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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환 목사
어제께 말씀의 키워드는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다”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역사의 주관자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우리의 주관자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까지 그의 백성들이 절망하고 있는 것을 그냥 보고 계시지 않습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희를 강하게 하고 너희를 돕겠다. 내 승리의 오른팔로 너희를 붙들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단순히 일시적으로 우리를 안심시키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것은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부흥의 이유입니다.
오늘은 이사야 42장 말씀을 통해서 부흥의 믿음에 대하여 알아 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역사 속에서 행하시는 일을 보면서 부흥에 대한 믿음을 갖고 살자는 것입니다. 이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그냥 단순히 그렇게 말하고, 듣고 넘어갈 말씀이 아닙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1:11에서 하나님께 대하여 “모든 것을 그의 뜻대로 이루시는 분(He makes everything work out according to his plan)”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역사 속에서 그렇게 일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들의 삶 속에서 그렇게 일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 하나님께 우리의 믿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눈이 먼 사람들이었다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지금 본다고 말하니, 너희의 죄가 그대로 남아 있다." (요한복음 9:41)
이 말씀은 바리새인들의 경직된 믿음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율법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규정에 매달려 있는 바람에 그 규정들은 잘 지킬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지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거절했습니다.
헬렌 켈러가 한번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불쌍한 것이 아니라, 두 눈을 가지고도 비전이 없는 사람이 불쌍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불쌍한 사람들이 되면 안되지요. 이 역사를 그분의 뜻대로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무슨 일을 어떻게 하십니까?
오늘 말씀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 사람을 보라(1절)”는 말씀입니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을 보아라. 그는 내가 선택한 사람이며, 내가 기뻐하는 사람이다. 내가 내 영을 그에게 주었으니, 그가 모든 민족에게 정의를 베풀 것이다. 그는 외치거나 소리를 높이지 않으며, 거리에서 큰 소리로 말하지 않는다. 그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며,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않는다. 그는 정의를 베풀며 진리를 구한다. 그는 세계에 정의를 베풀 때까지 희망을 잃지 않으며 포기하지 않는다. 바다 건너 먼 나라 백성들도 그의 가르침을 믿고 의지한다.” (1-4절)
요약하면,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을 주셨다고 합니다( I have put my Spirit upon him).
이 사람은 자기를 사람들 앞에 자랑하거나 크게 드러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하나님께서 옳게 여기시는 정의를 실현한다고 합니다. 그는 결코 하나님께서 맡기신 이 사명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온 세계가 그에게 소망을 둔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선택하신 이 사람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며,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는 확실히 이전의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세상의 지도자들이 모두 상한 갈대를 꺾었습니다. 꺼져 가는 등불을 껐습니다. 상한 갈대와도 같이 연약한 사람들, 그리고 꺼져 가는 등불처럼 희망이 없는 사람들을 오히려 핍박하고, 그들이 가진 것을 빼앗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상한 갈대 같은 사람들을 치료하고 회복시켜 줍니다. 꺼져 가는 등불 같이 희망이 없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줍니다.
도대체, 하나님이 선택하신 이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구약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 사람이 고레스 왕이라고 합니다. 그는 바빌로니아를 이어 페르시야 제국을 건설한 사람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 고레스라는 왕은 특이합니다. “고레스가 페르시아의 왕이 된 첫 해 에 여호와께서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예레미야를 시켜서 하신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고레스는 온 땅에 사람들을 보내어 글로 적은 칙령을 선포하게 했습니다.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선포한 칙령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하늘의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 이 세상의 온 나라들을 나에게 주셨다. 그리고 나를 세우셔서 유다 땅 예루살렘에 여호와를 위해 성전을 짓게 하셨다. 이제 너희 모든 하나님의 백성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도 좋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하시기를 바란다.’” (역대하 36:22-23, 에스라 1:1-4)
참 특이한 말씀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고레스 왕이 그렇게 하도록 그의 마음을 움직이셨다(He stirred the heart of Cyrus)고 합니다. 또 이사야 45:1-6 말씀에 고레스 왕에 대하여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내가 네 오른손을 붙들어 민족들을 물리치게 하고, 왕들을 네 앞에서 무릎 꿇게 하겠다. 네가 가는 곳마다 문빗장을 열어 주어 성문이 네 앞길을 막지 못하게 하겠다. 내가 너보다 앞서 가며 꾸불꾸불한 곳들을 평탄하게 만들겠다. 놋쇠 성문을 부수고 쇠빗장을 깨뜨리겠다. 감추어진 보물을 너에게 주며, 숨겨진 재물을 너에게 주겠다. 그리하여 너로 하여금 내가 여호와라는 것과 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 이름으로 너를 불렀다는 것을 알게 하겠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내 종, 야곱 백성을 위함이요, 내가 선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위함이다. 나는 네 이름으로 너를 불렀다. 네가 아직 나를 몰랐을 때, 나는 네 이름으로 너를 불렀다. 나는 여호와다. 나 외에 다른 하나님은 없다. 네가 나를 알지 못하나, 내가 너를 강하게 해 주겠다. 그렇게 하여 나밖에 다른 하나님이 없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알게 하겠다.”
구약학자들의 말대로 하나님은 자기 백성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하여 페르시야의 왕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이셨고, 그를 선택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내가 택한 “이 사람을 보라(Look at my servant)!”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와 똑 같은 말씀이 신약성경 요한복음 19:5에서 볼 수 있습니다.
