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교에서 개신교에 돈까지 빌려줬다
3·1 운동 당시 천주교 지도부(뮈텔 주교 등)는 교회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공식적인 참여를 금지했고, 민족대표 33인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지도부의 방침과 달리 일부 신자와 평신도들이 개인 차원에서 만세 운동에 가담한 사실이 있어, 조직적 참여는 없었으나 개인적 참여는 존재했다는 것이 정확합니다.
핵심 내용
공식적 불참 및 금지: 당시 외국인 선교사 중심의 천주교 지도부는 정치적 중립을 내세우며 신자들의 3·1 운동 참여를 엄격히 금지하고, 징계까지 했습니다.
민족대표 제외: 종교계가 주도한 3·1 운동 민족대표 33인(천도교, 개신교, 불교)에 천주교 인사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개인적 참여: 지도부의 방침에 반하여 양심과 정의에 따라 개인적으로 만세 운동에 참여하거나 독립운동을 지원한 천주교 신자들도 있었습니다.
참회와 반성: 한국 천주교회는 3·1 운동 100주년(2019년)을 맞아 당시 제 구실을 다 하지 못한 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성하는 담화문을 발표했습니다.
요약하자면, 조직 차원에서는 참여하지 않았으나, 개인 차원에서는 참여가 있었으며, 이후 교회 차원에서 이를 참회했습니다.
[천도교와 3·1운동]
“빚 못 갚아 미안합니다”… 만세운동 앞두고 기독교에 거금 빌려준 천도교
2016-02-25
인명진 갈릴리교회 원로목사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우리나라 헌법 전문의 첫 대목이다.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부터 건립된 나라임을 분명히 적시하고 있다. 3.1운동이 우리나라 역사에 얼마나 중요한 역사적 사건인지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선언이라 할 수 있다. 3·1운동의 역사적 의의는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란다 하겠다.
기억할 만한 사실은 위대한 3·1운동의 한가운데에 천도교, 불교, 기독교(개신교) 등 종교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3·1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이 이들 종교 지도자들이었고 3·1운동의 시작과 전국적으로 번진 만세운동에 이 신자들이 주축이 되었다.
기독교만 예로 들어도, 전국에 흩어져 있던 교회당이 3·1운동의 연락망이었고 만세운동에 사용된 태극기를 교회당에서 제작했다는 기록이 있다.
3·1운동은 당시의 종교인들이 중심을 잡았다고 해도 큰 과장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겠는가 하는 것이다.
종교 간의 대립과 갈등은 지금도 우리 사회의 걱정거리인데 어떻게 그 당시에 다른 종교끼리 단합해 민감하기 그지없는 정치적 사건에 의견을 같이하고, 행동하고, 협력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기독교의 경우 민족대표로 참여한 기독교 지도자들은 요즘 말로 사회 참여를 주장하는 진보적 인사가 아닌 보수주의자들이었다.
기독교 대표 중 한 분인 길선주 목사만 하더라도 보수적인 복음주의자이며 유명한 부흥강사였다. 그런 분이 정치적 사건인 3·1운동에, 그것도 천도교인과 불교도 등 전혀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했다.
요즘도 그런 기독교 목사가 있으면 정치목사 혹은 좌파라고 비난을 받을 텐데 말이다.
이런 점에서 3·1운동은 역사적 정치적 의의뿐만 아니라 종교사 측면에서 다시 연구해 그 교훈과 전통을 계승해야 할 책임이 오늘의 종교인들에게 있다.
3·1운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좋은 협력관계가 적지 않았다.
그 한 가지는, 만세운동을 준비하던 기독교가 자금이 부족해 부득이 천도교에 돈을 빌려달라고 요청을 했는데 천도교가 두말 하지 않고 흔쾌히 그때 돈 5000원을 빌려줬다.
그 돈은 요즘 화폐 가치로는 50억 원에 해당하는 거액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큰일을 위해 내 돈 네 돈 따지지 않고 종교 간에 재정적 협력도 마다하지 않았던 우리 선배 종교인들의 넓은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기독교가 당시에 빌려간 돈은 갚았다는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 돈을 아직까지 안 갚은 듯한데 천도교도 기독교에 빚 갚으란 말을 하지 않고 있으니 고마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