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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방[7526] 삼국지 관련 詩(시)와 詞(사), 그리고 賦(부)
삼국지 관련 詩(시)와 詞(사), 그리고 賦(부)
序(서)
삼국지를 읽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삼국지는 유명한 중국 사대 奇書(기서) 중의 하나인데,
원 소설 이름은 나관중의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이다.
이번에는 종전에 게재하였던 글들 중 삼국지 관련 詩文(시문)들을 모아보았는데,
비록 소설 내용에 허구가 많아 역사적 관점에서는 사실성이 떨어질지는 몰라도
탁주 한 사발을 앞에 두고 고금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笑談(소담)속에
부쳐본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읽어도 결코 시간 낭비는 아니니라.
1. 三國志序詞(삼국지서사)
滾滾長江東逝水 (곤곤장강동서수)
浪花淘盡英雄 (낭화도진영웅)
是非成敗轉頭空 (시비성패전두공)
靑山依舊在 (청산의구재)
幾度夕陽紅 (기도석양홍)
白髮漁翁江渚上 (백발어옹강저상)
慣看秋月春風 (관간추월춘풍)
一壺濁酒喜相逢 (일호탁주희상봉)
古今多少事 (고금다소사)
都付笑談中 (도부소담중)
삼국지 서사
굼실굼실 동으로 흐르는 장강의 물
물보라가 옛적의 영웅 다 씻어가 버렸네
옳고 그름과 성공과 실패, 머리 돌리는 사이 다 헛것이 되었다네
푸른 산은 예나 다름없건만
그 몇 번이나 석양은 붉었다 사라졌을까
다만 백발의 어부들만이 강가에서
언제나 그러하듯 가을 달과 봄바람 대하며
한 동이 탁주 앞에 두고 기쁘게 만나
고금의 수많은 이야기들
笑談(소담)속에 부쳐보네
해설
1. 위 詞(사)는 삼국지 첫머리에 나오는 序詞(서사)로
명나라 楊愼(양신)이 지은 臨江仙(임강선)인데,
漢中(한중)에 있는 석문잔도 입구에 위 사의 마지막 구절을
취한 笑談亭(소담정)이라는 회랑이 있다고 한다.
(윤태옥 지음 김영수 감수의 “개혁 군주 조조 난세의 능신 제갈량”
㈜ 위즈덤하우스 간 참고)
2. 二顧草廬歌(이고초려가) 三國志 中(삼국지 중)
一天風雪訪賢良 (일천풍설방현량)
不遇空回意感傷 (불우공회의감상)
凍合溪橋山石滑 (동합계교산석활)
寒侵鞍馬路途長 (한침안마로도장)
當頭片片李花落 (당두편편이화락)
撲面紛紛柳絮狂 (박면분분류서광)
回首停鞭遙望處 (회수정편요망처)
爛銀堆滿臥龍岡 (난은퇴만와룡강)
두 번째 초려를 방문하면서
눈보라 뚫고 숨은 현자를 찾아갔지만
못 만나고 되돌아오니 마음만 울적하네
개울다리는 꽁꽁 얼고 산길은 미끄러운데
추위는 말안장을 후벼들고 갈 길은 아득하여라
머리 위엔 배꽃 같은 눈송이 조각조각 떨어지고
얼굴에는 버들 솜 같은 함박눈 어지럽게 흩날리네
채찍 멈춘 뒤 고개 돌려 먼 곳 바라보니
찬란한 은빛 세상 와룡강에 가득하구나
해설
1. 劉備(유비)가 諸葛亮(제갈량)의 草廬(초려)를 세 번 찾아갔다는
三顧草廬(삼고초려)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한데 위의 시는
두 번째로 추운 겨울날 눈보라를 무릅쓰고 찾아갔다 만나지 못하고
되돌아오는 광경을 묘사한 시인데, 휘날리는 눈보라를 묘사한
頸聯(경련, 5,6구)의 對(대)가 절묘하다.
(조각조각(片片) 떨어지는 배꽃과 어지럽게(紛紛) 흩날리는 버들 솜 같은 눈의 묘사)
2. 제갈량을 누워서 때를 기다리는 용이란 의미로 臥龍先生(와룡선생)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8째 구의 臥龍岡(와룡강)은
隆中(융중)에 있는 제갈량의 초려가 있는 언덕(岡)을 말한다.
