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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해방2
信天함석헌
이 역사의 다음 역은 자살역인가
마지막에는 역사입니다. 참 나 속에 있는 정신적인 나를 찾아서 차차 눈뜨려는 사람일수록 미래, 지금 사는 것도 문제지만 미래가 문제예요. 뭐 내가 말하지 않아도 젊은이들이 잘할 줄 압니다만, 이젠 굉장히 달라지려고 하는 시대입니다.
그 달라지는 것이 뭐냐? 술어를 만들어서 말하면 세속주의 문명이에요. 문명이 문제예요. 사람이 같이 살아가노라면 무슨 동양 문명, 서양 문명, 역사상에서 있다가 없어져. 그건 토인비가 많이 연구하지 않았어요? 토인비의 이름 안 지는 오래됐지만, 본다 본다 그러고 못 봤더랬는데 이제라도 봐야겠다고 요새 책 사다 놓았어요. 아마 보지도 못하고 죽을는지 몰라도. 그 사람은 문명 비평을 연구했지요. 나도 젊었을 때 문명 비평에 흥미가 있었는데 못하고 말았으니까 아쉬운 생각대로 있습니다만, 그 사람도 결론적으로 종교 얘기를 한 건 당연한 일이오. 그럴 수밖에 없소. 공정하게 인간을 반성하고 다른 사람의 일을 분명하게 들어서 결론을 내린다면, “사람이란 본래부터 알 수가 없다, 어떻게 왔는지.” 이건 불가지론(不可知論)이지. 알 수가 없는 거요. 다 그 끄트머리에 내려오던 걸 가지고 그랬겠는데, 식물에서도 보면 씨가 있으니까 되어 나오지요. 식물이 씨앗을 가지게 될 때 얼마나 품이 들었는지 아세요?
처음에는 한 나무에 자웅이 함께 있어서 암술 수술 하던 것이 그 다음에는 아예 갈라져서 암나무 따로 있고 수나무 따로 있게 됐지. 허구한 세월을 그렇게 진화해 가지고 뭘 하려고 그랬어요? 생각해 보세요. 과학을 연구하면 그건 마지막에 사람이, 남자와 여자가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한 준비로 그런 거다, 그렇게 설명 안하고는 될 길이 없을 거요.
진화론을 보면 볼수록 자꾸 호기심도 가고 의문이 나요. 그러니까 그 의미가 뭐냐? 오늘날 우리가 이 해방을 당하고 이 고생을 한다면 그 의미가 어디 있냐? 과학은 의미는 말 못해요. 물질 세계의 관계를 얘기하는 거니까 원인 결과를 얘기할 수는 있겠지만, 왜 그렇게 됐냐, 그게 뭣 때문에 그랬냐, 목적이 뭐냐는 말을 못합니다. 목적 의식은 사람에게나 있지, 동물에 목적이 없잖아요.
그러니 그전에 올라온 긴 진화의 과정은 결국 이 두뇌를 가지고 생각을 하는 사람 하나를 내려고 그랬다 설명하는 것이 가장 온당할 터인데, 그럼 사람은 왜 두뇌를 가졌느냐? 요샛말로 설명을 한다면 이게 모두 컴퓨터에 지나지 않아. 머리를 모방해 가지고 컴퓨터 만들지 않았어요? 그러면 이 두뇌라는 건 왜 나왔나? 과학은 그 설명은 안해요. 그러니까 그건 딴 데서 알아보아야 합니다. 성경, 불경 같은 종교 경전, 철학이라는 건 그래서 나온 거예요. 그걸 두고 왜 이러지 왜 이러지 하면서 캐고 캐고 하는데, 안 캘래도 안 캘 수가 없어. 어떤 사람은 차라리 밥을 못 먹어도 그 생각을 안할 수가 없어. 그런 열심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금식도 하고 잠을 안 자기도 하고 참선도 하지 않아요?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부처님이나 서방 정토가 있다든지 과거에 무슨 세계가 있었고, 이걸 몇 차 세계라 한다든지 하는 겁니다. 기독교의 논리대로라면 하나님이 계시다 한다든지. 그 말들은 사람의 살림 속에 있는 말을 빌어 가지고, 하나의 심볼, 상징을 써 가지고 영의 세계를 말한 거야. 사실이 아니고. 하나님이 아버지라니까 “어머니는 누구야?”(웃음) 하는 건 어리석은 사람이야. 영의 세계와 물질의 세계가 무엇인지 모르는 거요. 사람의 마음속엔 생각만 하면 그걸 알 수 있는 가능성이 들어 있어요. 그러니까 어린애보고 “돌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고 해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다음에 벌써 제가 안단 말이야. 인간으로서의 의미가 담긴 말이야.
