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訃告]
故 주영국님께서 별세 하셨기에
아래와 같이 부고를 전해 드립니다.
■부고(확인)■
https://choomo.app/999901?seq=2594979
황망한 마음에 일일이 연락
드리지 못함을 널리 혜량해
주시길 바랍니다.
상주
차진숙, 주진주, 주다영, 김동준, 정현호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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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국 시인이 오늘 별세했다는 부고를 받았네요. 참으로 안타깝네요. 저와의 인연에 깊이 감사하며, 2019년에 간행한 시집을 다시 읽어보네요. 부디 평온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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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국 시인의 시집 『새점을 치는 저녁』이 <푸른사상 시선 113>로 출간되었다. 할머니를 비롯한 가족과 강촌 아재, 길만이 형, 경비원 이씨는 물론이고 갑오농민전쟁을 주도한 김개남, 『사기』를 쓴 사마천, 정치 혁명가 체 게바라 등을 통해 민중의 역사를 노래하고 있다. 백령도, 송정리, 영산강 지류인 극락강, 정읍, 금성산, 북제주 등을 노래한 시편들은 수준 높은 서사와 서정의 직조를 보여주고 있다. 인간 가치와 자연의 이치를 토대로 새로운 세상을 열망하는 시인의 노래들은 인식의 깊이와 아울러 깊은 감동을 전해준다. 2019년 10월 31일 간행.
■ 시인 소개
전남 신안의 섬 어의도에서 태어나 육지의 이곳저곳을 살았다. 2004년 13회 전태일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회 오월문학상과 2010년 『시와 사람』 신인상을 받았다. 공군 기상대에서 오랫동안 하늘과 구름을 친구 삼아 날씨 보는 일을 했다. 한국작가회의 회원과 죽란시사회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E-mail : joopoem@hanmail.net)
■ 시인의 말
섬의 수장고에서
오래도록 불어 있었구나
보호하거나 가두는 곳
활자가 되지 못한 시와
밀가루 반죽처럼
나도 오래도록 그곳에 있었다
섬은 더 깊어질 것이지만
우리는 이제부터
함께 더 자유로워지자
물 밖으로,
잘 가라 시들아…
■ 추천의 글
자연의 결에 자신의 영혼을 실어 한없이 깊어진 기록이 여기 있다. 주영국 시인은 스스로를 무한하고 영원한 것들과 하나가 되게 하는 법을 알고 있다. 시간과 벗이 되어 시간이 인간들과 만나 만드는 비의(秘意)들을 노래하고 또 노래한다. 더불어 자연과 역사 속의 결기 앞에서 단정하게 목숨의 강건함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죽음이라는, 인간과 시간이 만나 이루어지는 사건을, 무한과 영원 속에서 영원히 살아 있게 하는 주영국 시인은 ‘시간의 시인’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 나해철(시인)
주영국의 시에는 ‘섬’이 있다. 그 섬에는 불혹의 나이로 세상을 등진 젊은 아버지가 살아 있다. 대추나무 ‘도장’이 찍고 간 붉은 낙인들이, 아직도 청상의 어머니와 형제들과 어깨를 겯고 나란히 걷는다. “숟가락 두 개”로 세파의 길을 나선 그가 “새”를 그리는 시인이 되었다. 그 새의 이름은 “백일홍”이기도 하여서 시인은 그렇게 타인의 불우에 눈을 두기도 하고, 그 골목의 끝에 나가 “새점을 치는 저녁”을 맞기도 한다. 어느 날은 문득 “산에서 온 편지를 강에서 읽기도 하는” 푸른 멍울을 간직한 시인의 가슴이여!
― 정윤천(시인)
주영국은 순정한 서정시를 쓰는 시인이다. 하지만 그의 서정에는 역사의 깊이와 무게 또한 실려 있다. “붉은 쇠붙이를 들고 나도 뿌리 하나를 건드리고 싶다”라고 말할 때 그는 영락없는 동학의 농민군이다. 고향이 섬이라는데 그의 시는 서정의 산맥에 깊이 닿아 있음으로 나는 그가 여전히 순정한 서정시인이라 생각하지만 자신의 두 발이 딛고 있는 현실을 잊지 않는 모습이 믿음직스럽다.
― 전윤호(시인)
■ 작품 세계
반혁명 세력과 싸우려면 소총이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로 그 소총은 먹고사는 일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소총만 도구인 게 아니다. 이념 또한 그렇다. 도구인 이념이 목적이 되어버릴 때 혁명 또한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도구로 변해버린다. 시인은 “밀림에 뜬 애기 달 같은 노른자”를 보며 “경계를 서던 소년 병사의 팍팍한/꿈”을 상상한다. 삶은 달걀의 노른자는 하늘에 뜬 이념이 아니다. 소년 병사는 배불리 먹는 “팍팍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이념이라는 이정표를 따를 뿐이다. 소년 병사가 꾸던 그 꿈을 우리 또한 마음 깊이 품고 살아왔다. 한때는 성공한 혁명의 꿈에 부풀어 들뜬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봄날 신기루처럼 덧없이 스러졌다. 삶은 계란을 먹으며 시인은 그들이 꿈꾼 세상을 상상한다. 목이 멘다. 그때 그들이 꿈을 꾸지 않았으면 지금 우리는 어떤 세상을 살고 있을까
시인은 삶은 달걀을 먹을 때마다 끝내 반합에 담긴 삶은 달걀을 먹지 못하고 “예수처럼 정부군에게 죽은 게바라의/살고 싶던 간절한 마음을” 떠올린다. 체 게바라는 삶은 달걀을 마음껏 먹는 삶을 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려면 그는 삶은 달걀 하나도 제대로 먹지 못할 혁명 상황에 몸을 던져야 했다. 동학 농민 전쟁에 나선 농민들도 그러지 않았겠는가. 배불리 먹는 삶을 실현하기 위해 그들은 손에 손에 낫을 들고, 죽창을 들고 나섰다. 낫을 들고, 죽창을 들어야만 배를 불릴 수 있는 삶이라는 게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역사는 그렇게 흘러왔다. 낫과 죽창을 들어야 민중들은 그나마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권력은 이들을 ‘폭도’니 ‘빨갱이’니 하는 말로 규정했지만, 그들은 그에 굴하지 않고 기꺼이 낫을 휘두르고 죽창을 휘둘렀다. 신식 총을 쏴대는 정부군에 맞서 장렬히 죽어갔다.
―오홍진(문학평론가) 해설 중에서
■ 시집 속으로
새점을 치는 저녁
주영국
새점을 치던 노인이 돌아간 저녁
공원의 벤치에 앉아 나도 새를 불러본다
생의 어디에든 발자국을 찍으며
기억을 놓고 오기도 해야 하였는데
난독의 말줄임표들만 이으며 지내왔다
누군가의 경고가 없었다면 짧은
문장의 마침표도 찍지 못했을 것이다
생의 뒤쪽에 무슨 통증이 있었는지
진료를 받고 나와 떨리는
손에서 노란 알약을 흘리고 간 사내
산월동 보훈병원 302호실
노란 알약을 삼킨 날개 다친 새들에게
마지막 처방전을 써준 김 원장이
사직원의 파지에 새를 그리고 있다
내일은 그도 저무는 공원에 나가
새점을 칠지 모른다
누군가 또 흘리고 간 노란 알약에서
새점을 치던 저녁을 떠올려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