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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제10조(설립과 운영) ① 국가를 대표하는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소속으로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을 둔다. <개정 2008.2.29.>
③ 국립중앙박물관은 제4조제1항의 사업 외에 다음 각 호의 업무를 수행한다.
1. 국내외 문화재의 보존·관리
2. 국내외 박물관자료의 체계적인 보존·관리
3. 국내 다른 박물관에 대한 지도·지원 및 업무 협조
4. 국내 박물관 협력망의 구성 및 운영
5. 그 밖에 국가를 대표하는 박물관으로서의 기능 수행에 필요한 업무
⑦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및 국립민속박물관의 조직과 운영 등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⑧ 국립중앙박물관에는 관장 1명을 두되, 관장은 정무직으로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제29조(직무) 국립중앙박물관(이하 "중앙박물관"이라 한다)은 고고학·미술사학·역사학 및 인류학 분야에 속하는 문화재와 자료를 수집·보존 및 전시하여 일반 공중의 관람에 제공하며, 이에 관한 연구·조사와 전통문화의 계몽·홍보·보급 및 교류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동6가 (용산기지)에 위치한 한국 최대의 대표 국립 박물관. 한국의 고미술, 유물을 중심으로 소장하고 있다.
한국의 현대미술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담당한다. 행정조직법상으로는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기관인데, 국가를 대표하는 박물관으로서 국내 다른 박물관을 지도·지원하는 위치에 있다. 가까운 곳에는 국립한글박물관이 있다.
2. 위상
소장 유물 약 150만여 점, 상설 전시 유물 1만여 점으로 한국 최대의 박물관이면서 세계적으로도 상당한 규모이다. 2020년 보도에 따르면 2019년 기준 13개 국립박물관의 총 소장 유물 200만 2,111점 중 국립중앙박물관은 약 20%인 41만 2,216점을 소장하고 있고 최근 10년 간 소장유물수 대비 전시율은 그 중 3%에 불과하다.
관람객 수가 아시아 1위, 세계 10위였던 적도 있지만 2017년도 관람객 수는 아시아 2위, 세계 12위로 내려갔고 2018년도 관람객 수는 세계 2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2018년 아시아 1위는 중국 베이징 고궁박물원이다. 참고로 일본이 박물관 순위에 상위권이 아닌 부분을 의아해 할 수도 있는데, 일본 최대인 도쿄국립박물관이 11만 점대이며, 생각보다 일본의 박물관은 규모가 작다. 일본은 박물관보다 개인ㆍ단체 또는 유물이 원래 위치해 있던 절이나 신사 등에서 자체적으로 시설을 갖춰 전시ㆍ보관하는 것을 선호한다. 간송미술관처럼 애초부터 학술용으로 학자들에게만 한정적으로 공개하고 민간에는 한시적 외엔 거의 공개하지 않는 유물도 매우 많다. 또한 일본 황실에서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는 애초에 공개되지도 않고 나라에서도 관리하지 않으며 궁내청에서 자체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다행히 코로나19 이후 국립중앙박물관 관람객이 다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2023년에는 한 해에만 418만 명이 방문하며 최대 관람객 수치를 갱신했다. 이는 당해 세계 6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며 TOP10 중 아시아 유일이다.
3. 역사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력의 시작을 순종 황제가 지은 제실박물관으로 회의에 부쳐 놓았다. 지금의 국립중앙박물관 컬렉션의 기초는 조선총독부 박물관과 이왕가박물관, 그리고 민속학의 대가 송석하가 지은 남산의 국립민족박물관 소장품을 합친 것인데, 총독부박물관과 이왕가박물관이 모두 일제에 의해 설립되었기 때문에 예전엔 조선총독부 박물관을 인수한 뒤 새로 개편하여 1946년에 '국립박물관'이란 이름으로 덕수궁 석조전 건물에서 개관한 것으로 역사를 설명했었다. 그러나 최광식 관장이 취임한 뒤로 이왕가박물관이 원래는 1909년 대한제국의 제실박물관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을 주목하여 박물관의 시작은 제실박물관으로 보고, 2009년을 한국박물관 100주년의 해로 선포하고 몽유도원도 등을 비롯한 유물을 전시하는 대규모 특별전과 행사를 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제가 총독부 박물관으로 이용하며 조선 전국의 문화재를 모으면서 규모를 넓혔다. 당시 일본 제국은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 박물관처럼 식민지 유물들을 정부가 주도하여 일본 본토로 옮기지 않았다. 그들이 조선을 오래도록 식민 지배할 것이라 막연하게 착각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 대전 후반 일본의 패색이 짙어졌을 때는 이미 미 해군에 제해권을 완전히 빼앗겨서 대한해협 건너 일본 본토로 옮길 수도 없었다. 서봉총 금관 실물을 기생에게 쓰게 하고 기념촬영까지 해서 물의를 일으켰던 일본인 학자 코이즈미 아키오의 회고록에 따르면 기차 2량 분량의 가야 유물을 일본으로 달아나는 연락선으로 싣기 위해 보냈다는 부분이 있어서 전쟁 후반 항복 직전에 한국 유물을 일본으로 빼돌리려는 시도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가야 유물은 다행히도 나중에 되찾았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개인적으로 수집한 유물들은 꽤 많은 수가 반출되었다. 지금까지 해외반출된 한국 문화재가 가장 많은 곳이 일본이다.
8.15 광복 이후 경복궁 경내의 총독부박물관 자리에 그대로 있다가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유물과 박물관도 임시수도 부산으로 피난가게 되었다. 북한은 조선중앙력사박물관 문서에서 설명돼 있듯, 과거 조선 왕실과 일제가 수집해두었던 한국사 핵심 문화재들을 그대로 물려받은 남한과 달리, 조그만 평양부립박물관 정도뿐이었기 때문에 소장한 문화재가 많지 않았다. 현 북한 지역인 개성부립박물관에서도 고려청자를 비롯한 많은 고려 시대 문화재가 있었지만 1945년 삼팔선 분단 당시에는 개성이 아슬아슬하게 남한 영역이었고, 개성이 접경지대다 보니 남북간 국지전이 많이 나서, 김재원 초대 국립박물관장이 6.25 전쟁 발발 이전부터 이미 개성분관의 문화재를 죄다 국립중앙박물관 서울본관으로 옮겨둔 덕에 나중에 북한이 개성을 점령한 뒤에도 박물관은 이미 빈털터리였다.