그러니까 사람의 존재는 철두철미 정신적인 존재예요. 물질론자는, 내가 살아 있는 한까지는 반대합니다. 나만 아니라 이 다음에도 어떻게든지 물질론이라는 그 사상을 배제해 버려. 이것이 사람을 못쓰게 만들었어. 물질 세계가 다가 아니야. 지금 여기가 다라니까, 다 데려다가 죽인단 말이야. 그 다음엔 강한 놈과 약한 놈 싸움이 나고, 죽기 전에 여기서 좀더 먹다 죽을래, 좀더 놀다 죽을래 해서 별별 일이 다 일어나지 않겠어요?
사람에겐 어딘지 모르게 자꾸 향상을 해서 올라가는 그 힘이 있는데, 자기가 올라가는 힘을 쓴다는 것보다 위에서부터 끌어요. 어린애를 보세요. 어린애가 나서 일 년만 되면 일어서려고 해. 일어서려다가는 넘어지고, 넘어지면 또 얼마나 아프겠어요? 우리가 물리학을 알아도 이걸 요렇게 세우면 불안정하잖아요. 어린애가 두 발로 일어나 서려니 그런 불안이 어디 있어요? 내 무게만 해도 지금 오십오 킬로는 되는데 오십오 킬로를 두 발에 올려 놓고 하루종일 섰으라니.(웃음) 그런데 왜 그렇게 서고 있지? 서야 사람이 돼요. 서야 손이 해방이 돼 자유로 일할 수가 있어. 그 손이 일을 해야 두뇌가 발달을 해요. 다 알지요. 생리학에서 배워서. 밀접한 관계가 있어. 그러게 수공(手工)을 가르치는 거요.
“생각은 해서 뭘 합니까?” 생각하는 것만이 다가 아니에요. 한 층 더 있어. 그걸 소위 영계(靈界)라고 그러는데, 철학적으로 말을 하면 직관이라는 거예요. 인투이션(intuition). “사람이 어디서 왔지? 왜 그걸 지금 생각하나? 에이 쓸데없는 일 그만두자” 하면서도 또 생각하고 또 해보고 그랬던 것이 저 옛날에 놀랍게 났던 소위 성인이라는 사람들입니다. 사람이 잘되는 것도 그것 때문에, 못 되는 것도 그것 때문인데, 그걸 무시한 것이 서양의 지금 문명이라 그 말이야.
처음엔 그렇지 않았는데 중가운데 오다가 과학의 발명 나오고 기계 만들어 물건 싸게 만들고, 이걸로 인해서 차차 생각이 달라져. 그후에 난 것이 사회 문제 아니오? 산업 혁명 되고 하면서 세상이 벌써 많이 못되게 틀어지기 시작한 거요. 우리는 모르고 있다가, 잠자고 있다가 이제 와서야 늦게 늦게 깼어요. 물질계를 맛봤는지라 요즘 목사조차도 그리 철저하게 신념의 세계를 들춰 내지를 못하고 있지요. 사람인지라 이건 땅에 있으니까 가깝고 그건 멀고 뵈지도 않으니까 등한시해. 교회라는 제도는 남아 있고 신자도 있지만, 이 현실 세계에 살 뿐이지 영계의 사람이 아닌데, 그러니까 속알맹이는 없는 사람인데 뭘 하겠어요?
교회가 그러면 안 돼. 불교도도 있지 기독교도 있지 이걸 다 하면 퍼센테이지가 얼만지 잘 모르겠소만, 대다수 문명한 나라에서는 기독교 믿는다는데 도대체 왜 전쟁을 못 막아 냈어? 하나님 믿는다고, 평화의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목사도 있고 장로도 있고 신부도 있고 다 있었는데 왜 2차 대전을 못 막아 냈어? 못 막아 낼 뿐만 아니라 전쟁하는 데 나가서 축복해 주고 “하나님, 이기게 해주십사!” 하지 않았어? 그건 뭘 하게? 그러면 정부에서 돈 생기잖아요.
