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 6. 26. 05;00
예봉산 위 하늘이 유난히 빨갛다.
아침노을이 지었으니 비가 오면 이 가뭄에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될까.
오늘 산행을 못해도 좋으니 가뭄을 해결해줄 많은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
신문과 Tv 방송을 보면 짜증이 나고, 신나는 일도 재미나는 일도 없는 진부한
일상의 연속이다.
간밤의 술자리에서 옛 직장동료, 선배를 만나 과거를 회상한다.
뜻밖에도 많은 선배와 동료가 저세상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으며 인생의
덧없음을 느낀다.
한동안 세상사의 번거로움에서 벗어나고자 동우회에 가까이 하지 않았는데,
머릿속에서 잊었던 사람들, 인연이 많았던 사람들을 생각하며 얼굴은 한잔 술에
점점 불콰해졌지.
10;20
지난겨울에 오르려 했던 마대산(馬垈山 1052m),
담당 공무원이 겨울에 마대산 산행은 위험하니 오르지 말고 여름에 오르라고
권유한 마대산 자락에 들어선다.
충북 단양과 경계선에 있는 영월 김삿갓면의 마대산은 희대의 시선(詩仙)이었던
김삿갓(김병연)의 자취가 그대로 남은 곳이다.
썰렁한 관광안내소에는 여직원 혼자 지키고 있고, 일반 관광객이나 산객은 우리
일행이외엔 단 한명도 없다.
나는 가끔 김삿갓의 절묘한 시(詩)를 읽을 때마다 감탄을 한다.
유머와 해학(諧謔)이 깃든 풍자시(諷刺詩)는 너무 절묘해 마치 하늘의 시선(詩仙)이
김병연의 몸을 빌려 이 세상에 내려온 듯하다.
김병연은 1807년 양주에서 출생하였으니 불과 2백년 전 사람이지만 염치(廉恥)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다섯 살 때 홍경래의 난(亂)이 일어났고, 당시 선천부사였던 조부(祖父) 김익순은
홍경래에 항복하였다가 난이 평정된 후 처형당한다.
김병연의 어머니는 집안이 풍비박산으로 폐족이 되자 가족을 이끌고 영월 와석리 깊은
산중에 들어가 숨어살게 되는데,
아들 김병연이 20세 되던 해, 1827년 열린 영월 동헌의 백일장에서 할아버지인 김익순의
죄상을 비난하는 글을 지어 장원을 한다.
장원을 한 후 어머니로부터 조상과 집안내력을 듣고, 역적의 자손이라는 것과 할아버지를
욕하는 시를 지어 상을 탄 자신을 스스로 용서를 할 수가 없었고,
하늘 보기가 부끄러워 고개조차 제대로 들지 못하던 그는 22세의 나이로 처자식과
어머니를 두고 방랑의 길을 떠난다.
삿갓으로 하늘을 가린채 세상과 인간사를 비웃으며 정처없이 방랑하던 그는 전국
방방곡곡에 발자취를 남기고, 57세 때인 1863년 전라남도 화순 땅에서 객사하여 차남이
이곳 영월 와석리 노루목에 모셨다는 기록이 남았다.
"二十樹下三十客 四十家中五十食 이십수하삼십객 사십촌중오십식
人間豈有七十事 不如歸家三十食 인간기유칠십사 불여귀가삼십식"이라는 시비를 읽는다.
스무나무 아래의 서러운 나그네에게 망할 놈의 집에선 쉰밥을 주는구나.
인간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으랴, 차라리 집에 돌아가 선 밥 먹음만 못하리.
함경도 어느 부잣집에서 걸식을 하다 냉대를 받고 나그네의 설움을 표현한 시(詩)라는데,
이 시에서 스무나무란 신작로에 이정표로 이십리(二十里)마다 심은 시무나무를
말하는 것 같고, 오리(五里)마다 심은 오리나무는 등장하지 않는다.
홍경래에 조부가 당하고 나라에서 폐족이 된 김병연,
길에서 길로, 마을에서 마을로 바람처럼 떠돌며 기행과 파행의 연속이었던 그의 삶을
따라 오늘은 나도 김병연이 되어 마대산을 오르는 거다.
