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댓글한 학기를 마치면서 김원중 교수님의‘소설에 나타난 집단상담 분석’ 논문에 대한 과제를 하게 된 것을 예비 상담가로서 고맙게 생각하며, 한편으로는 조심스러운 감정이 앞섭니다. 논문에서는 집단상담에 참여했던 교사들과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공통적으로 “집단상담 경험이 무익하고 불쾌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문제의 치유나 인간적 성장은 커녕 고통과 후회만 남았다고 토로하면서 집단상담에 함께 참여했던 것이 불안하고 서로 불편한 사이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특히 이들은 집단에서의 ‘자기공개’가 트라우마로 남게 되었다는 부정적 의견을 제시하였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하여 우리나라 집단상담의 대가로 선정된 5명의 면담 내용은 상담 현실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적절한 자기공개는 대인관계에서 호감을 일으켜 친밀감을 형성하고, 공개자의 정신건강을 증진하며, 상담 관계에서는 상담 효과를 높이는 등, 여러 가지 긍정적 기능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공개에는 역기능도 있다는 것입니다.
높은 수준의 자기공개가 반드시 같은 수준의 호감을 유발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사람 간에 친밀감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일방적 자기공개가 아닌 상호 자기공개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임을 시사합니다. 소설 속의 상담리더는 집단원들에게만 자기공개를 하게 할 뿐 정작 본인은 공개를 피하는 데 비해 집단상담 대가들은 자신을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돈이 목적인 상담자에 비해 상담의 기본을 실행하는 대가인 것이 명확하다고 하겠습니다. 한편 논문에서 자기공개 과정을 보면 집단구성원에게‘먼저 하고 싶은 분 있으십니까?’라는 리더의 질문에 모두 피하기 급급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리더와 눈을 마주치지 않아 리더가 한 사람을 대상으로 지목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나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현실과 다름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만약 지금 내가 이런 경우에 처했다면 내가 먼저 저요! 하겠습니다. 나도 젊은 시절엔 먼저 나서는 걸 망설이곤 했는데, 나잇살이나 먹고 보니 망설이는 행동은 덜해지는 것 같습니다. 뭐, 봉사정신, 희생정신이라고 할까? 이건 에릭슨의 심리 사회적 발달이론의 8단계인 인생을 성공적으로 이끈 통합감의 결과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성공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나만의 만족감이라 할까요? 그러나 솔직하게 자기 공개한 것을 후회한다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자발적인 공개가 아닌 리더에게 지목된 사람은 자신이 억지로 끌려 들어가 자기공개를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자기공개가 공개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으로서 오히려 억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자기기만 공개를 할 수도 있을 것으로 판단 됩니다. 집단상담에서 중요하다고 하는 자기공개가 상담 리더의 압력으로 진행된다면 그러한 상담은 시작부터 실패를 예견할 수 있습니다, 상담이라는 것은 서로 대화하면서 내담자의 마음을 이해해나가는 과정인데 어느 한쪽의 일방에 의한 상담은 있을 수 없을 것이며, 오히려 리더는 자기공개를 하지 않으면서 집단원에게‘당신은 방어가 심하다’,‘저항하지 마라’라는 등의 지적을 하고 화를 낸다거나 리더의 감정조절이 미숙해 우는 상황도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내가 볼때는 이러한 경우는 참 황당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담은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기본적인 대화 과정인데 우리나라 상담 현실이 암울하고 걱정스럽다 하겠습니다.
논문은 ‘수평적 자기공개’ 즉 ‘지금-여기’에 관한 언급을 보면 리더는 집단작업에 참여할 때는 개개인 모두 적절한 어휘선택을 하는 것의 중요함을 강조하면서 어휘 선택에 신경을 쓰는 것을 기본적 예의라고 하였습니다. 나의 예를 들어보면 상담사례 수업 중 토론시간에 어느 학생이 “교수님은 상담자로서의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었다고 보는데, 그것은 내담자의 질문에 대한 진지하고 친절한 감성적인 목소리로 인해 내담자는 구체적으로 설명을 다 듣지 않아도 이미 기분 좋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였을 것으로 생각합니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누구나 그렇게 상담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쉽다고 생각하는 것이 제일 어렵다는 것을 확실히 증명하는 수업 상황이었습니다. 논문에서 리더인 둥지는 입으로는 ‘지금-여기’를 강조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런 삶을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담자는 상담학계를 떠날것을 교수님은 엄중히 지적합니다. 나 또한 상담을 배우는 학생으로서 기본기에 충실한 자세를 견지할 것을 다짐 합니다. 한편, 집단상담의 역효과에 대해 집단에서 배운 대로 자기공개를 하면 친밀감이 형성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논문은 우리나라 집단상담 대가들에게 집단상담은 거의 신앙인 듯 하다며, 리더에게 맹종하는 실태에 대해 “의존성 성격장애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집단상담의 리더가 모두 문제가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라고 하면서 집단상담이 돈이 된다는 걸 알고 이 사업에 뛰어든 사람도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논문 <사례 5> 를 보면 "돈이 중요한 이유일 거야. 집단상담이 돈이 더 되지. 확실히 돈이 더 돼." 라는 말로 예를 들고있습니다. 이들의 영리추구는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문제는 없다고 하겠으나 다만 엉터리 상담으로 돈에만 정신이 빠진 리더라면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소설 속 집단상담의 참여자는 대부분 상담심리를 전공하는 사람들로서 집단원들은 앞으로 상담을 직업으로 삼으려는 사람들로서 자격증을 따거나 성공한 집단상담 리더의 영업 비밀을 배우기 위해 온 것이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현실이 이러니 내담자 위주의 상담은 부차적이고 오직 공급자(리더)가 중심이고 고객이 봉이 되는 안타까운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인간 중심 상담이론의 대가인 칼 로저스가 우리의 현실을 보았다면 엉엉 울고 갔을 것만 같습니다. 또한 논문은 집단상담의 중독 위험성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데, “더 심각한 문제는 마지못해 비밀을 털어놓은 정상적인 학생은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며, 부적응이 심한 외톨이 중 몇 명은 선생님의 칭찬과 격려 속에 서서히 집단상담에 중독되어 갈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이는 집단상담을 진행하는 상담 리더가 오히려 악을 조장하는 것으로서 이러한 상담자는 퇴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어서 집단상담에서 아주 중요한 비밀보장에 대해 기록했는데, “상담 중에 나온 얘기를 밖에 누설하지 않겠다는 비밀보장의 약속은, 리더가 아무리 비밀보장을 강조해도 모두가 약속을 지킬 거라고 믿는 것이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이렇게 자기공개행위를 부정적으로 보면서 “별별 얘기를 솔직하게 다 털어놓는 사람은 판단력이 떨어지는 현실 부적응자일 가능 성이 높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내용을 적당히 가공하고 깊이도 조절할 것이다.” 라고 하면서 상담학계의 비밀보장 현실에 대해 낱낱이 비판하였습니다. 그러나 논문은 .”논문의 대상은 소설이며, 소설은 허구이므로 허구를 대상으로 논문을 작성했다.” 라고 하면서 “조경란 작가의 이 소설도 허구이기를 바란다.” 라고 하였습니다. “ 만약 사실이라면 상담으로 밥 벌어 먹는 사람 중 하나인 나 까지 참담해지기 때문이다.” 라고 하면서도 논문의 대상이 된 소설이 현실에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하여 완전히 배격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자신의 밥벌이 대상이 위험을 안고 있음을 솔직하게 틀어 놓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집단 상담에서는 자기공개는 꼭 필요하며, 상담자가 자기공개를 하지 않으면 내담자에게 신뢰받을 수 없어 상담 효과가 떨어져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상담가들은 기초 공부의 부실로 인해 내담자 자신의 모든 비밀을 남에게 털어놓는 것은 불가능하고 비밀 약속을 지킨다는 것 또한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러한 불신은 정부의 상담자격증 남발로 인한 결과도 있겠지만 역시 대부분의 상담가들은 상담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논문은 상담자의 기본책무에 대해 ”Piaget의 발생론적 인식론을 공부하지 않고 아동을 상담하거나 Marcia의 정체성 지위을 모르면서 청소년을 상담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라는 말로 상담학계의 부실한 상담 현실에 대해 일침을 가하고 있습니다. 한편 소설의 작가는 약속을 어기고 글을 쓰기 위한 수단(돈벌이)으로 집단상담에 참여한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고 만약 그렇다면 이는 상담윤리를 위배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어서 교수님은 “불신보다 더 위험한 것이 눈먼 믿음이다”라고 상담현실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하셨습니다. 이 지적은 상담을 배우는 저에게는 영원히 기억해야할 고언이라고 생각합니다. 논문에서 알 수 있듯이 흔히 상담가들은 비밀보장에 대한 원칙만을 강조할 뿐 비밀누설에 대한 책임은 한계를 보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상담이론을 무시하고 체험만을 강조하는 상담 현실은 확실히 개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숭고한 상담 윤리의식’에 대한 교수님의 충고는 영원히 기억하고 성찰하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상담자를 위한 집단상담 이라는 생각에 동감합니다. 저도 과거에 집단상담에 참여하면서 어떤 간절함이 있어야 일반인이 자신의 돈과 시간을 들여 여기에 참여 할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더불어 저 또한 돈을 보고 가르치기 위한 집단상담의 리더가 되기 위해 배우는 것은 아닐까? 라는 질문을 하며 저의 상담과 윤리적인 목적을 되돌아보았습니다. 분명 배우기 위한 목적의 자기개방과 치료되기 위한 자기개방의 정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소설의 주인공은 일반인으로서 집단상담에서의 자신의 경험에서 오는 생각과 느낌을 소설로 옮길 목적이므로 상담의 참여자 보다는 관찰자로서 자기개방을 할 이유가 더더욱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 됩니다. 그렇다면 리더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이러한 관점을 지적하신 교수님의 논문은 차마 누구에게도 물어 볼 수 없었던 저의 궁금증을 시원하게 긁어 주신 듯합니다. 예전 집단 속에서 비현실적이고 작위적인 게임과 뻔한 이야기를 나누며 옳다고 생각한 제 모습이 부끄러워 졌습니다.