3. 三國志 關羽詩(삼국지 관우시)
가. 其一(기일)
掛印封金辭漢相 (괘인봉금사한상)
尋兄遙望遠途還 (심형요망원도환)
馬騎赤土行千里 (마기척토행천리)
刀偃靑龍出五關 (도언청룡출오관)
忠義慨然沖宇宙 (충의개연충우주)
英雄從此震江山 (영웅종차진강산)
獨行斬將應無敵 (독행참장응무적)
今古留題翰墨間 (금고유제한묵간)
삼국지 관우 시
그 첫째
관인 걸고 황금도 봉한 채 조조와 작별하니
형님 찾아가는 길 멀리 돌아가는 길이라
적토마 타고 천리 길을 내달리고
靑龍偃月刀(청룡언월도) 휘두르며 다섯 관문을 돌파하네
충의기상은 분연하게 하늘까지 오르고
영웅은 이때부터 천하를 호령하네
홀로 가며 여섯 장수 베니 누가 나서겠는가
옛날부터 詩書畵(시서화)의 소재로구나
나. 其二(기이)
人傑惟追古海良 (인걸유추고해량)
士民爭拜漢雲長 (사민쟁배한운장)
桃園一日兄和弟 (도원일일형화제)
俎豆千秋帝與王 (조두천추제여왕)
氣挾風雷無匹敵 (기협풍뢰무필적)
志垂日月有光芒 (지수일월유광망)
至今廟貌盈天下 (지금묘모영천하)
古木寒鴉幾夕陽 (고목한아기석양)
그 둘째
인걸은 오직 海良(해량) 땅에 있었으니
사람들 앞 다퉈 漢雲長(한운장)을 숭배하네
어느 날 도원에서 형제로 맺어졌다
황제와 왕이 되어 대대로 제사를 받는다네
기개는 바람과 우레 같아 적수가 없고
해와 달을 품은 뜻은 세상을 밝히네
지금도 사당이 천하에 넘치는데
고목의 갈 까마귀는 어찌 석양을 보고 우는가
해설
1. 소설 삼국지에 나오는 關羽(관우)의 시로
앞의 시는 조조에게 패한 관우가 한동안 조조의 휘하에 기탁해 있다가
유비의 행적을 알고는 바로 유비를 찾아 떠날 때의 장면을 묘사한 시이고
뒤의 시는 관우의 죽음을 애도한 시이다.
2. 2017년 12월 말 강남 교보문고에 갔다 삼국지기행(허우범지음 책문)이라는
책을 구입해 보면서 그 속에 있는 관우 관련 시 두 수를 소개하는데
오래전 읽었던 삼국지 책에도 序詩(서시)를 포함해 단락마다 시가 있었던 기억이 난다.
3. 우리나라에도 관우를 모시는 사당이 있다 하고(점집은 물론이거니와)
또 관우는 호국충절의 장수란 이미지뿐만 아니라 재물을 부르는 神(신)으로도
중국에서 많이 추앙받고 있다 한다.
4. 念奴嬌(염노교) 蘇軾(소식)
赤壁懷古(적벽회고)
大江東去 浪淘盡 千古風流人物
(대강동거 낭도진 천고풍류인물)
故壘西邊 人道是 三國周郞赤壁
(고루서변 인도시 삼국주랑적벽)
亂石穿空 驚濤拍岸 捲起千堆雪
(난석천공 경도박안 권기천퇴설)
江山如畵 一時多少豪傑
(강산여화 일시다소호걸)
遙想公瑾當年 小喬初嫁了 雄姿英發
(요상공근당년 소교초가료 웅자영발)
羽扇綸巾 笑談間 檣艣灰飛煙滅
(우선윤건 소담간 장로회비연멸)
故國神遊 多情應笑我 早生華髮
(고국신유 다정응소아 조생화발)
人生如夢 一樽還酹江月
(인생여몽 일준환뢰강월)
적벽전투를 회고하며
長江(장강)이 도도히 동으로 흘러
그 물결 천고의 풍류인물 모두 쓸어갔네
옛 보루의 서편
사람들 말하기를
삼국시대 周郞(주랑, 주유)의 赤壁(적벽)이라네
위태한 바위 하늘을 찌르고
놀란 파도 강 언덕을 때리며
천 무더기 물보라 말아 올린다
그림 같은 이 강산
한 시절 호걸들 몇이나 明滅(명멸)했던가
아득히 주유의 그 때 일 생각하니
小喬(소교)가 갓 시집 왔었고
영웅의 모습과 지략 뽐내었겠지
白羽扇(백우선) 들고 綸巾(윤건) 쓴 제갈공명과
담소하는 사이
적의 배는 불에 타 재 되고 말았지
고향 땅으로 내 마음 달려가나니
다정한 이들 틀림없이 웃을 테지
벌써 머리에 백발 났느냐고
인생은 꿈같은 것
한 잔의 술, 강에 비친 달에게 부어준다
해설
1. 위 염노교 적벽회고는 중국의 詞(사)중에 이처럼 웅장하고
호방한 작품은 없다고 評(평)해지는데,
黃州(황주) 귀양시절 작가가 赤壁(적벽)을 찾아 과거의 赤壁大戰(적벽대전)을
회고하며 지은 글이다.(참고로 황주에 있는 적벽은 실제 적벽대전이 일어난
그 적벽이 아니고 작가도 이를 알고 있었다는 자료가 작가의 다른 글에 나타나있다 한다.)