침공 직후 서울을 점령한 인민군들은 아직 서울에 남아 있는 유물을 북쪽으로 가져가기 위해 박물관 직원들을 협박해서 유물들을 포장하게 했다. 그러나 당시 박물관 직원들은 어떻게든 반출을 늦추기 위해 포장을 풀고 다시하는 등 시간을 끌었고, 북한 내부에서도 광복절인 8월 15일 통일을 거론하는 등 적화통일이 거의 눈앞이라 낙관적으로 생각해 서두르지 않았다. 그러나 인천 상륙 작전 이후 빠른 속도로 북진이 시작되자 인민군은 급히 철수하느라 대부분의 유물을 서울에 두고 떠났다.
서울을 수복하면서 서울에 남아 있던 대부분의 유물을 부산으로 옮겼는데, 이때 미처 옮기지 못한 대형 중국 벽화나 미라는 훼손되었다고 전해진다. 1953년 휴전 이후 서울로 오면서 경복궁 경내로 돌아왔으나 그해 10월에 경복궁 부지가 구황실재산사무총국으로 넘어가자 1954년 2월부터 구 남산분관 건물에서 머물렀으나, 6월에 남산 건물이 연합참모본부로 쓰이자 11월에 덕수궁 석조전으로 옮겨 이듬해 2월에 개관하였다. 여러가지 이유로 부산에 대피해두었던 유물들을 옮기는 것을 서두르지 않았는데 부산 용두산 대화재로 인해 많은 문화재를 소실하였다.
덕수궁에 자리잡았던 시기인 1957년 12월부터 1959년 6월까지 미국 8개 도시에서 처음으로 국보급 문화재 해외 전시회를 열었으며, 1961년 3월부터 1962년 5월까지 영국·프랑스·네덜란드·독일·오스트리아에서 중요문화재 해외 순회 전시를 하여 일제 식민사관에 의해 왜곡된 한국사만 접했던 외국인들에게 우리의 역사를 폭넓고 알기 쉽게 소개하는 데 노력하였다. 1960년에 학술지 <미술자료>를 창간한 뒤 1968년 7월 문교부 소속에서 문화공보부 소속으로 직제가 개편된 뒤 이듬해 덕수궁미술관을 통합했다. 1972년에 현 명칭으로 변경하여 지금의 국립민속박물관 건물을 신축해 이전하였다. 1973년에는 공주분관을 신설하고 1975년부터 지방분관을 '지방박물관'으로 개편했다. 1976년 보존과학실을 열었다.
1970년 정부종합청사 신축과 1982년 정부과천청사(당시 정부제2종합청사) 신설로 중앙청 건물이 공실이 되자, 해당 건물을 개조해 1986년에 이전하고 동년도에 중앙청 후생관 건물을 사회교육관으로 개편하였다.
중앙청에 둥지를 튼 시절에도 사회교육관 신설 말고도 1990년 버스이동박물관 '움직이는 박물관'을 개설했다. 1992년에 국립민속박물관을 독립시키고 1995년 광복절에 문민정부의 '역사 바로 세우기' 정책으로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하면서 소장품들이 임시로 근처 벙커에 들어가 있었다가 경복궁 경내의 사회교육관 건물을 개축하여 이전하였다.
그 뒤로 용산기지 골프장을 주한미군으로부터 반환하여 조성된 용산가족공원 안에 규모가 큰 건물을 신축하여 2005년에 개관하여 비로소 온전한 박물관 건물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신축 비용은 당시 약 4,100억 원이 소요되었으며 설계는 정림건축, 시공/토목 등은 현대건설과 대우건설, 동부건설, SK건설, GS건설 5개 회사가 맡았다.
건축적으로도 1995년 한국 최초로 UIA(국제건축가연맹) 공인을 받아 국제설계경기(현상설계) 개최를 통해 건축가를 선정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설계경기에는 46개국에서 340건의 작품이 응모하는 등 국제적으로 건축계에 큰 관심을 끌었다. 2차에 걸친 심사 결과 대한민국의 '정림건축' 안을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개관 기념으로 잠시 무료 개방을 하다가 이듬해부터 입장료를 받았으나, 광복 60주년 기념으로 한시 무료 개방하더니 모든 국립박물관의 입장료를 폐지하여 현재는 관람료가 기획전을 제외하면 따로 없다. 국립중앙박물관 앞마당 일부에 국립한글박물관을 신축하여 2014년 10월에 개관하였으며, 차후 주변 부지도 기증받아 국립민속박물관을 이전하고 전쟁기념관까지 이어두고 거대한 뮤지엄 파크를 만들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다만 현 위치의 지대가 낮아 대규모 홍수가 닥치면 문화재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차관급 기관이며, 지방 국립박물관 13곳(경주, 공주, 광주, 김해, 나주, 대구, 부여, 전주, 제주, 진주, 청주, 춘천, 익산)을 거느린 대규모 기관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은 문화체육관광부 직속의 별도 기관이며, 국립고궁박물관은 문화재청 소속으로 모두 국립중앙박물관과는 관련이 없다. 국립문화재연구원(문화재청 소속), 대한민국역사박물관(문화체육관광부 소속), 전쟁기념관(국방부 산하), 독립기념관(국가보훈처 산하), 국립현대미술관(문화체육관광부 소속), 국립해양박물관(해양수산부 산하)도 마찬가지이다. 바로 앞의 국립한글박물관 역시 마찬가지로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별도 기관이다.