집단상담 리더가 뭘 반드시 해야 하는지, 뭘 하지 말아야 하는지 더 혼란스러워지고 조심스러워 졌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돈이 안 된다는 것을 이미 알면서도 이 어려운 상담을 멈추지 않고 있는 저는 뭘 원하는 것인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기왕에 상담을 멈추지 못하고 계속 해야 한다면 교수님의 단호한 생각처럼 제대로 배워야겠습니다. 교과서에서 도저히 배울 수 없는 진정한 집단의 리더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실물을 보고 제대로 배우고 싶습니다. 누군가 상담을 어느 교수님께 배웠냐고 물어보면 김원중 교수님께 배웠다고 할 것입니다. 때문에 제가 교수님께 잘 배워야 교수님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을 것 이라고 봅니다. 이 논문을 읽고 집단상담은 교수님께만 배울 수 있는 것이라 느꼈습니다. 교수님의 위대한 노하우를 전수 받는 것이 저의 버켓리스트입니다. 올바른 집단상담 한번 부탁드립니다. 저는 김원중학파가 될 것입니다.^^
무엇을 공개 해야 하는지 공개하지 말아야 하는지 처음 배운듯 합니다. 김원중교수님의 생각하시는 잘된 집단상담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집단상담사례 축어록이라도 볼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어디서도 배울 수 없는 시실을 알게 되는 깨달음과 더 잘 배워야 된다는 책임감을 느끼게 되는 논문이었습니다.
교수님의 논문을 읽은 후에 내 감정은 매우 깊었습니다. 그 논문은 단지 학술논문이 아니라 소설적인 배경을 가진 흥미로운 이야기 같아서 마치 소설책을 읽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이 논문을 다 읽게 되었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처럼 집단 상담에 참여한 상황이라면, 나는 소설 속 '바다'처럼 큰 압박을 느낄 것 같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공개했지만, 그들은 자기 공개를 위해서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자기 공개로 부터 공감을 얻지 못했고, 그런 상황에서 내가 어떤 내용을 적절히 자기 공개해야 할지 모르게 되었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상황에 진정으로 공감하고, 그들과 더 나아가 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친밀감 형성을 위해 적절한 자기 공개의 중요성과 집단 상담 과정에서 좋은 리더의 중요성을 더욱 깨달았습니다.그리고 좋은 상담사가 되기 위해서는 풍부한 이론적 지식뿐만 아니라 판단력을 향상시키고 비판적인 사고를 갖추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러우후이둥 드림
21세기는 심리학의 세기이며 심리학에 대한 높은 평가는 정신과 사회학을 포괄하며 이학과 문학을 깊이 통합합니다.교수님의 논문을 보고 개인적인 경험을 종합하면, 한중 모두 심리상담을 돈 버는 도구로 여긴다는 공통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전문적인 지식 배경이 없는 문외한인 상담사는 너무 많습니다. 아무나 온라인 강의에 등록하여 간단한 교육을 거치고 심지어 책을 사서 독학하여 시험에 합격하여 최저 자격증을 따면 취업하는 것입니다. 강호랑중처럼 질의응답 과정에서도 그럴듯합니다.본인은 한때 불안과 우울으로 심리상담사에게 연락한 적이 있는데 상담 과정에서 상담사가 할 말이 별로 없어서 계속 제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다.처음에는 이 상담사가 좋은 소양을 가지고 환자의 하소연을 잘 들어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뒤에 저는 거의 모든 과정이 제가 경술뿐만 아니라 심지어 어떻게 자기 계도할 것인지 말하는 것, 해석은 모두 저 나름대로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상담사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을 책임졌다.중국의 대략적인 컨설팅 산업 상황을 이해ㅑ한 후, 저는 이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중에 불안하거나 우울 증상이 나타날 때 전문 서적을 읽거나 흐지부지되는 것
을 선택했습니다.저는 이런 상담사를 다시 만날까 봐 두렵습니다. 교수님의 논문을 보고 저는 다음과 같은 인식을 얻었습니다:자신의 자기개방에 열심인 것은 사실 표현욕이 강했다고 생각합니다.한때의 트라우마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성격적인 원인으로 인해 훔쳐보고 싶은 욕구가 강했습니다.특히 주변생활이 좋은 사람을 상대로,나는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왜 그렇게도 제가 불쌍하고,다른 사람이 그렇게도 행복할 수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비록 저는 상대방의 동정을 얻고 싶지 않았지만,그 과정에서 저는 그에게 과도한 심리적 부담을 주었을 수도 있습니다.모든 사람이 타인의 사생활에 관심을 갖는 것은 아닙니다.장기적으로 너무 자기 개방하는 건 솔직히 저에게 제가 원하는 우정을 주지는 않았습니다.오히려 너무 자기 개방적이어서 남들이 제 비밀을 이용해 시비가 붙을 때 남들이 저를 공격하는 칼이 되는 거죠. 예전에는 가족, 애인은 남김없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니 사실 정신 미숙의 표현인 것 같습니다, 이 비밀이 이 관계에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사실 충분히 합리적으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자신의 표현욕구 또는 공유욕구를 적절히 억제하면 사람의 정신적 성숙을 촉진할 수
우선 '상담자'라는 이름을 함부로 붙여 쓰지 않아야 한다는 반성적 관념이 떠오릅니다. 지난 3년간 교수님께 배운 상담관련 수업을 통해 타인의 마음을 함부로 들여다 보아서는 안되며 심리, 상담, 마음, 치유, 치료라는 단어를 너무나 쉽게 감각적으로 이용하는 시대물에 혼입되어서는 안된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상담을 계속 공부하는 이유는 이런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고 지식에서 벗어나 지혜로 이르는 사색을 평생 지속해야 할 이유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집단상담 또는 그 형식을 빌어 운영되는 자리에서 늘 개운치 못하고 비어낸 자리에 의문, 부끄러움, 후회 등 부정적 감정이 따로 자리잡는 경험을 했었습니다. 자료를 보니 리더의 자기연민, 도구화, 화려한 이론을 앞세운 미숙한 진행 등이 그러한 영향을 끼쳤었을 수도 있구나 싶고, 당시 리더의 모습에서 자만에 찬 미성숙한 인간이 보이기도 했었던 경험이 떠오릅니다. 어느 새 주도권이 바뀐 리더와 상담자들의 모습을 보며 뭔가 잘못되었구나 싶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마음이 충분히 치유되지 못한 상담사를 만날까 두려운 생각도 들고 저 또한 ~와 관련한 상담이랍시고 거들먹거리지 않아야 될 것 같습니다.
