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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땅끝 사랑 선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호현낙선
노아가 방주를 예비한 것처럼 창6:5-14, 요3:14-21
시골 노인이 대도시 큰 빌딩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출입구라고 쓰여 있는 글씨를 간신히 읽고 그 문에 가까이 가보니 대형 유리가 가로막혀 있고 아무리 찾아도 문의 손잡이가 없는 것입니다. 난감하였지만 출입구라고 했으니 돌아갈 수도 없었습니다. 좀 더 가까이 다가서자 ‘윙-’하며 자동으로 된 유리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도 그 말씀을 ‘믿고 나아가 천국 문 앞에 서는 자’에게 스르르 열리는 자동문과 같습니다. 인간의 공로가 없어도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 불가능한 것 같아도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약속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그 앞에 서기만 하면, 그 문은 반드시 열리는 것입니다.
구약 본문에는 노아가 죄로 인한 홍수 심판의 예고를 듣고 말씀에 순종하여 방주를 예비함으로 그와 그 가족이 구원을 받았지만 경고를 무시하고 돌이키지 아니한 자들은 다 심판을 받아 멸망을 당한 내용이 기록 되어 있습니다.
신약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죄로 인한 심판에서 구원 받는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큰 죄인이라도 회개하고 돌이켜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독생자를 희생 시키시면서 까지 구원의 길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심판하시기 전에 반드시 경고로, 권고하심으로, 징계하심으로, 오래 참고 인내하심으로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시지만 끝내 거부하고 돌이키지 않을 때 진노하심으로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노아가 방주를 예비한 것처럼”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노아가 방주를 예비한 것처럼,
1.은혜로 예비해야 합니다.
구약 본문 창6:5-8 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했습니다. 죄가 세상에 넘쳐나는 상황에서 죄에 휩싸여 물들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신앙으로 사는 비결은 내 결심도, 의지도, 수양도, 많은 학문도, 고행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합니다. 주께서 붙드시고 이끌어 주시는 은혜, 성령께서 도우시고 힘주시는 은혜로 가능합니다. 성도가 은혜 충만하면 세상을 이기고, 죄악을 이기고, 박해를 이기고, 유혹을 이기고, 두려움을 이깁니다.
신약 본문에 요3: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했습니다. 이 말씀은 성경의 핵심 요절이 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우리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나를 대신하여 저주와 형벌을 받으셨다는 것과 거듭나 새사람이 되는 것, 예수님 안에서 영생을 얻게 됨을 믿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은혜가 그만큼 중요합니다. 한 때 아무리 은혜 충만했던 성도라도 머리 깎인 삼손처럼 은혜가 떨어지면 죄와 세상을 이길 힘을 잃고 맙니다. 다시 시험에 들고, 세상 죄악에 휩쓸려 살게 됩니다. 그러다가 믿음이 파선 되어 믿음의 실패자가 된 자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이런 자들을 은혜를 헛되이 받은 자들이라고 말씀합니다. 성도가 깨어 기도에 힘쓰고, 예배에 힘쓰고,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일에 힘쓰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힘써야 할 이유는 은혜를 소멸하지 않고 불 일 듯 일으켜 은혜 충만하여 믿음의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습니다. 또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은혜의 삶은 누구에게나 필요합니다. 주님은 일만 달란트 빚진 자에 대한 비유를 말씀했습니다. 일만 달란트가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요즘 하루 품삯이 5만원이라고 계산할 경우에 3조원입니다. 이 돈은 탕감해 주지 않으면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엄청난 가치의 액수입니다. 이 많은 빚을 하나님의 은혜로 빚이 없는 것으로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것이 성경이 말하는 은혜입니다. 이 사실을 안 바울은 고린도전서 15:10에서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죄가 관영한 곳이라도 은혜를 넘치게 주십니다. 미국의 라스베가스는 흔히 도박의 도시라고 알고 있습니다. 헐리웃은 영화의 도시라고 알고 있습니다. 호화롭고 죄악이 많은 곳이라고 하지만 이 곳에는 훌륭한 교회들이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알아주는 교회들이 이 곳에 있습니다. 죄악이 많은 곳에 하나님은 은혜가 많은 교회들을 두신 것입니다. 우리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 죄악이 많으니 은혜도 많습니다. 죄악이 관영한 곳에서 악을 이기려면 은혜도 그 만큼 많아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죄악의 생활을 하지만 하나님은 남은 자를 두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모두를 타락케 하고, 모두를 멸망시키지 않으십니다. 엘리야는 850명의 바알신과 앗세라신을 섬기는 선지자들과 대결할 때에 하나님을 위해 싸우는 자들이 다 사라지고 자신만 홀로 남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7천명을 남겨 두었다고 하십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은 죄악 가운데에서 남겨놓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남은 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계속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이 시대에 하나님이 남겨놓으신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우리 모두 노아가 방주를 예비한 것처럼 악한 시대에 주님 은혜를 사모하여 은혜 충만함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고 믿음의 승리자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믿음으로 예비해야 합니다.