건물의 모티브는 한국인들이 가장 흔하게 볼 수도 있고 권위적이거나 사치스럽게 느끼지 않는 성벽에서 따왔다고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중앙박물관이라는 역사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2013년에 동아일보와 건축 전문지 SPACE가 국내 건축가들에게 설문조사한 결과로 나온 월간 SPACE 선정 한국 현대건축 태작에서 17위로 랭크된 바 있다.
2009년에 국립중앙박물관 100주년 기념 특별전을 했다. 이때 누가 한국 최고 최대 박물관 아니랄까봐 몽유도원도, 훈민정음 해례본, 천마도 같은 평소에 보기 힘든 국내외의 여러 박물관, 미술관에서 엄청 귀한 유물을 보내 축하했다. 전국의 역사학도, 미술학도를 비롯해 문화 계통에 관심있는 사람은 남녀노소 몰려와서 장사진을 이루었다. 특히 몽유도원도는 1인당 1분만 볼 수 있도록 관람을 제한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 특별전은 무료로 관람할 수 있었다. 해당 특별전은 국립중앙박물관의 위상이 어떤지 잘 보여준 전시였다.
2016년부터는 용산 이전 이후 10여 년 동안 사용한 금색 로고에서 정부상징으로 로고를 교체하였다.
2018년에는 광복절에 '정부수립 70주년 및 광복 73주년 기념식'이 본 박물관에서 개최되었다. 한편 그 해 용산 이전 이래 최초로 수장고를 언론에 공개했다.
대략 2020년을 전후로 한 시점부터 2016년 이전의 로고를 박물관에서 제작한 기획전 포스터 등에서 다시 사용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로고를 복구한 것이 아님에도 예전 로고를 사용하는 까닭은 알 수 없었다.
2021년 11월 15일, 세계일보 취재 결과 예전의 로고를 현재의 정부상징과 병용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2022년 10월 24일, 국회 국정감사 과정에서 행정안전부가 박물관이 자체 로고를 복구시킨 사실을 여태까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자체 로고를 사용하려면 행정안전부와 협의를 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던 것이다. 행안부는 일부 국립박물관들이 자체 로고를 복구시키거나 새로 만드는 것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이 사실을 지적한 이상헌 의원은 자체 로고를 정부상징과 병용하는 것은 홍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이번 기회에 정식으로 관련 규정을 마련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후에도 자체 로고를 현재까지 사용하는 것을 보면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정부로고를 국립 박물관 로고로 사용하는 예는 전세계적으로 드물다. 행정편의주의에 문화에 대한 무지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각 정부 기관이 각각의 로고를 사용하다가 단일 정부로고를 사용케 한 것은 이해되지만 그 역시 흑백일 때는 완전히 의미 없어지는 로고로 비판이 많고, 박물관까지 통일시킨 것은 너무나 기계적인 조치이다.
2024년 구석기~고구려실을 전면 개편하는데 이미 현재 광개토대왕릉비 미디어월이 생겼다. 추후 고구려실은 최신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2배 키운다. 이는 용산에 입주한 뒤로 첫 대규모 개편이다. 또한 외규장각 의궤실, 이슬람실을 추가한다. 한편 2028년까지 어린이박물관 증축 추진 중이다.
2025년 뒤편으로 문화유산과학센터가 개장 예정이다. 또한 아카이브 센터를 건립할 계획이 있다.
4. 소장품
소장품 중에 국보와 보물 등 국가지정문화재가 많다. 그러나 유물의 수준에 비해서는 또 많은 것이 아닌데, 가끔 보면 교과서에도 나오는 엄청 유명한 유물도 국보나 보물이 아닌 경우가 많다. 문화재의 지정 및 등록을 담당하는 국가유산청(문화재청)의 공식적인 해명은 문화재의 지정 및 등록은 문화재의 가치도 중요하지만 관리의 문제점이나 훼손의 가능성도 중요한 판단 기준이라고 한다. 즉 아무리 좋은 문화재라도 한국에서 가장 안전하고 전문적인 관리를 받은 국립중앙박물관 안에 있으니 지정의 시급성이 떨어져 후순위로 밀린다는 것이다.
그럴듯한 이야기지만 사실 이건 국가유산청과 국립중앙박물관의 사이가 안 좋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많다. 비슷한 일을 담당하는 두 기관이 기싸움을 하면서 서로의 조직을 늘려가고 있는데, 국가유산청이 1992년 궁중유물전시관을 만들면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왕실 유물을 대규모로 빼가 두 기관의 사이가 더 나빠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립중앙박물관은 박물관 소장이라는 것만으로 소장품의 권위가 어느 정도 서기 때문에 국보니 보물이니 하는 권위를 빌려와서 소장품에 가치를 부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권위가 상대적으로 낮은 사설 기관이 좀 더 타이틀을 위한 노력을 많이 한다. 실제로 요즘 두 기관의 협력을 위해 국가유산청이 국립중앙박물관의 주요 소장품을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하고 국립중앙박물관은 여기에 협력한다는 보도 자료를 낸 적도 있다. 이건 역설적으로 두 기관이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방증이 된다.
국사책에 나오는 유물 중에서 많은 수를 이곳에서 소장하고 있다. 건축물 같은 건 빼야 되니 절대 다수까지는 아니지만, 옮길 수 있는 건 정말 많다. 내부에 탑도 있으며(국보 86호 경천사 10층 석탑) 진흥왕 북한산 순수비 등 야외에서 훼손이 될 만한 유물도 이 안으로 옮길 때가 많다.
한국이 파란만장한 근대사를 겪어서인지 박물관 내 유물들은 온전하게 원 소유주에게 있다가 온 것이 거의 없고, 국가에서 경매에 부쳐진 걸 구매해서 회수하거나 기증받은 것이 거의 대다수다. 출토지가 불분명한 경우도 많다. 당장 한국 불교 미술의 정수라 불리는 위 사진의 두 유물도 마찬가지다. 6.25 전쟁 때 하마터면 잿더미가 될 뻔했으나 이걸 알아본 유엔군 장교가 귀중한 문화재라고 하여 잘 보관하여 미국에서 눈독을 들이기도 했었던 문화재들이 겨우 남은 경우도 있었다.
