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에서 (隨筆)
影園 김인희
이른 아침 휴대전화 알람이 달콤한 잠을 깨운다. 간밤에 일정이 없는 토요일을 확인한 후 늦잠을 자겠다고 단단히 벼른 그녀를 무색하게 한다. 그녀가 얄미운 휴대전화를 베개 밑에 놓고 돌아누워 잠을 청하지만 허사다. 그녀는 이내 토요일 늦잠은 그녀의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한다.
그녀는 거실에 앉아 황금 같은 주말을 어떻게 보낼까 하고 이궁리 저궁리하다가 무릎을 탁~~ 치면서 묘안을 낚아챘다. 그녀는 서재 정리를 미루고 있었다. 학기 중에는 엄두를 내지 못했던 큰일이었다. 책꽂이에 분류하지 않은 채 쌓여있는 A4 용지를 어떻게 정리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우선 A4 용지 크기 상자를 몇 개 준비했다. 상자의 모서리에 박스 테이프를 덧붙여서 단단하게 고정했다. 상자마다 강의자료, 문학자료, 역사자료, 논문자료, 시낭송 자료 등 이름표를 붙이고 낱낱이 분류해서 방을 찾아 주었다. 큰 상자 하나를 따로 마련한 후 쓸모없는 자료는 폐지로 분류했다.
그녀가 휴대전화를 열어 음악을 들으면서 자료를 분류하는 내내 이런저런 생각이 교차했다. 어떤 자료는 소중하여 다시 한번 쓰다듬고 제 방을 찾아 주었고 어떤 자료는 일순의 망설임도 없이 폐지 상자로 던지는 것이었다. 그녀는 몇 시간 내내 꼼짝하지 않고 정리한 후 산뜻하게 바뀐 책꽂이를 보면서 만족했다. 그녀는 물 한 잔을 마시고 바로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들의 자리를 바꾸기로 했다. 당장 필요한 책들은 그녀가 의자에 앉아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두었다. 그녀의 필요에 따라 책은 가깝게 또는 멀리 자리를 잡았다.
서재의 한쪽 벽면을 책으로 가득 채운 책꽂이 앞에 큰 책상이 놓여있다. 책상 위에 노트북은 언제든지 그녀가 작업할 수 있도록 대기 중이다. 그녀가 책상을 앞에 두고 앉으면 맞은편에 화장대가 있다. 화장대의 큰 거울 속 한 여인이 책상에 앉은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태세다. 그 화장대 위에는 화장대 거울만큼 크기의 겨울 사진이 걸려있다. 그녀는 책상 앞에 앉아 독서를 하고 글을 쓰는 내내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보면서 한 점 부끄럼 없이 살고 있는지 자문하곤 했다. 사계 중 겨울을 가장 좋아하는 그녀에게 흰 눈이 쌓인 겨울 풍경이 시선에 들어올 때 황홀하여 온몸으로 전율한다.
큰 책상이 간직한 에피소드가 있다. 딸이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책상을 새로 들였다. 그녀가 가구점에서 제일 큰 책상을 선택했을 때 가족들은 손사래 치면서 만류했다. 이유가 분분했다. 아빠는 작은 집에 비해 책상이 너무 크다고 했다. 당사자인 딸은 책상이 학생이 사용하기에 너무 커서 부담스럽다고 했다. 중학생이었던 아들은 그녀가 욕심이 많아서 무엇이든지 큰 것만 좋아한다고 너스레를 떨어서 모두 폭소했다. 그때 큰 책상을 고집하는 그녀를 아무도 이기지 못했다.
그 책상이 지금은 서재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그녀의 예견이 적중했다. 자녀들이 성인이 되면 그녀의 서재에 큰 책상을 들여놓고 당당하게 일을 하겠다고 꿈을 꾸었다. 그 꿈이 현실이 되었고 그녀는 날마다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환희의 찬양을 부르고 있다.
서재 한쪽에 있었던 이동식 옷걸이를 다른 방으로 옮겼다. 책상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옷걸이에 걸려있는 옷이 시선을 빼앗곤 했다. 그때마다 그녀는 옷걸이를 보고 눈을 흘기고 그를 서재에서 추방하리라 다짐했다. 그를 다른 방에 감금하고 나니 십 년 묵은 체증이 말끔하게 가라앉듯 통쾌했다. 그녀가 출퇴근 때마다 옷을 갈아입기 위한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으리라 독백하면서 내린 중대한 결정이었다.
그녀는 서재를 정리하면서 이어령 선생을 생각했다. TV의 한 채널에서 이어령 선생을 만나 대담하듯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이어령 선생께서 시한부 판정을 받고 의료치료를 거부하고 지낼 때였다. 이어령 선생은 몇 명의 독자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대화하듯 당신의 일화를 전해주었다. TV를 통해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선생의 안색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TV 방송이 종영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어령 선생께서는 별이 되었다. 그 감동을 쉽게 잊을 수 없어서 그녀는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책을 품에 안고 지냈다. 많은 사람이 세기에 한 번 날 수 있을까 하는 지성이라고 했다.
한 번은 선생께서 당신의 서재에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선생의 서재에 있는 책상은 무척 길었다. 책상에 컴퓨터가 세 개 이상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어령 선생께서 그 책상을 종횡으로 움직이면서 “내 책상이 말이었어. 몽골의 초원을 달리는 칭기즈칸의 말이었단 말이야. 나는 이 책상에서 글을 쓰고 작업을 하고 무수한 일을 했어. 내 책상은 말이었고 내가 여기 앉아 일하는 동안 나는 말을 타고 달리는 것이었지.”라고 말하는 동안 선생의 심장이 뜨겁게 뛰고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녀가 서재를 정리한 후 책상 앞에 앉아 이어령 선생을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녀의 책상이 그녀에게 말이 될 수 있을까를 가늠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녀는 책상 앞에 앉아 2023년 계획을 세우고 주먹을 힘주어 쥔다. 올해 그녀에게 새로운 기관에서 중책을 위촉했고 그녀 스스로 부여한 과업 또한 만만치 않다. 그녀에게 맡겨진 달란트가 여려 개다. 그녀는 모든 일에 매사 신실하게 임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하면서 살얼음판을 걷듯 걸음을 옮긴다.
그녀가 기필코 해야 할 위대한 일, 그것에 방점을 찍는다. 그녀가 책상 앞에 앉아 말고삐를 바투 쥐듯 노트북을 켠다. 그녀의 2023년은 하늘이 쏟아붓는 축복으로 충만하기를 기도한다.
첫댓글 많은 사람이 세기에 한 번 날 수 있을까 하는 지성이라고 했다.
스승님께서도 훌륭하신 지성인이십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