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겨울이 되면 그리스도인들이 성탄절을 지키는 것처럼, 유대인들은 하누카(수전절)를 지킨다. 2010년 유대인의 하누카(수전절)는 12월 1일 수요일 밤부터 12월 9일 해질 때까지이다. 하누카(hK'nUx])는 (성전) 봉헌 또는 낙성식이란 뜻으로 구약 성경에 몇 번 사용된 예가 있다 (민 7:10, 11, 84, 88, 대하 7:9, 느 12:27, 스 6:16, 17, 단 3:2, 3). 하누카(수전절)는 유대 월력으로 아홉 번째 달인 키슬레브 (Kislev) 25일 부터 8일 동안 지킨다. 구약 시대에는 없었던 하누카(수전절) 명절은 주전 2세기에 시작되었다. 예수님은 하누카(수전절)를 맞아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하신 적이 있다: 예루살렘에 수전절(하누카)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다니시니 (요 10:22, 23).
성경에는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 또는 보수한 후에 성전을 봉헌(하누카)한 내용이 네 차례 나타난다. 솔로몬 성전 봉헌식 (왕상 8:2, 대하 5:3), 히스기야 왕이 성전을 청결케 한 사건, 요시야 왕이 성전을 청결케 한 사건, 마지막으로 스룹바벨 성전 봉헌에 관한 내용이 역대하 29장에 기록되었다. 그리고 헤롯이 성전을 건축한 후에 봉헌한 내용은 요세푸스의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하누카(수전절) 때에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하신 일을 두고, 학자들은 솔로몬 성전 또는 스룹바벨 성전 봉헌을 기억하셨기 때문이란 주장과 또는 유다 마카비가 주도한 성전을 청결케 한 사건을 기억하셨기 때문이란 주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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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누카(수전절)의 유래는 이렇다. 주전 168년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Antiochus Epiphanes IV)는 예루살렘 스룹바벨 성전에서 제우스(Zeus) 신에게 제사를 드렸다. 그리고 관리와 군사들을 유대 모든 마을로 파송하여 유대인들로 하여금 우상에게 절하고 돼지고기를 먹도록 강요하였다. 이 사건은 팔레스틴의 모든 유대인들을 크게 분노시켰다. 안티오쿠스가 파송한 한 관리는 예루살렘의 북서쪽 약 40Km 떨어진 모디인(Modiin)에도 이르렀다. 관리는 레위 지파 출신으로 제사장인 마타티아스(Mattathias)에게 이방 제사를 집례하도록 명령하였다. 그러나 마타티아스는 명령을 거부하고 관리를 살해하였다. 그리고 그는 유다 마카비를 포함한 다섯 아들과 마을 주민들을 연합하여 왕이 파송한 군대를 전멸시켰다. 모디인 인근 야산으로 피신한 유대 반란군은 마타티아스의 아들 유다 마카비가 통솔하였다. 마카비는 점차 세력을 얻어 주전 164년 예루살렘을 함락하였다.
당시 성전은 이미 이방 제사로 더럽혀졌고, 성전의 기명들은 분실되거나 크게 훼손되었다. 그래서 유다 마카비는 성전을 청결케 하고 촛대(Menorah)에 불을 밝히고자 했으나 성전에 사용할 정결한 감람유(Olive Oil)는 하루를 밝힐 양 밖에 없었다. 이 부분에서 탈무드의 기록에 따르면, 하루치 감람유는 놀랍게도 팔일 동안 꺼지지 않았고, 정결한 감람유를 준비할 수 있도록 팔일 동안 켜져 있었다는 것이다. 요세푸스는 하누카(수전절)를 빛의 절기(Feast of Lamps)로 묘사하였다. (앞의 사진은 백악관 뜰에 설치된 하누키아)
마카비서에 기록된 하누카에 대한 내용이다: 유대인들은 팔일 동안 성전 봉헌(하누카)을 기뻐하였다. 유다와 그의 형제들 그리고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을 다시 봉헌한 날을 . . . 해마다 . . . 팔일 동안 . . . 지킬 것을 공포하였다 (마카비상 4:5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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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은 하누카(수전절)를 초막절과 같이 매우 즐거운 명절로 지킨다. 절기 중에 노동은 할 수 있지만, 금식이나 통곡하는 일은 금지되었다. 하누카 때에 유대인 모든 가정은 여덟 개의 촛대가 있는 하누키아(Hanukiah)를 준비한다. 가정의 남자들은 모두 개인의 하누키아를 준비하고 각자 불을 밝히지만, 아내 또는 결혼하지 않은 딸이 있는 가정에서는 남편 또는 집의 가장이 여자들을 대신하여 하누키아에 불을 밝힌다. 하누키아는 집의 중앙 또는 창문 턱에 두며 때로는 낮은 의자 위에 올려두기도 한다. 이 경우는 메주자의 맞은 편에 둔다. 그리고 창문 바깥에서도 잘 볼 수 있는 곳에 하누키아를 둔다. 하누카의 첫날 해가 진 직후, 하누키아의 보조 촛대(Shamash)에 불을 밝힌다. 그리고 보조 촛대의 불로 첫 번째 촛대에 불을 밝힌다. 두 번째 날에는 보조 촛대의 불로 두 번째 촛대에, 이렇게 팔일 동안 모두 여덟 개의 촛대에 불을 켜 팔일 동안 불을 밝힌다. 유대인들이 하누키아에 불을 붙이면서 낭독하는 기도문이 있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만왕의 왕이신 우리의 하나님을 송축하나이다. 주께서는 주의 계명으로 우리를 성결케 하셨으며 수전절의 빛을 밝혀 우리를 즐겁게 하시나이다.
