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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표적(4)
제목 : 무리를 먹이시는 하나님의 아들
성경 : 요 6:1~15
찬송 : 198장
저자 : 이삼규 목사
출처 : 20240804 낙양교회 주일 낮 예배
요 6: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요 6:2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요 6:3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요 6:4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요 6: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요 6: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요 6: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요 6: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요 6: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요 6: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요 6: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요 6:12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요 6: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요 6:14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요 6: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요한복음에 나타난 표적 7가지 가운데 네 번째 표적 일명 ‘오병이어’의 표적을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이 말씀의 중요성은 네 복음서 저자가 모두 이 기적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요한은 오병이어의 표적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영적인 진리까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공관복음서들은 단지 기적만을 소개하지만 요한은 왜 예수님께서 이런 표적을 행하셔야 했는가를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공관복음에서 알 수 없는 영적인 진리들을 우리는 요한복음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굶주린 사람들의 배만 채워주시려고 이런 놀라운 표적을 행하신 것이 아닙니다. 뭔가 그들에게 영적인 진리를 가르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떡을 먹은 사람들은 그 깊은 뜻을 알지 못하고 예수님을 자신들의 임금으로 삼으려했던 것을 봅니다. 이제 요한복음에 나타난 네 번째 표적 “무리를 먹이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표적의 배경(背景)
예수님께서 12 제자를 선택하시고 그들에게 권능을 주셔서 전도하도록 보내셨습니다. 그들이 나가서 복음을 열심히 증거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병든 자들을 고쳐 주고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서 자기들이 행한 일을 보고합니다(막6:30절). 그들은 전도하는 일 때문에 지쳐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찾아오는 사람, 만나고 돌아가는 사람이 너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한적한 곳에 와서 잠깐 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배를 타고 한적한 곳으로 떠나셨습니다. 그것을 본 큰 무리가 도보로 그곳에 달려와 그들보다 먼저 그곳에 도착하여 있었습니다(막6:33).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요 6: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요 6:2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오늘 본문에 보면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에게도 이러한 열심이 있습니까? 이러한 사모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너무 피곤하여 좀 쉬고 싶은데 그럴 틈도 주지 않으니 얼마나 힘드셨겠습니까?
이와 같이 오병이어의 표적의 현장에는 ‘큰 무리’가 모여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토록 큰 무리가 모일 수 있었을 까요? 그것은 사도요한이 밝힌 대로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웠기 때문에 순례 객들로 붐비고 있었기 때문입니다(4절).
예수님은 눈을 들어 자기를 찾아 달려온 큰 무리를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왜 불쌍히 여기셨을 까요? "그들은 목자 없는 양"같았기 때문입니다(막6:34절). 양은 성질이 온순하고 자기를 방어할 줄 모릅니다. 그러므로 목자가 없다고 하는 것은 곧 사지로 끌려가는 양과 같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병인을 고쳐 주시고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열심히 가르치시다 보니 때가 저물어 가고 있었습니다.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표적의 전개(展開)
제자들은 염려했습니다.
√막 6:35 때가 저물어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
막 6:36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1)장소-"이곳은 빈들이요"
2)시간-"때도 저물어 가니"
3)양식-"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소서!"
그러나 예수님은 무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우리는 여기에서 인간(제자)들의 염려와 하나님(예수님)의 대책을 발견합니다. 제자들은 인간적으로 볼 때 이 빈들에서 때도 저물어 가는 이 시간에 이 엄청난 무리들을 먹인다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그냥 돌려 보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음식을 위하여 돌아가다가 기진 할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문제를 통해서 제자들의 무능함을 깨닫게 해주시고 자신이 준비하는 양식에 대하여 더 귀한 가치를 알 수 있게 하시기 위하여 그들의 어리석음을 미리 보게 하셨던 것입니다.
공관복음에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신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보면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는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누구에게 먼저 말씀하셨습니까?
√요 6: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빌립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미리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들은 빌립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머리가 총명하고 계산이 빠른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머리를 회전시킵니다. 계산이 나왔습니다.
√요 6: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빌립은 예수님의 시험에 낙제하고 말았습니다. 빌립은 이렇게 말해야 했습니다.
