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6월의 맨 끝날이다. 올해도 꼭 반이 훌쩍 지나갔다. 순 한국식으로 내 나이 벌써 일흔아홉 살이니 내년이면 팔순이란다. 아!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다더니 이렇게 빨리 가버릴 줄이야... 오늘은 일찍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오랜만에 소집한 고등학교 동문회에 꼭 가봐야겠다. 하필이면 주일에, 오후 1시까지 청계산 입구역 건너편 한우식당으로 모이란다. 사실은 동문회 명칭인 《천봉회天鳳會》(천안시 봉명동 소재, 천안고등학교 10회)를 내가 작명하고 덧붙여 "봉황이 울면(鳳鳴) 다 모여라!" 외쳤던 기억이 난다.
내 공무원 재직 시절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빠졌다가 은퇴 후 코로나19로 인해 여러 동문들이 갑자기 병들고 하늘나라로 가는 걸 지켜보며 마음이 울컥해 이제라도 열심히 참여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세 달 만에 한 번씩 모이면, 친 혈육처럼 반갑고 좋아라 어쩔 줄 몰라 고주알 미주알 별별 그간의 쌓인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청계산에 오를 친구들은 두 시간 앞서 와서 함께 등산을 하지만 대부분은 식당으로 직행한다.
나는 오늘 평소보다 일찍 깨어 이 생각 저 궁리하다 보니, 내 일생은 천생 《나그네 인생》이로구나! 란 걸 깨달았다. 불의의 6.25 한국 전쟁으로 다섯 살 때 엄마 아빠를 여의고, 외갓집에서 할머님의 지극정성으로 초 중고등학교를 줄곧 개근하며 장학생으로 졸업하였으나 서울대학교에는 낙방해, 국가공무원 시험을 치러 합격하고 부산에서 첫 발을 내디뎌 본격적인 나그네 생활에 들어갔다.
1년 반쯤 지났을 때, 보충역에서 늦깎이로 징집되어 꼬빡 3년을 원주 통신훈련소를 거쳐 6사단 철원 전방 부대에서 복무하다가 병장으로 제대를 하고, 복직하자마자 서울로 옮기고 1년 후 온양온천 아카데미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린 그날 현충사를 들러보았을 뿐, 곧장 상경하여 북한산 끝자락의 진관내동 14평 집 단칸방에서 신혼살림을 꾸려가면서 못다 한 대학의 꿈도 실현하며, 치열하리 만큼 오로지 공직에 충성을 다 바쳐 승진과 영전을 거듭하며, 국립수산과학원 총무과장으로 보임되어 다시 부산으로 내려갔을 때엔 소망하던 대학원의 꿈도 펼칠 수 있었는데, 충청남북도를 총괄, 책임이 막중한 대산해양수산청장(Agency, 영국식 책임운영기관장)으로 발령이 나서 졸업장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의 부산지방 근무 기간에 많은 분들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는데, 특히 국제시장에서 쌀 창고를 크게 경영하시던 황남상회(사장 민병의) 식구들 - 어머니 아버지, 성기 형과 동생들이 많이 보고 싶다. 이화여대를 졸업한 인숙이는 좋은 신랑을 만나 결혼했고, 나와 함께 한 방을 쓰면서 공부하던 진기는 동아대학교 졸업 후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군대에 면회 한 번 가서 보고는 뚝 소식이 끊겨 가슴이 뭉클하다.
또한 수산과학원 총무과장 근무 시절의 원장님이신 배평암 이장욱 두 분과 이삼석 박미선 김윤 등 훌륭한 연구관 님들, 사랑하는 직원, 김자현 김진숙 씨 등 성심성의껏 객지의 나그네를 도와주었던 님들의 얼굴이 문뜩문뜩 떠오르고, 주말이면 내 집처럼 드나들었던 <아랫목 횟집> 다정한 부부(박명호 오주연) 사장님은 여전히 요즘도 건강하신지? 무척이나 그립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를 연발해 본다.
대산해양수산청장으로 4년간 근무하면서, 주말엔 서울 집을 오갔지만, 평소 정말 열심히 믿고 따라준, 존경하는 과장님들과 사랑스러운 직원들을 영영 잊지 못한다. 특별히 청장 부임 1년도 채 못되어 내가 악성 담석증으로 급히 입원, 수술 절차를 밟아 서산의료원 3일, 서울 순천향병원에서 37일, 총 40일간 레저술 시도 3회 등 무려 네 차례에 걸친 수술로 16kg이나 체중이 빠진 상태에서도 기적적으로 살아날 수가 있었으니, 이 은혜를 어찌 갚으리오?
해양수산부 홍승용 차관님! 그리고 강래영 총무과장님을 비롯한 모든 대산해양수산청 식구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올린다. 100여 직원이 모두 문병을 와줄 정도로, 나를 살려내는데 최선을 다해주었으니 이 큰 빚을 어떻게 하나? 고민고민하다가 퇴임하면서 <물바위의 흐느낌>이란 작은 시집(詩集)으로 정리해 모든 직원에게 선물하고, 큰 그림 <바다 이야기> 한 점과 전자 오르간을 남겨 주고 깊은 정이 든 그곳을 훌훌 떠나야만 했다.
공직 퇴임 후 본격적으로 시도한 탁구 레슨과 글짓기 공부가, 나의 노년 인생을 미치도록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서울특별시 시니어 선수와 전속 심판관으로 십사오 년을, 세월 가는 줄 모르게 즐겼고, 내가 출석하고 있는 응암교회(강석제 위임목사)의 선배 장로님이신 윤주영 시인님의 <시 쓰기 반> 지도에 큰 힘입어 2018년도에 창조문예 수필부문 등단, 2023년 별빛 문학의 시인 등단에 이어 한국 장로 문인협회의 <장로문학상> 수상으로, 요즘도 아름답고 멋진 나그네 인생을 살아내고 있다.
이제 나의 바람은, 사랑하는 우리 가족들 - 열 손가락 마디마디 아파 고생하며 7월4일~6일 강북삼성병원 입원, 재수술을 앞두고 있는 내 아내와 아들들 며느리, 손자들이 - 주 안에서 화평하고 건강하게 지내며, 언제나 활짝 밝은 웃음 잃지 않고 기쁘게, 범사에 감사하며, 하나님 말씀에 절대 순종하여 쉼 없는 기도와 찬양으로 굳건한 믿음 생활 잘 하는 것 외에 또 무엇을 바라리오?
힘들고 어려웠던 옛 시절을 추억하며 불우한 이웃을 진심으로 이해 배려하고 정성껏 도우며, 동문들 중에 혹시 몸과 마음이 아파 고생하는 사람은 없는지? 세심히 살필 일이다. 사랑하는 벗들이여! 우리 이제 욕심도 승부도 다 내려놓자. 적당한 운동과 휴식을 통해 늘 가볍고 유쾌하게, 온유와 겸손으로 하루하루를 우아하고 품격 있는 늙은이로 살아가자. 6월의 끝날 《나그네 인생》에 대하여 되돌아보는, 참 의미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