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 인식론- 봄이 다르다.
“해마다 봄은 오는데 같은 봄은 아닌 것 같아요. 제 몸도 예전과 다르고 하루가 다르게 늙어 가요. 언제까지 오는 봄을 맞이할 수 있을지 요즘은 자주 죽음에 관한 생각이 들어요”
출발을 말하는 3월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절기에 맞추어 3월에 학기가 시작된다. 지혜롭다.
1~ 2월엔 무언가 하기에는 땅도 얼어있고 바람결이 차가워 새롭게 무언가 시작하기엔 조금 춥다. 자연은 어떻게 이리도 각자 오는 시간을 알고 자연에 순응하며 살았을까 생각하면 삶의 지혜처럼 오랜 시간 축적도 영향이 있다. 하지만 요즘 순리를 역행하여 계절 식탁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딸기, 참외 과일을 비롯하여 비닐하우스 덕에 계절상품이란 말이 없어졌다. 임신해서 겨울딸기를 먹지 못해 한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사라지겠다. 시절 변화는 지금 충분히 누리는 것을 예전에는 못했는지에 대한 시대 공감이 어렵고 이젠 마음만 먹으면 하는 시대가 왔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이젠 해마다 봄을 다르게 경험한다. 올해의 봄은 이란과 이스라엘 전쟁이 확산하여 원유의 문제를 대두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는 인간관계로 비교해 보면 단순하다.
문제는 한번 흐트러진 관계에서 복원되기 어려운 관계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관계가 개인의 차원에서부터 조직, 국가적 차원으로 확산하여 간다. 문제의 원인을 찾아 회복을 위한 과정에 선다는 것은 건강한 소통을 움직이는 주체가 있어야 한다. 끊임없는 남의 탓은 관계를 더 경직 시킨다. 결국 누가 잘못한 건지를 따지느라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무지함 속에 갇혀 버린다.
독에 갇힌 사람은 독 속에서 자신이 옳다고 하며 밖을 나오지 않음으로 밖에서 독을 어떻게 보는지 알 수 없다.
똥이 담긴 똥 단지로 치부될 수 있음을 알지 못한다는 건 자기 자신이 자신을 가두어 버린 것이다. 우리 마음을 알게 하는 정신분석을 창시한 심리학자도 자신의 이론을 배신했다는 오해로 마음을 풀지 못하고 갔다. 물론 이 두 분은 각자의 이론이 훌륭하여 각각의 이론을 배우는 영광을 주긴 하였지만 둘은 사는 동안 서로 마음에 짐으로 상대와 친해지고 화해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프로이트와 융이 결별을 하고 서로의 죽음을 맞이하는 동안에 지속이 되었다. 이는 자신의 이론을 구축하고 서로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것 같다. 가벼워지면 덜어 내야 하는 일이다. 이들이 다른 길을 간 것은 각자가 생각하는 초기 의식들이 지배했다. 융은 어린 시절 자신에게 의미 있는 상징에 대한 강한 의식에 따른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상담하다 보면
오늘이나 최근에 일을 말하는 경우는 적다. 대부분 과거의 이야기들이다. 요즘 이야기하다가도 다시 과거로 가져간다. 과거의 기억이 현재를 지배한다지만 오래전 감정들은 살다 보면 옅어지고 기억 저편으로 레테의 강을 건너 기억이 가물거리는데 누군가는 시간과 삶의 퇴적물에도 불구하고 활화산처럼 타 올라와 현재의 삶을 태운다. 이는 제거하거나 포용해야 하는 이물질 즉 불편한 부속물이다.
관계의 상처는 여러 다양한 이유로 서로 상처를 주기도 하고 일방적으로 상대를 생채기를 낸다. 주는 사람은 준 줄도 모르는 상처를 들고 내내 너 때문이라고 한다면 평생 길을 헤매게 된다. 얼마 전 부부 상담에서 남편은 소심한 편이라 자신의 유년기에 상처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회피하고 인연을 끊고 살면서 늘 남 탓으로 일관하며 살다가 이 화살이 아내에게로 가면서 이혼할 위기에 있게 되었다. 이런 피해적 사고는 자신을 가난하게 만든다. 정서적으로 자신을 고갈하게 한다. 봄이 되어 새로운 싹을 틔우듯이 자신의 마음속에 작은 씨앗 하나 심어 물을 주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