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20일 성령강림절 후 여섯째 주일예배
성경: 마10:5-10(신 14쪽)
제목: 파송 받은 자의 사명 (김동섭 목사)
마 10장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하신 설교입니다. 누구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자세로 복음을 전해야하는지 파송 받은 자의 사명에 대하여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5,6절에서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예수님이 이방인을 차별하신 것처럼 오해하기 쉽습니다.
우리말 성경에서 ‘오히려’로 해석한 헬라어 원문의 ‘말론(μαλλον)’을 ‘오히려’ 보다는 더 확실하게 ‘반드시’(마 6:30)로 해석해야 본문의 뜻을 이해하기 쉽습니다. 이방인이 아니라, 반드시 이스라엘 집 잃어버린 양에게로 반드시 먼저 가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이방인과 이스라엘을 차별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마 13장에서 예수님은 천국의 비밀을 설명하시면서 씨 뿌리는 자는 씨앗을 좋은 땅에만 뿌리는 것이 아니라, 길 가에도, 돌밭에도, 가시떨기에도 뿌린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누구에게나 복음을 허락하신다는 것을 씨 뿌리는 자의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마 28장에서도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지키게 하라”(마 28:19,20)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마태는 제자 파송 설교를 기록하면서 왜 이방인보다 이스라엘에게 먼저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했을까요? 그 말씀을 이해하려면,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기록한 마태복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마태는 복음서 첫 머리에서 예수님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곧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음을 선포합니다.(마 1:1)
구약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메시야가 오셨으니, 이스라엘은 그의 말씀, 복음을 믿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이를 거절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복음을 이방인에게도 허락하셨습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롬 1:16)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롬 11:12)
하나님은 구약에서 언약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되심을 포기하고, 이방인을 복음의 대상으로 삼으신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동족인 이스라엘에게 구원의 복음이 이방인에게 임한 것을 보고 너희도 시기하고 부러워해야 한다고 말합니다.(롬 11:11) 구원의 충만함, 구원의 능력은 유대인에게 흘러넘쳐서, 나중에 믿은 이방인에게도 차고 넘쳤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차고도 넘치는 구원의 풍성함을 맛본 사람만이 그 구원의 소식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배에서 흘러나온 생수(성령)의 강물이 우리를 먼저 풍성케 하고, 그 강물은 우리를 통해서 구원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에게 계속 흘러넘칠 것입니다.(요 7:38)
저는 이번 중국 연길과 러시아 연해주 여행을 통해서 우리보다 앞서서 구원의 풍성함을 맛본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먼저 자신이 경험한 구원의 풍성함을 이웃 형제들에게 전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항일 투쟁에 앞장섰고, 학교를 세워 나라를 잃은 민족의 글과 역사를 가르쳤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우리와 혈통이 다른 외국 선교사들이 있었습니다. 중국어 성경책을 한글로 번역한 존 로스, 학교와 교회를 세운 윌리엄 스크랜튼, 그의 어머니 메리 스크랜튼, 그 밖에도 수많은 선진들이 있습니다.
미국 감리교 목사면서 의사인 윌리엄 스크랜튼은 메리 스크랜턴과 함께 조선에 건너와 이화학당을 세워 여성교육에 힘쓰고, 상동교회를 세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상동교회는 양기탁, 이동녕, 이회영 선생, 전덕기 목사 등을 중심으로 서간도 심양에서 신민회를 결성하여 독립운동에 앞장섰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일제의 만행과 수탈이 심해지자, 수많은 조선 사람들이 고향을 등지고 만주 서간도, 북간도 지방으로 떠났습니다. 북간도 길림성은 연길을 중심으로 화룡, 룡정, 도문, 훈춘을 묶어서 “연변 조선족 자치주”라고 부르는데, 이곳은 중국어와 함께 한국어 간판을 동시 표기하고, 한국말을 사용합니다.
