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속의 검은 잎
기형도
택시운전사는 어두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이따끔 고함을 친다, 그때마다 새들이 날아간다
이 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나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를 생각한다
그 일이 터졌을 때 나는 먼 지방에 있었다
먼지의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문을 열면 벌판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그 해 여름 땅바닥은 책과 검은 잎들을 질질 끌고 다녔다
접힌 옷가지를 펼칠 때마다 흰 연기가 튀어나왔다
침묵은 하인에게 어울린다고 그는 썼다
나는 그의 얼굴을 한 번 본 적이 있다
신문에서였는데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이 터졌다, 얼마 후 그가 죽었다
그의 장례식은 거센 비바람으로 온통 번들거렸다
죽은 그를 실은 차는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나아갔다
사람들은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렸고
백색의 차량 가득 검은 잎들은 나부꼈다
나의 혀는 천천히 굳어갔다, 그의 어린 아들은
잎들의 포위를 견디다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
그 해 여름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고
놀란 자의 침묵 앞에 불쑥 불쑥 나타났다
망자의 혀가 거리에 흘러넘쳤다
택시운전사는 이따금 뒤를 돌아다본다
나는 저 운전사를 믿지 못한다, 공포에 질려
나는 더듬거린다, 그는 죽은 사람이다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장례식들이 숨죽여야 했던가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내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
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된다, 어디서
그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어디든지
가까운 지방으로 나는 가야 하는 것이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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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는 1960년 경기도 연평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1989년 3월 7일 새벽 3시 30분 종로 2가 부근 의 한 극장 안에서 죽었다. 그의 가장 좋은 선배 중의 하나였던 김 훈은 "나는 기형도가 죽은 새벽의 심야극장 -그 비인간화된 캄캄한 도시 공간을 생각하고 있다. 그가 선택한 죽음의 장소는 나를 늘 진저리치게 만든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러할 것이다"라고 말한 뒤에,그의 넋을 가라앉히기 위해,
원효가 사복의 어머니를 위해 부른 게송의 어조로,침통하게 당부하고 있다: "가거라,그리고 다시는
생사를 거듭하지 말아라.인간으로도 축생으로도 다시는 삶을 받지 말아라. 썩어서 공이 되거라.
네가 간 곳은 어떠냐...... .누런 해가 돋고 흰 달이 뜨더냐."김훈의 어조를 가슴에 담고,기형도의 시를 다시 읽어보면,그는 젊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시인이다.....(김현해설 끝부분)
첫댓글 여기서 '검은잎'이 상징하는 건 뭘까요...
꼭 국어 시간 같다는~~~~~~
ㅋ 그런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