만왕의 왕이신 우리의 하나님을 송축하나이다. 주께서는 우리의 선조들을 위하여 그 때에 이 일과 관련된 위대한 일을 행하셨나이다.
만왕의 왕이신 우리의 하나님을 송축하나이다. 주께서는 우리의 생명과 수한을 보존하시사 우리의 눈으로 이 날을 보게 하셨나이다.
하누카의 팔일 동안, 유대인들은 아침에 회당에 모여 민수기 7장을 부분적으로 읽는다. 첫 날은 민수기 7:1-17, 두 번째 날은 민수기 7:18-23, 세 번째 날에는 민수기 7:24-29을 낭독한다. 성전이 있었을 때는 예루살렘에서 할렐루야를 노래하였다.
하누카 팔일 동안, 마치 우리가 명절 때에 윷 놀이를 하듯 유대인들은 저녁마다 가족끼리 팽이 게임을 한다. 특히 마지막 날에는 친구와 이웃을 초대하여 함께 즐거운 시간을 나눈다. 하누카(수전절) 때에 유대인들이 팽이 놀이를 하는 이유가 있다. 하누카 팽이에는 히브리어로 눈(Nun/n), 김멜(Gimel/g), 헤(He/h), 쉰(Shin/v) 글자가 써 있다. Nun은 히브리어로 ‘기적’을 뜻하는 Nes(snE)의 첫 글자이며, Gimel은 ‘위대한 또는 크다’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Gadol(lAdG")의 첫 글자이며, He는 영어의 be 동사에 해당하는 과거 Haiya(hY"h;)의 첫 자이고, Shin(v)은 ‘거기’를 가리키는 Sham(~v'o)의 첫 글자를 쓴 것이다. 그래서 이 모두를 해석하면 ‘놀라운 일이 거기에서 일어났었다’는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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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은 하누카(수전절) 때에 빨간 딸기 잼을 넣어 기름에 튀긴 수프가니야(Supganiya)라는 도넛을 먹는다. 그 이유는 성전을 청결케 하고 불을 밝힐 하루 분량의 기름으로 팔 일을 밝혔다는 기적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또한 치즈로 만든 지짐도 먹는데 이는 하누카 때에 일어난 기적이 치즈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치즈와 관련된 내용은 이렇다.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4세가 유대인들을 통치하던 때에 유대인들은 종교적으로 자유를 박탈당하고 정치적으로 억압을 당했다. 그런 중에 유대인의 한 어여쁜 아가씨가 시리아 장군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어느날 밤 그녀는 소금기 많은 맛난 치즈를 준비하여 장군에게 다가갔다. 소금기 많은 치즈를 먹음으로 장군은 심한 갈증을 느꼈고, 그녀는 포도주를 장군에게 많이 권하여 만취하게 만들었다. 이성을 잃고 깊은 잠에 빠진 장군의 머리를 벤 그녀는 이 사실을 다른 유대인들에게 알렸고 곧 공격에 나선 유대인들이 큰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 사건은 치즈와 관련이 있어 지금도 유대인들은 하누카가 되면 레비바(Leviva)라는 치즈를 넣어 만든 지짐 전을 먹는다.
2010년 12월 1일, 하누카가 시작되는 날, 이스라엘 거의 대부분은 4:44분 경에 해가 질 것이다. 해가 지면 곧 유대인 모든 가정은 하누키아에 불을 붙일 것이다. 하누카 기간의 안식일에는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에 불을 밝히고, 안식일이 끝나는 토요일 저녁에는 안식일 후에 불을 밝히기 때문에 예루살렘에서는 토요일 오후 5:24분 경에 불을 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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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대인의 문화와 그들의 역사를 통하여 성경을 해석하면서 자주 바울의 동족 구원에 관한 말씀이 생각이 난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롬 11:11-14).
요즘 이런 생각도 해 본다. 전통에 매인 유대 종교인들은 복음을 받아들인 현대 그리스도인들을 시기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우리가 더 잘 알 것이다.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시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들을 부러워하는 말을 듣곤 하는데, 이것이 정말 기우(杞憂)였으면 좋겠다.
이주섭 목사(멤피스장로교회)/http://kr.christianitydaily.com/articles/452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