그런 결과가 뭐냐 할 때 이 문명이라는 건 순전히 먹고 놀자야. 의미가 없어요. 먹고 입는 이 쾌락이라는 것, 죽기 전에 쾌락하자지 영원한 쾌락이 아니고, 될 수 있으면 남을 내 마음의 종으로 부리고 나는 턱 앉아서 놀아도 좋다는 거예요. 그러는 데서 노예 제도 아닌 노예, 옛날에 노예 제도 철폐했다고 그러지만, 사실상 공장에 있는 아가씨들은 노예지 뭐예요? 정당하게 주지도 않고, 한 백 원쯤 올려달라는데 그것도 안 올리고, 깡패 시켜서 때리고 똥까지 먹이고 그렇게 하는 이게 뭐예요?
정신이라는 건 아예 없는 사람들인데, 이 동양 사람이 그런다는 건 참 원통한 일이오. 동양은 옛날부터 정신, 주로 문명의 특색이 거기 있었는데. 세계가 이제 달라지니까 지금의 현상으로 봐서 이제 서양에서 무슨 큰 회개가 일어나겠는지 모르지만, 지금 이대로 간다면 그놈의 문명은 그대로 망하고 말 거요. 그 사람들 대부분이 망하고 말지도 몰라요.
이제라도 전쟁이 일어난다면 당장에 우리도 다 죽고 말 줄 알아. 다행히 후에 남는 것이 있다면 이제 다시 정신의 세계를 찾아가는 그 길밖엔 다른 길이 없을 거야. 물질에 취해서 맛있는 걸 먹고, 보기 좋은 걸 입고, 그걸로 만족을 하고 다른 목적이 없다면서 “정신, 그따위 것 몰라. 몰라도 좋아” “육신이 죽으면 다야”─그러게 이 영은 사인령(死人靈)이라 그래. 죽기로 결정한 영.
나 어디서 얘기하다가 “지금 역사가 진행이 돼 가는데 요다음 역이 뭣인지 아시오?” 그러니까 가만있어요. “요다음 역은 뭔고 하니 인류 자살역이오” 그랬어. 그래도 자살은 안하고 살렵니다 한다면 여기선 가망이 없어요. 비약을 해! 이걸 뛰어넘고 비약을 해서 정신계를 들어가요.
여기서 무슨 변화가 일어나는 일이 있어야 돼요. 한다면 육체를 발견하기 위해서도 몸을 내던지면서까지 한 사람이 있지 않았소? 능히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런 것이 사람이 사람으로서 귀한 점이란 말이야. 그걸 바로 쓰기 전엔 이 역사가 달리 가망이 없는 거야. 내 보기에는 그렇게 생각돼. 여기서 얘기하자고 해서 첫 마디에 허락했는데, 내가 아는 게 그런 거니까 이걸 알려 주고, 죽기 전에 내 말을 하고 죽어야 나도 내 의무를 다했다고 할 수 있지요. 하나님 앞에 가 설 때 “너 할말 하고 왔냐?” “예, 했습니다” 그러지. 그 말을 못하고 가만히 둬두면 나는 소용이 없잖아요.
우리 나라는 이제 통일도 있고 민주화도 있지만 그런 게 다 둘째 셋째 문제고, 첫째가 “잃어버린 이 에덴 동산을 찾아라” 하는 겁니다. 거기서는 하나님의 명을 그대로 통할 수가 있었어요. 어디 가 찾아도 소용없어요. 에덴이 여기에 있든지 저기에 있든지 그러겠어요? 거기 있으면 뭘 하겠어요? 그건 이제 말한 그 세계를 말해 주느라고 전해 오는 거지. 옛날 사람들의 지혜가 담긴 것이니까 그런 것을 잘 캐노라면 미래에 대한 무슨 비전이 보일 거야. 뭐 허깨비가 보인다는 말 아니라 뜻도 않았던 생각이 내게 올 거다, 그게 정말 중요한 생각이야. 내가 책을 보고 짜내고, 여기서 붙이고 저기서 붙이고 해서 내는 원고가 아니라, 뭔지 모르게 그야말로 인스피레이션(inspiration)이 와서 어디서 오는지 모르게 하고 싶은 말, 생각도 못했던 참 좋은 생각, 그런 것이 더러 오는 수가 있을 거예요.
