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 이틀째 들렸던 상주와 군위 지역은 개인적으로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고녕가야 태조왕릉과 왕비릉, 오봉산고분군, 함평 공갈못이 그랬으며, 인각사와 인근의 적벽[학소대鶴巢臺]도 그랬지만 이날 숙박지로 정한 창녕 우포늪에서의 밤마실은 또다른 백미였습니다. 분지의 물이 괴어 이룬 커다란 연못의 이름이 '공갈'이어서 더욱 다정하게(?) 느껴진 그곳, 콩 한되를 볶아 먹으면서 못의 둘레를 돌아도 콩이 모자랄 정도로 넓었다던 공갈못. 연꽃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광은 중국의 전당호(錢塘湖, 항주의 서호)에 비견되고, 공갈못 구경을 못하면 저승에 가서도 다시 돌려 보내진다는 전설이 생겼을 정도로 아름다웠다는 그 공갈못에 갔습니다. 그곳의 문화관광해설사가 들려주는 자연 경관과 역사에 대한 설명, 박학다식하고 유려하게 펼쳐내는 입담, 그리고 뜻밖에 들려주던 '상주함창' 노랫소리는 오래 기억되어 남을 것같습니다.
공갈못 이름은 空骨池, 恭儉池, 鏡湖, 南湖, 儉湖 등으로 전해져 오지만 이는 모두 공갈못의 漢字 借字表記라고 합니다. 공갈못의 이름 유래에 대하여 홍귀달(1438~1504)은 名三亭記에서 공갈못 축조시 둑을 쌓으면 서 '공갈'이라는 아이를 못둑에 묻고 쌓아 이루었으므로 '공갈못'이라는 이름을 갖게되었다고 기록하고 있고[埋兒說話], 단재 신채호 선생은 못의 위치가 옛 고령가야 터였다는 점에서 조선상고사에서 읽는대로 고링가라(古寧伽倻)라는 말이 와전되어 '공갈'이 되었다고 했답니다. 저는 후자에 한표 던집니다.
구비전승(口碑傳承) 된 '상주함창' 공갈못 노래는 부르는 사람에 따라 제각각이어서 노랫말이 통일된 것이 없고 들쭉날쭉하지만 중모리 장단으로 부르는 노동요(勞動謠)인 점은 분명한 것같습니다. 공갈못 노래는 한 사람이 소리꼭지(한 악절)를 부르고 나면 여러 사람이 같은 선율과 가사를 다 같이 부르는 선입후제창(先入後齊唱)으로 이어집니다. 이는, 평야가 많아 논농사를 주로 하는 고된 농삿일때문이 노래하면서 힘을 북돋우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느린 가락의 소리를 한 사람이 부르는 독창(獨唱)이나 다른 여럿이 뒷소리를 받는 선후창(先後唱)이 대부분인 '정선 아리랑’은 '상주함창'에서와 같은 제창 형식이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하는 점에 있어 다르다고 해야 할 것같습니다.
동영상의 배경 음악은 '상주 모심기 노래’ 내지는 '공갈못 연밥 따는 노래[채련요採蓮謠]'로 알려져 있는 것같기는 한데 딱히 확정되어져 있는 것같지는 않습니다. 상주 함창 공갈못 주변에서 모심기 즈음에 부르던 노래였다고 한다면, 동네 총각이 모를 내면서 허리를 펼 때 공갈못에서 연밥 따는 처자를 향해 부르던 일종의 청혼가라 할 수가 있겠고, 시집살이의 어려움과 농사일의 힘듦이 긴 가사에 줄줄이 배여 나오는, 마을 사람들이 농사일하며 힘들 때 부르는 노래였던 것같습니다. ‘상주 모심기 노래’는 따로 있다고 하므로 이 노래는 ‘연밥 따는 노래(채련요)’라고 해야 알맞을 듯합니다. 참고로, "능청 능청 저 비리 끝에"에서 "비리"는 경상도 방언에서 말하는 절벽 또는 벼랑으로 쓰였다고 읽어야 한답니다. 화자(話者) 자신과 올케가 절벽에서 함께 떨어지거나 물에 빠지면 화자의 오빠(=올케 남편)는 올케를 먼저 구해 살려낸다 하므로, 화자 자신이 죽어서 후생(後生) 가게되면 남편이 자신을 살릴 것이기 때문에 내 낭군 부터 섬기겠노라는 의지를 노래합니다.
BGM : 김소희(명창) - 상주함창 (연밥 따는 노래)
상주 함창 공갈못에 연밥 따는 저 큰 아가
연밥 줄밥 내 따주마 우리 부모 섬겨주소
문어야 대전복 손에 들고 친구집으로 놀러가자
니가 어데로 간 곳 없고 조각배만 놀아난다
능청 능청 저 비리 끝에 시누 올케 마주앉아
나두야 죽어 후생 가면 낭군 부터 섬길라네
이 배미 저 배미 다 심어 놓으니
또 한 배미가 남았구나
지가야 무슨 반달이냐 초생달이 반달이지
첫댓글 11일 상주, 군위에서 만난 문화관광해설사 두 분은 프로페셔널 했습니다. 인각사에서 여든셋의 나이에 불구하고 정열적으로 해설해 주셨던 박만규 선생님을 뵐 수 있었는데 한학에도 조예가 깊으신 듯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또 한 분, 공갈못 해설사님인데, 그분의 성함은 여쭤보지 않았지만 지정 스님이 쓰신 글에도 등장하고 있고, 또한 해설사 그분이 말씀하시는 도중에 지정 스님을 몇번 거명했던 것으로 봐서 아마도 권택희 해설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참고로 문경타임즈라는 매체에 기고한 지정 스님의 글이 있어, 그 위치 정보를 공유해둡니다.
http://m.mgtimes.co.kr/view.php?idx=216246
<사족> 경상도 전설에 의하면 시누와 올케가 벼랑 위에서 동시에 강에 떨어졌다. 이때 오빠가 자신의 누이동생이 아니라 아내(올케)를 먼저 구하는 바람에 누이는 강에서 죽었다고 한다. 상주 모심기 노래라고도 하고 공갈못 연밥 따는 노래라고 이름 지어진 배경 음악은 누이가 자신을 먼저 구하지 않은 오빠를 원망해서 부른 노래다. 그러니 죽어 다음 생(후생)에 가면 낭군을 먼저 섬긴다는 말이 나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비리'라는 말이다. 경상도 방언으로 절벽, 벼랑(낭떠러지)을 부르는 말인데, 어떤 자료에서는 '저 비리(壁) 끝에'를 표준말로 잘못 음차하여, '저 비(雨) 끝에'로 부르는 것으로 되어 있다. 때문에 완전히 엉뚱한 뜻으로 변해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참고 출처: 하응백, 인문학으로 읽는 국악이야기, Human & Books, 14-15쪽
김소희님 창은 전에도 들었던 곡조네요. 공갈못 갈 때에는 혹시나 해서 연밥따는 노래를 연습하면서 갔는데 그 해설사님 노래를 듣고 나니 제가 다시는 그 노래를 부를 생각이 없어졌습니다.
회장님의 답사 예행 연습이 충분했을 터인데, 현장에서 해설사님(아마 권택희님?)의 절창을 따라 부르시는가 싶더니 이후 의기소침해지셨나 보군요. 그런다고 용기 잃지는 마세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