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삭과 박해경의 이팝나무 소재로 창작된 동시에 대한 소고
이동호(시인)
김해 신천리 이팝나무/ 김이삭
올해도 쌀밥 지어
한 상 가득 신천리 마을 먹이시던 이팝나무 할머니
그 푸짐한 인심 소문이 자자해요.
600년 동안 상 차리는 일 고되지도 않은지
삐거덕 에구구 다리야 하시면서도 쌀밥 차리시네요. |
이팝나무/박해경
신전리 이팝나무 할머니 내년에도 꽃 피울 수 있을까? 걱정하며 바쁘게 움직입니다.
오랜 세월 보내느라 마른 가지 삐걱거리지만,
올해도 쌀밥 지어 공기에 담아 한 상 가득 신전리 마을에 차려 냅니다. |
시에서의 언어나, 표현의 ‘발견’은 시인들에게 큰 기쁨이자 선물이다. 누가 먼저 참신한 소재를 선점하느냐에 따라 일부 기득권을 인정해 준다. 이를 인정하는 뜻으로 주를 달아 인용의 출처를 밝힌다.
그러나 시를 쓰는 시인들의 수가 많아지면서 소재의 선점을 두고, 누가 먼저 ‘발견’했느니, ‘표절’이라는 둥의 말을 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한 시인이 평생토록 수백 편에서 수천 편의 시를 쓰면서 소재로 다뤄왔던 것들은 늘 우리가 살아오던 주변의 것들이기 때문이다.
시를 쓰다 보면 주변에서 글감을 얻게 된다. 집이라든지, 창문, 형광등, 부엌, 가족, 화분이나, 꽃, 나무, 하늘, 사랑, 우정, 텔레비전, 비 오는 거리, 거리를 걷는 사람들, 가로수, 해와, 구름, 바다, 우주, 꿈 등으로 얼마든지 확대된다.
같은 소재를 글감으로 형상화한 다른 시들이 한해에도 얼마나 많이 발표되고 있는지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같은 소재를 시로 썼다고 표절이라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같은 소재를 통해 얻게 되는 영감은 시인들마다 다양하고, 이를 풀어내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그러나 시를 오래 쓰다 보면, 소재를 시적으로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선별되는 시어들이 겹치게 되는 경향이 자주 발생한다. ‘이팝나무’는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이고, 봄과 여름 사이를 화려하게 꽃피우는 이팝나무꽃은 시적 소재로 매우 유용하여 수많은 시인들의 시적 소재로 차용되었다.
이팝나무를 통해 형상화했던 시상들의 공통 분모는 ‘쌀밥’이고 ‘밥상’이며, 푸짐하게 차려놓은 ‘고봉밥’이다. 은유의 원관념은 밥을 짓는 여성성일 수도 있다. 그 나무가 오래되었을 경우는 필연적으로 ‘할머니’가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차려놓은 푸짐한 밥상처럼 그려질 수 밖에 없으므로 새로울 것이 전혀 없다.
2024년도 같은 경북 지역에서 비슷한 시기에 일간지에 발표된 두 시를 비교해 보아도 분명해 진다.
(1)
고소한 뜸 냄새를 풍기며 변함없는 밥솥이
더운 김 뿜는 아침
동구 밖 이팝꽃 흐벅지게 피었다
고봉으로 밥 먹은 사람 드문 시대 고봉으로 피었다
구름이 퍼먹고 바람이 퍼먹고 못자리가 퍼먹고 나도
하얀 쌀밥꽃 남아돈다, 남아도는 쌀밥꽃 길가에 수북 떨어졌다가
자동차에 뭉개지고 수챗구멍으로 날아 들어간다
팅팅 불은 밥풀들, 쌀이 남아돈다
-이해리 [이팝꽃 그늘] 중에서/ 24년,5월 12 경북일보
(2)
이팝나무 풍성한 인심이 새들을 불러 모은다 올해도 어김없이 고봉밥 지어놓고 한 상 아낌없이 내놓자 적막강산 심심한 풍경이 왁자해진다 봄 햇살에 졸다가 새소리에 잠 깬 고양이가 눈 크게 뜨고 지켜보다 먹잇감 낚아챌 기회를 노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새들은 식사 중! 지금 아니면 맛보지 못할 겨우내 길어 올린 물로 갓 지어낸 새봄의 정갈한 한 끼,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바람과 햇빛으로 차려 낸 자연의 상차림 앞에 나도 옷깃 여미고 다가가 물 한 잔 내밀어 본다
-최춘희 [새들은 식사 중]에서/ 24년 4월 29일 경상일보
이팝나무의 형상을 보면 푸짐하게 퍼둔 ‘고봉밥’이 떠오른다. 나무가 ‘쌀밥’을 한 상 푸짐하게 차린 것을 보면, 한 술 크게 떠서 먹고 싶어진다.