5. 赤壁(적벽) 杜牧(두목)
折戟沉沙鐵未銷 (절극침사철미소)
自將磨洗認前朝 (자장마세인전조)
東風不與周朗便 (동풍불여주랑편)
銅雀春深鎖二喬 (동작춘심쇄이교)
적벽
모래 속에 묻혔던 부러진 창은 미처 녹슬지 않아
닦고 씻어내자 옛것이 분명하구나
동풍이 주유를 돕지 않았던들
늦은 봄 동작대에 교공의 자매 갇혔으리
해설
1. 晩唐(만당) 杜牧(두목)의 시로, 赤壁大戰(적벽대전)을 소재로 한 또 다른 詩文(시문)으로는 소동파의 전,후적벽부(前,後赤壁賦)와 위에서 소개한 念奴嬌 赤壁懷古(염노교 적벽회고)란 詞(사)가 유명하다.
2. 적벽대전은 蜀吳(촉오)연합군이 조조의 大軍(대군)을 火攻(화공)과 連環計(연환계)를 이용해 격파한 전투인데 새롭게 밝혀진 사실로는 그렇지 않아도 水中戰(수중전)에 경험이 없던 조조의 군사가 장기간 대치하면서 소라나 우렁이 등 중간숙주에 기생하는 住血吸蟲(주혈흡충)에 감염 되 전투력이 떨어진 것이 敗因(패인)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적벽대전 때 諸葛亮(제갈량)이 東南風(동남풍)을 불게 해 화공이 성공할 수 있게 했다는 내용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극적인 스토리다.
3. 4째 구의 二喬(이교)는 二橋(이교)라고도 하는데 橋公(교공)의 두 딸로 大橋(대교)는 오나라 孫策(손책)의 부인이고 小橋(소교)는 周瑜(주유)의 부인이다.
4. 소설에서 제갈량은 조조를 치기 위해 주유를 격분시켜 촉오동맹을 맺게 하는데 그때 조조의 아들 曹植(조식)이 지은 銅雀臺賦(동작대부)의 구절을 이용하는데 그 구절은 아래와 같다.
立雙臺於左右兮 (입쌍대어좌우혜)
有玉龍與金鳳 (유옥룡여금봉)
攬二橋於東南兮 (남이교어동남혜)
樂朝夕之與共 (낙조석지여공)
좌우 이어진 한 쌍의 누대를 보라
옥룡대와 금봉대로다
대교와 소교를 동남에서 취해와
영원히 함께 즐기리로다
쉽게 말하자면 오나라를 쳐 두 미녀를 빼앗아 동작대에 두고 오래 즐기겠다는 소리이니 그 말을 들은 주유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조식이 위 賦(부)를 지은 때는 212년이고(동작대 완공은 210년이다) 적벽대전이 일어난 해는 208년이라 羅貫中(나관중)은 짓지도 않은 동작대를 거론해 촉오동맹의 구실로 삼았으니 野史(야사) 삼국지가 아니 픽션 삼국지의 실체가 赤裸裸(적나라)하게 들어난 셈이다.