본인의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어머니와 처자식을 버리고 유리걸식을 한 김병연,
요즘 잣대로 따지자면 엄연(儼然)히 가족에겐 무능력자이자 무책임한 가장이지만
나이 20에 시선(詩仙)이 될 정도였으니 그의 스승은 누구일까,
그는 독학으로 시선의 경지에 오른 걸까, 아리송하여 자료를 찾아도 시원하게
답을 주는 자료가 없다.
옛날 이 마을에서 태어난 아기장수가 힘자랑을 하기위해 집채만한 바위를 들어서
작은 바위 위에다 올려놓았다는 전설의 '든돌'이 이 바위인가,
지나는 마을사람이라도 있으면 물어볼 텐데 아무도 없는 적막강산이라 확인할 수가 없다.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 흰구름 뜬 고개 넘어 가는 객이 누구냐♬♪"
오래전 가수 명국환이 부르던 노래를 흥얼거린다.
10;33
김병연의 주거지와 묘역이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온다.
자료에 북쪽 사면이 남쪽 사면에 비해 약간 험하다고 하니 일단 남쪽 방향으로 1.4km의
김병연 주거지를 거쳐 정상에 올랐다가 처녀봉을 들리고 김삿갓의 묘역 방향으로
하산하기로 결정을 한다.
마대산의 등산지도를 보니 뾰족한 봉우리와 기골이 장대한 능선, 그리고 계곡의 깊이로
보아 오름길이 만만치 않겠다.
사방이 1000m급의 덩치가 큰 산인데 워낙 극심한 가뭄 탓인지 어둔이계곡에 물이
흐르지 않는다.
말라버린 계곡이라 물 흐르는 소리는 기대하지 않지만 의외로 새소리도 별로
들리지 않는다.
낯선 이방인 여럿이 나타나 산새들도 경계를 하는 모양이다.
큰까치수염이 필 준비를 마쳤다.
깊은 산속에 들어오니 '긴잎별꽃'도 만난다.
김병연도 이곳에 살 때 야생화에 관심이 있었을까,
김병연의 자연에 관한 시로는 함흥으로 가는 길에 들린 황별감댁에서 금강산을
노래했던 시가 겨우 생각난다.
'조등입석 운생족~~송송백백 암암회(松松白白 岩岩廻) 수수산산 처처기(水水山山
處處奇)'라 소나무 잣나무 바위는 돌고 돌아, 물도 산도 곳곳이 기묘하도다.'라는 구절만
기억하니 그의 시집을 조만간 구해야겠다.
요즘 눈이 많이 피곤하다.
안과주치의 말로는 눈 관리가 잘되고 있다고 하는데, 독서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짧아진다.
그동안 30분 이상까지도 책을 읽었는데 최근엔 15분을 넘기지 못하고 책을 덮는다.
황반변성이라는 병은 고칠 수 없어 참고 살 수밖에 없겠지만 김병연의 시집은
읽을 수 있으리라.
이무기가 살고 있을만한 소(沼)를 내려다보며 자연의 소리를 들으려 귀를 기우린다.
콩과의 '고삼(苦蔘)'이 피면 여름에 본격적으로 접어든 건데 매미소리도 들리지 않으니
특이한 계곡이다.
어쩌면 숲과 계곡은 숨을 죽이고 죽장에 삿갓 쓴 김병연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돌나물'의 노란꽃잎에서 퉁겨진 햇살은 시리도록 맑다.
산길을 걷는다는 것은 삶의 여백(餘白)을 만드는 거다.
빛나는 숲속의 야생화를 보며 어둔이 계곡의 안으로 들어갈수록 풍경의 깊이는
더해진다.
수줍어 하는 초롱꽃을 보니 눈이 부셔 계속 보면 눈이 멀 것만 같다.
초롱꽃을 카메라에 담으며 잠시 눈을 감았다가 주위에 금강초롱이 있을까 두리번거리다
포기를 한다.
11;09
김삿갓 생가에 도착한다.
김병연의 생애 대부분은 가출사건을 중심으로 구성된 설화들이 유포되었다.
김병연이 시골 백일장에서 조부 김익순을 모르고 매도하는 시를 지어 장원을 하였다고
전해지지만 작가 이문열은 <시인>이라는 저서에서 그와 같은 설화를 전면 부정한다.