빌라도는 한 사람을 사람들 앞에 세우면서 “이 사람을 보라!”고 말했습니다. 빌라도가 사람들 앞에 세운 이 사람은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택한 이 사람을 보라고 하시면서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여 그의 뜻을 이루시는 도구로 사용하셨다는 오늘 말씀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인류를 구원하실 메시야로 기름을 부으심으로 이루어집니다. 말하자면, 고레스는 장차 오실 예수님의 그림자(shadow)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림자는 본체는 아닙니다. 고레스는 그림자이고, 본체는 예수님인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우리는 마태복음을 읽어가다가 뜻 밖의 말씀을 발견합니다.
마태복음 12장에 “내가 선택한 종을 보아라. 내가 그를 사랑하고 기뻐한다. 내 영을 그에게 줄 터인데, 그가 이방 사람들에게 정의를 선포할 것이다. 그는 다투지도 않고, 울부짖지도 않을 것이다. 거리에서 아무도 그의 소리를 들을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상한 갈대도 꺾지 않을 것이고 꺼져가는 불꽃도 끄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결국 정의가 이기게 할 것이다. 모든 이방 사람들이 그 이름에 소망을 걸 것이다.” (18-21절)
이사야 42장에 기록된 말씀이 마태복음에 그대로 나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제자 마태가, (이 사람은 장차 마태복음를 기록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동행하다가 예수님께서 하시는 사역을 목격하면서 이사야 42장에 있는 말씀을 떠올리고 그의 복음서에 기록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주관하시는 방법 중 하나가 그가 기뻐하시는 사람을 선택하여 그를 통해서 그의 뜻을 이루도록 하신다는 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이 사실을 주목해서 보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도구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사용되었습니다. 저는 오늘 우리 시대에도 하나님께서 똑 같은 일을 하고 계시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 시대에도 그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도구로 사용하실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도구로 선택된다면 이보다 더 큰 영광은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도구로 선택하신다면 이보다 더 큰 영광이 없습니다. 이사야 같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시대를 위하여 도구로 사용할 사람이 없다고 하셨을 때 “하나님,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를 사용하십시오(이사야 6:8)”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드릴 수 있습니까? “예.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사용하십시오” 이렇게 말씀 드릴 수 있는 것은 여러분의 더 없는 영광이요, 여러분의 인생에 있어서 최대의 축복입니다.
그 다음에 오늘 말씀에서 주목해서 보아야 할 말씀은 8절 말씀입니다.
“나는 여호와다. 이것이 내 이름이다. 나는 내 영광을 다른 것에게 주지 않겠고, 내가 받을 찬양을 우상들이 받게 하지 않겠다.”
그리고 이어지는 10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 새 노래를 불러 드려라. 땅 위 모든 곳에서 주를 찬양하여라. 바다에서 항해하는 사람과 바다 속에 사는 모든 짐승아, 주를 찬양하여라. 바다 건너 먼 땅에 사는 백성들아, 주를 찬양하여라.” 그리고, 13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용사처럼 전진하신다(The Lord will march forth like a mighty hero).”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 그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한 사람을 선택하시고,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사실을 안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을 이렇게 찬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내 영광을 다른 것에게 주지 않겠고, 내가 받을 찬양을 우상들이 받게 하지 않겠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우상을 찬양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내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고난의 용광로 속에서 단련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고난을 받지만, 그 고난은 우연히 주어지는 고난이 아닙니다. 고난 속에 하나님의 섭리와 목적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확인하고 또 확인해서 아주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합니다. 이것을 각인(刻印)한다고 하지요? 도장을 파듯이 마음에 깊이 새기는 것입니다.
바올은 이 사실을 잘 알았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8:28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즉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부름을 입은 사람들의 선을 위하여 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도 이 사실을 잘 알았습니다.
야고보서 1:2-3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 가지 시험을 겪을 때 기쁘게 여기십시오. 여러분은 믿음의 시련을 통하여 인내심이 성장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 속에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이 성취되고 있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인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내 영광을 다른 것에게 주지 않겠고, 내가 받을 찬양을 우상들이 받게 하지 않겠다.”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이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할 때 얼마나 답답하시겠습니까?
그 말씀이 18-20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듣지 못하는 사람들아, 들어라. 보지 못하는 사람들아, 잘 보아라. 내 종 이스라엘보다 더 보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내가 보낸 심부름꾼보다 더 듣지 못하는 사람도 없다. 내가 택한 사람보다 더 눈먼 사람이 없고, 나의 종보다 더 눈먼 사람이 없다. 이스라엘아, 너희가 많은 것을 보았으나 복종하지 않았다. 너희가 귀는 열어 두었으나 듣지 않았다.”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야곱 백성이 끌려가게 내 버려 둔 분이 누구냐? 도둑들이 이스라엘을 약탈하게 내버려 둔 분이 누구냐? 우리가 여호와께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주께서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하셨다. 우리가 주께서 가라 하신 길로 가지 않고 주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다.” (24절)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관자이시고, 우리 인생의 주관자이신 것을 깨달을 때까지 그의 자녀들을 고난 속에 두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당하고 있는 고난은 모두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깨닫지 못하면 깨달을 때까지 그들을 고난 속에 두시는 것이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교육하시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지혜 있는 사람들은 이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