유물의 규모에 비해 순회 전시가 잘 안 되는 편이다. 일반적으로 세계적인 박물관들은 몇 달에서 몇 해 단위로 유물을 교체해주는데, 국립중앙박물관은 재개관 이후 대표 유물이 교체된 적이 거의 없다. 예외가 있다면 국보 78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국보 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으로, 부처님오신날마다 서로 교대해서 전시했다. 이 반가사유상들은 현존하는 대한민국 문화예술품의 최고봉으로 손꼽히는 것들로, 2021년 11월 14일부터 전용 전시실을 마련하여 단독 전시할 정도로 특별 대우를 받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대표 문화재는 물론이고 대한민국의 대표 문화재로서 인정받아 외국에서 한국 관련 전시를 할 때는 거의 빼놓지 않고 초청받는다. 다만 훼손 우려 때문에 국외 전시를 나가는 것은 조심스러운 편이다.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 가운데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2013년에 신라시대 유물전시회를 기획하고 국립중앙박물관에 이 반가사유상도 포함시켜줄 것을 요청했으나, 국가유산청이 반출에 난색을 표해서 한동안 실랑이를 벌인 적이 있다. 결국 메트로폴리탄의 통사정과 정부의 설득으로 뉴욕행을 결정지었다. 당연하지만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 중인 건 그대로 두고 수장고에 보관 중이던 것이 국외 전시로 나간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전국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정기적으로 중앙으로 이전시킨다. 때문에 지방은 자기 유물을 가지고 있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상당한 유물들이 수장고에 들어가 단 한 차례도 전시되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가야나 백제 연구자들은 이를 위해 서울까지 와서 봐야 하고 지역민들은 자기들의 고장에서 나온 유물들을 볼 기회를 사실상 완전히 상실하는 경우가 많다. 지방 국립박물관을 제외한 광역 또는 시군 박물관 유물들을 중앙에서 흡수하는 이런 정책은 재고되어야 한다.
4.1. 주요 소장품
언제든 유물의 소재를 옮길 수 있는 국립박물관의 특징상 중앙박물관과 소속 박물관의 유물 전체를 기록한다. 기간에 따라 유물이 옮겨다닐 수 있다.
4.2. 오타니 컬렉션
조선총독부가 조선 땅에 전시하고 있다가 패망한 뒤에 두고 간 중앙아시아 유물 오타니 컬렉션도 중앙박물관에서 소장 중이다. 오타니 컬렉션은 일본 교토부 교토시의 니시혼간지(西本願寺)의 당주이자 주지승려였던 오타니 고즈이가 현 중국령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베지클릭 석굴사원, 막고굴 등에서 약탈, 수집해온 벽화를 위시한 각종 예술품들이다.
이 오타니 컬렉션은 오타니 개인의 재정 문제로 3분되어 떠도는 것 중 한 갈래로, 당시의 광산재벌 쿠하라 후사노스케(久原房之助)가 오타니로부터 구매하였다. 쿠하라는 친분이 있던 동향 선배인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에게 이를 선물하여 평안남도 진남포시에 설립한 제련소 사업의 이권을 얻었다. 데라우치가 사들인 오타니 컬렉션의 일부는 조선총독부에서 관리하게 되었고, 총독부 박물관에 소장되었다. 이후 광복으로 이어지면서 대한민국에 남은 유물들이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장품으로 귀속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다른 설로는 중국에서 국내로 옮겨와 다시 일본으로 반출 대기 중에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면서 그대로 잔류한 유물이라는 설도 있다. 비슷한 종류의 유물이 역시 베를린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와중에 소실되었기 때문에 세계 희귀본으로서 가치가 높다. 현재 해당 지역을 지배 중인 중국이 반환을 바라기는 하지만, 이에 대해 박물관 측은 무시하는 중이다.
여기에 대해서 중국 측 입장은 다르다. 이들 주장에 의하면 오타니 컬렉션은 위구르인들이 도래하기 전 한나라~당나라 사이에 중국과 실크로드 도시국가 문명이 남긴 유물이 대부분으로, 위구르족은 이슬람교로 집단 개종한 이후 이 유물들을 파괴한 민족]이지 이 유물들을 만든 민족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이는 속지주의를 무시한 주장이다. 위구르족이 당나라 시기에야 독립된 실체로서 역사에 등장한다고는 하지만 중세 위구르 칸국이 멸망한 이후 위구르 난민들이 타림 분지 동부와 투르판 일대로 피난가면서 현지 토하라인들과 통혼했기 때문에 해당 문화 유산이 위구르인들의 문화유산이 아니라는 근거도 없다. 투르판 분지 역시 전통적으로 토하라인들과 고창회골의 위구르인들의 주된 거주지였다. 오늘날 위구르인들은 무슬림이므로 위구르인들이 불교 유산에 대해 권리가 없다는 주장도 논란의 소지가 있는 것이 중국 불교는 원래 신장 지역을 거쳐 들어왔다. 대표적으로 불경을 한역한 승려 중 가장 번역 수준이 높다고 평가받는 고승 쿠마라지바가 쿠처 출신이다. 불교가 유입될 당시 아직 중화문명의 중심지는 화북지방이었고 이 때문에 불교가 신장 지역을 통해 유입되는 것이 당연했다. 한겨레21에서 이걸 부끄러운 약탈이라는 등 중국의 유물을 빼앗은 투로 써서 비판을 들은 바 있다.