김병연은 자신이 김익순의 친손자임을 잘알고 있었고, 시제(詩題)를 본 순간 치열한
내면의 갈등을 겪다가 그 유명한 매도의 시를 썼고, 형 병하에게 사실을 고백하고 1년 후
어머니의 권유로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는 거다.
하지만 당시 사회의 혼탁상, 부패상으로 인해 깊은 좌절 속으로 빠져들었기에
김병연은 체제를 걷도는 방랑시인이 된 거라고 이문열 작가는 새로운 해석을 하는데,
김삿갓은 이곳 초막에서 4년 정도를 살며 결혼도 하고 자식을 둘이나 낳았는데
스물두 살에 가출을 해 뜬구름으로 살다가 쉰일곱에 전라도 동북에서 죽었다.
두고 온 아내, 남겨진 어린자식들이 눈에 밟혔을 텐데,
길에서 길로 떠돌며 집이 그립지도 않았을까.
가장의 책무을 유기한 사람으로서 상심과 가책은 얼마나 많았을까,
그래도 김병연은 염치(廉恥)를 아는 사람이었다.
염치(廉恥)란 말의 사전적인 의미는
'체면을 생각하거나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라 했다.
나는 염치를 모르는 사회에서 벗어나 염치를 아는 세상에 들어왔다.
지금 세속에선 염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세상의 권력을 잡고 마구 주무른다.
최근 삼척항에 입항한 북한 목선(木船)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사건 초기와 이후 군 당국과 관계부처의 발표가 달라 온갖 의문과 논란을 초래 하더니
경계 작전 실패를 책임져야할 국방장관이 자기 책임은 회피하고 부하들을 문책하겠다는
황당한 기자회견을 보며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군의 기강 해이가 있다면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과,
군령권(軍令權)과 군정권(軍政權)을 가진 국방장관이 책임을 져야하는 게 아닌가.
며칠 전인 6월 14일에는 검찰과거사위원회 활동에 대한 자체 평가 브리핑을 하며
장관이 취재진의 질의에 응답하지 않겠다고 하자, 기자들이 취재를 거부하고 징관
혼자서 일방적인 보도자료 만 읽고 퇴장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졌다.
이 사람은 비행기내에서 국내문제를 질문 받지 않겠다는 대통령을 흉내 낸 모양이다.
참 염치(廉恥) 없다.
이들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적반하장(賊反荷杖)의 명수인 손혜원은 목포시 근대역사문화공간 재생 활성화를
명분으로 한 투기로 세상을 쥐락펴락했고,
고 장자연의 동료라는 '윤지오'는 TBS의 김어준, CBS의 김현정, JTBC의 뉴스룸을
휘저었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은 희생되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은 아직도 큰소리치며
주위 사람들을 부끄럽게 한다"고 개탄하며 윤지오를 두 번이나 출연시킨 KBS의
김제동이라는 사람은 염치가 있는 걸까.
이들은 박근혜와 최순실을 향해 벌떼같이 덤벼들어 공격한 사람들인데 말이다.
민주당 소속 부산시장, 경남지사, 울산시장은 이미 결정 난 김해 신공항 안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며 가덕도 신공항을 추진한다고 난리법석을 떤다.
전국 9만5000명 이장과 통장의 수당을 10만원씩 올려주겠다는 정부와 여당,
예비타당성 조사 없이 전국 토목사업에 24조원의 국민세금을 퍼붇겠다는
정부와 여당 사람들을 보며 자동차세 등 세금 고지서를 보니 울화통이 터진다.
최저임금 과속 인상, 주 52시간 근무제 강행, 세금으로 만든 가짜 일자리, 노동 편향의
반 기업 정책들이 경제 활력을 꺼뜨리고 일자리를 사라지게 한 정책 실패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오히려 더 강화를 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을 정책실장으로 임명하는
대통령의 얼굴을 보면 역겹다.
2010년에는 익산 남성고에 대해 자사고 자격을 박탈했다가 법원판결로 무산되었는데,
전국에서 손꼽히는 전북 자사고인 상산고를 커트라인을 80점으로 올려 재지정을
취소하는 전북의 교육감,
서울 교육감은 "고교 서열화 해소를 위해 외고·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해야 한다"고
하는데 더 웃기는 건 조 교육감의 장남과 차남 모두 외고를 나왔다는 거다.