5. 銅雀臺(동작대)는 조조가 210년 지금의 하북성 臨漳縣(임장현) 서쪽에 소재한 鄴(업)에 건축한 누각으로 꼭대기에 銅(동)으로 만든 커다란 孔雀(공작)이 있어 그렇게 불리었으며 조조가 만년에 즐겨 찾던 곳인데, 유언으로 첩실과 기녀들을 모두 동작대에 살게 하고 누대 위에 여석 척 크기의 무대를 만들고 얇은 비단 휘장으로 둘러쳐 조석으로 술과 육포 등의 음식을 올리고 매달 보름 무렵에는 휘장을 향해 노래와 춤을 추게 하도록 했는데, 南朝(남조) 梁(양)대 시인인 何遜(하손)의 銅雀妓(동작기)는 이런 조조의 유언에 따라 춤추던 여인을 묘사한 시인데, 아래에 조식의 登臺賦(등대부) 원본과 함께 소개한다.(허우범 지음 삼국지 기행 책문 간 참고)
6. 登臺賦(등대부) 曹植(조식)
從明后之嬉遊兮 (종명후지희유혜)
聊登臺以娛情 (요등대이오정)
見天府之廣開兮 (견천부지광개혜)
觀聖德之所營 (관성덕지소영)
建高殿之嵯峨兮 (건고전지차아혜)
浮雙闕乎太淸 (부쌍궐호태청)
立冲天之華觀兮 (입충천지화관혜)
連飛閣乎西城 (연비각호서성)
臨漳川之長流兮 (임장천지장류혜)
望衆果之滋榮 (망중과지자영)
仰春風之和睦兮 (앙춘풍지화목혜)
聽百鳥之悲鳴 (청백조지비명)
天功恒其旣立兮 (천공항기기립혜)
家願得而獲呈 (가원득이획정)
揚仁化於宇內兮 (양인화어우내혜)
盡肅恭於上京 (진숙공어상경)
雖桓文之爲盛兮 (수환문지위성혜)
豈足方乎聖明 (기족방호성명)
休矣美矣 (휴의미의)
惠澤遠揚 (혜택원양)
翼佐我皇家兮 (익좌아황가혜)
寧彼四方 (영피사방)
同天地之矩量兮 (동천지지구량혜)
齊日月之輝光 (제일월지휘광)
永貴尊而無極兮 (영귀존이무극혜)
等年壽於東王 (등년수어동왕)
누대에 올라
임금님을 따라 즐겁게 노닐며
문득 누대에 올라 마음을 즐겁게 하네
鄴城(업성)이 드넓게 펼쳐진 것을 보면서
임금께서 다스리는 곳을 바라보네
높다란 궁전은 우뚝 솟아 서있고
두 누대는 太淸(태청)에 떠있으며
하늘로 치솟은 아름다운 누대가 서서
나는 듯한 殿閣(전각)은 서쪽 성으로 이어져있네
漳河(장하)의 긴 흐름을 마주하여
모든 과일들이 번성함을 바라보고
봄바람의 화목함을 우러러 보며
온갖 새들의 슬픈 울음을 듣네
제왕의 功績(공적)은 변함없고 이미 세워졌으니
집안의 소원이 이루어져 드러나게 되었고
어진 교화가 천하에 날아오르니
모두 서울에 계시는 임금님 더욱 공경하네
齊桓公(제환공)과 晉文公(진문공)이 성대함을 이루었다 하여도
어찌 우리 임금님에 견줄 수 있으리오
기쁘도나 아름답도다
은택이 멀리까지 날아올라
우리 왕조를 보좌하고
저 사방을 안녕토록 하네
하늘과 땅의 크기와 같고
해와 달의 광채와 나란히 하며
영원히 존귀함은 끝이 없어
수명은 東王公(동왕공)과 같을 것이네
해설
1. 제목 登臺賦(등대부)의 臺(대)는 銅雀臺(동작대)를 지칭하는데 위 부는 建安(건안) 17년(212년) 봄에 조조의 3父子(부자)가 누대에 올라 조식으로 하여금 부를 짓게 하여 지은 작품으로 당시 조식의 나이 21세였다고 하는데, 마지막구의 東王(동왕)은 東王公(동왕공)으로 西王母(서왕모)와 對(대)를 이루는 전설 속의 仙人(선인)으로 남자 선인들의 명부를 관장한다고 한다.