저희 아이가 학교에서 집단따돌림을 당하고 학우들이 가하는 폭력의 피해자가 되어 큰 트라우마를 갖게 되어 상담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아이는 학교폭력의 후유증으로 큰 트라우마을 가지고 있었고 학업진행 뿐 아니라 대인관계에 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치료와 동시에 상담을 받기로 하고 상담절차를 진행했는데 상담 초반에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것에 대해 무척이나 힘들어했습니다. 가족의 입장에서 가족의 일원이 아이의 문제에 동참하고 함께 해결해가기 위해 가족상담도 참여했으며 이를 통해 아이가 겪은 일, 그리고 아이의 마음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상담이 8~9회로 넘어서면서 아이는 상담초반보다 더 힘들어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모두 깨알 같이 다 아는 상담사와 마주하는 것이 마치 벌거벗겨진 채로 누군가 앞에 서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해는 되었습니다. 하지만 상담이 병행되지 않고서는 치유가 불가능한 상황이어서 상담을 계속 진행하기를 바랬지만 아이는 끝내 거부했습니다. 아이는 상담을 통해 자기공개에 대한 또한 트라우마로 남게 된 것입니다. 물론 이 사건은 내가 상담이라는 것을 배우기 이전의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학기동안 교수님 수업을 들으면서 자기공개의 중요성, 특히 수평적 자기공개가 내담자로부터 얼마나 공감을 얻게 하고 상담을 통해 관계를 해치지 않고 성공적인 상담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라는 것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내담자가 상담자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 정도의 신뢰와 대화를 이끌어내는 자기개방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요. 또한 자기개방과 솔직성의 정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상담자가 너무 개방적이거나 너무 솔직하게 말하면, 그들은 부담을 느낄 수 있고, 상담에 참여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상담자와 상담자의 문제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상담자의 편안함과 안정감을 유지하는 것이 요구되어집니다.
집단 상담으로 자신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집단상담의 경험에 대해 불쾌감을 토로하기도 하였다는 말은 집단 상담에 참여했던 구성원들이 무리한 자기공개로 인한 불쾌감인 것인데 지난 수업 교수님께서 수업중 지적하신 말은 해도 되는 말도 있지만 무덤까지 들고 가야할 말도 있다는 말이 있다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상담자가 내담자를 향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성을 담아서 소통하는 것은 내담자로 하여금 스스로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으나 무리한 대화의 진행은 내담자로 하여금 불쾌감을 넘어 대화에 대한 트라우마까지 형성할수 있다는 말에 한번 더 상담가 역할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합니다.
교수님의 논문을 읽으면서 상담에 대한 저의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저도 이 소설의 이야기처럼 상담에 대한 충격이 있었습니다. 과제를 해결해야 하듯, 면접을 당하는 듯한 불쾌함과 나의 속을 뒤집어 보여줘야만 하는 의무감 같은 것들로 집단상담을 이어가기 힘들어 뛰쳐나왔던 경험이 있습니다. 상담자의 불쾌한, 명령조같은 지시에도 내담자들은 흔쾌히 따르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에 저는 거짓말로 제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 상담자는 그 거짓 이야기에 전문가 같은(점쟁이 같은) 답을 제시했습니다. 저의 이런 경험은 상담에 대한 불신과 상담자의 자질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수평적자기공개가 자칫 타인을 평가하는 과정이 되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도 함께 해 보았습니다.
아직 집단상담을 경험해 보지 않았지만, 이 글을 읽고 집단상담에서 자기개방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집단상담은 집단 안에서 진솔하게 자기를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집단 안에서 필요한 정보를 서로 교환하고 공통 관심사나 어려움을 해결해 가는 과정이며, 타인을 보다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되며 상호작용을 통해서 새로운 만남과 적응의 과정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이야기 하는 내용을 다른 집단원 들로부터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고, 자신이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글을 읽고 나서는 집단상담에서 자기공개는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며, 집단상담은 비밀보장이 어렵기 때문에 평소 알고 있는 사람이 집단원이 된다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며 나는 공개하고 싶지 않지만 집단압력으로 원치 않는 자기공개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집단상담의 경험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집단압력을 통해 타인에게 원치않는 자기공개를 강요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소설 속에 나오는 햇살을 보면서 학부생 때 수업으로 참여했었던 집단상담이 생각났습니다. 이후로 저는 수업이외에는 집단상담을 찾아서 참여를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아마 그 이유는 학부생 때 참여한 집단상담의 기억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당시 수업 중에 두세 명의 학생들이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사적인 이야기를 했었고 그때 저는 불편한 감정을 많이 느꼈습니다. 개인적이고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 말들을 제가 들었으니 책임을 져야 한다는 괜한 걱정이 생겼습니다.이후 집단상담을 참여할 기회가 생겨도 제가 또 다른 사람의 알고 싶지 않은 비밀에 한발 다가서게 될까 봐 부담스러운 감정이 먼저 들었고 또 논문에도 한국 집단상담의 특징 부분으로 설명되어 있듯이 많은 집단원들이 상담 쪽으로 일하고 공부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제가 어떠한 말을 했을 때 그 사람들이 나의 반응과 말들을 분석할 것 같은 느낌도 들고 그저 그 분위기와 기법을 배우러 가는 집단상담이 과연 내가 원하는 방향일까 하는 의문이 들어 참여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상담 일을 하면서 집단상담을 한 번도 제대로 참여해 본 적이 없는 것이 일을 하는 데 있어 부족한 부분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논문을 읽으면서 제가 느꼈던 불편한 감정이, 집단 상담을 참여하지 않았던 일들이 잘못된 게 아니라는 것을 느껴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기도 했습니다.앞으로 해 나갈 상담들이 많은데 어떻게 더 배우고 경험해야 할지 걱정이 됩니다 우선은 상황과 맥락에 따라 자기개방이든 공감이든 적절하게 사용하는법을 스스로 경험하고 검증하여 상담을 해야할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든 조롱당하지 않는 상담을 해 나가고 싶습니다
한학기동안 많은 배움을 얻고, 생각의 전환, 깊이있는 사고를 하게되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과제 역시 집단상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면서 제 경험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집단상담에서 자기공개라는 것이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다지만, 저는 역기능이 많은것같습니다. 저는 교사들만 다니는 대학원 석사과정에서 상담심리를 전공하면서 필수로 집단상담을 받았습니다. 자기공개는 필수였고, 리더역시 자신이 가진 약점을 공개하면서 내면에 쌓인 자신의 상처를 이야기하라고 했습니다.저는 지나치게 친절과 착함을 보이려는 제자신과 그로인한 상처를 이야기했고, 집단원들은 그런 저의 이야기를 듣고 저의 그런 모습을 칭찬하면서 나쁘게 생각 하는 사람이 이상하다며 위로를 해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약간 위로감을 느꼈지만, 그 뒤부터 집단원들의 상처는 충격적이었습니다.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한 상처, 일진있었던 형의 지속적인 괴롬힘, 열등감 등..저도 울고 또 울어 탈진이 되었습니다.다른 사람의 고백을 듣는다는것이 이렇게 힘들다는것을 느끼는 순간이었고 안스러운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하지만 그 집단상담 이후 같이 수업을 듣는 그 동기들의 개인사를 알다보니 약간의 불편함도 있었습니다.
