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을 보러 양복을 차려입고는 ‘첸트로 스토리코’로 향한다. 밀라노의 유명한 명품패션 거리인 몬테 나폴레오네(Via Montenapoleone) 그리고 스칼라 극장(Teatro alla Scala), 대성당 두오모(Duomo)까지 이어지는 권역을 흔히 첸트로 스토리코(Centro storico) 즉, 역사 중심지구라 부른다. 행정적으로는 1권역(Zona 1 di Milano)이라고도 한다. 밀라노 또한 세계적인 대도시여서 거대빌딩이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쭉쭉 올려놓고 있지만, 사실 그건 밀라노에 살며 그곳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진짜 밀라노 사람들(밀라네제, Milanese)이나 느낄만한 일이고, 우리 같은 여행자들은 주로 첸트로 스토리코 주위를 맴돌게 된다.
토박이 밀라네제들은 강한 자부심을 담아 이야기한다. ‘첸트로의 스카이라인은 19세기나 지금이나 똑같다’라고. 그러니까 우리는 주세페 베르디가 수많은 명작 오페라를 쏟아냈던 천팔백년대 후반이나, 마리아 칼라스가 스칼라 극장의 프리마 돈나로 이 도시를 뒤흔들어 놓았던 20세기 중반 시절의 밀라노와 똑같은 모습의 하늘을 지금도 올려다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바쁘게 돌아가지만 동시에 은근히 시간이 멈춘 듯한 이 도시의 깊은 매력에 젖어, 첸트로의 최고 카페인 코바(Cova)에서 1유로에 에스프레소 한 잔을 넘겨본다(아, 이렇게 맛있을 수가!). 길거리를 터벅터벅 걷고 있는데, 왠 이태리 여자 세 명이 나를 잡아 세운다. 밀라노의 무슨 패션학교 학생들이라는데 리포트용 현장 서베이를 하고 있다나 뭐라나.
“별 다섯 개 특급호텔들만이 가진 ‘익스클루시브 exclusive'한 장점에 대해 이야기 좀 해주세요?”
(어, 나 지금 별 두 개짜리 다락방에서 자는데...)
한참을 뭔가 되지도 않은 영어로 버벅거리다가, 그래도 서로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해야지 싶어 저 앞의 한 호텔을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저기 그랜드 호텔....처럼 전통과 품격이 느껴지는 깊은 세련미야말로 진정 밀라노다운 특급호텔의 멋이 아닐까요. 아르마니, 트루사르디, 프라다, 구찌 등등 여기 밀라노에 카페와 호텔을 차려놓은 수많은 고급 브랜드들이 있지만 거기는 왠지 가고 싶지 않네요. 괜실히 뜨내기 미국 관광객이나 된 기분이랄까.”
말도 안 되는 내 설명에 이들은 괜한 만족감을 표하며 나를 포옹까지 해주고는 돌아갔다. 아, 그래 그랜드 호텔. 여기는 정말 지갑을 열어서라도 묵을 만한 멋진 곳 아닌가. 몬테 나폴레오네 쪽에 붙어 있다지만, 주소는 만초니 거리(Via Alessandro Manzoni) 몇 번지로 나오는데, 롬바르디아 최고의 대문호이자 후일 베르디가 <레퀴엠>을 헌정한 바로 그 대작가 알레산드로 만초니의 생가가 주변에 있기 때문이다. 이 최고급 호텔은, 가장 비싼 호텔이 가장 안락한 것은 아니라는 유럽적인 가치를 대변하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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