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잡록-권홍
◈ 본관은 안동이며 호는 설헌이다.
고려 말기에 급제하여, 공양왕 원년에 간관이 되었다가, 정몽주의 당파라 하여 먼 곳으로 귀양보냈다.
일찍부터 문한으로 이름이 드러났으며, 전서와 예서에 더욱 공교하였다.
세종 때에 권홍이 기자사당[기자사]에 비석 세울 것을 청원하였는데, 말이 매우 체재에 맞았다.
벼슬은 1품에 이르렀고, 나이는 87이며, 《쌍당집》이 있고, 시호는 문순이다.
◈ 개국 초기에 문순공 권홍이 일찍이 남산 기슭에 집을 자리 잡고, 두 못을 파서 연을 심고, 폭건(은사들이 쓰는 비단으로 만든 두건)과 여장(명아주 지팡이)으로 소요하며 유유자적하니, 사람들이 백향산(백락천을 일컬음)에 비유했다. 《필원잡기》
◈ 정승 권홍이 지위가 극진하고 나이가 많아서, 산수에 마음을 붙이는 것으로 일삼았다.
어느 날 밤 꿈에 한 늙은이가 울면서 호소하기를,
“홍정승이 오늘 우리 족속을 죽이려 하니, 살려 주시기 바랍니다.”
하니, 권홍이,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느냐?”
물으니, 늙은이가 이르기를,
“상공께서 가시지 않으면 홍정승도 가지 않을 것입니다.”
하였다. 조금 뒤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있어서, 놀래 깨어나 물으니,
“홍 정승께서 오늘 살고치로 자라를 굽는답니다.”
하기에, 권홍이 꿈속의 늙은이가 바로 자라라고 생각하고서, 사양하고 가지 않았으므로 홍정승도 또한 그만두었다. 《청파극담》
<재편집: 오솔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