또,집단상담 과정에 끝까지 자기공개를 하지않고 한없이 우시던 선생님이 있었는데 이 논문처럼 풀어야할 숙제처럼 해석하는 분위기였고, 상담이 끝난뒤 자기공개를 전혀하지않은 그분에대해 상당한 편견도 생겼었습니다.자기것을 드러내기 싫어하는구나, 뭔가 상처가 많은가보구나,우리랑 벽을 두는구나..등 이렇게 이유없는 편견을 갖게되는것 역시 참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집단상담에서 리더가 어떤 말에대한 자신의 내면, 그 원인을 스스로 찾아가라고 다그치는것도 압박으로 다가왔었습니다. 집단상담이 정말 유익한가하는 것은 저또한 의문으로 남아있습니다. 이 논문속에서는 대가들이 본인들의 고백이 집단원들의 자기공개를 끌어내고 효과가 크다는 생각을 하고있지만, 자기개방을 많이한다고 해서 그집단에 참여한 사람들의 만족도는 크지않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도 제가 말하고싶지않은 것을 계속 물었을때 오히려 수치심을 경험하기도 했기 때문에..저와 같은 공간에서 집단상담에 참여한 분들도 오랜 갈등이 해결되었다라고 느끼기보다 잊고지낸 일을 끄집어내고,남들에게 말하고,다른사람이 내 개인적 치부를 안다는것에 수치심을 느끼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지현집단상담 대가 인터뷰 중에 집단상담에 참여하는 사람 대부분이 사실상 전공자, 관련자라는 글에 공감을 하며, 그렇기에 종교집단처럼 리더를 따르게 되기도할 것이고 이 계통의 일을 앞으로 해야하기에 필요한 기술, 경험을 얻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참여하게 되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생활과 상처를 공개하고 내가 알아차리지도 못했던 내면까지 끌어내야하는 경험, 수평적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위로하는 과정이 정말로 개개인에게 도움이되는 상담인지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제가 경험하면서 생겼던 의아함, 의문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어서 감사한 경험이었고, 집단상담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지 않을것 같다는 제 마음속 다짐이 부끄러운것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어 도움이 되었습니다. 진짜 비밀은 누구에게도 털어놓지말라던 교수님의 말씀에 공감하면서 다시금 제 자신의 마음도 정리하게 되었습니다.자신의 경험으로 부터 배워야한다는 말은 깊이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김원중 교수님의 논문(소설에 나타난 집단상담 분석)을 읽고 상담업계에 종사하는 일인으로서 민낯이 드러나 부끄럽기도하고 다소 혼란스럽기도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집단상담의 현장뿐만이 아니라 내가 걸어왔던 상담의 길을 돌아보면 너무도 당연히 아무 의심없이 상담은 이런거구나 수용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기공개는 언제 어디서나 많이 할수록 좋다’고 알고 있었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나의 첫 집단상담 경험은 학부생때 대학 동기들과 공부겸 호기심으로 접하게 되었습니다. 적당히 인사만하고 지내는 정도지만 학교를 다니는 동안은 만날 수 있는 관계여서인지 다들 자기 개방을 적당히 했던 것 같습니다. 주로 힘든 마음을 공유하는 시간이었는데 나보다 더 힘든 학우들을 보면서 ‘나만 힘든게 아니구나’집단원들의 특별한 피드백이 없어도 위로를 받는 시간 집단상담의 긍정적 작용 일반화를 경험하는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상담 현장에 종사하면서 직장의 연수로 집단상담을 경험하게 되었는데, 직장 상사의 눈치를 봐야되니 온전한 자기개방을 할 수도 없는데 돌아가면서 자기 개방을 다 해야되니 부담스럽기만 했던 경험도 있었습니다. 처음 상담 공부를 시작할 때는 여유만된다면 모든 집단 상담을 다 참여하고 싶었던적이 있었습니다. 현재는 학회의 자격증을 따기위한 과정으로 제대로 공부를 하려면 돈이 많이 드는게 현실입니다. 현실은 어려워도 나의 바램은 정말로 부끄럽지 않는 상담가가 되고 싶다는 겁니다. 교수님의 말씀처럼 ‘진리를 구하려면 먼저 철저하게 의심해 보아야 한다’를 가슴깊이 품고 실천하는 인간적인 상담자 기초 공부가 부족하지 않는 전문가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 이 논문을 쓰는데는 두 가지 계기가 있다 ' 포문을 여는 간결하면서도 궁금증을 유발하는 이단 한줄의 문장이 이 논문의 저자는 '경남대 김원중교수님'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동안 수업시간 중간중간에 말씀하신 집단상담의위험성을 오랜연구와 소설을 통한 예리한분석으로상담학도들에게 집약해서 안내해주는 길잡이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끝까지 읽어내려갔습니다 이 논문을 통하여 소설속의 바다(화자)는 집단상담에 참여한 느낌을 '비현실적이고 약간 희극적이며 미성숙한 사람들'처럼 보였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이처럼 집단상담에서 꼭 필요한 자기공개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으며, 대상이 중요하고, 은밀한 상담은 개인상담이 더 적합하며, 실생활에서의 자기공개는 집단상담에서의 자기공개와는 달라야함을 미리 안내해야하고, 어떤 유명한 상담자라도 상담자에 대한 무조건적 신뢰보다 비판적인 태도를 가지는 것이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나저나 교수님! 은퇴후 아무것도 안하시겠다고 하셨지만ᆢ 벌써부터 교수님의 명강의, 작성글, 어록(?)이 고픕니다~ㅠ
①집단상담에서 집단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단순히 모여있는 무리라는 사전적 의미와는 차이가 있다. Gladding(1996)에 의하면 집단상담에서 집단은 상호작용을 목적으로 모인 두 사람 이상의 모임이라고 하였다. 이형득 등(2007)은 집단상담은 비교적 적은 수의 정상인들이 전문가의 지도하에 상호관계성의 역동을 토대로 신뢰롭고 수용적인 분위기 속에서 개인의 태도와 행동변화 및 발달·성장을 촉진하는 역동적인 대인관계 과정이라고 하였다. 집단상담에 대한 선행연구를 살펴보면 결국 집단상담은 개인상담과는 다르게 집단내에서 대인관계 경험과 실험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에 대인관계의 역동성을 경험할 수 있다고 본다.
집단상담에 관해 배운 바에 의하면, 집단상담은 내용과 과정이라는 2가지 측면이 있다. 이 두가지만 놓고 봤을 때 집단상담은 어떤 프로그램으로 진행하느냐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누가 어떤 식으로 어떻게 표현하는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 과정의 측면이 집단상담의 역동성이라고 배웠다. 집단원과 리더사이에 발생하는 상호작용, 집단원끼리 발생하는 상호작용의 힘이 그 집단의 방향을 결정한다.
②결국 상호작용은 집단내에서 일어나는 정서적 반응, 친밀감 등이 있다고 한다면, 상호작용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자기공개’가 아닐까 생각된다.
본인 또한 집단상담의 구성원으로 참가할 때마다 들었던 생각은 ‘여기에서 나의 이야기를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였다. 아는 사람이 있으면 집단후에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가 걱정되었고, 모르는 사람이 있으면 ‘나에 대해 편견없이 이해할 수 있을까?’가 고민이었다. 이런 비슷한 걱정이 집단상담의 리더가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집단원이 갑자기 깊은 자기개방을 하면 나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그 순간 흐르는 정적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등의 고민이 저를 더 위축시켰던 기억이 난다. 무엇보다 교수님의 논문중 자기공개의 역기능에도 나타났지만, 상대가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았을 때 적절하게 피드백을 주지 못해 계속 자책했던 기억도 자꾸 떠오른다. 본인도 집단에서 나의 어려움을 털어 놓았는데 다른 구성원이 ‘다 비슷하게 산다.’, ‘이제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살아라.’라는 절대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들었었다.
③내가 어떤 노력으로 예전과 다른 나로 변화하기 위해 노력한 내가 잘못했다라고 하는 것 같아 서럽고 화가 나기까지 했다. 다행히도 그 집단이 끝난 후에 따로 개인상담을 하였고, 상담장면에서 집단상담에서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쏟아내고 나서야 죄책감과 분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때 경험에서 느꼈던 점은 자기공개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들일 자신이 없으면 하지 않는게 차라리 나을뻔 했다는 것이다. 물론 자기개방에 대해 불쾌한 경험만 있지는 않았다. 교수님의 논문에도 나와있지만 리더가 집단원들 앞에서 시범을 보여야된다고 기술한 것처럼 내가 경험한 집단상담에서도 리더가 지나치지 않는 자기개방을 보여주어서 이 정도의 개방은 안전하구나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정성란 등(2015)은 집단상담에서 집단 역동에 미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집단리더’하고 하였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집단상담을 경험하지 못했던 사람이 다수일텐데 집단리더의 행동과 말에 많은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④교수님의 논문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부끄러움, 의아함, 억울함으로 페이지를 넘겼고,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 교수님께서 그동안 강조하셨던 게 ‘비판적 사고를 가져라, 맹신하지 마라.’라는 말씀이 되새겨졌다. 나는 얼마나 전문성을 갖추고 이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했고, 느슨해졌던 공부에 대한 동기가 새롭게 살아오르게 되었다.