"주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하셨고, 38년 된 병자도 고치셨습니다. 주님께서 이 사람들에게 떡을 공급하실 수 있음을 믿습니다."
그런데 빌립은 "주여 각 사람으로 조금씩 먹게 할지라도 이 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 하리이다." 물론 그의 계산은 틀림없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본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군중들의 머리 수였습니다. 그는 어려움을 보았습니다. 그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믿음의 눈이 발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단지 불신앙의 눈으로 무리를 바라보았지 문제를 해결하실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였다는 사실입니다.
민수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기를 먹게 해달라고 아우성쳤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기도합니다.
√민 11:13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그들이 나를 향하여 울며 이르되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 하온즉
민 11:14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감당할 수 없나이다
민 11:15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 당함을 내가 보지 않게 하옵소서
모세는 하나님께 ‘차라리 즉시 나를 죽여주십시오.’ 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민 11:18 또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몸을 거룩히 하여 내일 고기 먹기를 기다리라 너희가 울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애굽에 있을 때가 우리에게 좋았다 하는 말이 여호와께 들렸으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실 것이라
민 11:19 하루나 이틀이나 닷새나 열흘이나 스무 날만 먹을 뿐 아니라
민 11:20 냄새도 싫어하기까지 한 달 동안 먹게 하시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 중에 계시는 여호와를 멸시하고 그 앞에서 울며 이르기를 우리가 어찌하여 애굽에서 나왔던가 함이라 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모세는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민 11:21 모세가 이르되 나와 함께 있는 이 백성의 보행자가 육십만 명이온데 주의 말씀이 한 달 동안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다 하시오니
민 11:22 그들을 위하여 양 떼와 소 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이까
그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민 11:2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
여러분들에게는 이러한 불신앙이 없습니까? 하나님은 무한한 보고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분의 은혜가 우리들의 모든 필요에 충분하다고 선언하십니다. 그럼에도 문제가 발생하면 우리들은 어떻게 합니까? 우리는 전능자를 바라보는 대신 먼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계산합니다. 머리를 굴려 본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여러분의 과거를 돌이켜보십시오. 하나님은 얼마나 많은 위기와 어려움과 고통 가운데서 건져 주셨습니까? 여기까지 도와주신 하나님(에벤에셀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역시 도와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 먼저 행동할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때 안드레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주님의 첫 번째 제자 된 사람이었지만 그는 결코 앞자리에 나서지 않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고 소개합니다. 그는 결코 자기를 내세우는 제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약 성경을 보면 그는 세 번 활동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때마다 누군가를 예수님께 소개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안드레는 예수님의 비서실장이었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복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어떻게 안드레가 오병 이어를 가진 아이를 발견하였는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그를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빌립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단지 불신앙적인 말만하였지만 안드레는 조용히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던 것입니다.
안드레가 아이를 데리고 와서 한 말이 있습니다.
√요 6: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그는 분명 문제의 해결을 돕는 인간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상황은 절망적으로 보였습니다. 여자와 아이를 빼놓고도 오천 명이나 모였기 때문입니다. 모두 합치면 약 2만 명 정도 되지 않겠습니까? 비록 아이가 가진 것은 오병 이어에 불과하였으나 그것에 예수님이 합쳐지니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인간적인 계산법=5+2=7/ 하나님의 계산법=5+2=5,000)
미국의 유명한 강해 설교자 헤셀 포드 목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 더하기 하나님은 항상 거대한 수가 된다."
우리가 가진 것이 비록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주님의 손에 바쳐지기만 한다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여러분은 주님께 무엇을 드릴 것이 있습니까? 우리가 가진 것은 보잘 것 없어도 하나님은 풍성한 것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아브라함 링컨에게 "하나님이 우리 편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링컨은 대답하기를 "나는 그런 식으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 있는가에 관심을 갖습니다."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그분 편에 서서 정성스럽게 그분을 신뢰하고 사랑하며 충성스럽게 섬기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그분을 필요로 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곳에 찾아오실 것입니다.
√표적의 역사(役事)
√1)모인 무리들을 잔디에 앉게 하였습니다(10절).
예수님은 제자들을 명하사 사람들을 백 명, 오십 명씩 잔디에 앉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른들만 5000명 쯤 된다는 계산이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언제나 질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를 지켜야 합니다. 질서를 깨뜨리는데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을 까요?
