고,
김대환 서울시립대 로스쿨 교수 등
변호사시험 주요 출제위원들이 토론에 참가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변호사시험이 지닌 문제점으로
△ 문제풀이 시간 대비 지나치게 긴 지문
△ 3년의 교육기간에 비해 너무 방대하고 복잡한 시험 범위
△ 지엽적인 논점의 출제
△ 지나친 판례 의존도
△ 선택형(객관식) 시험과 기록형 시험의 분리 시행 필요성 등을 지적했다.
[총 글자수/1문항 당 평균 글자수/총 시험지면수]
정 교수는 "변호사시험이 경쟁시험이 되면서
기본적인 법리교육이 부실해지고 있다"며
"사법시험처럼 사교육에 의존하면서
교육과정과 시험이 유기적으로 연계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 교수는 "변호사시험은
응시자 대다수를 합격시키는 시험이 돼야 한다"며
"이대로는 판례의 암기 정도를 측정하는
수험법학이 돼버리고 만다"고 했다.
◇ 문제 지문, 시험범위, 판례의존도 줄어드나=
토론자들은 공부과정과 시험 때 시간에 쫓겨서는
법적 사고능력, 즉 '리걸마인드'를 형성하기가 어렵다면서
출제기준을 수정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최환주 전남대 로스쿨 원장은
"사실관계 및 쟁점파악 시간이 길어지면서
판례에 따른 결론만 적게 되고
결론에 이르게 된 법적 추론과정을 적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판례 입장에 따라 답하는 문제가 많은 것도
개선해야 할 문제로 꼽혔다.
지 교수는 "성문법주의를 취하는 우리나라에서
판례는 원칙적으로 보조적인 지위를 가질 뿐인데,
판례가 숭배 와 암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개념의 정확한 이해를 기초로
법적 추론능력을 필요로하는 문제를 출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기춘 부산대 로스쿨 교수는
"요지를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판례의 본문을 읽고 분석하며 비평하는 학습이 필요하다"며
"다수의견, 소수 반대의견, 보충의견의 대립이 있는
중요 판례에 관한 사례적 접근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기록형·사례형 시험시간·응시기간 변경도 검토=
시험 범위에서 특별 형법 등을 제외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전지연 원장은 "사법시험보다 더 실무지향적인 내용을 평가하는
변호사시험의 특성상
형사소송법과 형법을 결합한 문제가 나오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특별 형법까지 객관식 문제로 출제하는 것은 범위가 너무 넓다"며
"사실상 형사법의 모든 영역을 시험범위로 하기보다는
범위를 축소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선택형 문제와 기록형 문제를 분리해
시험을 따로 치러야 한다는 의견도 다수 나왔다.
조기영 전북대 로스쿨 교수는
"사례형 시험은 선택형에 비해 학습 범위는 좁지만
쟁점을 정확하고 깊이 있게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스럽기 마련이다"며
"3학년 1학기 여름 방학 마지막 기간에
선택형 시험을 치르게 한다면
로스쿨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운영하면서도
학생들의 수험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 합격자 발표 앞당기고, 응시장소 전국으로 확대해야=
변호사시험 합격자 발표 시기를 앞당기는 방안에 대해서도
토론이 이어졌다.
그동안 로스쿨생들은 1월 초에 시험에 응시한 후
4월 중순 합격자발표가 있을 때까지
3개월 이상 합격 여부에 대한 불안감을 지닌 상태에서
보내는 것이 가혹하다는 불만을 꾸준히 토로해왔다.
조 교수는 "취업준비에 몰두할 수 없게 하고
혹시라도 불합격했을 경우 다음 시험을 준비하는 데에도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며
"채점위원들의 합숙채점을 의무화한다면
채점기간을 단축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 협의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70%가 넘는 학생들과 교수진들이
시험장소를 최소한 5대 권역 이상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응답했다"며
"시험 당일의 컨디션을 좌우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인 만큼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자격시험' 본분에 충실해지는 것이 해법=
토론회 참석자 대부분은 변호사시험이
자격시험이 아닌 선발시험이 되는 이상
공교육 파행이 불가피하다는 데 동의했다.
김인재 인하대 로스쿨 교수는
"변호사시험법 제1조에서 변호사시험을
변호사에게 필요한 직업윤리와 법률지식 등
법률사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검정하기 위한 것으로
의의를 밝히고 있다"며
"비교적 어렵지 않게 합격할 수 있는 자격시험이 되는 것이
제도에 취지에 부합하다"고 말했다.
그는 "낮은 합격률과 과도한 시험 부담으로
변호사시험이 선발시험화 되면서
법학전문대학원 교육과정이 파행적으로 운영될 것은
다들 예견한 것"이라며
"다양한 분야의 법률전문가를 양성한다는 취지를 새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나온 제안들은 당장 내년 초 실시되는
제4회 변호사시험 출제 과정에서부터 일부 반영될 예정이다.
<제주=홍세미 기자>
홍세미 기자 sayme@law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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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시험방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