첫댓글 한 학기를 마치면서 김원중 교수님의‘소설에 나타난 집단상담 분석’ 논문에 대한 과제를 하게 된 것을 예비 상담가로서 고맙게 생각하며, 한편으로는 조심스러운 감정이 앞섭니다. 논문에서는 집단상담에 참여했던 교사들과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공통적으로 “집단상담 경험이 무익하고 불쾌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문제의 치유나 인간적 성장은 커녕 고통과 후회만 남았다고 토로하면서 집단상담에 함께 참여했던 것이 불안하고 서로 불편한 사이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특히 이들은 집단에서의 ‘자기공개’가 트라우마로 남게 되었다는 부정적 의견을 제시하였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하여 우리나라 집단상담의 대가로 선정된 5명의 면담 내용은 상담 현실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적절한 자기공개는 대인관계에서 호감을 일으켜 친밀감을 형성하고, 공개자의 정신건강을 증진하며, 상담 관계에서는 상담 효과를 높이는 등, 여러 가지 긍정적 기능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공개에는 역기능도 있다는 것입니다.
높은 수준의 자기공개가 반드시 같은 수준의 호감을 유발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사람 간에 친밀감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일방적 자기공개가 아닌 상호 자기공개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임을 시사합니다. 소설 속의 상담리더는 집단원들에게만 자기공개를 하게 할 뿐 정작 본인은 공개를 피하는 데 비해 집단상담 대가들은 자신을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돈이 목적인 상담자에 비해 상담의 기본을 실행하는 대가인 것이 명확하다고 하겠습니다. 한편 논문에서 자기공개 과정을 보면 집단구성원에게‘먼저 하고 싶은 분 있으십니까?’라는 리더의 질문에 모두 피하기 급급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리더와 눈을 마주치지 않아 리더가 한 사람을 대상으로 지목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나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현실과 다름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만약 지금 내가 이런 경우에 처했다면 내가 먼저 저요! 하겠습니다. 나도 젊은 시절엔 먼저 나서는 걸 망설이곤 했는데, 나잇살이나 먹고 보니 망설이는 행동은 덜해지는 것 같습니다. 뭐, 봉사정신, 희생정신이라고 할까? 이건 에릭슨의 심리 사회적 발달이론의 8단계인 인생을 성공적으로 이끈 통합감의 결과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성공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나만의 만족감이라 할까요?
그러나 솔직하게 자기 공개한 것을 후회한다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자발적인 공개가 아닌 리더에게 지목된 사람은 자신이 억지로 끌려 들어가 자기공개를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자기공개가 공개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으로서 오히려 억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자기기만 공개를 할 수도 있을 것으로 판단 됩니다.
집단상담에서 중요하다고 하는 자기공개가 상담 리더의 압력으로 진행된다면 그러한 상담은 시작부터 실패를 예견할 수 있습니다, 상담이라는 것은 서로 대화하면서 내담자의 마음을 이해해나가는 과정인데 어느 한쪽의 일방에 의한 상담은 있을 수 없을 것이며, 오히려 리더는 자기공개를 하지 않으면서 집단원에게‘당신은 방어가 심하다’,‘저항하지 마라’라는 등의 지적을 하고 화를 낸다거나 리더의 감정조절이 미숙해 우는 상황도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내가 볼때는 이러한 경우는 참 황당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담은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기본적인 대화 과정인데 우리나라 상담 현실이 암울하고 걱정스럽다 하겠습니다.
논문은 ‘수평적 자기공개’ 즉 ‘지금-여기’에 관한 언급을 보면 리더는 집단작업에 참여할 때는 개개인 모두 적절한 어휘선택을 하는 것의 중요함을 강조하면서 어휘 선택에 신경을 쓰는 것을 기본적 예의라고 하였습니다. 나의 예를 들어보면 상담사례 수업 중 토론시간에 어느 학생이 “교수님은 상담자로서의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었다고 보는데, 그것은 내담자의 질문에 대한 진지하고 친절한 감성적인 목소리로 인해 내담자는 구체적으로 설명을 다 듣지 않아도 이미 기분 좋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였을 것으로 생각합니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누구나 그렇게 상담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쉽다고 생각하는 것이 제일 어렵다는 것을 확실히 증명하는 수업 상황이었습니다. 논문에서 리더인 둥지는 입으로는 ‘지금-여기’를 강조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런 삶을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담자는 상담학계를 떠날것을 교수님은 엄중히 지적합니다. 나 또한 상담을 배우는 학생으로서 기본기에 충실한 자세를 견지할 것을 다짐 합니다. 한편, 집단상담의 역효과에 대해 집단에서 배운 대로 자기공개를 하면 친밀감이 형성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논문은 우리나라 집단상담 대가들에게 집단상담은 거의 신앙인 듯 하다며, 리더에게 맹종하는 실태에 대해 “의존성 성격장애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집단상담의 리더가 모두 문제가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라고 하면서 집단상담이 돈이 된다는 걸 알고 이 사업에 뛰어든 사람도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논문 <사례 5> 를 보면 "돈이 중요한 이유일 거야. 집단상담이 돈이 더 되지. 확실히 돈이 더 돼." 라는 말로 예를 들고있습니다.
이들의 영리추구는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문제는 없다고 하겠으나 다만 엉터리 상담으로 돈에만 정신이 빠진 리더라면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소설 속 집단상담의 참여자는 대부분 상담심리를 전공하는 사람들로서 집단원들은 앞으로 상담을 직업으로 삼으려는 사람들로서 자격증을 따거나 성공한 집단상담 리더의 영업 비밀을 배우기 위해 온 것이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현실이 이러니 내담자 위주의 상담은 부차적이고 오직 공급자(리더)가 중심이고 고객이 봉이 되는 안타까운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인간 중심 상담이론의 대가인 칼 로저스가 우리의 현실을 보았다면 엉엉 울고 갔을 것만 같습니다.
또한 논문은 집단상담의 중독 위험성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데, “더 심각한 문제는 마지못해 비밀을 털어놓은 정상적인 학생은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며, 부적응이 심한 외톨이 중 몇 명은 선생님의 칭찬과 격려 속에 서서히 집단상담에 중독되어 갈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이는 집단상담을 진행하는 상담 리더가 오히려 악을 조장하는 것으로서 이러한 상담자는 퇴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어서 집단상담에서 아주 중요한 비밀보장에 대해 기록했는데, “상담 중에 나온 얘기를 밖에 누설하지 않겠다는 비밀보장의 약속은, 리더가 아무리 비밀보장을 강조해도 모두가 약속을 지킬 거라고 믿는 것이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이렇게 자기공개행위를 부정적으로 보면서 “별별 얘기를 솔직하게 다 털어놓는 사람은 판단력이 떨어지는 현실 부적응자일 가능 성이 높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내용을 적당히 가공하고 깊이도 조절할 것이다.” 라고 하면서 상담학계의 비밀보장 현실에 대해 낱낱이 비판하였습니다. 그러나 논문은 .”논문의 대상은 소설이며, 소설은 허구이므로 허구를 대상으로 논문을 작성했다.” 라고 하면서 “조경란 작가의 이 소설도 허구이기를 바란다.” 라고 하였습니다. “ 만약 사실이라면 상담으로 밥 벌어 먹는 사람 중 하나인 나 까지 참담해지기 때문이다.” 라고 하면서도 논문의 대상이 된 소설이 현실에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하여 완전히 배격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자신의 밥벌이 대상이 위험을 안고 있음을 솔직하게 틀어 놓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집단 상담에서는 자기공개는 꼭 필요하며, 상담자가 자기공개를 하지 않으면 내담자에게 신뢰받을 수 없어 상담 효과가 떨어져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상담가들은 기초 공부의 부실로 인해 내담자 자신의 모든 비밀을 남에게 털어놓는 것은 불가능하고 비밀 약속을 지킨다는 것 또한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러한 불신은 정부의 상담자격증 남발로 인한 결과도 있겠지만 역시 대부분의 상담가들은 상담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논문은 상담자의 기본책무에 대해 ”Piaget의 발생론적 인식론을 공부하지 않고 아동을 상담하거나 Marcia의 정체성 지위을 모르면서 청소년을 상담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라는 말로 상담학계의 부실한 상담 현실에 대해 일침을 가하고 있습니다. 한편 소설의 작가는 약속을 어기고 글을 쓰기 위한 수단(돈벌이)으로 집단상담에 참여한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고 만약 그렇다면 이는 상담윤리를 위배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어서 교수님은 “불신보다 더 위험한 것이 눈먼 믿음이다”라고 상담현실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하셨습니다. 이 지적은 상담을 배우는 저에게는 영원히 기억해야할 고언이라고 생각합니다.