자기 자식은 외고 가고, 남의 자식은 안 되다는 황당하고 염치 없는 사람들을 선거를
통해 또 뽑아야 하는 건가.
작년 한해 16조원 세금을 냈고, 가장 세계적이며 한국적 기업인 삼성을 무너뜨리려고
발광을 하는 권력자들에 의해 삼성은 오늘도 수사를 받으며, 미국과 중국·일본의
협공을 받고 있다.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삼성이 사망선고를 받지 않으면 다행이다.
이 사람들은 공부 잘 가르치는 학교는 해체하려 하고,
멀쩡한 원전 없애고,
가뭄, 홍수에 큰 효자 역할을 하고 있는 사대강 보(洑)를 부수려 한다.
민주당은 협력 이익 공유제라는 것을 도입해 대기업을 황금알 낳는 거위로 보고
배를 가르겠다하고,
글로벌 경쟁을 하는 대기업의 곳간을 열어 그 이익을 나눠 먹자면서 세계적인 기업인
삼성을 물어뜯는다.
세금 한푼 지원 없이 좋은 교육의 인프라 역할을 한 자사고를 적폐로 몰고,
9·19남북 군사합의로 스스로 무장을 해제하고,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으로 국가안보를 스스로 팽개치려 하고.
사회 갈등을 봉합해야 할 책임이 있는 대통령이 현충일에 맞지 않는 추념사를 통해
북한 정권을 수립하고 6·25전쟁의 원흉인 김원봉을 국군의 뿌리라고 하며
6월6일 현충일 기념식장에서 죽은 자(者)를 불러내어 산 자(者)들을 어지럽힌다.
국군을 창군(創軍)한 원로이고 6·25전쟁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백선엽 대장을
친일 전범으로 내모는 광복회장,
이 염치없는 사람들은 적폐청산을 명분으로 스스로 적폐를 쌓고 있다.
이들이 쌓는 적폐와 죄업(罪業)을 다음 권력자는 어떻게 처단을 할 것인가.
잘못인 줄 알면서도 음험하게 속내를 숨기고,
하향평준화를 시키려는 못된 심보를 들키지 않으려고 겉꾸미는 사람들,
이들의 속임수는 그럴싸해 보이고, 쓸데없는 말이 현란하다.
희한한 짓을 하면서 고집을 부리고, 잘못을 하고도 인정을 하지 않고 오히려 승진을
시키니 우리나라에 문제가 점점 커진다.
이제 국민들은 이들을 덮어놓고 믿지 말고 살피고 따져보아야 한다.
이들에게 부화뇌동(附和雷同)하면 반드시 후회하고 책임질 일이 생긴다.
믿을 것을 믿고 의심할 것을 의심해야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는 법이다.
김병연의 염치를 생각하다가 요즘 권력자들의 염치와 비교를 해본다.
김병연은 기존 체제의 질서로부터 밀려난 방황자로서 본인의 염치와 진정한 예술의
구현을 위해 험난한 길을 일부로 걸었다.
시(詩) 문학을 잘 모르는 나는 잘알 수가 없지만 그 유명한 '매도의 시'를 한번 더 읽는다.
[ 대대로 이어온다는 나라의 신하 김익순아,
가산군수 정시는 하잖은 벼슬에 불과했지만
너의 가문은 이름난 안동 김씨
훌륭한 집안에 이름도 장안을 울리는 순(淳)자 항렬이로다. ]
11;26
난고당(蘭皐堂) 앞에 흐르는 약수를 마시니 정신이 퍼뜩나고, 달고 찬 물 한잔의
약수는 달아오른 온몸을 식혀준다.
계곡은 말랐고 새소리가 고막을 흔든다.
직박구리가 '뱀무' 위 나뭇가지에 앉아 마구 비명을 지른다.
난고당(蘭皐堂)을 벗어나 산길로 접어들자 뜻밖에도 '미선나무'를 만난다.
진천, 괴산에서 천연기념물로 대접 받는 미선나무를 이곳에서 만나다니 무척이나 반갑다.
미선나무를 짓누르는 부러진 소나무 가지를 치우려다 힘이 들어 포기를 한다.
이 또한 자연의 법칙이라 미선나무는 덮친 소나무 가지를 이겨내고 내년 봄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겠지.