실제로 베제클릭 벽화 등 오타니 컬렉션 대부분은 타림분지의 실크로드 도시국가의 토하라인, 소그드인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타림 분지의 원주민 토하라인들은 튀르크, 페르시아, 중국, 인도, 이슬람 또는 티베트의 영향을 받은 지역이다. 즉, 타림 분지는 역사적으로 문명의 교류가 활발하던 지역이며, 실크로드는 그 증거이다. 한나라와 당나라 시절에는 타림 분지는 한족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며, 중국 통일 왕조의 지배를 받지 않은 시기에도 고창국과 같은 노수호 계열 도시국가들이 존재했다. 따라서 오타니 컬렉션이 한족과 완전히 관계 없는 문화유산이라는 주장 역시 논란이 있다. 해당 지역의 경제적 번영은 중국과의 중계 무역을 통해 이루어진 부분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이 지역은 문명의 교류가 활발하던 지역이었으며, 실제로 중국 문화 뿐만 아니라 불교로 대표되는 인도의 문화, 조로아스터교나 마니교로 대표되는 이란의 문화가 섞여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타니 컬렉션이 가치가 높은 것이다. 즉, 오타니 컬렉션과 중화 문명이 무관하다거나 아니면 다 중화 문명 요소이다 같은 주장은 오히려 이 작품들에 대한 이해를 방해하는 주장이 된다.
이 오타니 컬렉션의 일부는 본관 3층에 있는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실에서 상설 전시 중이다.
5. 관람 정보
기본 관람료가 무료인 대신, 주로 기획 전시실에서 하는 특별전(혹은 기획전)은 관람료가 비싸다. 문제는 값은 비싼데 그만큼 제값을 하는 전시회가 그렇게 많지는 않다는 게 흠이다. 특히 해외박물관 협력해서 하는 전시회 쪽은 팸플릿에 있는 게 전부라는 말이 나올 만큼 부실한 사례들이 있다. 성인은 10,000원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가기 전에 할인 되는 수단을 찾아보고 가는 것이 좋다. 다만, 2010년대 후반에 들어오면서는 특별전도 퀄리티가 전반적으로 조금은 높아졌다. 특히 지도예찬, 대고려전, 오백나한전, 실경산수화전 같은 전시들은 평이 매우 좋았다. 어르신들을 동행하고 간다면 65세 이상은 무료이다.
호수를 끼고 계단을 올라가서 광장에 도착하면 광장 계단 위로 남산타워가 우뚝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만약 이곳에 처음 방문하였거나 역사에 관하여 잘 모른다면, 1층을 둘러보면서 기본적인 흐름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 이 1층에서 금동대향로 3층의 조각공예관에 있는 유물이 유물사적으로 더 가치있는 것들이다. 또한 국립중앙박물관은 매해 한국의 고찰들에서 보관하고 있는 유명 괘불을 빌려와 2층(불교회화실)과 3층, 두 층에 걸쳐 4~6달 동안 전시하고 있다. 괘불은 그 절에 가도 실물을 보기 힘들기 때문에 유명 괘불들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이 바로 국립중앙박물관이다.
여느 박물관처럼 가이드가 있으며, 가이드의 해설을 듣고 싶다면 일정을 확인한 뒤 시간에 맞춰 방문하면 된다. 그리고 굳이 가이드 시간을 맞추지 않아도 3천 원에 PDP(음성 + 영상), 1천 원에 MP3(음성만 지원)를 대여하면 된다. 게다가 무료 전시 안내 앱까지 있다. 구글 플레이나 앱 스토어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을 키워드로 검색하면 맨 위에 똑같은 이름의 앱 2개가 있는데 하나는 KTO에서 만들었고 하나는 애니모비에서 만들었다. 한때 상설전시관에 한하여 안내가 되었지만 현재 특별전시관도 안내를 하고 있다.
방해 안 받고 조용히 관람하기 상당히 어려운 곳 중에 하나이다. 방학 시즌에는 학생들, 행락철에는 노인 관람객이 많아지고 해외 관광객과 가족 단위 방문객까지 해서 1년 내내 시끄러운 곳이다. 이를 피할려면 행락철과 소풍 기간을 피한 평일, 특히 오후 9시까지 개관하는 수요일 오후~저녁 정도가 가장 좋다.
국내 순회나 해외 전시로 인해서 간판급 유물들이 사라지고 안내판만 덜렁 있는 낭패를 볼 수도 있다.
박물관으로 들어가면 유물이 전시돼 있는 전시관이 진열된 복도로 들어가게 되는데 가기 전 왼쪽을 보면 기부함이 있다. 이 돈들은 전액 유물보존 및 해외유출문화재 환수에 사용된다고 한다.
2012년 12월 27일 이촌역에서 박물관으로 연결되는 지하보도 "박물관 나들길"이 완공되어 보다 쾌적한 관람을 할 수 있다.
예전에 조선총독부 청사 시절 지적받았던 '휴식 공간이 모자라다'는 평을 의식해서 인지 현재 박물관은 곳곳에 의자가 많다. 박물관 면적이 넓기 때문에 대충 둘러본다고 해도 반나절은 잡아야 한다.
배터리 충전 서비스도 제공하는데 휠체어 및 대형 물품 보관소에 가서 말을 하면 1시간 안에 충전이 되는 고속 충전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한다.
전시실 내 사진 촬영은 자유롭지만 유물 훼손 및 다른 이의 관람 방해를 막기 위해 플래시와 삼각대는 금지된다. 사실 대영박물관, 루브르 박물관, 바티칸 미술관 등 서구권 전시관들은 대부분 플래시를 꺼 둔다는 전제 하에 사진 촬영을 허용한다. 허나 방문객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일본인들은 이 사실에 놀라거나 감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일본은 박물관 내 사진 촬영이 금지되기 때문이다.
5.1. 전시관
상설전시관 정보
선사·고대관[3층] :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고조선, 부여·삼한,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통일신라, 발해실
중세·근세관[3층] : 고려1~2, 조선1~3, 대한제국실
서화관[4층] : 서화1~2, 불교회화, 목칠공예실
기증관[4층]
사유의 방[4층]
조각·공예관[6층] : 도자기-청자, 분청사기·백자, 불교조각, 금속공예실
세계문화관[6층] : 메소포타미아, 중국, 일본, 중앙아시아, 인도·동남아시아, 고대 그리스·로마실
어린이박물관[3층]
기획전시실[3층]
디지털 실감 영상관 : 미디어, VR 등
실감1관[3층]
실감2관[4층]
실감3관[3층]
공간 오감 : 시각을 제외한 오감으로 체험하는 시설로, 시각장애인 아니어도 체험 됨.