조금 나가면 그런 경험을 해요. 그러면 옛날 성인이 했던 말 거짓말 아니야. 예수의 말이 참말이야. 석가의 말이 참말이야. 그러니까 마지막 결론하는 말이 그거예요. 눈앞에 비전이 보이게 돼야 돼. 뉴튼이라고 날 때부터 만유인력을 알아 가지고 났겠어요? 생각을 하노라니까 마침 사과가 떨어져서 그랬지. 대개 놀라운 발명이란 물질계에서도 그런데 하물며. 예수님도 사십 일 금식을 했다고 그래. 석가도 금식에 금식을 하고 유혹을 다 받고도 이겼다 하고. 그런 모든 얘기가 있는 걸 들으면 정신의 세계 개척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이에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넓은 데 갈 생각하지 마라.” 넓은 데가 뭐예요? 자동차 타고 비행기 타고 가는 데가 넓은 문이지. 요샌 비행기 타다가도 잘 죽더라.(폭소)
그건 앞으로는 지금 이것과 다른, 정신적인 차원이 훨씬 높은 그런 데가 있다는 걸 차차 알아차리라고 그러는 점도 있어요. 그래야 인류가 좋지, 여기서 이게 뭐예요?
요새 여성 잡지에서 글 자꾸 써 달라고 해서, 여성 잡지 꼴도 보기 싫은 걸 할 수 없이 써 주긴 써 줬어.(웃음) 도대체 그림 그게 뭐예요? 장사를 해먹겠으면 여자 그림 그렇게 내놔야 돼? 사람이 어쩌면 이렇게 됐소? 수백만 년 역사가 있는 게 가다오다 이렇게 원숭이 모양으로. 원숭이도 그러진 않는답니다. 사람이 이러지. 그러니 뭘 하겠어요. 참 답답한 일이오.
이것은 뭘 이렇게 굉장한 회전을 하려고, 대혁명이 일어나려고 그러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옛날에 벌써부터 그런 예언을 했거든요. 구약에 있는 「요엘서」가서 펼쳐 보시오. “말일에 가면 늙은이만 아니라 젊은이들도 다 예언을 하게 될 거다. 비전을 보게 될 거다. 그만 아니라 남종 여종 예언하게 될 것이다” 하는 얘기가 있어요. 그걸 베드로가 받아 가지고 「사도행전」 2장에서 일대 연설을 해. 그 다음에 바울이 또 로마로 다니며 얘기하고. 그런 점이 속에 살아나야만 한다는 겁니다. 지금 있는 것이 다 쓸데없다는 말 아니에요. 하지만 지금까지, 아직도 열리지 못한 데가 있어. 그러니까 될수록은 여기를 캐는 것이 먼저예요.
인류와 하나님을 위한 요가
거기서는 우리 생각 모양으로 하루를 스물 네 시간 안팎으로 하는 조그만 스케일 속에서 사는 게 아니지요. 이 우주의 굉장한, 막막하고 무한한 스케일을 가지고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서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말이 있어요. 거기에 사람의 생각을 적용해 “우리 나라 이 꼴인데 그런 생각 가지고 해방시키겠습니까?” 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단정한다면 아주 세상에 안 나온 게 좋은 일이지. 여기 와서는 그래도 기다릴 줄 알아야지요. 수천 년 혹은 수만 년 후에 가서라도 내 기도가 들어질 거다,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기도도 들어질 거다 하고.
