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편찮다고 하셨는데 괜찮으신지요
원인이 단순히 몸때문인가요
아님 마음이 곁들인 아픔이었나요
궁금타
얼마전 원주가가 만이 섭했지요
삐쳤다니까요
담에 원주갔을때 못뵈면 100% 삐칠수 있음을...^^*
좋은날 맹그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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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가시고기에 대해서 TV에서 방영한적이 있었답니다.
비록 물고기지만 새끼에 대한 사랑은 정말 눈물겨웠습니다.
정성들여 집을 짓고 새끼가 부화하기까지 아무것도 먹지않고
새끼들을 길러놓고선 마지막 힘이 다하면 자기 몸뚱이까지
기꺼이 새끼에게 먹이는 가시고기의 사랑은
분명 우리에게 무언가 느끼게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드라마에서 본 가시고기는 소설로 읽은것 보다가도 더
진한 감동을 주었지요.
님~~~
어릴때 유난히 병치레를 자주 했던 전 이 소설을 보면서
부모님생각에 참 많이도 울었었지요.
이제 부모님께 받았던 사랑을 되돌려 드려야 하는데
지금 부모님은 이 세상 분들이 아니네요...
오늘 아침 님의글을 읽고 한참을 생각에 잠겼었네요.
아참 우리딸도 연극을 하는데 가시고기란 소설을 주제로
연극을 하더군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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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요란하지 않은 광고 - 유식한 말로 CF -
중에 '가장' 또는 '아버지'를 주제로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경제 위기가 엄습하고 가계가 그야말로 풍전
등화의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사회의 가장 중
요한 구성요소인 가정의 기둥에 대해 많은 조
명이 있었지요.(어머니가 기둥인 가정도 있음) .
^^.^^
얼마전 "가시고기"라는 소설을 읽었습니다.
책을 비교적 빨리 읽는 습관으로 단숨에 읽었
지만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나도 모르게 눈가에
거북한 것을 느꼈답니다. 그냥 핑 돌았나...
夫情의 대명사로 가시고기가 있었다는 것을
소설을 통해서 처음 알았습니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분신을 위하여 아니 멀리 이러질 代를
위하여 혼신을 다한 생명의 존재 가치를 일러준
내용은 잔잔한 감동을 받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우리들은 본 그대로를 느끼는 진정한 정서가
요사이 매우 부족한듯 합니다. 디지털 세계가
도래한다고 무조건 아무거나 해부하여 나열하는
분석학이 횡횡함에 같이 휩쓸려 있는것 같아요.
가슴을 울리는 진한 감동을 어떻게 해부하고
분석하여 혈압 얼마, 눈물 몇gr,맥박 몇번 하는
식의 판박이 차림표처럼 나열할 수가 있을까요.
그런데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
들이 있으니 감동이 기분으로 변질되는 것 같습
니다.
어떤 책에서 '아는 것만큼 보고, 본만큼 느낀다'
라는 말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가시고기 - 분해 되어가다시피 하는 우리네 생
활 방식이 얼마나 가슴을 아프게 하는 - 그
본래의 존재 가치를 훼손기키는지를 알게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애잔한 부성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것도 아니
고,또한 뒤늦게 나타나 아직 늦지 않았다고 하는
엄마의 상상을 뛰어 넘는 사랑을 진부한 마무리로
여기지 말고 걸쳐진 한겹 장막을 걷고 나면 그리
신파조도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시고기는 우리정도의 세대를 표현한 마지막
소설이 아닌가 해서 글판에 알리고 싶어서요.
바로 내 아버지 어머니들이 그렇게 우리들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퍼부어 주신 것을 한참 늦은
나이에 알게된 자조가 한숨으로 변할 뿐입니다.
가시고시가 언제 알을 낳고 부화하는지는 모르겠
지만 아마 그에게도 사고의 지각이 있다면 지금
저렇게 파란 하늘을 어린 새끼들이 반드시 보아야
하겠다는 일념으로 생명을 바치지 않았을까 ...
세대가 사고가 모두 막 이리저리 변화해가지만
저 오랜 세월을 통해 이어져 내려온 '식구'라는
테두리를 고운 단풍잎을 엮어 멋지게 장식해요.
힘들겠지만, 가시고시의 사랑을 우리도 나타내어
그 끈이 아무리 늘어나도 끊어지지 않도록 사랑을
가득 부어 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