7. 銅雀妓(동작기) 何遜(하손)
秋風木葉落 (추풍목엽락)
蕭瑟管絃淸 (소슬관현청)
望陵歌對酒 (망릉가대주)
向帳舞空城 (향장무공성)
寂寂簷宇曠 (적적첨우광)
飄飄惟幔輕 (표표유만경)
曲終相顧起 (곡종상고기)
日暮松柏聲 (일모송백성)
동작대의 기녀
가을바람에 나뭇잎 지는데
소슬한 가락이 청량하게 들린다
능묘를 바라보며 短歌行(단가행)을 노래하고
텅 빈 성 안 휘장 보며 쓸쓸히 춤춘다
적막함에 회랑은 넓게만 느껴지고
장막은 펄럭펄럭 바람에 나부낀다
곡이 끝나 서로를 돌아보며 일어날 때면
날 저물고 松柏(송백)소리만 들려오누나
8. 蜀相(촉상) 杜甫(두보)
丞相祠堂何處尋 (승상사당하처심)
錦官城外柏森森 (금관성외백삼삼)
映階碧草自春色 (영계벽초자춘색)
隔葉黃鸝空好音 (격엽황리공호음)
三顧頻煩天下計 (삼고빈번천하계)
兩朝開濟老臣心 (양조개제노신심)
出師未捷身先死 (출사미첩신선사)
長使英雄淚滿襟 (장사영웅루만금)
촉나라 승상
승상의 사당 어디서 찾을까
금관성 밖 잣나무 울창한 곳이지
섬돌에 비친 파란 풀들 절로 봄빛을 띠고
잎 사이 노란 꾀꼬리는 부질없이 고운 노래 부르네
삼고초려 마다않은 것은 천하를 위한 책략 때문
두 대에 걸쳐 충성을 다한 것은 늙은 신하의 마음
출정하여 이기지 못하고 몸이 먼저 죽었으니
길이 영웅들로 하여금 눈물로 옷깃 적시게 하네
해설
1. 蜀相(촉상)은 諸葛亮(제갈량) 諸葛孔明(제갈공명)으로, 첫째 구의 사당은 四川省(사천성) 成都(성도)의 武侯祠(무후사)를 말하는데, 공명이 오장원에서 숨을 거두자 後主(후주) 劉禪(유선)이 忠武侯(충무후)라는 시호를 내려 그를 기리는 사당이 건립되었는데, 그의 盡忠報國(진충보국)하는 정신을 기려 중국 전역에 2천여 개의 무후사가 있다고 한다.
2. 무후사 앞쪽으로는 先主(선주)인 劉備(유비)의 漢昭烈(한소열)묘가 있는데 유우석의 蜀先主廟(촉선주묘)란 시도 같이 소개한다.
9. 蜀先主廟(촉선주묘) 劉禹錫(유우석)
天地英雄氣 (천지영웅기)
千秋尙凜然 (천추상늠연)
勢分三足鼎 (세분삼족정)
業復五銖錢 (업복오수전)
得相能開國 (득상능개국)
生兒不象賢 (생아불상현)
凄凉蜀故妓 (처량촉고기)
來舞魏宮前 (내무위궁전)
촉 선주 유비의 묘
하늘과 땅에 미친 영웅의 기상
천 년 세월에 여전히 늠름하다
세력을 나누어 삼국을 정립했고
위업을 회복시켜 오수전을 주조했네
재상을 얻어 나라를 열 수 있었으나
자식을 낳았으되 어질지 못했더라
슬퍼구나 촉나라 옛 무희들
위나라 궁궐 앞에서 춤을 추게 되었으니
10. 八陣圖(팔진도) 杜甫(두보)
功蓋三分國 (공개삼분국)
名成八陣圖 (명성팔진도)
江流石不轉 (강류석부전)
遺恨失呑吳 (유한실탄오)
팔진도
功(공)은 三國(삼국)을 덮었고
명성은 八陣圖(팔진도)로 이루어졌네
강은 흘러도 돌은 구르지 않았는데
오나라를 병탄치 못해 恨(한)을 남겼네
해설
1. 두보가 대력 원년(766년) 기주에 왔을 때 지은 시로 팔진도는 지금의 중경시 봉절현 서남쪽 장강 여울에 설치한 여덟 가지 진법으로 제갈량은 그 진법으로 오나라의 추격을 물리쳤다는데, 세월은 강물과 함께 흘러갔지만 그때 쌓은 돌은 여전히 굴러가지 않고 그 자리에 남아 예전의 일을 떠오르게 해 이 시를 지은 것 같다.