논문에서 알 수 있듯이 흔히 상담가들은 비밀보장에 대한 원칙만을 강조할 뿐 비밀누설에 대한 책임은 한계를 보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상담이론을 무시하고 체험만을 강조하는 상담 현실은 확실히 개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숭고한 상담 윤리의식’에 대한 교수님의 충고는 영원히 기억하고 성찰하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상담자를 위한 집단상담 이라는 생각에 동감합니다. 저도 과거에 집단상담에 참여하면서 어떤 간절함이 있어야 일반인이 자신의 돈과 시간을 들여 여기에 참여 할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더불어 저 또한 돈을 보고 가르치기 위한 집단상담의 리더가 되기 위해 배우는 것은 아닐까? 라는 질문을 하며 저의 상담과 윤리적인 목적을 되돌아보았습니다. 분명 배우기 위한 목적의 자기개방과 치료되기 위한 자기개방의 정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소설의 주인공은 일반인으로서 집단상담에서의 자신의 경험에서 오는 생각과 느낌을 소설로 옮길 목적이므로 상담의 참여자 보다는 관찰자로서 자기개방을 할 이유가 더더욱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 됩니다. 그렇다면 리더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이러한 관점을 지적하신 교수님의 논문은 차마 누구에게도 물어 볼 수 없었던 저의 궁금증을 시원하게 긁어 주신 듯합니다. 예전 집단 속에서 비현실적이고 작위적인 게임과 뻔한 이야기를 나누며 옳다고 생각한 제 모습이 부끄러워 졌습니다.
집단상담 리더가 뭘 반드시 해야 하는지, 뭘 하지 말아야 하는지 더 혼란스러워지고 조심스러워 졌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돈이 안 된다는 것을 이미 알면서도 이 어려운 상담을 멈추지 않고 있는 저는 뭘 원하는 것인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기왕에 상담을 멈추지 못하고 계속 해야 한다면 교수님의 단호한 생각처럼 제대로 배워야겠습니다. 교과서에서 도저히 배울 수 없는 진정한 집단의 리더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실물을 보고 제대로 배우고 싶습니다. 누군가 상담을 어느 교수님께 배웠냐고 물어보면 김원중 교수님께 배웠다고 할 것입니다. 때문에 제가 교수님께 잘 배워야 교수님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을 것 이라고 봅니다. 이 논문을 읽고 집단상담은 교수님께만 배울 수 있는 것이라 느꼈습니다. 교수님의 위대한 노하우를 전수 받는 것이 저의 버켓리스트입니다. 올바른 집단상담 한번 부탁드립니다. 저는 김원중학파가 될 것입니다.^^
무엇을 공개 해야 하는지 공개하지 말아야 하는지 처음 배운듯 합니다. 김원중교수님의 생각하시는 잘된 집단상담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집단상담사례 축어록이라도 볼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어디서도 배울 수 없는 시실을 알게 되는 깨달음과 더 잘 배워야 된다는 책임감을 느끼게 되는 논문이었습니다.
교수님의 논문을 읽은 후에 내 감정은 매우 깊었습니다. 그 논문은 단지 학술논문이 아니라 소설적인 배경을 가진 흥미로운 이야기 같아서 마치 소설책을 읽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이 논문을 다 읽게 되었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처럼 집단 상담에 참여한 상황이라면, 나는 소설 속 '바다'처럼 큰 압박을 느낄 것 같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공개했지만, 그들은 자기 공개를 위해서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자기 공개로 부터 공감을 얻지 못했고, 그런 상황에서 내가 어떤 내용을 적절히 자기 공개해야 할지 모르게 되었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상황에 진정으로 공감하고, 그들과 더 나아가 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친밀감 형성을 위해 적절한 자기 공개의 중요성과 집단 상담 과정에서 좋은 리더의 중요성을 더욱 깨달았습니다.그리고 좋은 상담사가 되기 위해서는 풍부한 이론적 지식뿐만 아니라 판단력을 향상시키고 비판적인 사고를 갖추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러우후이둥 드림
21세기는 심리학의 세기이며 심리학에 대한 높은 평가는 정신과 사회학을 포괄하며 이학과 문학을 깊이 통합합니다.교수님의 논문을 보고 개인적인 경험을 종합하면, 한중 모두 심리상담을 돈 버는 도구로 여긴다는 공통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전문적인 지식 배경이 없는 문외한인 상담사는 너무 많습니다. 아무나 온라인 강의에 등록하여 간단한 교육을 거치고 심지어 책을 사서 독학하여 시험에 합격하여 최저 자격증을 따면 취업하는 것입니다. 강호랑중처럼 질의응답 과정에서도 그럴듯합니다.본인은 한때 불안과 우울으로 심리상담사에게 연락한 적이 있는데 상담 과정에서 상담사가 할 말이 별로 없어서 계속 제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다.처음에는 이 상담사가 좋은 소양을 가지고 환자의 하소연을 잘 들어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뒤에 저는 거의 모든 과정이 제가 경술뿐만 아니라 심지어 어떻게 자기 계도할 것인지 말하는 것, 해석은 모두 저 나름대로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상담사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을 책임졌다.중국의 대략적인 컨설팅 산업 상황을 이해ㅑ한 후, 저는 이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중에 불안하거나 우울 증상이 나타날 때 전문 서적을 읽거나 흐지부지되는 것
을 선택했습니다.저는 이런 상담사를 다시 만날까 봐 두렵습니다.
교수님의 논문을 보고 저는 다음과 같은 인식을 얻었습니다:자신의 자기개방에 열심인 것은 사실 표현욕이 강했다고 생각합니다.한때의 트라우마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성격적인 원인으로 인해 훔쳐보고 싶은 욕구가 강했습니다.특히 주변생활이 좋은 사람을 상대로,나는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왜 그렇게도 제가 불쌍하고,다른 사람이 그렇게도 행복할 수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비록 저는 상대방의 동정을 얻고 싶지 않았지만,그 과정에서 저는 그에게 과도한 심리적 부담을 주었을 수도 있습니다.모든 사람이 타인의 사생활에 관심을 갖는 것은 아닙니다.장기적으로 너무 자기 개방하는 건 솔직히 저에게 제가 원하는 우정을 주지는 않았습니다.오히려 너무 자기 개방적이어서 남들이 제 비밀을 이용해 시비가 붙을 때 남들이 저를 공격하는 칼이 되는 거죠. 예전에는 가족, 애인은 남김없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니 사실 정신 미숙의 표현인 것 같습니다, 이 비밀이 이 관계에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사실 충분히 합리적으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자신의 표현욕구 또는 공유욕구를 적절히 억제하면 사람의 정신적 성숙을 촉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진중해질 뿐만 아니라 자신을 더 잘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상담자'라는 이름을 함부로 붙여 쓰지 않아야 한다는 반성적 관념이 떠오릅니다. 지난 3년간 교수님께 배운 상담관련 수업을 통해 타인의 마음을 함부로 들여다 보아서는 안되며 심리, 상담, 마음, 치유, 치료라는 단어를 너무나 쉽게 감각적으로 이용하는 시대물에 혼입되어서는 안된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상담을 계속 공부하는 이유는 이런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고 지식에서 벗어나 지혜로 이르는 사색을 평생 지속해야 할 이유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집단상담 또는 그 형식을 빌어 운영되는 자리에서 늘 개운치 못하고 비어낸 자리에 의문, 부끄러움, 후회 등 부정적 감정이 따로 자리잡는 경험을 했었습니다. 자료를 보니 리더의 자기연민, 도구화, 화려한 이론을 앞세운 미숙한 진행 등이 그러한 영향을 끼쳤었을 수도 있구나 싶고, 당시 리더의 모습에서 자만에 찬 미성숙한 인간이 보이기도 했었던 경험이 떠오릅니다. 어느 새 주도권이 바뀐 리더와 상담자들의 모습을 보며 뭔가 잘못되었구나 싶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마음이 충분히 치유되지 못한 상담사를 만날까 두려운 생각도 들고 저 또한 ~와 관련한 상담이랍시고 거들먹거리지 않아야 될 것 같습니다.
