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낮의 꿈
칠월 둘째 일요일 새벽이다. 전날 고향을 다녀온 이야기를 몇 줄 글로 남기고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 장마 끝물 날씨가 무덥기는 해도 아침나절 어디로 산행을 나서볼까 생각했는데 어제 오후 갑자기 일정 변경이 생겼다. 느닷없이 거제 근무지 고3 한 학생이 코로나가 확진되어 비상이 걸렸다. 학생들과 교직원 모두는 선별검사를 받게 되는데 나는 갈 수 없어 창원보건소를 찾았다.
코로나 방역 담당자들의 노고가 많으나 허술한 행정력이 아쉬웠다. 선별검사소를 찾아간 이들에 대한 안내가 제대로 되질 않고 허둥대서 답답하기만 했다. 정부는 K방역 홍보 선전에만 치중했지 국민으로서 직접세든 간접세든 바치는 세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별검사소 앞에 검체 채취 후 집에서 기다리라는 문구만 보고 관계자에게 얼마를 기다려야 하느냐고 따져 물었다.
보건소 직원인지 청소 아주머니인지 오늘은 검사 인원이 많아 이삼 일 걸릴 거라 했다. 나는 그런 두루뭉술한 답변이 어디 있느냐면서 통보 일시를 분명히 해주십사고 했다. 이삼일 걸릴 거라면 예약을 취소하고 다른 민간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겠노라고 했다. 그러자 그 관계자가 어디 가서 물어보고 올 거라면서 자리를 떴다가 다시 나타나 내일 오전 중 문자로 알려준다고 했다.
나는 확진자와 밀접 접촉자는 아니지만 검사 결과를 한 시라도 빨리 통보 받아 학교로 알려주어 할 처지였다. 검사 후 자가 격리 상태만 아니었다면 아침나절 산행을 나서고 싶은 곳은 마음에 정해 두었더랬다. 불모산 기슭이나 장유 대청계곡 어디쯤이었다. 뒤늦게 형성된 장마전선으로 우리 지역에도 제법 많은 비가 내렸다. 여름 숲을 찾아가면 삼림욕을 하고 알탕(?)까지도 가능했다.
장마철은 강수량이 많아 계곡물은 어디나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소리 내어 흘렀다. 불모산과 대청계곡이 그런 곳이다. 나는 등산로를 벗어난 인적 뜸한 계곡 물웅덩이가 어디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참나무 숲길을 걷다보면 영지버섯이 갓을 펼쳐 자라는 것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모르는 알탕지에 이르면 땀에 젖은 옷을 벗고 물웅덩이에 몸을 담그면 자연인도 부럽지 않다.
선별검사소 검사 결과가 문자로 통보되길 기다리며 아침나절 나서려던 산행 행선지는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말았다. 어제 고향에서 손수 따온 고구마 잎줄기 껍질을 벗기면서 시간을 보냈다. 큰 형님 집을 방문해 내가 따온 고구마 잎줄기는 양이 상당해 껍질을 까는데 시간이 제법 걸렸다. 손가락에는 갈색으로 물이 들었다. 봄날에 산나물을 뜯어 가리다 보면 으레 생기는 현상이었다.
대형 마트나 할인매장 채소 코너에는 보이지도 않는 고구마 잎줄기지만 우리 집에선 여름 채소로 즐겨 먹는다. 재래시장 노점 바닥에서는 할머니가 파는 것을 봤다만 사보진 않았다. 창원 근교 지인 농장을 찾아가면 내가 눈독을 들였다가 따오는 고구마 잎줄기다. 가을에 캐는 고구마 뿌리보다 여름철 잎줄기가 더 소중한 찬거리가 되어주었다. 껍질 벗기기까지는 내가 할 몫이었다.
인내심을 발휘해 두세 시간 걸려 고구마 잎줄기 껍질 벗기기를 마쳤다. 아침 아홉 시가 지나니 시청에서 문자가 날아왔다. 짐작은 했지만 예상대로 음성이라 마음이 놓였다. 근무지 보건교사 앞으로 내가 통보 받은 문자 내용을 복사해 알려주었다. 학교에서는 일요일에도 비상 상황이라 문자가 연이어 날아왔다. 어제 확진자와 통학버스 동선이 겹친 다른 학생도 감염되었다고 했다.
앞으로 닷새만 등교하면 여름방학에 들게 된다. 그간 3학년은 매일 등교였는데 코로나 확진가 발생하여 원격수업으로 전환된단다. 나머지 학년은 이틀과 사흘씩 잘라 등교와 원격수업을 병행하다가 방학에 든다고 한다. 코로나 사태가 빨리 누그러져 안정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나마 나는 자가 격리 되지 않고 근무지로 나갈 수 있음만도 감사했다. 2학기는 전면 등교를 준비하고 있는데…21.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