√2)예수님께서 떡과 고기를 가지고 축사하셨습니다(11절).
예수님께서는 한 작은아이의 음식을 축사하시고 나서,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음식 놓고 축사하신 사실을 요한은 두 번씩이나 지적하고 있습니다(6:11,23). 마태, 마가, 누가는 예수님이 축사하실 때 하늘을 우러러보셨다고 동작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신 것은 우리에게 공급되는 모든 필요한 것들과 좋은 것들이 하늘로부터, 아버지로부터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적은 것이었으나 감사하셨습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감사는 셀 수 없도록 축복을 가져오지만 불평은 있는 것까지 빼앗아 갑니다. 예수님은 초라한 보리떡 몇 개를 들고 감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기적을 구한 것이 아니라 단순한 감사였습니다. 하찮은 것을 우습게 여기지 않고 뜨거운 마음으로 감사할 때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곧 벳세다 광야에서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도 남은 기적은 감사의 결과였던 것입니다. 감사하는 삶 속에 기적이 나타납니다. 오병 이어의 기적은 제자들의 손이 아닌 감사하는 구세주의 손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분은 음식을 불리셨고 제자들은 단지 그 음식을 나르는 즐거운 특권을 누렸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들에게 그런 일에 헌신하기를 소원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일을 해야 합니다.
오병 이어의 표적에서 숫자 상징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다섯’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입니까? 모세 오경입니다. ‘둘’은 증인의 숫자입니다. 그리고 ‘열둘’은 이스라엘 열두지파를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이 표적을 통해 예수님은 율법에 기록된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고 만나를 먹이신 하나님이 자신이심을 증거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선지자들 중 한 명이 아니라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이끌어 내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이 놀라운 메시지를 교만하고 어리석은 자들은 비웃으며 믿지 않지만, 이것은 분명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과 기쁨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3)남은 것을 거두고 버리지 않게 하였습니다(12-13절).
사람들은 실컷 먹고도 많은 음식이 남았습니다. 주님의 은혜는 차고 넘치도록 부어 주신다는 것을 교훈 합니다. 그러나 남은 것을 거두고 버리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남은 것이 얼마나 되었습니까? 12 광주리나 되었습니다. 주님은 아무 것도 헛되이 버리지 않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여기에서 중요한 것을 배워야 합니다. 내가 소유한 것이라고 해서 내 마음대로 버려도 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입니다. 그것을 함부로 하는 것은 그 선물을 주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에게 만약 대통령이 어떤 선물을 주었다고 한다면 함부로 아무데나 버리겠습니까? 아마도 소중하게 간직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녀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줄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함부로 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주님의 정신으로 물질을 잘 관리해야 할 청지기들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드러내시려 오병이어의 표적을 일으키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을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로 인식합니다(14절; 신18:15). 그들은 예수님이 모세와도 같은 선지자라고 여기며 왕으로 삼으려 합니다(15절). 왜 그랬을까요? 만일 예수님이 자신들의 왕이 된다면 적어도 양식 걱정은 할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왕으로 삼으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먹인 것은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이며, 모세가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것도 아님에도, 그들은 자기들의 세속적 욕망을 성경에 투영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모세와 같은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여 자기들이 세속적 힘을 얻기를 원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을 혁명가나 정치가, 또는 사상가 정도로 왜곡하여 이해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혹시 우리도 세속적 욕망을 이루어 주시는 분으로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하늘에서 온 양식으로 많은 사람을 먹이셨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얼마나 풍성하고 무궁무진한 자원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 주셨습니다. 이런 영광을 가르쳐 주신 이유는 세상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을 사모하여 하늘나라를 이 땅에 이루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주님의 도움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먼저 여러분이 가진 것을 주님께 드리십시오. 그 후에는 주님이 일하십니다. 주님은 결코 하늘에서 떡이 내려오게 하지 않았습니다. 한 아이의 도시락인 오병 이어를 통하여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주님의 안목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무리를 긍휼히 여기는 안목입니다. 믿음으로 드리는 믿음의 안목도 필요합니다. 작은 것도 감사하는 감사의 안목도 가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삶 속에서 이러한 놀라운 오병이어의 기적들이 끊임없이 일어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