저희 아이가 학교에서 집단따돌림을 당하고 학우들이 가하는 폭력의 피해자가 되어 큰 트라우마를 갖게 되어 상담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아이는 학교폭력의 후유증으로 큰 트라우마을 가지고 있었고 학업진행 뿐 아니라 대인관계에 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치료와 동시에 상담을 받기로 하고 상담절차를 진행했는데 상담 초반에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것에 대해 무척이나 힘들어했습니다. 가족의 입장에서 가족의 일원이 아이의 문제에 동참하고 함께 해결해가기 위해 가족상담도 참여했으며 이를 통해 아이가 겪은 일, 그리고 아이의 마음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상담이 8~9회로 넘어서면서 아이는 상담초반보다 더 힘들어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모두 깨알 같이 다 아는 상담사와 마주하는 것이 마치 벌거벗겨진 채로 누군가 앞에 서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해는 되었습니다. 하지만 상담이 병행되지 않고서는 치유가 불가능한 상황이어서 상담을 계속 진행하기를 바랬지만 아이는 끝내 거부했습니다.
아이는 상담을 통해 자기공개에 대한 또한 트라우마로 남게 된 것입니다. 물론 이 사건은 내가 상담이라는 것을 배우기 이전의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학기동안 교수님 수업을 들으면서 자기공개의 중요성, 특히 수평적 자기공개가 내담자로부터 얼마나 공감을 얻게 하고 상담을 통해 관계를 해치지 않고 성공적인 상담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라는 것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내담자가 상담자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 정도의 신뢰와 대화를 이끌어내는 자기개방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요. 또한 자기개방과 솔직성의 정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상담자가 너무 개방적이거나 너무 솔직하게 말하면, 그들은 부담을 느낄 수 있고, 상담에 참여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상담자와 상담자의 문제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상담자의 편안함과 안정감을 유지하는 것이 요구되어집니다.
집단 상담으로 자신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집단상담의 경험에 대해 불쾌감을 토로하기도 하였다는 말은 집단 상담에 참여했던 구성원들이 무리한 자기공개로 인한 불쾌감인 것인데 지난 수업 교수님께서 수업중 지적하신 말은 해도 되는 말도 있지만 무덤까지 들고 가야할 말도 있다는 말이 있다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상담자가 내담자를 향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성을 담아서 소통하는 것은 내담자로 하여금 스스로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으나 무리한 대화의 진행은 내담자로 하여금 불쾌감을 넘어 대화에 대한 트라우마까지 형성할수 있다는 말에 한번 더 상담가 역할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합니다.
교수님의 논문을 읽으면서 상담에 대한 저의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저도 이 소설의 이야기처럼 상담에 대한 충격이 있었습니다. 과제를 해결해야 하듯, 면접을 당하는 듯한 불쾌함과 나의 속을 뒤집어 보여줘야만 하는 의무감 같은 것들로 집단상담을 이어가기 힘들어 뛰쳐나왔던 경험이 있습니다. 상담자의 불쾌한, 명령조같은 지시에도 내담자들은 흔쾌히 따르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에 저는 거짓말로 제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 상담자는 그 거짓 이야기에 전문가 같은(점쟁이 같은) 답을 제시했습니다. 저의 이런 경험은 상담에 대한 불신과 상담자의 자질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수평적자기공개가 자칫 타인을 평가하는 과정이 되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도 함께 해 보았습니다.
아직 집단상담을 경험해 보지 않았지만, 이 글을 읽고 집단상담에서 자기개방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집단상담은 집단 안에서 진솔하게 자기를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집단 안에서 필요한 정보를 서로 교환하고 공통 관심사나 어려움을 해결해 가는 과정이며, 타인을 보다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되며 상호작용을 통해서 새로운 만남과 적응의 과정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이야기 하는 내용을 다른 집단원 들로부터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고, 자신이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글을 읽고 나서는 집단상담에서 자기공개는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며, 집단상담은 비밀보장이 어렵기 때문에 평소 알고 있는 사람이 집단원이 된다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며 나는 공개하고 싶지 않지만 집단압력으로 원치 않는 자기공개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집단상담의 경험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집단압력을 통해 타인에게 원치않는 자기공개를 강요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소설 속에 나오는 햇살을 보면서 학부생 때 수업으로 참여했었던 집단상담이 생각났습니다. 이후로 저는 수업이외에는 집단상담을 찾아서 참여를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아마 그 이유는 학부생 때 참여한 집단상담의 기억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당시 수업 중에 두세 명의 학생들이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사적인 이야기를 했었고 그때 저는 불편한 감정을 많이 느꼈습니다. 개인적이고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 말들을 제가 들었으니 책임을 져야 한다는 괜한 걱정이 생겼습니다.이후 집단상담을 참여할 기회가 생겨도 제가 또 다른 사람의 알고 싶지 않은 비밀에 한발 다가서게 될까 봐 부담스러운 감정이 먼저 들었고 또 논문에도 한국 집단상담의 특징 부분으로 설명되어 있듯이 많은 집단원들이 상담 쪽으로 일하고 공부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제가 어떠한 말을 했을 때 그 사람들이 나의 반응과 말들을 분석할 것 같은 느낌도 들고 그저 그 분위기와 기법을 배우러 가는 집단상담이 과연 내가 원하는 방향일까 하는 의문이 들어 참여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상담 일을 하면서 집단상담을 한 번도 제대로 참여해 본 적이 없는 것이 일을 하는 데 있어 부족한 부분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논문을 읽으면서 제가 느꼈던 불편한 감정이, 집단 상담을 참여하지 않았던 일들이 잘못된 게 아니라는 것을 느껴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기도 했습니다.앞으로 해 나갈 상담들이 많은데 어떻게 더 배우고 경험해야 할지 걱정이 됩니다 우선은 상황과 맥락에 따라 자기개방이든 공감이든 적절하게 사용하는법을 스스로 경험하고 검증하여 상담을 해야할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든 조롱당하지 않는 상담을 해 나가고 싶습니다
한학기동안 많은 배움을 얻고, 생각의 전환, 깊이있는 사고를 하게되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과제 역시 집단상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면서 제 경험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집단상담에서 자기공개라는 것이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다지만, 저는 역기능이 많은것같습니다. 저는 교사들만 다니는 대학원 석사과정에서 상담심리를 전공하면서 필수로 집단상담을 받았습니다. 자기공개는 필수였고, 리더역시 자신이 가진 약점을 공개하면서 내면에 쌓인 자신의 상처를 이야기하라고 했습니다.저는 지나치게 친절과 착함을 보이려는 제자신과 그로인한 상처를 이야기했고, 집단원들은 그런 저의 이야기를 듣고 저의 그런 모습을 칭찬하면서 나쁘게 생각 하는 사람이 이상하다며 위로를 해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약간 위로감을 느꼈지만, 그 뒤부터 집단원들의 상처는 충격적이었습니다.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한 상처, 일진있었던 형의 지속적인 괴롬힘, 열등감 등..저도 울고 또 울어 탈진이 되었습니다.다른 사람의 고백을 듣는다는것이 이렇게 힘들다는것을 느끼는 순간이었고 안스러운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하지만 그 집단상담 이후 같이 수업을 듣는 그 동기들의 개인사를 알다보니 약간의 불편함도 있었습니다.