5.2. 부대시설
도서관 및 교육관, 극장 '용' 등의 시청각 시설, 기념품점 등을 갖추고 있다.
5.2.1. 기념품점
상품점 1, 2, 어린이 상품점, 뮷즈 브랜드 전시장 등 여러 곳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념품점에서 파는 기념품(굿즈) 디자인이 상당히 호평을 받는다. 자칫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수 있는 옛 문화재를 현대식으로 센스 있게 구현했다. 품절대란 ‘국립 굿즈’가 뜬다. 특히 고양이를 메인으로 내세운 오묘한 녀석들 시리즈와 훈민정음을 테마로 한 한글과 생활은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아예 따로 온라인 샵까지 운영하고 있다.
2024년 들어서도 여전히 독특한 신규 기념품을 계속해서 추가해 힙스터들에 인기몰이 중이다. 2023년에 역대 최대 수익을 거두는 등 급속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5.2.2. 도서관
고고학, 역사학, 미술사학 등 박물관 관련 분야 단행본 11만여 권, 학술지 3만여 권 등을 소장한 대한민국 최고의 박물관 전문도서관이라 한다. 최근 높은 서가가 있는 도서관 리모델링을 하였다. 중앙 계단을 올라가면 왼편으로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지나치는 듯하다. 조용하고 공부하기 좋은 곳이다.
5.3. 야외시설
건물 주변으로 탁 트인 느낌을 주는 거대한 호수와 정원, 숲속도서관,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어 꽃이 만발할 때에는 가족 단위로 놀러 나온 사람들이 많고 소풍 장소로도 인기가 있다. 그리고 2014년 10월에 개장한 국립한글박물관과 용산가족공원이 바로 근처에 있어서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5.3.1. 야외전시장
염거화상 탑(국보 104호)을 비롯하여, 고려 태조 왕건이 가장 공을 들여 세운 흥법사 진공대사탑과 석관(보물 365호), 개성에서 옮겨온 것으로 고려 석탑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남계원지 칠층석탑(국보 100호)과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종으로 알려진 보신각 종(보물 2호) 등 다수 전시품들의 전시 중에 있다.전체 야외 전시 문화재
5.4. 수장고 및 연구시설
현황에 따르면 22개 수장고 총 1만2천 여m²에 달한다. 물론 회화·전적, 목제품, 피모직물, 도자기·토기, 금속 수장고로 분류해 소장품 소재별 맞춤 관리가 되고 있다. 소재별 수장고 모습
1층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철저히 출입이 통제된다. 수장고는 복층 개조가 가능하게 설계되어 있고 전문가용 열람실, 데이터베이스 등이 갖춰져 있다. 첨단 장비도 보도에 같이 나오므로 함께 딸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첨단 장비는 컴퓨터 단층 촬영기, 전계방사형 주사 전자 현미경, X선 회절 분석기, X선 형광 분석기, 라만 분광 분석기, 푸리에 변환 적외선 분광 분석기를 보유하고 있다.기자재 현황
5.5. 식당 및 카페
박물관 식당은 내부의 푸드코트, 경천사지 10층석탑 옆에 있는 경천사탑 식당 by 두레, 야외 겨울못 앞에 있는 겨울못 식당, 박물관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 야미당 이렇게 네 개가 있다.
카페의 경우 박물관 내부에는 2층에 으뜸홀 카페, 3층에 사유 공간 찻집, 1층 푸드코트 옆 투썸플레이스, 극장 용 로비에 있는 용 카페가 있으며 외부 CU 옆에 투썸플레이스가 같이 위치하고 있다.
6. 교통
서울 지하철 4호선,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의 환승역인 이촌역을 통해 이용할 수 있다. 이촌역에서 박물관으로 향하는 길에는 주요문화재를 LED로 꾸며놓고 무빙워크를 설치한 박물관 나들길이라는 지하보도 통로가 있다. 지하 보도가 4호선 하행 방면 거의 끝쪽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4호선을 타고 갈 때는 진접/당고개 방면 뒷쪽, 사당/오이도 방면 앞쪽에 타는 게 좋다.
국립중앙박물관 앞을 지나는 시내버스는 400번, 502번뿐이다. 모두 용산역을 경유하므로 용산역에서 오는 것도 편하다. 머잖아 신분당선 용산 연장 구간이 완공되면 박물관 바로 앞에도 역이 생길 예정이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주차료는 기본 2시간에 2,000원 정도로, 크게 부담되는 가격은 아니다. 평일에는 주차 공간이 여유있는 편이다.
7. 산하 지방박물관
문화체육관광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제35조(지방박물관) ① 각 지방에서 제29조에 따른 사무를 관장하게 하기 위하여 중앙박물관장소속하에 지방박물관을 둔다.
② 지방박물관은 경주박물관·광주박물관·전주박물관·부여박물관·공주박물관·진주박물관·청주박물관·대구박물관·김해박물관·제주박물관·춘천박물관·나주박물관 및 미륵사지유물전시관으로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산하에 각 지방의 국립박물관을 두고 있다. 지방에 소재한 국립박물관들은 그 지역의 문화재(매장문화재 포함)들을 보관하는 광역 수장고 역할을 한다. 그리고 각 지역의 박물관은 소재지의 역사, 문화에 특성화된 테마를 갖추고 있다. 영남권 4곳, 호남권 4곳, 충청권 3곳, 강원, 제주에 각각 1곳의 국립박물관이 있다.