뱀무와 미선나무를 촬영하다 잠시 지체된 나를 친구들이 기다린다.
산행의 즐거움은 무엇일까,
여느 산이든 초행 산행을 할 때 들머리로 들어서면 미지의 산에 대한 설레는 마음이
많이 생기는데 오늘 마대산이 나를 설레게 한다.
또한 된비알을 오르며 고행(苦行)을 해도 마음속으로 즐겁고,
힘든 시간이 지나 정상에 오르면 또 해냈다는 자신감으로 스스로 위로가 되며,
여유롭게 사방을 조망하고 천천히 하산을 하면 즐거움이 배가(培加)가 된다.
초여름의 마대산은 성숙한 여인처럼 싱싱하다.
처음부터 된비알이 시작되고 숨소리는 거칠어진다.
산객들이 많이 찾지 않아 지난가을 떨어진 낙엽이 아직도 수북하게 쌓였고, 물오른
나무들의 몸은 미끈하고 숲에 어리는 향은 상큼하다.
잔등이로 땀이 흐르고, 모자를 쓰지 않았는데도 머리까지 더워진다.
철 계단을 오르며 마대산은 꽤 깊고 큰 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11;50
산길은 구절양장(九切羊腸)으로 이리저리 된비알이 나타나고, 간신히 숨을 돌리는가싶으면
다시 네발로 기어 올라야할 난코스가 나오지만 위험하지는 않다.
또한 길은 외길이라 길을 잃을 일도 없다.
나름대로 잘 설치된 철 계단과 족적이 뚜렷한 등산로를 착실하게 따르면 된다.
평지가 나타나지 않는다.
고개를 숙이고 땅만 보고 올랐더니 고개가 아프다.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고 허파가 밀려나올 듯 가슴이 콩닥거린다.
산길에서 만난 '꼬리진달래나무'를 바라본다.
꽃이 있는 산길은 사람을 가라앉히는 힘이 있다.
코가 땅에 닿을듯한 된비알이지만 힘이 들수록 이상하게 마음이 평온해진다.
단순한 걸음의 반복이 평온을 가져오는 걸까.
일행이왼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오름길에 흔한 고라니도 마주치지 않는다.
거친 숨소리는 팽팽히 당겨진 마음의 긴장감을 허물어뜨리고 신록의 잎을 흔드는 바람이
목덜미를 쓰다듬는다.
굽은 와송(臥松)이 앞에 나타난다.
잠시 걸터앉을까 생각하다가 서서 한참을 바라본다.
이 소나무는 나이가 얼마나 되었을까.
영겁(永劫)의 숲을 지키며 노고가 컸는지 몸을 잔뜩 엎드렸다.
미국의 자이언트쉐콰이어는 5천살에 키는 85m에 이르고 무게는 2천 톤에 가깝다는데,
문득 울릉도 도동항의 2500살로 추정되는 향나무와 정선 두위봉의 1400살짜리
주목나무가 생각난다.
소나무 앞 물푸레나무에 산악회의 리본이 너저분하게 걸렸다.
육송, 해송, 적송, 흑송, 곰솔, 금강송, 황장송, 미인송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진 소나무는
우리 민족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이다.
사람이 태어나 사망할 때까지 1인당 300그루의 나무를 사용한다니 엄청난 양(量)이다
어느 학자가 문명 앞에는 숲이, 문명 후에는 사막이 기다린다고 했는데,
이젠 사람들이 자연에 대해, 숲에 대해 생태적 책무를 갚아야 할 때다.
우리나라는 과거 훌륭한 지도자를 만난 덕에 세계적으로 유래 없이 원시림에 가까운
훌륭한 생태 숲을 만들었다.
12;48
백두산을 다녀온 지 한 달이 지나자 답답하고 한없이 떠나고 싶었지.
요즘같이 날씨가 더워지고 공기의 밀도가 짙어질수록 산속이 그리워지기에 오늘은
마대산 산길에서 행복을 찾아야겠다.
마대산은 쉬운 산도 아니지만 지루한 산도 아니다.
고개를 잔뜩 숙이고 올라왔어도 아직 정상까지 440m가 남았다.
고도계를 보니 978m라 1,000m에 육박한다.
이 로프를 잡고 오르면, 높이 올라서는 순간 더 멀리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으려나.