구약 본문에 나오는 노아는 믿음으로 방주를 예비했습니다. 그와 가족들이 방주 안에서 홍수 심판을 면했습니다. 비가 그친 후 40일이 지나서 방주 밖의 상황을 살피고자 창문을 열고 까마귀와 비둘기를 날려 보냈습니다. 그리고 수차례에 걸친 실험 끝에 드디어 밖으로 날려 보낸 비둘기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정결한 짐승과 새는 암수 일곱씩을 배 안에 들어오게 함으로 제사에 사용할 제물들을 충분히 예비하였던 것과 더불어 창8:10-12에 거듭해서 기록 된 “또 칠 일을 기다려...”라는 표현에서, 그리고 창8:20에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라는 말씀을 보면 노아의 삶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삶이었고, 하나님께 제단을 쌓는 삶이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배를 중심으로 하는 생활을 통해 노아는 의롭고 온전하여 하나님께 쓰임 받는 신앙의 위인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신약 본문에서 ‘믿는 자’라는 말이 여러 차례 나오고 있음을 봅니다.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고’,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과 영생의 길을 예비해 놓으셨어도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 중에도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는 불신앙의 죄가 가장 크고 심판에 이르게 되는 두려운 죄인 것입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할 때에도 믿음이 뒷받침 될 때 평안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과학의 근거는 믿음” 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우주선에 사람을 태워서 달나라로 쏘아 올립니다. 그때 우주선에 태워져 달나라로 가는 사람도, 보내는 사람도 별로 긴장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우주선이 다시 지구로 무사히 돌아 올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과학조차도 믿음에 기초한다고 말 한 것입니다.
우리들이 비행기를 타고 공중에 높이 올라가서도 평안히 잠을 잡니다. 왜냐하면 이 비행기가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데려다 준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들이 기차를 타고 그 좁은 레일 위를 마구 달리면서도 단잠을 잡니다. 그것도 믿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믿음이 얼마나 좋습니까. 그것은 영적인 세계에서도 같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믿고 영접한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고(요1:12), ‘믿음 안에서 참 평안을 주시고’,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구원을 얻는다.’ 다고 한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의 소중한 가치를 아는 사람은 이 믿음을 생명처럼 마음에 간직하고 지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기뻐하시고 사랑하십니다. 그런 자들에게 하늘 기업을 주십니다. 칭찬과 상급과 면류관을 주십니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모브상은 1827년부터 지금까지 세계 재벌들의 신뢰와 사랑을 받고 있는 세계 최고의 보석상입니다. 그런데 그 보석상이 세계 최고의 보석상이 된 데는 이런 스토리가 있습니다. 보석에 관심이 많은 루이라는 청년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보석상의 심부름꾼으로 취직을 했습니다. 성실하고 착실한 그는 곧 보석공 조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파리의 한 백만장자가 아들 결혼을 위해서라며 아주 값비싼 다이아몬드 반지를 주문했습니다. 밤새도록 반지를 만든 그는 그것을 금고에 넣고 잠을 청하는데 강도들이 들어왔습니다. 철문을 열고 들어온 강도들이 진열장의 보석을 자기들이 가져온 자루에 다 쏟아 넣은 다음 루이에게 칼을 들이대고 금고의 열쇠를 달라고 했습니다. 값진 보석은 금고에 들어 있는데 금고 열쇠를 강도에게 주면 그 보석상은 망하는 것입니다. “안 됩니다.”, “잔소리 말고 빨리 내 놓아!”, “가져가려면 나를 죽이고 가져가세요. 내 것이라면 줄 수 있지만 나는 이 집의 종업원이라 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너 이놈! 계속해서 고집을 부리면 네 손가락을 자르겠다. 1분에 손가락을 하나씩 자를 것이니 고집 부리지 말고 빨리 내놓아!” 강도들이 루이의 손을 진열장 위에 얹어 놓고 시계를 보았습니다. 1분이 되었습니다. 한 강도가 소리쳤습니다. “빨리 잘라!”, “그래도 열쇠는 내놓을 수 없습니다. 절대로 내놓을 수 없습니다.” 그때 두목이 말했습니다. “자르지 마라. 우리가 졌다. 이렇게 책임감이 있는 네게 우리가 졌다. 이제 우리는 그만 가자.” 강도들이 떠나갔습니다. 그 보석상에 강도들이 들어왔다는 기사가 신문에 보도되었습니다. 백만장자는 자기가 맡긴 반지도 없어진 줄 알고 놀라서 보석상으로 달려왔다가 루이의 이야기를 듣고 고마워했습니다. 그 사건으로 루이는 유명해졌고 보석상 주인은 목숨을 걸고 가게를 지켜준 루이에게 나중에는 사장자리까지 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보석상도 지금까지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한 가게의 주인도 최선을 다하는 종업원을 알아주는데 하물며 우리 하나님이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최고의 선물인 독생자를 주시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주셨음을 알고 그 어떤 손해와 위험을 무릅쓰고 믿음을 지킨 자들에게 반드시 약속하신 대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노아가 방주를 예비한 것처럼 믿음으로 구원 방주를 예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순종함으로 예비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구약 본문 22절에 보니 ‘노아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했다’고 말합니다. 