11. 觀滄海(관창해) 曹操(조조)
東臨碣石 (동림갈석)
以觀滄海 (이관창해)
水何澹澹 (수하담담)
山島竦峙 (산도송치)
樹木叢生 (수목총생)
百草豊茂 (백초풍무)
秋風蕭瑟 (추풍소슬)
洪波湧起 (홍파용기)
日月之出 (일월지출)
若出其中 (약출기중)
星漢燦爛 (성한찬란)
若出其裏 (약출기리)
幸甚至哉 (행심지재)
可以詠志 (가이영지)
푸른 바다를 보다
동쪽 출정길에 갈석산에 올라
푸른 바다를 바라본다
파도는 어찌 그리 용솟음치는지
산 높은 섬들도 우뚝 솟아있다
나무들이 빽빽이 자라 있고
온갖 풀과 꽃들 만발하다
갈바람이 싸늘하게 불어오니
파도가 다시 한 번 용솟음친다
붉은 태양 붉은 달도
그 안에서 나오는 듯
미리내의 빛나는 별들도
그 속에서 나오는 듯
다행스럽기 그지없어라
노래로 나의 뜻 읊을 수 있음에
해설
1. 조조가 207년 동쪽을 정벌하여 遼西(요서)의 烏桓族(오환족)을 치고 개선하여 돌아가는 길에 碣石山(갈석산)을 찾아 지은 시로 위 觀滄海(관창해)는 4장으로 된 步出夏門行(보출하문행)의 제1장의 시다.
2. 위 갈석산은 기원전 215년 秦始皇(진시황)이 동쪽으로 巡狩(순수)해 갈석산에 와서 바위에 碣石門(갈석문)이라 새기고 여기에 진시황이 6국을 평정하고 전국시대 각 나라 사이의 성벽을 헐어낸 사실을 기록했다하고 그 후 1954년 毛澤東(모택동)이 다시 이곳을 찾아 조조를 생각하며 또 한편의 시 浪淘沙(낭도사)를 남겼다한다.
3. 조조는 後漢(후한)말기의 재상인데 아들로 뒤에 魏 文帝(위 문제)가 되었던 曹丕(조비)와 또 다른 아들인 曹植(조식)과 함께 建安時代(건안시대)를 빛낸 문인이기도 하다.
12. 短歌行(단가행) 曹操(조조)
對酒當歌 人生幾何 (대주당가 인생기하)
譬如朝露 去日苦多 (비여조로 거일고다)
慨當以慷 幽思難忘 (개당이강 유사난망)
何以解憂 唯有杜康 (하이해우 유유두강)
靑靑子衿 悠悠我心 (청청자금 유유아심)
但爲君故 沈吟至今 (단위군고 침음지금)
呦呦鹿鳴 食野之苹 (유유록명 식야지평)
我有嘉賓 鼓瑟吹笙 (아유가빈 고슬취생)
明明如月 何時可掇 (명명여월 하시가철)
憂從中來 不可斷絶 (우종중래 불가단절)
越陌度阡 枉用相存 (월맥도천 왕용상존)
契闊談讌 心念舊恩 (결활담연 심념구은)
月明星稀 烏鵲南飛 (월명성희 오작남비)
繞樹三匝 何枝可依 (요수삼잡 하지가의)
山不厭高 海不厭深 (산불염고 해불염심)
周公吐哺 天下歸心 (주공토포 천하귀심)
단가행
술을 마주하고는 응당 노래를 불러야지
한평생이 얼마나 되겠는가
비유하자면 아침이슬과 같아서
지난 세월에 괴로움 많았도다
비분강개하여 노래 부르니
가슴 속에 맺힌 근심 잊을 수 없네
무엇으로 근심을 풀 수 있을까
오직 술이 있을 뿐이라
푸르고 푸른 그대의 옷깃이여
오래 내 마음에 간직되어 있다
다만 그대를 잊지 못하여
지금까지 깊은 그리움에 잠겨 있네
메에메에 사슴이 소리 내어 우는 것은
들판의 풀을 함께 먹으려는 것
나에게 훌륭한 손님이 찾아오면
거문고를 타고 생황을 불리라
환하고 밝은 저 달은
언제나 그 운행을 멈출까
가슴 속에서 솟는 근심
마찬가지로 그칠 줄 모른다
이 길 저 길을 건너고 넘어
이곳에 안부 물으려 왕림했으니
만난 기쁨에 잔치를 열고서
마음에 옛 정을 품고 담소한다
달빛 밝아 별빛 희미한데
까마귀와 까치 남쪽으로 날아가지만
나무 주위를 빙빙 돌 뿐
어느 가지에 의탁할 수 있을까
산은 높이를 꺼리지 않고
바다는 깊이를 싫어하지 않는 법
周公(주공)이 성심으로 선비를 대하자
천하가 마음으로 귀의하였다
해설
1. 曹操(조조)는 字가 孟德(맹덕)으로 後漢(후한)말 삼국시대 魏王(위왕)으로 두 아들 曹丕(조비) 曹植(조식)과 함께 三曹(삼조)로 불리며 建安文學(건안문학)을 일으켰다.