시적 이미지는 가족에 대한 사랑을 일깨우거나 아련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을 위한 동정심에 가닿기도 한다. 또는 아래의 (3)과 같이 ‘두레 밥상’의 이미지로 차용되어 상 앞에 둘러앉아 밥 한 끼 함께 하면서 모르는 사람들도 ‘밥정’이 들게 한다.
(3)
청계천이 밤새 별 이는 소리를 내더니 / 이팝나무 가지에 흰쌀 한 가마쯤 안쳐놓았어요
아침 햇살부터 저녁 햇살까지 며칠을 맛있게 끓여놓았으니
새와 벌과 구름과 밥상에 둘러앉아 / 이팝나무 꽃밥을 나누어 먹으며 밥정이 들고 싶은 분
오월 이팝나무 꽃그늘 공양간으로 오세요 / 저 수북한 꽃밥을 혼자 먹을 수도 없지요
연락처는 이팔이팔에 이팔이팔
-공광규 2013년 [이팝나무꽃밥] 시집 속에서/ 창비
(4)
‘쌀 한톨 나지 않는 서해 어느 섬마을엔 늙은 이팝나무가 한 그루 있지요./ 오백여년 전 쌀밥에 한이 맺힌 이 마을 조상들이 심었다는 나무입니다. … 해마다 오월 중순이면 이 마을 한복판엔/ 어김없이 거대한 쌀밥 한 그릇이 고봉으로 차려집니다. 멀리서 보면 흰/ 뭉게구름 같지만 가까이서 바라보면 수천 그릇의 쌀밥이 주렁주렁 열려/ 있으니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지요. …’
- 김선태 시인(목포대 교수)이 [그 섬의 이팝나무]
이팝나무를 소재로 한 작품들은 이루 셀 수 없을만큼 많다. 이팝나무꽃을 ‘쌀밥’으로 차용한 시들은 부지기수다. 김이삭과 박해경의 앞선 두 편의 동시도 그중 한 개일뿐이다.
이팝나무는 김해 신천리에도 있고, 양산 신전리에도 있다. 대구 신천동에도 피고 필자의 동네에도 때가 되면 화려하게 꽃핀다.
김이삭과 박해경의 두 동시는 두 시만 비교하면 같은 소재와 비슷한 지역명에서 비롯된 표절 시비가 발생할 수 있으나, ‘이팝나무’를 ‘쌀밥’의 이미지로 형상화한 대부분의 시들과 비교하면, 비슷한 부류의 작품 군에 속할 뿐 누군가의 지적 재산권을 주장할 근거가 성립되지 않는다.
박해경 시인의 시가 선발표되었다고 하여 김이삭 시인의 시에 대한 기득권을 요구한다면, 박해경 시인 또한 기 발표된 다른 시인들의 이팝나무를 소재로 한 시에 대한 해명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팝나무는 그 꽃이 쌀밥을 닮았다고 하여 ‘이팝’, 곧 쌀밥나무라고 부른다. ‘이팝’은 ‘이밥’의 속음이라고 한다. 이 ‘이밥’은 ‘이(李)씨의 밥’이라는 의미로, 벼슬이나 해야 이씨 왕으로부터 하사받은 쌀밥을 먹을 수가 있어, 쌀밥을 이밥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팝나무는 5월에서 6월에 꽃이 피는데, 그 꽃이 많이 피면 풍년이 들고, 꽃이 적게 피면 흉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다. 꽃이 흰 쌀밥을 닮았기 때문에 생겨난 이야기일 것이다.
시인들도 공부가 필요하다. 좀 더 많은 시를 읽어야 하고, 어휘 공부도 해야 한다. 좀 더 세상을 넓게 보고 다양한 사고를 통해 아집을 벗어던질 수 있다.
시에서 몇 개의 언어가 겹친다고 하여 표절 운운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김이삭 시인의 시는 박해경 시인의 시를 표절한 것이 아니라 과거에 발표된 자신의 시를 모티브로 삼은 듯 보인다.
(5)
올해도
통 큰 이팝나무 할머니
무료 급식소 차렸다
-어여 와
어여 와
배고픈 벌 나비
먹고 가라고
가지마다
쌀국수 한타래씩
말아놓았다
-김이삭 [이팝나무 꽃국수] 2012년 발표
이 시를 중심에 놓고 발표 시기를 따지면, 박해경 시인은 거꾸로 김이삭 시인에게 표절에 대한 해명을 해야 한다. 좀더 나아가서는 앞서 발표된 이팝나무를 소재로 사용한 시인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찾아다니며 무례를 용서 받아야 한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시를 쓰다 보면, 같은 소재를 같은 이미지로 풀어내는 경우가 많다. 이팝나무는 이제 사은유이다. 이팝나무를 소재로 시를 써본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새로울 것도 없는 소재가 논란의 여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이럴 시간에 남들이 손대지 않은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시인의 사명이다. 두 사람은 시인의 사명에 보다 충실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