방주는 배를 젓는 노도 없고, 운전시설이 없습니다. 배의 방향을 조정하는 키가 없습니다. 방주의 조정자는 하나님이십니다. 노아가 방주 안에서 가장 어른이었지만 노아의 마음대로 방주의 방향을 조정할 수 없었습니다. 방주 안에 8사람이 타고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방주의 방향을 다수결로 정하지 못했습니다. 방주의 조정자는 오직 하나님이셨습니다. 마찬가지로 개인의 신앙생활의 조정자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교회의 조정자 역시 오직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이란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진정으로 믿는 사람은 말씀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동했던 것입니다. 방주는 ‘잣나무로 지어라’ 하시니 그대로 했고, ‘간을 막아라.’ 하시니 그대로 했고, ‘역청을 바르라’ 하시니 그대로 했으며, ‘정한 크기대로 지어라’하시니 오차 없이 순종했고, ‘위에 창문을 달아라.’하시매 그대로 준행하고, ‘옆에 문을 내어라’하시매 그대로 순종했고, ‘3층으로 지어라’하시매 그대로 했으며, ‘들어가라’하시매 들어갔으며, ‘짝으로 들어가게 명하시매’ 그대로 순종했으며, ‘식물을 준비하라’ 하시매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고 순종한 것입니다.
신약 본문 요3:19-21에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여 회개 하고 순종하여 따르지만, 믿지 않는 자들은 계속 악을 행하면서 주님을 미워하고 순종하여 따르지 않았습니다. 이런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엄청난 사랑의 대가를 지불하시고 예비하신 구원의 길이지만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참 성도는 절대 권세를 가지신 주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고 순종하여 따르게 됩니다. 나폴레옹은 말을 잘 탔는데 한 번은 고삐를 놓쳐 떨어질 뻔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한 병사가 쏜살같이 달려가 말고삐를 잡아 주었습니다. 그래서 위기를 모면한 나폴레옹은 그 병사가 너무 고마워 그 병사에게 말했습니다. “고맙소, 대위.” 그 말을 들은 그는 즉시 장교 막사로 가서 장교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를 본 장교들이 말했습니다. “아니, 병사가 감히 여기에 들어오다니!”, “안 될 이유가 뭐 있소? 나는 대위인데.”, “뭐라고? 네가 대위라고? 어떻게 네가 대위냐?”, “나폴레옹 장군께서 나를 대위라고 불렀소. 그러니 나는 대위요.”, “이 미친놈을 보았나!”, “장군께 알아보시오.” 그래서 나폴레옹을 찾아가서 그 이야기를 하니 나폴레옹이 그 병사에게 대위 계급장을 달아주었다고 합니다. 그는 나폴레옹이 한 말을 믿고 그대로 행동한 것입니다. 그가 나폴레옹의 말을 듣고도 행동하지 않았다면 그는 그냥 병사로 군 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 말씀이 떨어지는 그 즉시 “아멘!” 하고 순종할 때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 자녀도 되고, 심판에 이르지 않게도 되고, 죄 사함 받은 의의 사람도 되고, 구원 받아 영생의 후사도 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우리에게 믿음생활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우리가 그를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 신앙생활의 모범 중에 하나는 순종입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은 놀랍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습니다. 그는 목숨을 걸고 순종한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법보다 주먹이 강한 시대이기 때문에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세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순종했습니다. 더 놀라운 순종은 독자 이삭을 드린 순종입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시니 100세에 얻은 아들까지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순종을 보시고 이삭을 살리신 것만 아니라 하늘의 별처럼 낳을 후손을 주셨고,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셨으며, 복의 근원으로 삼아 주셨고, 그의 후손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노아가 방주를 예비한 것처럼 순종으로 하나님 나라를 예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노아가 방주를 예비한 것처럼”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예비한 것처럼,
◒.은혜로 예비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예비해야 합니다.
◒.순종함으로 예비해야 합니다. 아멘.
<2019. 10. 2. 호현낙선. http://cafe.daum.net/sungsansar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