화룡은 백두산으로 가는 길이고, 도문, 훈춘은 두만강을 지나 블라디보스톡으로 들어가는 관문입니다. 룡정은 연변지역과 심양, 북경을 잇는 교통의 요지입니다. 그들은 황무지를 개간하여 마을을 이루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우리 일행은 화룡에 있는 “구세동”이란 마을을 보았습니다. 함경도에서 이주한 이종식 장로님은 여기에 숭신학교를 세우고, 1919년 3.13 만세운동을 주도하였습니다. 지금은 폐허가 되어 옥수수 밭만 무성하고, 그 당시 두만강을 지나 일본으로 뗏목을 실어 날랐다는 해란강만 유유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구원을 필요로 사람들에게 자신이 맛본 풍성한 구원을 전한 사람들입니다. (사진 ①)
용정시 한복판에는 1906년 이상설 선생이 설립한 신학문 민족교육기관인 서전서숙(瑞甸書塾)의 터가 남아 있습니다. 그 이듬해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참석 경비 마련을 위해 학교를 팔아야 했을 때 그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생각하니 제 마음도 먹먹해졌습니다. (사진 ②)
용정 명동마을에는 윤동주 시인의 집이 있는데, 중국 동북공정으로 복원된 모습이 생경하였습니다. 당시에 학생들이 공부하고 뛰놀았을 명동학교와 김약연 교장선생님의 흉상 앞에서 이 곳을 오갔을 수많은 애국지사들을 회상하였습니다. (사진 ③)
서울에서 상동교회를 다니던 정재면 집사는 이 곳으로 이주하여 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공자 유교사상에 심취해 있던 동네 어른들도 그의 전도에 집단으로 회심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도문은 러시아, 중국, 북한이 만나는 방천으로 가는 길목입니다. 두만강에서 배를 타고 북녘을 바라보니 두만강역이 보이고, 희미하게 유치원과 학교가 보였습니다. 구원의 풍성함을 가슴에 안고 수십 차례를 오가며 헐벗은 아이들을 돌보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한 노새 선생님과 그의 동역자들을 생각하였습니다. (사진 ④)
연해주로 들어가는 길목인 크라스키노에는 안중근 의사가 열두 명의 동지들과 단지동맹(斷指同盟)을 결의했던 장소가 있습니다. 하얼빈 거사를 앞두고 사격 연습을 했을 안중근의사의 비장한 심정을 헤아려보았습니다. 동해 바다 건너 북한 땅을 바라보며 우리 일행은 함께 큰 소리로 기도하였습니다. (사진 ⑤)
연해주로 이주한 조선인들이 블라디보스톡에서 신한촌을 형성하고 1911년 최재형 선생과 홍범도 장군을 중심으로 권업회를 조직하고 광복군을 양성하여 독립운동에 앞장섰습니다. 최재형 선생은 노비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군수회사를 차려 모은 재산으로 극심한 추위와 고통 속에 있던 동포들에게 “페치카(난로)” 가 되어 주었습니다.(사진 ⑥)
본문 8절입니다. “병든 자를 고치며...살리며...깨끗하게 하며...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주 주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대가를 바라지 말고 거저 주라고 하십니다. 당연한 말씀인데도 우리는 이 말씀을 자신 스스로에게 적용시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받은 것은 쉽게 잊어버리지만, 남에게 준 것은 잘 잊어버리지 않는 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가 그의 자녀임을 늘 묵상하며 그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은 그 말씀대로 행하며 살아갑니다.
저는 이번 여행에서 많은 선교사님들이 자신의 소유의식 없이, 하나님의 주인의식을 생활화하며 사는 것을 보았습니다. 러시아 아르쫌에서 복음을 전하신 정득수 선교사님은 30년 넘도록 가꾸어 온 교회를 아무 대가 없이 현지 사역자에게 물려주시고, 시골 오지마을 노보네쥐노에서 새롭게 사역을 하고 계십니다.(사진 ⑦)
하나님 아버지가 주시는 대로 한 걸음 한 걸음씩 교회를 세워 가면, 비록 진행이 더딜지라도 자신에게 실망하지 않고, 오히려 주님이 채워주시는 구원의 풍성함을 경험한다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에게 빠른 성과를 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의 말씀에 순종하여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파송 받은 자가 자신을 위해 여행을 준비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직 복음만을 위해 여행을 준비하는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10절 말씀처럼, 그런 일꾼에게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을 받는 것이 마땅”함을 체험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먼저 구원의 풍성함을 맛보기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자신의 능력을 전하지 않고, 주님이 주신 구원의 풍성함을 그대로 전할 것입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시기를 힘써야 합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파송하신 것처럼,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세상에 파송하셨습니다. 앞서 간 파송 받은 자들, 믿음의 선진들을 따라, 담대하게 여행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