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존 밀턴의 실낙원(1667)
최초의 인류인 아담과 이브는 낙원의 원주민들이었다. 그곳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지 말라”는 계명을 제외한 그 어떤 법이나 윤리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 가난도 없고 겨울도 없고 슬픔도 없고 눈물도 없는 완전한 땅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곧 낙원을 잃게 된다. 유일한 법을 어겼기 때문이다. 창조주는 그것을 용서하지 않았다. 낙원에서 쫓아냈고 유한한 생명, 노동, 출산의 고통 등 인류 모두가 유산으로 물려받아야만 하는 원죄가 되고 말았다. 그들이 받은 형벌 중 가장 끔찍하고 슬픈 벌은 부끄러움을 알게 된 어떤 인식에 있다.
존 밀턴(1608 –1674)이 지은 실낙원(1667)은 천국과 지옥, 천사와 악마, 인간의 원죄와 구원의 가능성을 다룬 일종의 종교 서사시다. 표면적인 서사는 아담과 이브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 먹고 낙원에서 쫓겨나는 내용이다. 시간적으로 태초 이전과 종말 이후를, 공간적으로 천국과 지옥, 낙원과 실낙원까지 방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실낙원은 성서에 대한 청교도적 명상의 결실이자 그리스 로마 신화를 비롯한 온갖 이교 신화에 준거한 탁월한 문학적 상상력의 소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고전 서사시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으면서도, 그것을 초월하여 인문주의적이고 기독교적인 가치와 미덕을 내세우는 새로운 서사시를 완성한 것이다. 이 작품으로 밀턴은 셰익스피어 다음가는 대시인이라는 지위를 얻었고, 실낙원은 종교적 통찰을 보여주는 최고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실낙원 연인들의 사랑이 완전히 망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사랑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나는 그대와 운명을 같이하고 형벌을 같이하련다. 만일 죽음이 그대와 짝짓는다면 죽음은 내게 생명이리라. 그대는 나의 것이기에, 우리 몸을 가를 수 없다. 우리는 하나, 한 살. 그대를 잃음은 나 자신을 잃는 것. 그대와 같이 죽으려는 것이 나의 확실한 결심이니.”
낙원을 잃은 아담과 이브 이후의 세계는 영원한 실낙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당신은 여전히 낙원을 꿈꾼다.
(** 낙원이라고 하는 에덴 동산, 또는 심리 용어로 ‘원초적’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죄의식과 수치심은 심리적인 현상이다. 이러한 심리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인간이 지켜야 할 법을 어겼을 때이다. 인간이 법도 없이 동물처럼 살던 시대에서 규범을 만들어서 인간으로 살게 된 때가 낙원에서 추방당한 시대라고 본다. 다시 말하자면 실낙원은 우리가 잃어버린 낙원이 아니고 실낙원이 바로 낙원일 수 있다는 뜻이다.)
첫댓글 존 밀턴(영어: John Milton, 1608년 12월 9일~1674년 11월 8일)은 영국의 시인이자 청교도 사상가이다. 런던에서 청교도 신앙을 가진 부유한 공증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프로테스탄트의 수호자를 자처했던 올리버 크롬웰 밑에서 외교 비서관을 지내 그를 오랬동안 보좌했다. 기독교 성격의 서사시인《실낙원》의 작가로 유명하다.
일찍부터 학문과 문학에 재능과 열정을 보였으며, 열여섯 살에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입학했다. 대학을 다닐 때 '귀부인'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용모가 고귀하였으며, 천재성을 발휘하여 〈그리스도 탄생의 아침〉을 썼다.
1637년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1639년 귀국하여서는 국가와 교회가 일치된 영국 성공회를 반대했다. 주교제에 반대하고 장로제를 주장하며 성서주의인 청교도들의 종교적 신념에 편들었다. 올리버 크롬웰을 지지하였다.
낙원인 에덴 동산에는 '~하지 말라'는 금기사항이 유일한 종교법이다. 고대종교의 틍징이 바로 금기의 법이다. 도덕이나 관습 등은 말하지 않는다.
도덕이 종교에 들어오면서 현대종교로 새롭게 태어났다. 그런 면에서 에덴 동산은 고대 종교의 양상을 보여준다. 금기를 어겼다는 것이 재미있게도 도덕문제(도덕의 제일 기본은 남녀의 성문제에 관한 것이다.)에 눈을 떴다는 것이다.
도덕 이전 시긴인 에덴동산으로 돌아가는 것이 나원일까?
현대철학 중에서는 우리가 사는 현실이 낙원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청교도 혁명이 일어난 뒤 약 10년간 외국어 장관을 지냈으며, 작은 책을 만들어 신학적, 정치적 신념을 표명하였다.
간통을 이혼사유로 여기던 영국사회의 전통을 깨고, 부부간의 기질과 사상이 맞지 않는다면 이혼할 수 있다는 글을 썼다. 이 글은 밀턴에게 난봉꾼이라는 모독적인 별명이 붙여질 만큼 영국 사회의 논란을 일으켰다. 밀턴은 군주제의 속박은 인간성에 대한 모독이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을 '어른이 아닌 아이로서' 행동하도록 만드는 정치라는 신념에 따라 왕정에 반대하고 공화주의를 주장하였으므로, 왕정으로부터 미움을 받았다.