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워지는 날 / 정희연
밤 두 시, 너무 이른 시간이다. 눈이 떠지지 않기를 바랐는데 너무 충전이 빨리되어 야속하다. 1.5배속으로 경제 방송을 들은 다음 ‘일상의 글쓰기’ 영상을 보려고 책상 앞에 앉았다. 어제 저녁 일곱 시에 시작된 수업의 녹화본이다.
내 글이 첫 번째다. 교수님이 보인다. 국어 국문학과 교수였던 만큼 글에서는 아주 사소한 것까지 틀린 곳을 잡아낸다. 인정사정없다. 저번 주에도 수위 높은 충고를 했는데 이번에는 그보다 더하다. 더 이상의 높은 하늘은 없어 보인다. 중지 버튼을 누르고 호흡을 고른다. 큰일이다. 늘 강조했던 곳에서 또 실수가 나왔다. 아니다. 실수인지 실력인지 나도 모른다. 아무튼 ‘이다’의 활용, 띄어쓰기, 맞춤법, 하나의 문장을 완성시키는 일, 문장 부호의 용법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지만 글로 나올 때면 까마귀 고기를 먹었는지 엉망이다. 내가 너무 심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고비다. 술술 잘 풀리기를 바랐는데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내 기준으로 보는 오류를 또 범했다. 한 단계 더 높은 성장을 바라는데 또 아래에서 여전히 멈춰 있다.
어제 오후에 ‘고독’을 주제로 쓴 글의 교정지를 받았는데, 내 것만 붉은색으로 가득했다. 참혹한 결과다. 글씨가 누워있다는 것은 주제에서 벗어나 있거나 문맥이 맞지 않다는 이야기인데 절반이 누워 있다. 띄어쓰기와 맞춤법도 고쳐야 할 곳이 많다. 중간에 한 학기를 쉬어 이번이 4학기째다. 1~2학기라면 그렇다 하겠지만 이젠 더 이상 변명도 안 통한다. 어떻게 하지? 오늘도 죽었군! 일이 생기면 지금까지 정면으로 부딪쳐 왔는데, 이번 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명분이 없어서다. 결석을 알리는 문자를 남기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잠이 오지 않는다.
책과 거리를 멀리하다 어느 순간 가까이 하기 시작했다. 최근 몇 년 간은 소화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을 읽었다. 그리고 글도 쓴다. 누가 봐도 어설프기 짝이 없는데 그것을 계속하고 있다. 삶의 하반기를 모양새 있게 살고 싶은 것이 그 이유다. 작은 농장을 운영하면서 금융 부동산을 공부하고, 여행도 다니며 글을 쓰고 싶다. 앞으로 30년을 만들어갈 새로운 방향이다.
<쿵푸 팬더>를 본다. 다시 봐도 재밌다. 주인공 ‘포’는 어떻게 용의 전사가 되었을까? 포는 쿵후를 좋아할 뿐 잘하지 못한다. 훈련이 거듭될수록 실력이 늘기는커녕 자신의 무능함만 발견한다. 불처럼 활활 넘치던 의욕은 갈수록 열등감으로 변한다. 먹을 것 앞에서는 자신의 재능보다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것을 본 사부는 포에게 훈련을 잘 마치면 만두를 먹게 해주겠다고 약속한다. 드디어 만두가 나왔다. 포가 만두를 먹으려는 순간 사부의 방해가 시작된다. 사부를 이기지 못하면 만두를 먹을 수 없다. 포는 만두를 먹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대적에 몰입한다. 그러면서 여지껏 보지 못했던 힘과 기술이 나온다. 사부는 말한다 “네가 원한다고 해서 저절로 꽃을 피우거나 열매를 맺지는 않아, 때가 되기 전까지는. 세상에 우연은 없다네.”
포가 쿵후를 배우려는 것처럼 나도 글쓰기를 배운다. 하지만 실력이 늘지 않는다. 시간만 흐른다. 오늘은 내가 미워지는 날이다. 언젠가 때가 되면 자유롭게 글을 쓸 때가 올 것이다. 그 날을 위해 열심히 실력을 갈고 닦아야겠다.
첫댓글 정희연 선생님 파이팅!
제일 부지런한데 글이 안보여 서운했어요. 선생님 말처럼 열심히 노력하다보면 자유롭게 쓸 날이 올겁니다. 세상은 노력을 배신하지 않더라구요.
그냥 내 속도로 가고 있었는데, 맞는 말입니다. 여러 사람이 어울려 사는데 제 생각만 했습니다. 반성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다독하신다니 되게 부럽네요. 저도 이번주 '미움' 교정지 보고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어요. 왜 이렇게 매번 교수님이 지적해 준 부분이 안 고쳐질까요? 무튼 글 반갑습니다.
독서하는 습관을 가졌으면 좋겠다 싶어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아이고, 선생님!
희망적인 결말을 보니 안심이 됩니다.
혹여 안 하실까 봐 마음졸였습니다.
토닥토닥.
하하! 저도 너무 길었던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지나고 보니 글쓰기로 보내는 시간이 이렇게 많았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한 번 새롭게 시작해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 했지만, 저번 글에 선생님 글이 없어서 걱정했답니다. 교수님도 더 기운이 없어 보여서 이번주 수업내내 신경 쓰였는데... 이렇게 깔끔하고 완벽한 글을 쓰시느라 참석 못하신 거군요. 하하. 이 글 너무 좋아요.
저도 불편한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마음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저도 틀린 걸 계속 틀립니다. 바쁘게 글을 쓰고 다듬지 않은 까닭입니다. 교수님 애정어린 말씀은 하루 만족하고 곧 잊지요. 하지만 콩나물에 물이 스미듯 조금씩 나아지리라 믿는답니다. 힘내서 함께 하시게요. 정 선생님!
그래도 다행입니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부터 겨울로 접어드는데 차가운 겨울 바람 맞으며 정신 차려야 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글쓰기, 쓰고 또 써도 어렵더군요. 교수님의 지적은 사랑의 매입니다.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혹평을 받고도 컴퓨터 앞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우리 함께 열심히 해봅시다.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지 않습니까. 숨은 노력이 결과로 나타날 것입니다.
“눈물이 똑똑 떨어지는 혹평을 받고도 컴퓨터 앞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백 이십프로 공감합니다. 교수님의 충고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계기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선생님의 격려에 힘을 더 내봅니다. 고맙습니다.
하하! 역시나 일등인 선생님,
응원합니다.
쥐구멍 찾고 있어요. 부끄럽습니다.
교수님이 좀 너무하시긴 해요. 하하. 이번엔 칭찬 받으시겠어요. 이번 글 너무 좋네요. 잘 읽었습니다.
저라면 더 했을겁니다. 옳고 그름을 바르게 알려주셔서 더 없이 고마운 교수님입니다. 제가 먼저 벗어나는 일이 없어야 할텐데 잘 버텨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지난 시간에 안 오셔서 모두들 걱정 많이 했어요.
예, 봤습니다.
선생님의 글 반갑습니다. 저도 돌아서면 까먹어서 선생님 심정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우리 먼저 벗어나는 일 없기로 해요 선생님.하하
예, 고맙습니다.
아주 잘 쓰셨네요. 빠지지 않고 하는 것도 대단한 실력입니다.
마음이 무겁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정말 멋지세요.
힘내세요!
예, 고맙습니다. 더 힘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