13;20
이 생각 저 생각에 무념무상(無念無想)은 사라진지 오래다.
심장이 터질 듯한 급경사 등산로를 오른 지 두시간만에 마대산 정상(10525m)에 올랐다.
정상에는 아주 작고 소박한 정상석이 나를 반긴다,
오르며 땅바닥만 쳐다보고 올랐더니 삼봉, 수리봉을 보지 못했다.
다행히 하산 방향에 처녀봉이 있으니 처녀봉은 맛을 보겠다.
지도상에는 어래산(1064m), 태화산(1027m), 형제봉(1178m), 응봉산(1013m),
망경대산(1088m 2018.5.29 산행), 옥돌봉(1244m 2018.6.21 산행), 선달산(1236m)이
보이는데 정상에서 여느 산도 보이지 않는다.
남한강도 보인다 했는데 남한강은커녕 아무데도 보이지 않고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일기예보 상으론 장맛비가 저녁 6시경부터 쏟아진다고 했는데 무려 5시간이나 빨리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해 조금 곤혹스럽다.
카메라가 이상 조짐을 보이며 액정에 칼라가 깨진다.
'큰까치수염'을 찍을 때부터 불안정하였는데 액정이 깨지고 메모리카드가 어두워진다.
13;41
빗방울이 점점 굵어진다.
산도 나무도 나도 서서히 빗물에 젖어든다.
스치는 바람에 나뭇잎에 고였던 빗물이 후드득 떨어진다.
그래도 불안하지 않다.
빗소리는 바람소리와 함께 숲의 교향악을 들려주기에 마음 편하게 하산을 시작한다.
떨어지는 빗방울을 아랑곳하지 않고 산길에 빨갛게 핀 산딸기를 따서 입안에 넣으며
잠시 쉰다.
빗물에 젖어가는 숲은 오히려 더 싱그럽고 상큼한 냄새가 난다.
이 사진을 마지막으로 카메라 액정이 완전히 깨졌다.
화면이 온통 청색으로만 보이니 산행시작부터 찍었던 사진도 망쳤을까 걱정이 됐는데
다행히도 이 사진까지는 건진 거다.
빗방울이 더 굵어져 술 한 잔을 즐기기엔 부담이 생긴다.
서둘러 카메라를 배낭 안에 넣고, 이제부턴 스마트폰 촬영모드로 들어간다.
14;23
처녀봉(947m)에 닿는다.
수피(樹皮)와 둘레를 보니 백 살 정도 되었을까.
우람한 노송 두 그루가 상생하며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원래 하늘은 땅을 짝 삼고, 산은 물을 보듬고, 바람과 구름은 쌍을 이루는 게 세상의
이치라, 이 소나무도 산중에서 짝을 이뤘으니 독존(獨存)의 외로움은 없겠다.
14;40
흔한 바위도 보이지 않는 하산 길에 편주(片舟) 모양의 큰 바위 하나가 버티고 있다.
떠돌이 시인 김삿갓도 이 바위에 앉아 시 한수를 읊었을까.
김삿갓은 분명 시에 관한 한 독존(獨尊)의 경지에 이르렀다.
독존의 재주가 있어 분방했고, 독보(獨步)적인 시혼(詩魂)은 그를 떠돌게 했다.
재주가 많으면 외로운 법이라, 한평생을 외롭게 편주(片舟)로 떠돈 삶은 얼마나
쓸쓸하고 허황했을까.
그가 앉아 쉬어갔을 바위를 보며 인생의 허망함을 생각해본다.
14;44
산을 내려간다.
급경사 내리막이 이어지다 겨우 손바닥만 한 평지를 만난다.
하산 길 역시 고약하다.
삼엄한 비탈이 한없이 이어지고 빗방울은 서서히 잦아든다.
길이 미끄러워 절벽에 붙어 내려가는 양 발길이 조심스럽다.
15;21
임도가 나온다.
여기 말고 하산로가 또 있었는지 이정표가 이상하다.
한시간전 만난 8부 능선 안내판에서 김삿갓 묘까지 1.3km가 남았음을 확인했는데,
임도로 내려와 만난 이정표에도 1.3km가 남았다.
이정표는 산에서 매우 중요한 정보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생명을 좌우할만한 소중한 표시판이라 소홀하면 안된다.
