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절친한 후배의 아버님 장례식 참여 차 벽제 승화원에 들르게 되었다.
삶에의 무료함이 느껴질 때 간혹 재래시장을 들르면 요식과는 거리가 먼, 그저 관계된 가족들을 보살피고 그들의 생을 보장하기 위한 1차원적 생에 대한 애착과 책임감의 발로에서 움틀 거리는 삶에 대한 의지와 집념들을 접하면서 생의 의미와 존재의 이유를 일부분 이해하며 활력을 얻어 돌아서곤 했다.
그렇듯 화장터에 들릴 때에는 그 보다는 좀 더 총체적인 삶 자체에 대한 의미를 떠 올리게 된다. 가장 우선은 건강을 위한 자신의 현 생활 태도를 되돌아보게 되고, 다음으로 지금까지의 내가 살아온 길과 방식이 진정 후회 없는 생이었나에 대한 의구심, 그리고 늦은 바도 있지만 나머지 내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내가 저 순간이 되었을 때 큰 한과 후회를 남기지 않고 갈 것인가? 를 떠 올려 보게 된다.
오늘 그곳에서,
화구 속으로 들어가는 어린 자식을 보며 몇 번이고 실신하다 끝내는 자식의 친구의 등에 업혀 대기실로 향하는 어매의 비통함을 보았다.
저토록 어매의 준비되지 않은 비통함은 분명 병사가 아니고 사고사임을 가늠하게 한다.
만일 오랫동안을 병마에 시달려 오다가 어쩔 수 없이 보낸 자식이라면 정신을 잃을 정도의 비통함 보다는 오히려 '이제는 아픔과 고통이 없는 세상에 가서 이 어매가 갈 때 까지 잘 있으라'고 형언할 수 없는 그 큰 슬픔을 가슴으로 삭이며 조용히 보냈으리다.
망자가 어매의 저 비통한 아픔을 한 치라도 알고 염려했더라면 살아있었을 엊그제 그 날, 그 순간에 그 실수는 하지 않았을 텐데.. 아니 한 번은 더 생각하고 고민했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친구들의 차림새로 보아 능히 어떠한 형태로든 순간적 실수의 가능성이 농후해 보이기도 하였다. 아니, 요즈음의 젊은이들의 상당부분이 생각의 깊이가 짧고 철학적 관념이 부족하다는 것이 사회적 문제로 팽배해져 있는 것도 사실인 듯하다.
엊그제 지난 어버이의 날, 물질적인 것을 어버이를 위해 준비해 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처신을 올바르게 하고 바른 생활관과 윤리관을 몸소 실천하므로써 저토록 비통한 아픔을 어버이에게 남겨드리지 않는 것이야 말로 어버이가 바라는 진정한 효도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첫댓글 그토록 커다란 슬픔을, 살면서 직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지요.
우리는 참으로 많은것을 보면서 혹은 경험라면서 살아왔네요.
친구여! 몸조심하고 또 아끼고 남의 슬픔을 나누면서 삽시다.
고마워요.
지난 번 미사리에서 보내준 자연풍경을 담은 메세지
고맙게 잘 받았고..*^_^*.
아름다운 생각 속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인생을 경험할 수 있을겝니다.
좋은 생각하기를 우리 일상의 한 부분을 할애하며 살아갑시다.
완전 같은 생각이네요 모두 건강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