2. 短歌行(단가행)은 연회에 사용되던 가사로 樂府詩集(악부시집)에 실려 있는데 그 내용은 먼저 살같이 빠른 세월을 탄식하였고 이어 세상을 구할 인재를 갈망하면서 끝으로 자신의 雄志(웅지)를 언급해 전체적으로 작가의 드높은 기개가 잘 드러난 작품이다.
3. 4聯(련)의 杜康(두강)은 술을 처음 빚은 사람으로 술을 지칭하고, 13련은 蘇東坡(소동파)의 前赤壁賦(전적벽부)에 나오는 구절이고, 15련은 管子(관자) 形勢解(형세해)의 “바다는 물을 사양하지 않기 때문에 그 거대함을 이룰 수 있고 산은 흙과 돌을 사양하지 않기 때문에 그 높이를 이룰 수 있었고 영명한 군주는 사람을 싫어하지 않기 때문에 그 무리를 이룰 수 있다”는 구절에 근거한 것이고, 마지막 16련은 史記(사기) 魯周公世家(노주공세가)의 “한번 머리를 감는 동안 여러 번 감던 머리를 잡아 올렸고 한번 밥을 먹는 동안 여러 번 밥을 뱉으면서까지 곧바로 일어나 선비를 맞이했는데도 오히려 천하의 현인을 놓칠까 두려워했다”는 구절에서 나온 말이다.
13. 七步詩(칠보시) 曹植(조식)
煮豆燃豆萁 (자두연두기)
漉豉以爲汁 (녹시이위즙)
萁在釜下燃 (기재부하연)
豆在釜中泣 (두재부중읍)
本是同根生 (본시동근생)
相煎何太急 (상전하태급)
일곱 걸음에 지은 시
콩을 삶으려고 콩깍지를 불태우고
메주를 걸러 즙을 만든다
콩깍지는 가마솥 아래서 타고
콩은 가마솥 안에서 우네
본래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건만
지지고 볶는 것이 어찌 이리 너무도 급한가
해설
1. 너무나도 유명한 七步詩(칠보시)로 2구는 보통 빠져있는 경우가 많은데 형제간의 핍박을 상징적으로 비유한 시에 콩과 콩깍지 외에 굳이 메주를 거론할 필요가 있었을까 괜한 蛇足(사족)이 아닐까 생각되지만 2,4,6구 끝의 측성 韻(운)을 맞추기 위해 필요한 구절로
2. 다만 실제 조식이 이 시를 지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은데, 더 나아가 허풍이 많은 중국 詩話(시화)에 史靑(사청)이란 자가 일곱 걸음은 오히려 많다면 다섯 걸음 안에 시를 짓겠다고 황제께 表(표)를 올려 除夜(제야)란 시를 지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이 블로그 2017년 9월 18일자로 게재한 “중국의 시화” 참고)
14. 前赤壁賦 中(전적벽부 중) 蘇軾(소식)
가. 方其破荊州 下江陵 順流而東也 舳艫千里 旌旗蔽空 釃酒臨江 橫槊賦詩 固一世之雄也 而今安在哉 況吾與子 漁樵於江渚之上 侶魚蝦而友麋鹿 駕一葉之扁舟 擧匏樽以相屬 寄蜉蝣於天地 渺滄海之一粟 哀吾生之須臾 羨長江之無窮
(방기파형주 하강릉 순류이동야 축로천리 정기폐공 시주임강 횡삭부시 고일세지웅야 이금안재재 황오여자 어초어강저지상 여어하이우미록 가일엽지편주 거포준이상속 기부유어천지 묘창해지일속 애오생지수유 선장강지무궁)