금원~기백산을 종주하며 이정표 문제로 119 구조대 신세도 졌고,
영남알프스 종주 시 고사리분교 근처의 이정표를 누군가 거꾸로 돌려놓아 정상으로
다시 오르다 어둠속에 되돌아 내려온 적도 있고,
최근엔 각화사의 중들이 아예 이정표를 뽑아버려 생고생을 한 봉화 각화산이 생각난다.
15;43
김삿갓 묘역 입구 난고정에 김삿갓으로 분장한 사람이 조용히 앉아 있다가 시선을 돌린다.
나는 노루목의 김삿갓 묘역으로 들어간다.
묘역에 할미꽃, 오랑캐꽃은커녕 노란 민들레 한 송이 보이지 않는다.
말끔하게 벌초를 한 탓인지 오히려 을씨년스럽다.
허긴 여름이 한창인 6월말인데, 무덤가에 피는 봄꽃을 찾는 내가 제정신이 아니겠지.
김삿갓의 육신(肉身)은 죽어 이 무덤 속에 있지만 살아있는 그의 혼(魂)은 관 뚜껑을 열고
나와 현세기의 대낮을 여전히 활보한다.
비록 육신이 한줌의 흙으로 돌아갔어도 그의 정신이 담긴 혼백(魂魄)은 살아 여전히
세상에 유통되고 회자(膾炙)되기 때문이다.
파격과 절창(絶唱)의 시편(詩篇)들,
고전문학사에 거장들이 많다고 하지만 김삿갓처럼 시대를 초월해 인기를 누리는 이가
또 누가 있을까.
무덤가의 묘비 앞에 서서 김삿갓의 시혼(詩魂)을 생각하며 묘비를 어루만진다.
죽장 짚고 삿갓 쓴 방랑시인은 죽고 세월이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대중의 스타이다.
사납던 팔자, 고단한 생애, 역마살이 끼었어도 지독하게 끼어 바람처럼 떠돈 유랑생활,
야차(也叉)처럼 난폭한 기행, 풍자와 해학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시가(詩歌)들은
이 세상에 불멸의 흔적을 남겼고 지금도 사랑을 받는다.
삿갓으로 하늘을 가리고 죽장 짚고 짚신 신고 삼천리 한평생을 떠돈 천재시인 김삿갓,
풍자와 해학, 기지로 어우러진 파격적 시풍과 보통 사람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기행
(寄行)으로 가는 곳마다 전설을 남기고 사라진 방랑시인 김삿갓의 묘를 떠난다.
바람처럼, 구름처럼 떠돌던 그의 혼백(魂魄)은 죽어서도 자유롭겠지.
자연과 인간세상을 마음대로 넘나든 영원한 자유인이요, 나에게 세상의 염치(廉恥)를
가르쳐준 풍류가객 김삿갓의 묘에 목례로 예를 드리며 나도 떠나간다.
16;00
5시간여의 제법 힘들었던 마대산 산행을 마치고 노루목다리를 건너면서
겨울산행은 위험하다는 담당 공무원의 말이 옳았다는 생각을 한다.
주춤했던 빗줄기가 다시 굵어진다.
6. 27. 06;50
2019년도 절반이 훌쩍 지나간다.
연초부터 버킷리스트를 작성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에 두었던 리스트를 생각해본다.
금년은 내 주변의 물건을 많이 줄이려고 한다.
십년 넘게 다시 펴보지 않았던 책과 내 취향에 맞지 않았아도 서가(書架)에 장식용으로
꽂혔던 책을 버리니 서가가 헐렁해졌고,
최근 3년간 입지 않았던 옷을 버리니 옷장에 여유가 생겼다.
버리는 건 시덥잖은 일상의 일이라 목표랄 거도 없으니 목표에 집착을 할 필요는 없다.
마대산에 관해 사진과 메모를 정리하고 생각나는대로 주절주절대며 쓰다보니 6월이
지났고 다이어리를 한장 넘긴다.
7월엔 어떤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길까.
아직 남은 올해의 절반에 설렘이 많은 일이 생길지도 몰라 지갑속 깊이 넣었던 로또복권을
꺼낸다.
2019. 6. 26~27. 영월 마대산을 다녀와서
석천 흥만 졸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