2017년도부터는 각 지역 박물관별 특색을 바탕으로 콘텐츠를 특화하는 브랜드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각 박물관별 대주제를 수립하고, 중장기 계획을 통해 기관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8. 논란
8.1. 현재진행형인 소장품 목록 작성
소장품이 워낙 방대하다 보니 현재도 소장 목록은 계속 업데이트 되고 있다. 특히, 없어졌다던 유물이 박물관 수장고에서 발견되어 사회적 이슈가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5년 발견된 대동여지도 목판 원본과 2010년 발견된 구 황실 관련 표피 등이 있다.
이는 국립중앙박물관 역사와 관계가 있다. 해방 이후 조선총독부 박물관의 소장품을 이관 받아 제대로 정리를 마치기도 전에 한국전쟁이 발생해, 수장함이 뒤섞이고 소장품 상당수가 사라지며 기존의 소장 목록은 큰 의미가 없어지게 되었다. 한국전쟁 뒤로도 독립된 박물관 청사를 지니지 못하고 소재지가 계속 옮겨다니다 보니 주요 소장품을 뺀 절대 다수의 소장품은 수십 년 동안 수장함에 처박힌 채로 방치되었다. 수장함을 모두 개봉해 제대로 된 목록을 작성하게 된 것은 2003년 뒤의 일로, 용산의 신축 박물관 청사로 이사를 준비하면서부터이다. 하지만 소장품이 워낙 방대하고, 수장함 내 소장품을 조사하는 과정이 꽤나 길기 때문에 현재도 소장 목록은 계속 업데이트 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국립중앙박물관이 국보와 보물 같은 주요 소장품 위주로 전시하며 순회 전시에 약점을 보이는 원인이다. 현재도 전 소장품에 대한 학예 조사, 유물로서의 가치 평가 등은 고사하고 목록을 업데이트하는 데도 허덕이기 때문에 순회 전시를 할 상황이 아닌 것이다. 대만의 국립고궁박물원의 경우 세계적으로도 모범적인 순회 전시를 시행하고 있는데 이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서너 배에 이르는 소장품에 대한 정확한 목록 작성은 물론이고 각 소장품에 대한 학예 및 학술적 조사가 이뤄져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8.2 관람비 관련 논란
문화재청장을 지냈던 유홍준 교수는 "국립중앙박물관 관람비를 더 받아야 한다"라면서 "왜 문화재 보는 값어치를 스스로 평가절하하냐"라고 비판한 바 있다. 그가 들려준 일화로는 일본인 관광객들이 온 적이 있는데 당시 2,000원이란 관람비를 2,000엔으로 듣고 한국 돈으로 10배가 넘는 돈을 내고 들어왔다고 한다. 그들은 당연히 자국 중심문화재를 보여주고 보관하니까 이 정도는 당연했다며, 비싸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고. 이래야 한다면서 "일본이 문화재를 아끼는 게 괜히 그런 것이냐"라고 일갈했었다. 2018년 기준으로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입장료가 15유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입장료가 25달러인 것을 감안한다면 유홍준 교수가 소개한 그 일본인들의 에피소드는 상당한 타당성이 있다.
유 교수가 제기한 관람비 문제는 사실 굉장히 실질적인 문제로, 이게 충당이 안 되면 운영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이건 박물관 운영 비용 마련 가능/불가능의 문제지, 관점의 차이 운운하며 옹호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문화 복지의 차원에서 국립박물관은 무료로 운영하는 국가들이 많다고 하는데, 그런 나라들은 국가가 박물관 운영에 거액의 세금을 투입하거나 부유층의 자발적인 기부가 막대한 경우이다. 대영박물관이 그런 사례이다. 박물관 운영에는 엄청난 돈이 들어가며 이것을 국가가 세금으로 충당하든, 관람비를 비싸게 받든, 혹은 부유층의 기부를 호소하던 그건 나라마다 상황에 따라 다르다.
문제는 지금의 대한민국 박물관은 위의 세 가지 방법 모두 형편없다는 것이다. 국가는 문화재 보존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박물관 운영예산도 쥐꼬리 만큼 편성한다. 근데 관람비는 터무니 없이 싸다. 그렇다고 기부 문화가 활성화된 것도 아니다. 대한민국의 현재 모든 박물관들이 심각한 만성 적자 상태에 있고, 이 때문에 수많은 유물들이 연구되지도 못한 채 창고에서 썩어가는 지경이다. 유 교수는 이런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박물관 이데올로기 측면에서도 바라보아야 하는 게 근대의 박물관은 본래 지배 계층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졌으며 태생적으로 갖게 되었던 권위성에 대한 논란이 있다. 입장료는 개방 요일 및 시간과 더불어 박물관이 권위성을 띠게 하고, 계급 간의 차별의 선을 암시적으로 긋는 제1의 도구라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예전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평일에만 개방하다가 주말에 개방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있었을 때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주말 개방하면, 주변 못사는 동네의 아일랜드 잡역부들이 대거 진입해서 박물관을 망쳐놓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었을 정도였다. 관람료도 마찬가지 선상에서 볼 수 있는 것이, 그 돈을 박물관에 써도 생활에 지장이 없는 사람들만 박물관에 갈 수 있도록 만드는 장치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설명은 부과 제도를 이원화하여 '자국민 대상으로는 무료 개방을 하더라도 최소 외국인에게는 입장료를 받자'라는 방안에 대해 전혀 타당한 반론을 제기하지 못한다는 맹점이 존재한다.
8.3. 가야본성 전시 임나일본부 논란
'임나일본부'와 '임나' 자체를 구분하지 못하는 정치권과 유사역사학자들이 얽히면서 일어난 해프닝이다.
8.4. 동북공정 기반 지도 전시
2021년 국립중앙박물관 3층에 있는 중국 유물 전시관에서 중국의 역사를 보여주는 영상 지도가 전시되었다. 문제는 삼국지 위나라가 3세기 백제와 마한이 있던 지금의 수도권과 충청남도 일대까지 다스린 것으로 나오며, 한나라 영토가 한강 이북 지역까지 겹쳐 있는데 모두 역사적 사실과는 전혀 다르다. 동북공정을 주장하는 중국 학자들의 논리와 다르지 않은 지도를 제작했으며 외부 전문가 자문도 받지 않았다. 해당 지도가 전시된 여섯 달 동안 5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박물관을 방문하였다고 한다.
