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창단한 극단 가변은 2018년 창단 20주년이 되는 중견 연극 단체이다. 2000년대 초반 혜화동1번지 3기 동인 극단으로 ‘고전의 현대화’, ‘국내 창작극의 개발’을 화두로 새로운 연극언어 찾기에 매진했으며, 2010년대엔 ‘예술성과 대중성의 상호융합에 기반 한 새로운 연극 언어 개발’, 한국연극의 세계화 도모’, ‘자생력 있는 자체 레파토리 발굴’을 목표로 작품을 제작 하고 있다.
● 연출의도
이 작품의 바깥 틀은 고무신 공장의 극단적 노사관계에서 비롯된 착취와 억압의 구조를 통해 일제 강점기 우리민중의 고단한 삶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그러나 그 본질을 들여다보면, ‘일본을 등에 업은 악덕 공장주 김원량’, ‘착취당하는 일꾼들’, 이 둘 사이에 끼어있는 ‘십장 오씨’라는 계급 구조가 있다. 다른 한편에는 주인에게 성적으로 유린당하는 ‘비극적 여인 콩점네’까지 전형적인 인물과 관계 구조를 가진다.
이 전형성은 사건이 진행되면서 계급갈등, 착취구조, 선악의 구도를 넘어 ‘인물들의 성격’과 그로 인한 ‘복합적인 인간관계망’을 구현하고, 극적 흥미와 코미디적 요소까지 버무리고 있다.
핵심은 주인공 오씨의 불행이 공장주인과 일꾼들의 이합집산이나 아귀다툼, 야만성에 의해 부각되지만, 실은 오씨 자신의 계급적 정체성을 깨닫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나 자신에게도 똑같은 굴레로 작동한다. 지금 이곳에서 나 자신의 계급적 정체성을 깨닫는다면, 이를 뼈저리게 느낀다면 과연 숨을 쉴 수 있을까? 나는 사회화 되는 과정에서 계급적 정체성을 어떻게 외면하고 있는가? 자본의 논리에서 나의 사고는 어떻게 경직되어 왔는가? 합리적 개인주의를 외치는 사회이지만, 사실 객관화 된 시각은 없지 않은가?
배우의 연기는 하이퍼리얼리즘에서 모티베이션을 찾는다.
하이퍼리얼리즘의 예술적 목표는 대상을 정밀하게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리얼한 묘사도 결국은 묘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이런 측면을 통해 인간 욕망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한계를 통감하고자한다.
● 작품줄거리
일제감정기 시절, 고무신 공장을 경영하는 김원량과 그의 수발을 드는 오씨, 그리고 콩점네.
김원량은 콩점네의 내면의 관계에 있으면서도 훗날의 부귀와 콩점네를 아내로 들여줄 것을 미끼로 오씨를 부려먹는다. 일본인에게 아첨하고, 같은 동포를 착취하는 일에 오씨를 내 세운다. 김원량의 이같은 간교에 두 달치 월급이 밀린 일꾼들은, 고무신 재료를 훔치다 팔자고 오씨에게 청하지만, 순진한 오씨는 김원량을 향한 충성심에 거절한다. 그러나 일꾼들은 오씨도 모르게 고무 원료를 훔쳐다 팔고, 김원량 에게 들키게 되자 오씨가 주동한 일이라고 누명을 씌운다. 하루아침에 전락한 오씨, 다리에 부상까지 입어 반병신인 몸으로도 콩점네를 향한 사람은 변치 않는데, 콩점네는 김원량의 아기를 임신하고서 오씨를 향한 연민에 슬퍼한다.
광복이 되던 날 아침, 양심을 품은 일꾼들은 복수심에 김원량을 해하러 들이닥치고, 김원량은 다시 오씨에게 속되게 굴며 연합을 제외하지만, 오시의분노는 용서하기에 너무 크다. 오씨가 김원량을 죽이려 하자, 위협을 느낀 콩점네는 뱃속의 아이 아버지가 김원량인 탓에 아비없는 아이로 만들지 않겠다는 마지막 힘든 선택을 하고, 오씨를 죽인다. 문을 부수고 들어선 일꾼들의 손에 김원량도 살해되고, 정신적인 충격에 콩점네는 하혈을 하는 비극적인 순간에 막이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