마지막으로 얘기 하나 하고 그만둡시다. 인도에 도를 믿노라 하는 유명한 철학자가 있었는데, 이젠 세상 떠났어. 젊었을 때는 문학에 재주가 있어서 작품도 많이 발표하다가 생각이 달라져서 “이거 다 쓸데없다” 그러고 산 속으로 들어가 요가에만 전심해. “모처럼 두뇌 명석하고 재주 있고 참 좋은 글들 써 줄 줄 알았는데 이 사람도 옛날 사람모양 현실 도피했구나” 하고 모든 사람들이 다 섭섭하게 생각했다는 거야. 그런데 그이가 어떤 날 뭐라는고 하니 “나의 요가는 날 위해 하는 것이 아니고 인류를 위해 하는 요가다.” 그걸 보고 인도 사람들이 “아 그러면 그렇지. 그 큰 생각이 없어지지 않았구나” 그랬어.
여기 요가는 나도 아니고 내 껍데기를 위해서 하고 있어요. 내 속에 있는 양심을 위해 하는 요가 어디 있어요? 우리도 그래요. 주일날 교회 간다면 “난 내 영혼을 위해서 간다.” 참 답답해요. 옳긴 옳은 말인데 마음이 그렇게 좁아 가지고야 어떡하겠어요? “개인의 영혼 얻는 것이 문제지 성경에는 사회란 말 없습니다” 그러고. 몇 해 전 바로 이 자리에 도시 산업 선교를 위해서…… 이젠 뭐, 아주 시간 초과해 버렸어.(폭소) 오늘 저녁 가서 죽을는지 몰라.(폭소)
그러다가 그만 말하던 걸 잊어버렸소.(폭소)
이제 그 사람 말이 자기는 인류를 위해서 요가한다는 건데, 그런다고 또 시비가 돌아왔어. 그래서 다음 말은 뭔가 하면 내 하는 요가는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요가다, 영어로 하면 디바인 요가(divine Yoga), 요가는 요가인데 거의 신적인 요가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람의 목적이 어디 있나? 하나님까지 도달하자는 거예요. 본래 하나님과 하나인데 지금 여기 공부하러 내려온 겁니다. 제가 자식이 되려면 남의 집 밥을 먹어 본 다음에 자식이 된다고, 고생을 겪어야 아들 노릇 하지 않아요? 이 세상에 보내서 훈련시키느라고 온 거다, 그런 식으로 아시라는 말이오.
내 요가는 하나님의 의를 위해서 하는 요가다, 그 말 참 좋다고 그랬어요. 우리가 이 앞으로의 역사 찾는 것도 나 한 사람, 나도 겉 사람이 아니라 속 사람, 또 내 속 사람 그것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위해 하는 거예요. 이 앞의 세계는 나라가 또 있을 수 없어요. 될 수 있다면 세계가 하나인 그 자리에 가야 하겠는데, 내가 정치의 전문가가 아니라 모릅니다만, 지금까지 세계 문제가 국가 때문에 나타나는 것은 사실이오.
국가에서는 다른 나라를 깔보고 배척하고 욕심을 부리고 해야 애국심이 있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그 국가가 틀려먹은 거요. 옛날 국가가 날 때 그랬겠어요? 노자의 말이 옆에 있는 나라끼리 개 소리와 닭 소리가 서로 들릴 만큼 규모도 조그맣게 하고 서로 왔다갔다하면서 그렇게 사는 것이 사람의 살림이라고 했는데, 이건 너무도 사람답지 못한 사람이 됐어. 문명이 발달해서 돈만 내면, 기계만 누르면 안 나오는 것 없어. 한 가지만 못 나오고 다 나와. 영혼이라는 것만 못 나와요.
우리는 이때까지 남의 연회에 가서 밤새도록 구석에 앉아서 존재의 인정도 못 받는 처지였어요. 이제 와서야 차차 되는 것 아닌가? 어째서 지금 미국이 우리를 핵 기지로 만들고 미국 자본이나 우리 자본이 같은 데 어울려 있나? 그런 따위 세계적 대규모 기업이라는 것이 없어져야 하고, 이런 식의 국가라는 것도 없어져야 하잖아요. 이 고난을 받는 것이 우리가 이다음에 무슨 할 일이 있어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아요? 인생관도 그렇고 역사관도 그렇고 세계관도 그렇고, 한번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해보시라 그말입니다.
씨알의소리 1989년 8월호 104호
저작집30; 13- 183
전집20; 없음
1985년 8월 9일 CBS주최 해방40주년 기념 강연회 기독교회관에서 하신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