같은 해 10월 7일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으로부터 ‘국립중앙박물관이 동북공정 시각이 담긴 전시를 50만 명이 관람하도록 방치했다’는 지적을 받자 이를 인정하며 사과했다.
이후 보도에 따르면 이 논란은 박물관 측에서 위키백과 자료를 그대로 사용해서 발생한 문제라고 한다.
8.5. 국가 행사 동원 논란
장소가 장소라서 이곳에서 국제행사가 꽤 열린다. 가끔 박물관 앞 주변을 무장한 채 돌아다니는 경찰을 볼 수 있다. 2010 G20 서울 정상회의 때 환영 만찬이 개최된 적이 있다.
2012년 이명박 정부 당시 영부인 김윤옥 여사가 서울 핵안보 정상회의에 참석한 국가 정상들과 만찬을 가졌는데 하필이면 그 장소가 국립중앙박물관이었다. 그것도 강당이나 교육관이 아닌 유물을 전시하는 제1전시실. 박물관에는 음식은커녕 음료수 한 잔도 들고 가지 못한다. 이렇게 상식에 어긋난 행동에 대해 전우용이 "미친 짓"이라며 비판했는데, 박물관 측은 "뉴욕이나 프랑스도 국립박물관 안에서 만찬을 즐길 수 있다"라든가 "유물들은 모두 벽부장으로 격리되었고 온습도 조절 장치가 있어 피해는 없다"라고 해명했다.
2015년, 박근혜 정부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한국-프랑스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콜베르 재단과 연계하여 2015년 5월부터 8월까지 전시회를 열고 싶어했다. 별 문제가 안 될 듯한데 문제가 되었다. 콜베르 재단은 카르티에, 루이비통을 비롯한 프랑스 명품 업체들의 연합체로, 쉽게 말하면 명품 전시회를 이곳 국립박물관에다 열려고 했다는 것이다. 당시 김영나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상업성이 강한 전시는 할 수 없다"라며 완강히 반대하면서 전시회는 무산되었다.(관련 기사) 노태강 당시 국장은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에 700만 원~800만 원짜리 원피스 등 프랑스 명품을 전시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전시관 앞에서 판촉 행사까지 하겠다고 했다”라고 밝혔다. 그는 “지나친 상업성에 박물관 직원들이 나자빠졌다. ‘병인양요’에 빗대 ‘병신양요’라고들 했다”라며 “김영나 관장은 끝까지 반대하다가 잘렸다”라고 말했다(관련 기사).
2022년 5월 21일 한미정상회담 만찬이 이곳에서 개최되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당일 임시 휴관 및 사전예약 취소를 사흘 전인 5월 18일에 알려주어 정부가 국민의 문화 향유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 등 각종 비판이 쏟아졌다. 박물관에서 취식이 되는지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으나 이미 G20 정상회의 때 선례가 있어서 아주 안되는 것은 아니었다.
2023년 국정감사 과정에서 정부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국가 주요 행사를 열 경우 당일 예정된 전시가 있더라도 임시휴관을 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꾼 것으로 확인됐다.#
8.6. 수장고 포화 및 관리 문제
2022년 수장고 점유율이 96% 정도로, 수년 전 80%대에서 빠르게 상승 중이나 언론에 대해 드릴 말씀이 없다라는 등 포화 문제에 제대로 대책이 없는 모습을 보였다.산하 박물관도 심한게 2016년 100%를 넘는 곳이 5곳이나 됐는데그나마 그곳들은 나무위키 각 박물관 문서에 나오듯 공용 수장고나 확장 이전 추진 등이 보이므로 나은 축에 속한다.
2024년 10월 보도에 따르면 9개 문을 통할 정도로 보안이 엄격한데 정작 수장고 2곳이 물이 새 여러 유물이 훼손됐다. 내부 보고서에는 누수 사실과 보수업체 출입 기록이 누락됐다. 결국 박물관장이 10월 29일자로 사과문을 올렸고, 수장고, 유물 모두 복구 완료했다 밝혔다.
9. 여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전공자들이 연구나 학업을 위해 자주 방문하는 곳이다. 국중박, 국박, 중박 등으로 줄여서 부른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국립한글박물관이 있다. 한글의 발전 과정이 궁금하면 한 번쯤 들러 볼 만하다. 어린이들도 이해할 수 있게 쉬운 해설이 있고 한글 서적도 많아 관람할 가치가 있다. 동선도 짧아서 가볍게 보기도 편하다.
1990년부터 순회 박물관 행사 '찾아가는 박물관'을 실시하여 버스에 유물 일부를 싣고 전국 각급 학교와 지역 문화 행사 등지에서 관람객들을 받기도 한다. 차량은 현대 에어로버스나 유니버스를 쓴다.
2020년 8월 16일 직원 중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해 잠정 휴관한다고 밝혔다.
래퍼 더 콰이엇이 배기동 관장과 경천사지십층석탑 소개 영상을 촬영한 곳이고 훗날 다시 방문해 BENTLEY 2 뮤비를 촬영했다. 불교TV에서 촬영한 영상으로,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라갔다. 킬링 포인트는 더 콰이엇, 배기동 관장 말고도 출연진이 한 명 더 있는데, 유명인사도 아니고 더 콰이엇의 팬인 고등학생이라는 점이다. 심지어 더 콰이엇은 이날 십자가 목걸이를 차고 나왔으며 후에 밝히길 "박물관에서 영상을 찍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게 불교TV 채널에 올라갈 줄은 몰랐다"라고 했다.
국보 99호 김천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이 이곳에 있다. 원래 김천에 있다가 일제강점기 밀반출이 걸려 회수해 경복궁에 갖다놓고 그대로 본 박물관이 인수해서 이렇게 됐다. 당연히 김천시에서는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