그(조조)가 荊州(형주)를 격파하고 江陵(강릉)으로 내려와 물결을 따라 동쪽으로 진출할 때 戰艦(전함)이 천 리에 뻗쳐 있고 깃발이 공중을 가리웠다. 술을 걸러 강에 임하고 창을 비껴들고 시를 읊으니 진실로 한 세상의 영웅이었는데 지금은 어디에 있는가. 하물며 나와 그대는 강가에서 고기 잡고 나무하면서 물고기와 새우들을 짝하고 고라니와 사슴들을 벗하고 있다. 나뭇잎 같은 작은 배를 타고서 술 바가지와 술동이를 들어 서로 권하니 천지에 寄託(기탁)된 하루살이 같고 滄海(창해)에 떨어진 한 알 좁쌀같이 보잘 것 없어 우리 인생의 덧없이 짧음을 슬퍼하고 長江(장강)의 무궁함을 부러워한다.
나. 蘇子曰 客亦知夫水與月乎 逝者如斯 而未嘗往也 盈虛者如彼 而卒莫消長也 蓋將自其變者而觀之 則天地曾不能以一瞬 自其不變者而觀之 則物與我皆無盡也 而又何羨乎 且夫天地之間 物各有主 苟非吾之所有 雖一毫而莫取 惟江上之淸風 與山間之明月 耳得之而爲聲 目寓之而成色 取之無禁 用之不竭 是 造物者之無盡藏也 而吾與子之所共樂
(소자왈 객역지부수여월호 서자여사 이미상왕야 영허자여피 이졸막소장야 개장자기변자이관지 즉천지증불능이일순 자기불변자이관지 즉물여아개무진야 이우하선호 차부천지지간 물각유주 구비오지소유 수일호이막취 유강상지청풍 여산간지명월 이득지이위성 목우지이성색 취지무금 용지불갈 시 조물자지무진장야 이오여자지소공락)
소동파가 말하기를 客(객)은 또한 저 물과 달을 아는가? 강물은 가기를 이처럼 하나 일찍이 다하지 않았으며 달은 찼다 기울었다 하기를 저처럼 하나 끝내 사라져 없어지거나 자라서 커지지 않는다. 그 변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天地(천지)도 일찍이 한 순간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변하지 않는 입장에서 본다면 물건과 우리 인간이 모두 무궁무진한 것이니 또 어찌 부러워할 것이 있겠는가. 또 천지 사이에 물건은 각기 주인이 있어 만일 나의 소유가 아닐진댄 비록 한 털끝만큼도 취하지 말아야 하거니와 오직 강 위에서 불어오는 淸風(청풍)과 산 사이의 明月(명월)은 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으로 보면 色(색)을 이루어 취하여도 禁(금)하는 이가 없고 써도 다하지 않으니 이는 조물주의 무궁무진한 寶庫(보고)요, 나와 그대가 함께 즐거워해야 할 것이라.
해설
1. 蘇軾(소식, 1036-1101, 字가 子瞻, 北宋)의 작품으로 소식이 王安石(왕안석)의 新法(신법)에 대항하다 黃州(황주)로 귀양 가 동쪽 언덕(東坡, 동파) 황무지 한 조각 땅을 일구어 東坡居士(동파거사)라 자처하며 지낼 때 친구 楊世昌(양세창)이 놀러오자 그와 뱃놀이를 하며 지은 작품으로 석 달 뒤 지은 後赤壁賦(후적벽부)와 함께 천하의 名篇(명편)으로 알려져 있는데, 인용부분은 그 글의 白眉(백미)인 작가와 같은 배에 타 퉁소 불던 자와의 問答(문답)이다.
[출처] 삼국지 관련 詩(시)와 詞(사), 그리고 賦(부)|작성자 소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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