또,집단상담 과정에 끝까지 자기공개를 하지않고 한없이 우시던 선생님이 있었는데 이 논문처럼 풀어야할 숙제처럼 해석하는 분위기였고, 상담이 끝난뒤 자기공개를 전혀하지않은 그분에대해 상당한 편견도 생겼었습니다.자기것을 드러내기 싫어하는구나, 뭔가 상처가 많은가보구나,우리랑 벽을 두는구나..등 이렇게 이유없는 편견을 갖게되는것 역시 참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집단상담에서 리더가 어떤 말에대한 자신의 내면, 그 원인을 스스로 찾아가라고 다그치는것도 압박으로 다가왔었습니다. 집단상담이 정말 유익한가하는 것은 저또한 의문으로 남아있습니다. 이 논문속에서는 대가들이 본인들의 고백이 집단원들의 자기공개를 끌어내고 효과가 크다는 생각을 하고있지만, 자기개방을 많이한다고 해서 그집단에 참여한 사람들의 만족도는 크지않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도 제가 말하고싶지않은 것을 계속 물었을때 오히려 수치심을 경험하기도 했기 때문에..저와 같은 공간에서 집단상담에 참여한 분들도 오랜 갈등이 해결되었다라고 느끼기보다 잊고지낸 일을 끄집어내고,남들에게 말하고,다른사람이 내 개인적 치부를 안다는것에 수치심을 느끼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지현 집단상담 대가 인터뷰 중에 집단상담에 참여하는 사람 대부분이 사실상 전공자, 관련자라는 글에 공감을 하며, 그렇기에 종교집단처럼 리더를 따르게 되기도할 것이고 이 계통의 일을 앞으로 해야하기에 필요한 기술, 경험을 얻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참여하게 되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생활과 상처를 공개하고 내가 알아차리지도 못했던 내면까지 끌어내야하는 경험,
수평적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위로하는 과정이 정말로 개개인에게 도움이되는 상담인지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제가 경험하면서 생겼던 의아함, 의문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어서 감사한 경험이었고, 집단상담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지 않을것 같다는 제 마음속 다짐이 부끄러운것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어 도움이 되었습니다.
진짜 비밀은 누구에게도 털어놓지말라던 교수님의 말씀에 공감하면서 다시금 제 자신의 마음도 정리하게 되었습니다.자신의 경험으로 부터 배워야한다는 말은 깊이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김원중 교수님의 논문(소설에 나타난 집단상담 분석)을 읽고 상담업계에 종사하는 일인으로서 민낯이 드러나 부끄럽기도하고 다소 혼란스럽기도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집단상담의 현장뿐만이 아니라 내가 걸어왔던 상담의 길을 돌아보면 너무도 당연히 아무 의심없이 상담은 이런거구나 수용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기공개는 언제 어디서나 많이 할수록 좋다’고 알고 있었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나의 첫 집단상담 경험은 학부생때 대학 동기들과 공부겸 호기심으로 접하게 되었습니다. 적당히 인사만하고 지내는 정도지만 학교를 다니는 동안은 만날 수 있는 관계여서인지 다들 자기 개방을 적당히 했던 것 같습니다. 주로 힘든 마음을 공유하는 시간이었는데 나보다 더 힘든 학우들을 보면서 ‘나만 힘든게 아니구나’집단원들의 특별한 피드백이 없어도 위로를 받는 시간 집단상담의 긍정적 작용 일반화를 경험하는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상담 현장에 종사하면서 직장의 연수로 집단상담을 경험하게 되었는데, 직장 상사의 눈치를 봐야되니 온전한 자기개방을 할 수도 없는데 돌아가면서 자기 개방을 다 해야되니 부담스럽기만 했던 경험도 있었습니다.
처음 상담 공부를 시작할 때는 여유만된다면 모든 집단 상담을 다 참여하고 싶었던적이 있었습니다. 현재는 학회의 자격증을 따기위한 과정으로 제대로 공부를 하려면 돈이 많이 드는게 현실입니다.
현실은 어려워도 나의 바램은 정말로 부끄럽지 않는 상담가가 되고 싶다는 겁니다.
교수님의 말씀처럼 ‘진리를 구하려면 먼저 철저하게 의심해 보아야 한다’를 가슴깊이 품고 실천하는 인간적인 상담자 기초 공부가 부족하지 않는 전문가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 이 논문을 쓰는데는 두 가지 계기가 있다 '
포문을 여는 간결하면서도 궁금증을 유발하는 이단 한줄의 문장이 이 논문의 저자는
'경남대 김원중교수님'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동안 수업시간 중간중간에 말씀하신 집단상담의위험성을 오랜연구와 소설을 통한 예리한분석으로상담학도들에게 집약해서 안내해주는 길잡이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끝까지 읽어내려갔습니다
이 논문을 통하여 소설속의 바다(화자)는 집단상담에 참여한 느낌을 '비현실적이고 약간 희극적이며 미성숙한 사람들'처럼 보였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이처럼 집단상담에서 꼭 필요한 자기공개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으며, 대상이 중요하고, 은밀한 상담은 개인상담이 더 적합하며, 실생활에서의 자기공개는 집단상담에서의 자기공개와는 달라야함을
미리 안내해야하고, 어떤 유명한 상담자라도 상담자에 대한 무조건적 신뢰보다 비판적인 태도를 가지는 것이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나저나 교수님!
은퇴후 아무것도 안하시겠다고 하셨지만ᆢ
벌써부터 교수님의 명강의, 작성글, 어록(?)이
고픕니다~ㅠ
①집단상담에서 집단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단순히 모여있는 무리라는 사전적 의미와는 차이가 있다. Gladding(1996)에 의하면 집단상담에서 집단은 상호작용을 목적으로 모인 두 사람 이상의 모임이라고 하였다. 이형득 등(2007)은 집단상담은 비교적 적은 수의 정상인들이 전문가의 지도하에 상호관계성의 역동을 토대로 신뢰롭고 수용적인 분위기 속에서 개인의 태도와 행동변화 및 발달·성장을 촉진하는 역동적인 대인관계 과정이라고 하였다. 집단상담에 대한 선행연구를 살펴보면 결국 집단상담은 개인상담과는 다르게 집단내에서 대인관계 경험과 실험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에 대인관계의 역동성을 경험할 수 있다고 본다.
집단상담에 관해 배운 바에 의하면, 집단상담은 내용과 과정이라는 2가지 측면이 있다. 이 두가지만 놓고 봤을 때 집단상담은 어떤 프로그램으로 진행하느냐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누가 어떤 식으로 어떻게 표현하는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 과정의 측면이 집단상담의 역동성이라고 배웠다. 집단원과 리더사이에 발생하는 상호작용, 집단원끼리 발생하는 상호작용의 힘이 그 집단의 방향을 결정한다.
②결국 상호작용은 집단내에서 일어나는 정서적 반응, 친밀감 등이 있다고 한다면, 상호작용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자기공개’가 아닐까 생각된다.
본인 또한 집단상담의 구성원으로 참가할 때마다 들었던 생각은 ‘여기에서 나의 이야기를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였다. 아는 사람이 있으면 집단후에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가 걱정되었고, 모르는 사람이 있으면 ‘나에 대해 편견없이 이해할 수 있을까?’가 고민이었다. 이런 비슷한 걱정이 집단상담의 리더가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집단원이 갑자기 깊은 자기개방을 하면 나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그 순간 흐르는 정적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등의 고민이 저를 더 위축시켰던 기억이 난다. 무엇보다 교수님의 논문중 자기공개의 역기능에도 나타났지만, 상대가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았을 때 적절하게 피드백을 주지 못해 계속 자책했던 기억도 자꾸 떠오른다. 본인도 집단에서 나의 어려움을 털어 놓았는데 다른 구성원이 ‘다 비슷하게 산다.’, ‘이제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살아라.’라는 절대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들었었다.
③내가 어떤 노력으로 예전과 다른 나로 변화하기 위해 노력한 내가 잘못했다라고 하는 것 같아 서럽고 화가 나기까지 했다. 다행히도 그 집단이 끝난 후에 따로 개인상담을 하였고, 상담장면에서 집단상담에서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쏟아내고 나서야 죄책감과 분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때 경험에서 느꼈던 점은 자기공개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들일 자신이 없으면 하지 않는게 차라리 나을뻔 했다는 것이다. 물론 자기개방에 대해 불쾌한 경험만 있지는 않았다. 교수님의 논문에도 나와있지만 리더가 집단원들 앞에서 시범을 보여야된다고 기술한 것처럼 내가 경험한 집단상담에서도 리더가 지나치지 않는 자기개방을 보여주어서 이 정도의 개방은 안전하구나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정성란 등(2015)은 집단상담에서 집단 역동에 미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집단리더’하고 하였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집단상담을 경험하지 못했던 사람이 다수일텐데 집단리더의 행동과 말에 많은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④교수님의 논문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부끄러움, 의아함, 억울함으로 페이지를 넘겼고,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 교수님께서 그동안 강조하셨던 게 ‘비판적 사고를 가져라, 맹신하지 마라.’라는 말씀이 되새겨졌다. 나는 얼마나 전문성을 갖추고 이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했고, 느슨해졌던 공부에 대한 동기가 새롭게 살아오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